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2)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5.14|조회수331 목록 댓글 4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세월이 흐르며 족구는 한 단계 성장한다.

한 주가 다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일요일, 성구는 운동시간에 맞춰 족구장으로 향한다.

가을이 깊어가며 주위 단풍잎들이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다. 그 곱던 나뭇잎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구가 운동장에 도착하자, 회원들이 벌써 몇 명 나와 있고 족구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서인지 흰 장갑을 낀 회원들도 보인다.

“회장님, 카페가 멋지게 만들어졌던데요.”

회원 한 명이 성구에게 말하자, 다른 회원도 카페 이야기를 한다. 카페에 매일 들어와 한 줄 메모장에 인사말을 남기는 회원도 많았던 것을 생각하며 성구는 즐겁게 그들과 대화를 한다.

성구는 회원들과 잠시 담화를 나누고, 사물함이 설치된 곳으로 다가가 살펴본다. 엊그제 사물함을 만든 정진만 회원이 그곳에 설치했다는 연락을 받았던 터에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오, 멋지다!”

성구는 사물함을 열어보고 닫아보며 탄성을 지른다. 다른 회원들도 흐뭇해한다.

철제로 만들어진 사물함은 네트와 족구공과 점수판과 기타 용품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칠이 되어 있고, 덮개 위에 흰색으로 ‘잔다리족구단’이라고 써 있다.

철제 울타리 아래에 설치된 사물함이 있어 이제는 용품들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터였다. 먼저 온 회원 누구나 번호로 열게 된 자물통을 열고 용품들을 꺼내 네트를 설치할 수 있고, 공을 꺼내 개인 연습도 먼저 할 수도 있으니 참으로 편리한 거였다.

잠시 후, 회원들이 거의 도착하고 총무가 유니폼이 들어있는 큰 상자를 들고 도착했다. 주문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벌써 도착한 거였다. 회원들은 자신들의 등번호 유니폼을 골라 살펴보며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한다. 홀라당 웃통을 벗고 재빨리 입어보는 회원도 있다.

“오, 뽀대 나는데요!”

다른 회원들이 장단을 넣는다. 유니폼 뒤에는 등번호와 자신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고, 앞에는 족구단명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제는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걸고 경기를 해야 하므로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질 터였다.

“자, 모두 입고 운동합시다.”

성구의 말에 회원들이 상표 레이블을 떼어내고 각자 입는다. 옷을 갈아입는 데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용감하게 갈아입는다. 한동안 목욕탕 탈의실 같다. 회원들의 모습을 쳐다보며 서로 멋있다고 격려를 한다. 상자 안에는 홍승덕 회원 이름이 붙어있는 한 벌이 남아 있다.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웃음꽃이 피고 있는 족구장에 낙엽들이 깔깔거리며 구르기도 하고, 어느덧 반갑게 느껴지는 오후 햇볕이 찾아와 반짝반짝 그들을 축하해 준다.

“기념사진이라도 한방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가 없는가보네요.”

누군가 한 마디 하자, 바로 옆 동에 살고 있는 총무가 아파트로 뛰어간다. 집이 가까우니까 필요한 것을 즉시 조달할 수 있는 거였다.

잠시 후에 총무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회원들이 등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기념촬영을 한다. 승덕 회원뿐 아니라 동재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에 말한 대로 끝내 안 나올 모양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성구는 못내 서운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회원들은 다시 네트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이따가 경기하는 모습도 찍어요!”

누군가 소리치자 회원들이 함께 웃는다. 그들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잠시 스트레칭을 한 후 편을 갈라 경기에 돌입하였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코트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다르다. 예전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회원들이 들떠 있다. 자신들이 정말 선수처럼 느껴질 거였다. 군인은 왜 군인인가. 그것은 그들이 군복을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군복을 벗으면 민간인처럼 느껴질 것이고 행동도 그와 같을 거였다.

족구 실력이 뛰어나도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동네 족구인이나 민간인처럼 보이고 팀워크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겁 없이 드는 거였다.

경기를 진행하면서 그들은 색다른 기분을 맛보고 있을 터였다.

“어, 거기 5번 선수가 구멍이구만!”

