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연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4)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7.06|조회수400 목록 댓글 10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족구는 평일에도 당최 잠들지 않는다.

성구는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난다.

아내는 이미 출근하였고, 아들도 초등학교에 갔다. 오늘이 성구가 다니는 회사의 창립기념일이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는 거였다.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자니, 그의 머릿속에 적막감이 밀려온다.

그는 간단히 세면을 하고 혼자 아침밥을 차려 먹고 신문을 뒤적이다가, 비로소 생각난 듯 운동 채비를 한다.

‘왜, 신문 스포츠 면에는 족구 기사가 나오지 않는 거야?’

성구는 중얼거리며 보던 신문을 소파에 휙- 던져놓는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족구화와 공을 스포츠 가방에 담아서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다가 잠시 머뭇거린다.

‘전에는 이 버튼만 보아도 혼자 있을 때는 발코로 차면서 눌렀었는데...’

그는 빙그레 웃으며 카운트 되는 숫자를 헤아린다. 밖으로 나오자 아침 기온이 싸늘하다. 그가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나 몇 동을 지나치자, 그들의 족구장이 나타난다. 족구폐인은 어디를 가더라도 일부러 족구장을 거쳐서 간다고 했던가. 혹시 족구장이 어떤 외계인에 의해 철거되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ㅋㅋ

늘 보는 구장이고 아무도 없는 코트지만 그저 정겹기만 하다. 지난여름과 가으내 흘렸던 땀방울이 코트를 더욱 단단히 다졌을 것이 분명한 그 구장이 말이다. 족구장 옆 테니스장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아침 레슨을 받는 주부들이다.

‘동남아(네에서 아도는 줌마) 사람들이여, 제발 족구 좀 하세요!’

성구는 족구장을 일부러 경유하며 지나가면서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족구 에피소드들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족구 세상에서 ‘족구폐인’인지 아닌지를 진단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고 하였다.


첫째, 행선지를 가면서 일부러 족구장을 거쳐서 가게 된다.

둘째, 집안 일이 있으면 평일이나 토욜/일욜 오전에 해치워 족구 시간을 비워둔다.

셋째, 매일 기상뉴스를 보면서 주말의 날씨에 신경을 쓴다.

넷째, 주말 애경사가 있으면 돈보다 족구를 못한다는 생각이 먼저다.

다섯째, 적어도 6개 이상의 족구 카페에 가입해 있다.

여섯째,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족구 이야기를 한다.

일곱째, 몸이 아프면 족구 못할 걱정이 앞선다.

여덟째, 운동 시간에 족구장을 못 가면 안절부절못한다.

아홉째, 어딘가 지나다가 족구하는 모습을 보면 끼어든다.

열째, 장모님 생신에도 제끼고(젖히고), 족구장으로 향하는 용기가 있다.


해당 항목에 9개 이상이면 족구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위독한 환자, 7개 이상 해당하면 신종 인플루엔자에 의한 심각한 중증 환자, 5개 이상 해당하면 족구 독감 바이어스에 의한 주의를 요하는 중증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될 우려가 있으니 입원 격리를 요하는 환자들로서 적어도 2개 이상만 되어도 감기 바이러스 정도에 해당하니, 휴식이 필요하다. 이들을 위한 특별한 치료약은 밤낮없이 족구할 수 있는 실내 족구장과 족구로 밥 먹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성구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자신은 과연 몇 개의 항목에 해당될까, 가늠해 본다. 아마 9개 이상이 아닐까.ㅎㅎㅎ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넓은 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선다. 통복천을 따라 길게 조성한 공원으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는 편이다. 그는 가방을 내려놓고 족구화로 갈아 신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개천을 따라 만들어놓은 코스에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보인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여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성구는 자신도 동남아 사람인 듯 느껴져서 ㅋㅋ 웃는다.

성구는 다시 개천 바닥근처까지 내려가서 개천을 가르지는 다리 아래로 다가갔다. 앞과 뒤가 벽면으로 막혀 있어 연습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그는 족구공을 꺼내서 몇 번 벽에다 차 본다. 텅텅, 튀기는 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깬다.

