[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0)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1.10|조회수298 목록 댓글 3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②


-그들의 마음속에는 늘 족구장이 하나 있다. 그곳에 가고 싶다.

다시 한 주가 빠른 듯 더디게 지나갔다. 주말은 족구인에게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가을날의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기만 하였다. 지난주에는 비가 내려 토요일밖에 족구를 하지 못해 울가망한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성구는 생각한다.

운동 시간에 맞춰 성구가 구장으로 다가가자 이미 회원 몇 명이 나와 있다. 그리고 게임을 재촉하는 듯 벌써 네트가 쳐 있다. 주위 나뭇잎들이 시나브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족구열기도 깊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잠시 후에 회원들이 거의 모인 듯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회장님, 오늘부터 신입회원으로 들어올 사람들입니다.”

이봉걸 감독이 옆 사람들을 가리키며 소개한다. 성구는 그들과 악수를 하며 반긴다. 그들은 회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이름을 밝힌다. 공격수 이영민, 수비수 강신호, 강현태, 세터 전찬호 등이다. 네 명이나 한꺼번에 신입회원이 들어오니 다른 회원들이 기분 좋아한다. 이제는 인원이 부족해 족구를 못할 상황이 아닌 것이 무엇보다 기쁠 것이었다. 다섯 명이 모여 족구를 할 때는 구색이 맞지 않아 힘이 빠지곤 하였는데, 이제 그 기억들은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격세지감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성구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혼자 웃음을 짓는다.

잠시 후, 간단한 스트레칭과 몸풀기 운동이 끝나자 편을 나누어 게임에 돌입할 태세다. 총무가 새로 산 점수판을 가지고 온다.

“와, 점수판 좋은 데요!”

회원들이 살펴보며 넘겨보며 한 마디씩 거든다. 이제는 게임 점수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점수판의 숫자 0 : 0에서 게임이 시작되고, 한 점씩 얻을 때마다 숫자가 넘어간다. 반대로 상대편 점수는 얼어붙은 듯 그 숫자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눈으로 보이는 숫자에 따라 점수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으니 참 좋다.

서로 머릿속으로만 점수를 기억하다가 공격수의 강한 공을 머리로 한번 받아내고 나면 금방 점수를 잊어버렸던 적이 대체 몇 번이던가? 몇 점을 더 얻으면 동점이 되고, 몇 점 더 얻으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점수판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점수판을 땅에 놓고 넘기거나 앉은 사람의 무릎에 놓고 넘기고 있으니 뽄대(폼)가 나지 않는다. 점수판을 올려놓을 지지대가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점수가 15점에 이르면 어김없이 승패가 결정되고 다시 점수는 0 : 0으로 리셋이 된다. 오늘도 패한 팀은 개인당 천 원씩 족구공 담았던 그물망에 적립한다. 뒷맛은 씁쓸하겠지만, 막걸리 한잔 먹을 생각에 회원들이 위안을 삼는지도 모른다. 다음 판에는 기필코 이기려는 오기를 가슴 한편에 비수처럼 숨겨놓고서 말이다.

오늘은 3팀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한 팀당 2게임을 하고 게임당 15점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팀이 2게임을 하고 한 번 쉬는 거였다. 공격수도 잠시 쉴 틈이 있으니 좋고,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경기에 임하니 적절한 운영방식임에 틀림없다.

성구는 두 게임을 뛰고 잠시 쉬는 타임에 주심을 자처하며 게임을 관전한다. 진행되는 게임을 지켜보며 지난주에 서울 동대문구 체육관에 다녀온 경기를 떠올려 본다.

‘ 그 파워 넘치던 공격들, 환상적인 띄움들, 개처럼 뛰어서 정승처럼 받아내던 수비들...’

그 선수들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도 언제 그들과 같은 기량과 팀워크를 다질 것인가.

“네트 가깝게 붙이세요!”

한쪽 공격수가 세터에게 요구하곤 한다. 하지만 세터의 볼은 번번이 네트에서 멀리 띄워진다. 그러니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오픈공격으로 점수를 얻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세터의 공이 곱게 오르지 못하고 계속 돌고 있다. 공격수는 점점 한숨만 내쉬고, 그럴수록 세터는 더욱 부담이 되어 공은 불규칙적으로 돌고 있으니, 게임에 결코 이길 수 없는 거였다.

