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5)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08.06|조회수366 목록 댓글 2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1부.  족구이야기

     <제5장> 족구공이 있는 곳에


-족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성구는 오후 3시쯤 자동차를 몰고 4킬로미터쯤 떨어진 중학교로 향하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교사들이 체력단련 시간을 갖는다고 하였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모두 운동장에 나와 배구도 하고, 족구도 한다고 하였것다!’

성구가 그 학교에 도착하여 교사(校舍) 뒤편으로 찾아가자 이미 교사(敎師)들이 편을 갈라 경기를 하고 있었다.

족구는 평일에도 결코 잠들지 않는 거였다. 그가 아는 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잠시 관전을 하였다. 인원이 네 명씩 적당하였다. 주심이 없어 자신들이 카운트를 하며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운동장 한 쪽에서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교사(校舍) 뒤편 가장자리에 있는 시멘트 바닥에 코트를 만들어놓고 운동을 하는 거였다. 주위에는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코트에 있던 자동차들은 경기 전에 옮겨놓은 듯 했다.

네트 한 쪽은 벽면에 있는 연결고리에, 한 쪽은 지주를 설치하여 연결해 놓은 코트였다. 라인은 시멘트 위에 페인트로 선을 그어놓았는데, 규격보다는 약간 작아보였다. 건물 뒤편에 위치해 있어 외부에서 보면 전혀 알지 못할 곳에서 그들은 은밀하게 족구를 즐기고 있었다.

성구가 주심을 자처하며 느낀 것인데, 그들의 실력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평일에도 매주 족구를 하니 기량도 많이 좋아졌을 터였다. 이미 동네족구 수준을 훨씬 벗어나있었다. 그런데 경기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배구처럼 포지션을 바꾸어가며 진행하는 거였다. 자기 팀이 실점을 할 때만 포지션을 시계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득점을 하면 계속 공격수 자리에서 공격을 하다가 실점이 되면 모두 한 자리씩 돌아가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모두 몇 번씩은 공격을 할 수 있고, 누구나 수비와 세터를 다 담당하는 경기방식이었다. 더불어 공격하는 기량들이 서로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성구는 경기를 관전하면서 알 수 있었다. 배구선수들처럼 말이다.

성구는 그런 경기 방식을 신기하게 접하다가 카운터를 몇 번 잊고 말았지만, 그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포지션에서 몇 바퀴 돌아 그 자리에 있으니까 몇 점이 실점되었는지 정확히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성구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브는 바운드해서 넣어도 되고, 네트 터치는 있지만 네트 오버는 보지 않는 방식이었다.

‘참, 족구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구나.’

성구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 세트가 끝나는 점수로 심판을 마무리하였다. 그러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모여들어 한 사람씩 마주하여, 수고하였습니다. 하고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거였다. 악수를 하는 게 뭐 이상할 것까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선생님들도 천 원짜리 게임을 하고 있었고, 진 쪽에서 돈을 접어서 악수와 함께 상대방 손바닥에 건네주는 것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돈 건네주는 것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접어서 악수를 하면서 손바닥에 은밀히 전달해 주는 거였다.

그러니까, 악수를 하는 것은 돈을 건네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속된 말로 이긴 사람은 천 원을 따 가는 것이었다. 돈을 모아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아니라, 돈내기 고스톱에서 돈을 따듯이 족구 게임에서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거였다.

‘허참, 이상한 방식도 다 있네. 선생님들이 돈 따먹기 족구를 다 하고... .’

성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경기방식도 신기하지만 돈을 건네는 방식도 특이했던 것이다.

“자, 편 가릅시다.”

한 명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네트 사이에 모여 편 가르기를 한다. 손바닥을 펴서 손등을 보이거나 손바닥이 보이게 내밀어서 같은 모양을 낸 사람들끼리 편이 되는 거였다. 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러 번 시도하고, 남은 사람끼리만 다시 모양을 갈라 한 편으로 편입시키면 마침내 팀이 정해졌다.

마지막까지 편으로 정해지지 못한 사람이 주심을 하는 거였다. 한 세트가 끝나면 매번 악수 속에서 은밀하게 천 원짜리가 건네지고 다시 편을 가르고 게임을 하였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재빨리 이루어지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의 오랜 관행이라는 걸 성구는 감지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성구가 팀원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이 심판이 되어 경기가 진행되었다.