상대 수비수가 공을 몇 번 놓치자, 한 회원이 소리친다.

“맞아, 공격은 집요하게 5번 코스로!”

회원들이 함께 웃는다. 이제는 지적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익명성이 있는 등번호로 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경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는데, 회원 홍승덕이 늦게 도착한다.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 3명과 함께 오고 있다. 회원들이 의아해 하며 모두 주시한다. 승덕이 성구에게 인사하며 다가와 말을 한다.

“회장님, 성희 씨가 한번 오고 싶다고 해서 제가 안내해서 함께 왔어요!”

갑자기 출현한 여인들 때문에 잠시 경기가 중단된다.

운동복을 입은 여자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성구는 여자족구단에서 경기하던 사람들이란 것을 기억해 낸다.

“아, 반갑습니다. 어떻게 이곳을 다 방문하였습니까?”

그녀들이 약간 수줍어하자, 옆에 승덕이가 “잔다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왔대요.“ 하고 얼른 말을 받아넘기며 다른 회원들에게도 인사를 한다.

“야, 승덕이 앤이 드디어 나타나셨네!”

저번에 술자리에서 함께 사연을 알던 회원 한 명이 소리치자, 웃음이 쏟아진다. 다른 회원들은 비로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눈치 챈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오셨으니, 잠시 후에 함께 경기하죠?”

성구가 그들을 보며 말한다. 잠시의 돌발 상황에서 벗어나자 다시 경기는 시작된다. 경기가 중단 되었어도 점수판이 있으니 스코어는 변할 수 없다. 점수판이 없었다면 또 설왕설래 말싸움이 오고 갔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성구는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여자선수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유니폼을 처음 입은 날에 손님을 맞이하니 얼마나 체면이 서는지 모르겠네.’

성구는 숫기 없는 승덕이가 어떻게 이런 일을 주선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흡족해 한다. 여지족구 팀은 토요일에 정기 운동이고 일요일에는 쉬기 때문에 아마 몇 명만 올 수 있었을 거라고 성구는 생각한다.

잠시 후, 한 게임이 끝나고 여자선수들을 불러 코트에 들어서게 한다. 한 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회원들이 승덕을 적극 추천한다. 승덕이가 쑥스러워 하며 수비수로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여자 공격수는 승덕의 애인 박성희이다.

성구는 그녀들을 상대할 팀을 연장자 순으로 네 명 선발하여 경기하도록 배려한다. 나머지 회원들이 흥미롭게 지켜본다. 여자들이 족구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회원도 있을 터였기에 세기의 대결(?)이 될 수도 있을 거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런대로 게임이 진행된다. 여자들도 서브를 발등으로 낮고 날카롭게 날리곤 한다. 남자 리시브가 실수를 하거나 불안정하게 받으면 회원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남자 편에서도 전문 공격수가 아니니까 그런대로 대등한 경기가 되고 있다.

여자 편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머리로 리시브를 하고 띄우고 공격하는 모습을 처음 본 회원들이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게 게임을 관전하고 있는 거였다.

총무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뒤로 흐른 공을 줍기 위해 달려가는 시간에도 승덕과 성희를 나란히 세워 사진을 찍어주는 짓궂은 행동을 연출하자, 구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주위에서 배드맨턴을 치던 사람들도 웃음소리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그렇게 네 팀이 번갈아가며 게임을 즐기다보니 늦가을 해도 서산으로 넘어가고 말았는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승덕과 여자선수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난 후에도 회원들은 남은 맥주를 마시며 족구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서늘한 날씨가 회원들의 종아리부터 파고든다. 곧 겨울이 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거였다.

그들은 곧 다가올 초겨울 운동을 예감하며, 유니폼을 입은 채 민간인 옷가지를 들고 구장을 벗나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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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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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류한호 | 작성시간 09.05.14 오랫만에 올라 왔군요ㅎㅎ...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5.15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 연재가 늦었습니다. 독자 분들께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5.15 빙고~, 왠지 오늘 뭔가가 있을거 같더니... 기다리던 소설이 올라왔네요. 여자회원 놀러오는 동호회... 부럽네요.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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