그는 수비 연습과 토스 연습부터 하다가 서브와 공격 연습으로 돌입한다. 공을 적당히 띄워놓고 벽면을 향해 타격을 한다. 벽면을 맞고 튀는 공의 파열음이 상당하다. 소리가 너무 커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에 미안함이 묻어있다. 혹시 물속의 물고기들이 놀라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물 위로 뛰어오르는 놈들은 놀라서 그런 건지 모른다.

성구는 공을 앞에 던져놓고 발 안축으로, 발등으로, 발코로, 뒤축으로 다양하게 연습을 한다. 쉬지 않고 계속하다보면 쉬 지친다. 그러면 잠시 토스와 수비 연습으로 바꾼다. 때론 넘어지기도 한다. 아찔하다. 다행히 장갑을 끼고 있어 크게 다치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라 흙이었으면 금상첨화일 터이지만 다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는 체념한 듯 중얼거린다.

연습을 하다가 지치면, 흘러가는 물줄기를 쳐다보며 물고기들이 남기는 파문을 쳐다보며 놈들의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동그라미 파문이 커질수록 큰놈에 다름 아닐 거였다. 간혹 은빛 편린을 보이며 수면 위로 뛰어오를 때도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경이를 맛보기도 한다. 마치 공격을 성공했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거 말이다.

성구는 그렇게 개천을 따라 흘러가는 물줄기를 쳐다보기도 하고, 맞은편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사서 흘린 땀을 신선한 아침 공기로 식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 않은가. 또 연습은 정직하다고 하지 않은가?’

연습한 만큼 실력은 느는 것이고, 흘린 땀만큼 기량이 좋아지는 거겠지. 우리나라 수많은 공격수들이 혼자 흘린 무수한 땀방울 없이 어찌 그만한 기량을 가졌겠는가. 남보다 두각을 보이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거였다.

‘팀에서도 새로 들어온 공격수들이 나를 자극하고 있다.’

연습을 게을리 하면 언제 그들이 자신보다 기량이 훨씬 뛰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안축 공격은 아직 파워가 부족한 거 같고, 발등 공격은 예리한 각이 부족한 것 같고, 발날 페인팅 공격은 아직 노련하지 못한 것 같고, 뒤축 공격은 드라이브 회전이 부족한 것 같고, 발코 공격은 정확성이 부족한 것 같고, 몸은 아직도 유연성이 부족한 것 같고...’

성구는 연습을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막막한 벽을 느낀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벽을 뚫을 것 같은 파워가 절실하기만 한 거였다. 그는 다시 공을 잡으며 자신을 질타했던 생각들을 잠시 접는다.

다시 공을 던져 띄우고 벽을 향해 공격 연습을 한다. 몇 번은 안축으로, 몇 번은 발등으로, 몇 번은 발날 페인팅으로 그리고 몇 번은 발코로 타격을 한다. 싸늘한 날씨인데도 땀이 쏟아진다. 긴 숨을 들이쉬며 또 다른 공격을 연습한다. 가끔 그가 운동하는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벽면 가까이 다가가 띄움 연습을 하다가 지나가면 다시 타격을 한다.

그렇게 점심때까지 땀을 흘리다가 성구는 집으로 돌아온다. 참 오래간만에 찾아온 자유시간이다. 평일 이 시간에도 족구를 하는 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다보니 그의 머릿속에 문득 스치는 뭔가가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어느 중학교에서 교사들이 족구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거였다. 그가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이 언젠가 말한 것을 떠올린 것이다.

성구는 점심 식사를 한 후에 그곳에 가 보기로 스스로 결정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진다. 족구를 할 수 있는 예정된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곧 행복한 시간을 예약해 놓은 것과 같은 것이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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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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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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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09 예서 만나는군요~~ㅋ나올 때가 있겠지여~ㅋ
  • 작성자서비 | 작성시간 09.07.08 제 만화스토리도 만들어주심..좋겠네요..잘읽고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09 족구만화 잘 보고 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리고..구상해 보아야겠네요~.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7.13 족구폐인 체크 리스트에서 절반정도는 해당사항이 있는거 같군요... ^^ 무더운 날씬데 글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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