성구의 첫 포지션은 좌수비가 되었다. 첫 점수는 성구네 팀이 실점을 하여 포지션이 바뀌었다. 시계방향으로 도는 거니까, 성구가 공격수 자리로 이동하였다. 서브가 날아오고 알맞게 리시브된 공이 띄움수에 의해 토스가 되었지만 너무 네트 가까이 접근하여 성구는 가볍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성질의 공이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공이라는 것을 그들의 경기 진행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네트 오버가 없기 때문에 네트를 건드리지 않고 발이 넘어가 타격해도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족구 경기규칙 같은 건 전혀 무시하면서도 족구를 잘만 즐기고 있네.‘

그런 이상한 규칙들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성구는 특유의 기량으로 그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첫 게임을 이기고, 천 원짜리가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그는 반으로 접힌 그것을 운동복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었다. ‘슬그머니’가 ‘훔친 돈’이라고 하던데,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천 원짜리가 공 담는 그물망에 담겨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자신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다니. ㅎㅎㅎ,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성구는 두어 시간을 그렇게 그들의 경기 방식에 적응하며 그 시간들을 즐겼다.

마지막에 보니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은 겨우 두 장이었다. 이기고 지는 경기가 비슷했다는 징표였다. 간혹 한두 명은 많이 잃거나 많이 딴 경우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서로 비슷한 경우라고 하였다. 그래도 무자본으로 시작하여 이천 원을 따고 즐거운 족구게임을 즐겼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운동이 끝나고 성구는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족구선수인가 봅니다.”

부장님으로 불리던 분이 성구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족구클럽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성구는 클럽 이름과 운동하는 장소와 클럽카페 이름과 운동시간 등을 설명한다.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인다.

성구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오며, 새로운 족구 체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공을 가지고 족구를 한 적이 있었다. 공이 닿는 신체부위도 손과 팔을 제외하고 배와 가슴도 모두 허용하는 규칙으로 하는 걸 동네에서 보았었다. 서브는 바운드시켜 넣고, 네트를 맞고 넘어가도 실점이 되는 규칙이 추억처럼 분명 존재했었다.

족구가 삼국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규칙의 통일은 참으로 오래도록 이루지 못한 것 아닌가. 교과서에 족구에 대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시험 문제에 족구에 대한 내용이 출제될 날이 그 언제인가.

‘어떤 족구회에서는 편을 가를 때, 화투장을 엎어놓고 한 장씩 뒤집으면서 팀을 가르고 돈 내기 게임을 하기도 하던데...’

성구는 언젠가 그들이 하는 경기방식을 떠올린다.

가령, 세 팀 정도의 인원을 팀으로 나눌 때 그들은 화투장을 이용하였다. 화투장 1, 2, 3 넉 장씩을 섞어 엎어놓는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자신의 패를 가져온다. 같은 숫자를 뽑는 사람들끼리 한 팀이 되는 거였다.

엎어놓은 화투장을 뒤집거나 잠시 가지고 있다가 자신이 속한 그룹으로 모이면 그게 한 팀이 되는 거였다. 인원이 한두 명 정도 남는다면, 한두 장만 다른 숫자의 패를 섞어놓고 큰 숫자로 정해진 팀으로 편입시키면 되었다. 편입생이 있는 팀은 그만큼 전력이 강화되는 셈이었다.

때로는, 공격수가 편중되면 게임이 일방적으로 되니까, 공격수 3명에게만 1, 2, 3 한 장씩 섞어놓고 패를 뽑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자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여 팀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자신이 한 팀으로 정해지는 것은 한 장의 화투 패에 운명이 결정되는 거와 다름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뽑은 패로 인하여 복불복(福不福)이라는 도박과 같은 인생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신성한 족구세상에서 어찌 화투장이 난무한단 말인가. 화투장으로 편을 가르는 방식이나 내미는 손 모양에 따라 편을 가르는 방식이나 새로움이 있어 좋다고 봐야 하나?’

성구는, 각 지방마다 고스톱 규칙이 다른 것처럼 족구 규칙도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거였다. 물론 전국에서 주최되는 족구대회에서는 예외이지만 말이다.

전국 어느 곳에서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또 그와 같이 규칙과 방식을 변형해서 경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성구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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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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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08.06 야홋~! 일순위.... 가문의 영광....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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