‘세터의 공이 돌면 공격수가 돌아버린다.’는 말은 소문이 아닌 명백한 현실인 거였다.

원인은 아직 세터의 기량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수비수의 리시브가 정확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터였다. 네트 1미터 앞까지 정확하게 리시브가 된다면 세터가 공을 띄우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러면 A킥도 B킥도 C킥도 세터가 적절히 응용할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우리 팀은 아직 리시브를 정확하게, 띄움을 환상적으로 할 역량이 없지.’

성구는 그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조를 해본다. 동네족구를 벗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그런 욕심을 부린단 말인가.

몇 게임이 더 진행되고, 잠시 땀도 식힐 겸 회원들은 담쟁이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둘러앉는다. 총무가 사온 순두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한쪽에선 자기 팀끼리 엄숙한 전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성구는 준비해 가지고 간 회칙 인쇄물을 돌리며 잠시 회의를 주재한다. 각 조, 각 항마다 열거하며 회원들의 의견을 묻고, 보완 할 것들을 메모한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진 것을 회원들에게 알린다.

“다음 카페에 들어와서 ‘잔다리’ 검색어를 입력하면 곧바로 울 카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카페에 가입하고 닉네임을 본명으로 해야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와, 드디어 회칙도, 카페도 생기고 이제 족구단 다운 면목이 서는데요.”

총무가 말하자, 회원들이 와, 하며 박수를 보낸다.

“기왕에 이렇게 구색을 갖추는 거, 우리도 유니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진만 회원이 의견을 내놓는다.

“좋습니다.”

누군가 대답하자,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들이다.

“오늘 새로 오신 회원님들, 의견이 어떻습니까?”

회장이 묻자, 그들도 그렇게 하자는 반응을 보인다. 그것으로 결정이 난 터였다. 유니폼 디자인과 색상, 가격 등은 인터넷에서 자세히 알아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각자 원하는 칫수와 등번호를 카페 회원전용게시판에 올리기로 하고 다음 의견을 묻는다.

“그리고, 사물함이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회원 한 명이 의견을 내놓는다. 매번 공과 네트 등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사물함을 하나 만들어 그곳에 족구용품을 넣어두자는 의견이다. 번호가 있는 자물쇠로 시건장치를 해놓으면 먼저 온 회원들이 네트를 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인데요. 진만이 자네가 한번 만들어 봐.”

감독이 친분이 있는 회원에게 말한다.

“알았어. 한번 만들어 보지 뭐.”

회원들이 그 말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점수판을 올려놓을 조그만 탁자도 하나 만들기로 하고 그들은 회의를 매듭짓는다.

다시 막걸리 잔을 더 돌리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그들은 다시 코트 안으로 들어선다. 게임이 시작되고 회원들의 외침과 웃음소리가 작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수비수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론 어이없는 실수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멋진 공격에는 파이팅과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서브 실수 하나에 한 점을 잃는 실연을 당한 것 같은 절망(?)을 달래기도 하고, 킬러는 공격 실수 하나에 아쉬워하며 미안해하기도 한다. 처음 온 신입회원은 낯선 코트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신의 실력 발휘가 안 됨을 안타가워하기도 한다.

공격수는 띄움수에게 네트 가까이, 더 높이 띄울 것을 요구하고, 띄움수는 수비수에게 공을 더 길게 밀어줄 것을 요구한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제외한 대부분 수비수들의 리시브는 짧은 편이다. 좀 길면 바운드된 공이 그냥 네트를 넘어가거나 걸리게 되니까, 그런 부담 때문에 짧아지는 것이다. 수비수들은 자신이 실점하기보다는 차라리 불완전하지만 좀 짧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수비수들의 리시브 길이는 남성 거시기의 길이와 같다고 했던가?’ ㅋㅋㅎㅎ

수비수들이여, 제발 짧게 하지 말고 길게 할지어다. 길수록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띄움수와 공격수가 당신의 그 긴 것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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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족구 | 작성시간 09.01.23 세터의 공이 돌면 공격수가 돌아버린다. 리시브 길이는 남성 거시기의 길이와 같다. 잼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소설 써 주세요~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2.24 리시브. 토스 다 되면 1부 팀이 겠지요. 지금 모습도 정겨운듯...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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