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1)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2.23|조회수347 목록 댓글 5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③


-족구공이 있는 곳에 그들만의 전설이 있다.

경기 중에 잠시 눈길을 돌려보면, 아파트 공원 주위의 나뭇잎들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게임이 끝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거나, 수비수가 공을 줍기 위해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달려가는 짬에 설핏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 느낄 수 있는 서정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족구하기에는 좋은 계절이지만 곧 겨울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막걸리에 취한 듯 얼굴이 벌겋게 물든 회원도 보인다. 오늘 처음 온 신입회원들도 열심히 뛰며 공을 받아내고 있다. 아직은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회원도 있다. 게임에서 지면 다른 팀원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안타깝지만 천 원을 내야 하는 현실은 그만큼 냉정하다.

천 원짜리에 불과하지만, 일단 돈내기가 걸리면 회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설렁설렁 할 수가 없다. 자신 때문에 게임에서 질 수도 있다고 느끼면 그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

때로는 한 점 때문에 치열하게 공방이 오간다. 아웃과 세입을 두고 주심이 오심을 본 거라고 서로 설왕설래가 이어지기도 한다. 간혹 얼굴을 붉히며 판정에 대해 불만을 갖기도 한다. 그 흥분으로 인해 경기의 흐름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게임에서 ‘수비를 논하면 1부, 세터를 논하면 2부, 심판을 논하면 3부’라고 했던가.

게임에서 이긴 팀은 기분이 좋고, 진 팀은 허탈해 한다. 진 팀은 뭔가 팀워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인의 기량일수도 있고 그날의 컨디션일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서로 탓을 한다. 공격수는 세터를 탓하고, 세터는 수비수를 탓하고, 수비수는 어제 마신 술 탓을 한다.

‘아, 어제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도 안 깼나 봐.’

수비수는 술 탓을 하지 말아야 하고, 세터는 수비수를 탓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좋게 올릴 수 있는 기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공격수는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며 세터를 탓할 것이 아니라, 공이 낮으나 높으나 네트에서 가깝거나 멀거나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공격력을 길러야 한다.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최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클럽에서는...? 아직 희망사항인가.

성구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감정도 깊어져서인가.

오늘따라 동재가 속한 팀이 자주 지는 것 같다. 동재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에게는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평소에 돈내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동재라는 것을 성구는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다수가 원하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거였다.

‘술도 마시지 않고 돈내기 게임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운동만 하고자 하는 것이 동재의 희망사항인데...’

성구는 잠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동재 생각을 해본다.

저녁때가 되어서인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들은 긴 해가 질 때까지 게임을 하다가 경기를 갈무리한다. 네트를 풀고, 지줏대를 한 쪽으로 치워놓고 점수판과 공을 모아 의자 옆에 모아놓는다. 남은 막걸리를 비우고, 빈 잔과 음식들을 치우고, 족구화를 벗어 신발주머니에 넣으며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운동 즐겁게 하였나요?”

감독이 한 마디 한다.

“생각처럼 잘 안 되던데요. 저도 회사 내에서는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잘들 하십니다.”

수비수 강현태가 한 마디하고는 손을 뒷머리에 갖다대며 겸연쩍어한다.

“환경이 아직 낯설어서 그래요. 좀 지나면 적응할 겁니다.”

“강신호 님은 수비를 아주 잘 하던데, 아주 든든한 수비수가 들어와서 좋습니다.”

성구가 그를 보며 칭찬을 하자, 회원들도 그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보낸다.

“자, 그럼 한 주 잘 보내고 주말에 다시 봅시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뜬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즐겁게 운동한 사람들의 흡족한 실루엣을 볼 수 있다.

성구와 동재와 만규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다. 동재가 성구를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말을 꺼낸다.

“저 아무래도 운동 계속 못할 거 같습니다.”

“무슨 일 있어?”

성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다.

“회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옆에 있던 만규가 어색한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술 마시는 거와 돈내기 게임 때문이지?”

“네, 맞아요. 나도 그 동안 고민 많이 했어요. 우리가 처음 클럽을 만들 때는 이런 취지가 아니었잖아요?”

“... ... ”

성구는 선뜻 말을 할 수가 없다. 옆에 있는 만규도 심각한 표정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성구는 동재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랬었지. 처음에 클럽을 만들고자 할 때는 돈내기 게임이나 술 마시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지. 처음에 모였던 다섯 명이 거의 그런 취양들이었지. 특히, 동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터였다. 그런데, 회원이 많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어느 클럽은 전혀 술 마시지 않고 운동만 열심히 하던데. 실력도 뛰어나고, 팀워크도 좋고.’

그들은 술 마시고 족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매 게임마다 치열하게 경기에 임해야 하는데 술이 취하면 가능이나 하겠는가?

성구의 뇌리에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저 때문에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회원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다음부터 안 나오겠다는 말이야.”

듣고만 있던 만규가 따지듯이 묻는다.

“네,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동재의 말에 성구는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좌불안석이다.

“동재 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다음 주에도 나와요.”

성구는 그 말만을 반복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들은 울가망한 기분을 가슴 한 구석에 매단 채 그렇게 헤어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세 명이 모여 다른 클럽을 찾아다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클럽이 없어 다른 클럽에 기웃거리던 그 설움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동재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성구의 마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성구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새 회원들이 들어왔나 궁금해서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다. 클럽 카페에 들어가니 회원들 몇 명이 벌써 가입하고 인사말을 써 놓은 것이 보였다. 카페 안에서 그 이름들을 보니 색다른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성구는 카페관리에 들어가 그들을 모두 특별회원으로 승급한다. 벌써 ‘한줄메모장’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일일이 댓글을 달기도 한다.

카페 온(ON)에 보니 회원 몇 명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채팅을 신청하니 수락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회원도 있다. 아직 독수리 타법이니 지레 겁을 먹고 나가버리는 것일 터였다. 성구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동재 일 때문에 착잡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성구는 낮에 회의를 하며 회칙을 보완하고 수정했던 인쇄물을 찾아 키보드 앞에 놓는다. 회칙 파일을 찾아 열어놓고 하나씩 수정하며 정리한다. 수정하는 내용이 별로 많지 않아 작업은 금방 끝이 난다. 회칙 원본을 복사하여 카페의 메뉴에 등록하자 제법 족구클럽회칙다운 면모가 보이는 듯하다.

  성구는 마지막으로 회원전용게시판에 유니폼에 대한 안내사항을 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등번호와 치수를 올린다. 회원들이 조만간 그들의 등번호와 치수를 댓글로 남길 거였다. 모두 취합이 되면 드디어 유니폼을 주문하는 거였다.

  ‘우리도 이제 족구클럽 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하게 되는구나.’

성구는 컴퓨터를 크고 가족들이 있는 거실로 나온다. 이제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운동복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2.24 이번회 글은 제가 일착이네요. ^^ 동재군... 조그만 것에 연연치 말구 담주에두 나오라구~~
  • 답댓글 작성자공사랑 | 작성시간 09.02.25 동재를 나오라고 하면 작가가 고민에 빠질텐데요~~ㅎㅎ
  • 작성자도야99 | 작성시간 09.02.24 내용이 넘 산뜻하네요. ^^
  • 작성자공사랑 | 작성시간 09.02.25 유니폼 입고 운동하면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클럽이 하나씩 체계가 잡혀가는군요. 꼭 울팀 보는 거 같아요~~ㅎㅎ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