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3)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6.20|조회수369 목록 댓글 5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 족구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다.

성구는 집에 돌아와 가방을 거실 입구에 툭, 내려놓는다. 현관 옆에 매달려 있는 족구 연습공이 보인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고 왔는데도 빨강, 파랑, 흰색으로 디자인된 공이 정든 친구처럼 반갑기만 하다.

“다녀오셨어요?”

거실에 있던 아이들과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다녀왔습니다. 성구도 경쾌하게 답례한다.

“어, 유니폼이네요? 멋있어요!”

아내가 외치자 소파에 앉아있던 아들 녀석도 얼른 다가오며 살펴본다.

성구도 내심 반기며 자, 봐! 하면서 등번호까지 보여준다.

“아빠, 이제 족구선수 같아요.”

아들 녀석이 농담인지 부러움인지 한 마디 거든다. 옆에 있던 아내도 웃음꽃을 피운다. 그들의 즐거움을 뒤로 하고, 성구는 유니폼을 벗고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한 주의 일과가 끝나가고 있는 거였다.

샤워를 마치자 준비된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면 이렇게 저녁식사가 대기하고 있으니, 가족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늘 성구의 가슴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였다.

식사를 하면서도 유니폼과 사물함과 낮에 있었던 여자족구선수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내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것이 성구는 고맙기만 하다.

“엄마도 족구 한번 해봐요.”

아들 녀석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말을 꺼내고 능청스럽게 생글거린다. 그 말이 아니라도 성구는 언제 시간을 좀 내어 아내와 배드민턴도 치고, 공으로 랠리 연습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성구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방문에 매달려 있는 연습공을 몇 번 차 본다. 아직도 낮의 운동에 미련이 남아있다는 듯이. 아니면 수비에 대한 복구(復球)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도 차보고 싶은지 옆에서 거든다. 이제는 실수하지 않고, 오래 차는 수비연습이 되고 있다. 연습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거였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럽기만 한 듯 성구는 옆에서 가만히 쳐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주말이 다 끝나고 있는 일요일 밤에 뉴스를 보고, 사극도 보고나니 시간이 많이 깊어져 있었다. 성구는 마침 아들이 끝낸 컴퓨터를 이어받아 족구단 카페에 들어간다.

가입 인사말 메뉴에 새로운 글이 올라온 듯 new자가 붉게 보인다. 클릭하여 들어가니 낮에 왔던 여자선수인 듯 인사말이 보인다. 승덕의 애인 박성희와 또 한 명이다. 반가운 마음에 답글을 쓰고, 다른 사진방 메뉴에 들어가자 총무가 낮에 촬영한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유니폼을 입고 찍은 단체 사진과 경기 중에 찍은 회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비로소 카페가 빛나기 시작하는 거였다. 승덕과 성희 둘이 함께 찍은 사진도 올라와 있다. 사진 속에서 보니 더 정답게 느껴진다. 족구로 맺어진 부부가 탄생할 조짐도 보이는 것은 철 이른 속단일까?

성구는 그 사진들을 하나씩 저장하고, 사진파일들을 이용하여 전자앨범을 만든 후 카페 대문에 게시하는 작업을 한다. 잠시 후에 대문이 만들어지자 전보다는 훨씬 멋있게 보인다. 비로소 족구단 카페다운 면모로 변해 가고, 회원도 하나씩 늘어나니 성구는 흡족할 따름이다.

성구는 마지막으로 회원전용게시판에 동계 운동장소를 실내체육관으로 정할 것을 안내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한겨울에는 야외에서 운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내체육관을 미리 물색해 놓아야 하는 거였다.

그는 거실로 나와 아내가 앉아있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을 잠시 함께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들은 오래된 습관처럼 다시 유니폼을 벗고 불붙는 경기를 치른다. 피할 수 없는 맞수처럼 예정된 수순을 밟아 정석대로 풀어가고 있다. 오히려 유니폼을 벗고 남녀가 함께 하는 운동은 족구보다 요만큼만 더 황홀한 거였다. 주말 밤이 아쉽다는 듯이 그들은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경기에 몰입하고 있다. 실력의 백중세는 서로 쉽게 끝나지 않는 밤을 예고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성구는 다시 출근을 서두른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컴퓨터를 부팅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족구카페에 들어간다. 간밤에 자신이 써 놓았던 내용에 댓글이 몇 개 달려있다. 실내체육관 임대에 관한 댓글들이다. 모두 찬성한다는 글들이다. 한줄 인사말에 써 놓은 시간을 보니 오전 6시쯤이다. 참 이른 시각에 들어와 인사말을 써 놓은 회원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성구는 서둘러 퇴근을 한다. 아직 해는 남아있고, 운동할 시간이 좀 있는 거였다. 어제의 운동이 미진하다는 듯이 그는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운동할 것을 제안한다. 아내도 기다렸다는 듯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따라나선다.

“족구공 안 가져가요?”

현관문을 나서며 아내가 묻는다.

“이제, 안 가지고 갈 거야. 배드민턴 라켓이나 가지고 가자고...”

성구는 승강기 앞에서도 의아해 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하지 않는다. ‘잠시 후에 알게 될 터인데, 뭐.’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내와 손을 잡고 족구장이 있는 운동장으로 향한다. 저녁때가 되자, 좀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11월이 넘었으니,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거였다.

아파트 몇 동을 지나 족구장에 도착하자 학생들 몇 명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주위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뒹굴고 있다. 그 곱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가장자리를 배회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족구 코트 옆 아파트 경계 철책 옆으로 다가가 사물함 앞에 선다.

“이게, 족구용품을 담아두는 사물함인가 보죠?”

그녀가 먼저 알아보고 묻는다.

“어, 맞아.”

그는 말하며 지정된 번호를 맞춰 자물통을 열고 사물함을 열었다. 족구공과 네트와 사물들이 보인다. 물병도 보이고 마시다 남은 맥주병도 보인다.

“아, 여기에 공이 있어서 안 가지고 왔군요.”

아내가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그는 이제 알았냐는 듯이 하하, 웃으며 공을 하나 꺼낸다.

성구는 아내와 가볍게 준비운동을 한 후, 배드민턴부터 치기 시작한다. 족구 라인이 설치된 코트 안으로 들어가 경계선을 앞에 두고 마주보며 서로 콕을 날린다. 마침 바람도 없고 콕은 라켓의 힘대로 곱게 튕겨 오른다. 팡, 팡,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저녁하늘로 퍼진다. 몸이 좀 풀리자 카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3세트로 하면 되겠지? 그는 아내에게 제안한다. 그녀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점수를 하나씩 부르며 그들은 서브를 넣고 랠리를 하며 스매싱을 하고, 수비를 하고, 공격을 한다. 상대가 실수를 해도 웃음으로 넘긴다. 상대의 실수는 곧 나의 점수이니까. 아니, 족구처럼 천 원짜리 게임이 아니니까 너그러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세트 스코어 2:0으로 성구가 이겼다. 하지만, 점수는 근소한 차이이다. 그런대로 맞수가 되는 것이 그들은 기쁘기만 하다. 라켓을 옆에 치워놓고 그들은 족구공으로 랠리를 하기 시작한다. 팔 운동을 열심히 하였으니, 이제 발 운동을 하면 제격인 것이다. 그 동안 아내가 관심을 보여 왔던 족구가 아닌가?

네트가 없는 코트 안에서 그들은 랠리 연습을 한다. 받아 넘기는 실력이 제법이다. 그 동안 집안에 매달아놓은 공으로 연습을 많이 하였는지, 타고난 운동 신경인지 잦은 실수도 없이 곧잘 넘긴다. 그래도 그는 약간 실수가 있을 때마다 방법을 알려준다.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고 했던가.

“이 부분, 안축에 공이 정확하게 맞아야 공이 곱게 날아가는 거야. 그냥 툭 차지 말고 밀어 올리듯이 차면 공이 부드럽게 날아가는 거야.”

그는 아내에게 직접 운동화 안쪽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세세히 알려주고 다시 연습하곤 한다. 조금만 더 훈련하면 여자선수처럼 실력이 향상될 조짐이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그를 기쁘게 한다.

부부사이에는 운전이나 컴퓨터 같은 거 배우면 꼭 싸운다고 하던데, 왜 함께하는 운동에서는 예외인지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운동을 함께 하는 동안은 마치 연인처럼 변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어두워질 때까지 배드민턴과 족구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등골에 맺힌 땀방울을 느끼며 그들은 만족한 시간을 보낸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시간을 내어 아내와 운동을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며 성구는 발걸음도 가볍게 걷고 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그리고 더 해가 짧아지기 전에...

족구는 동네에서 가정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동네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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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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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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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탄 좌수비 | 작성시간 09.06.20 넵...감명 깊히 읽고 느꼈습니다~감사
  • 작성자류한호 | 작성시간 09.06.20 수고 하셨습니다..일주일에 한번..기대해 봅니다..ㅎㅎ
  • 작성자메아리 | 작성시간 09.06.20 운동 신경이 있는 여자를 만난 다는것 기쁨이죠...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7.13 지난달에 제가 바빴다는게 새삼 느껴지네요.... 6월에 올라온 글을 이제야 보다니...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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