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6)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11.12|조회수318 목록 댓글 4
<제1부>  족구이야기

     <제6장> 겨울잠을 모르는 그들

 

-족구는 겨울에도 결코 쉬지 않는다.

어느덧, 십이월도 깊어지며 날씨가 매서워졌다. 며칠 사이에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것이다.

십이월 마지막 주일 오후, 회원들이 그들의 족구장 주변에 모여 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아직 회원이 다 오지 않았는지 둘러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두 두꺼운 옷을 입었고,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회원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를 움츠린 모습들이다.

“체육관에서 족구를 하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누군가 한 마디 하자, 사람들이 빙그레 웃는다. 그들은 오늘 처음으로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몇 주 전에 카페에 올라온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미리 체육관을 예약해 놓았었는데, 벌써 그날이 온 거였다. 이날을 기다린 회원도 내심 많을 거였다.

잠시 후, 나머지 회원 한 명이 도착하자 총무가 성구에게 말한다.

“회장님, 참석하겠다고 한 회원은 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럼, 출발합시다.”

성구의 말에 회원들은 차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차 몇 대로 나누어 타고 목적지로 출발한다. 십여 분이면 족히 도착할 터였다. 시내 한 초등학교 체육관을 겨우내 임대하여 주말마다 그곳에서 운동하기로 하였으니 회원들이 내심 흥분하기도 할 터였다. 추운 날씨에 운동하다보면 부상을 당하기도 쉽고, 또 눈이 한번 많이 내려 녹으면 땅이 쉽게 마르지 않아 겨우내 운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터였다.

학교에 도착하여 실내 체육관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앞 시간에 배드민턴 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아직도 네트가 그대로 설치되어 있다. 그 회원들이 네트를 철수하기 시작하자 족구클럽 회원들도 함께 도와준다.

배드민턴 클럽 회원들은 주중에도 체육관에서 매일 저녁마다 운동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족구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말만 운동하는 것도 힘들게 체육관을 얻은 실정이다. 족구는 배드민턴과는 달리 족구공에 부딪혀 유리창이나 조명등들이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임대를 해주지 않으려 하는 거였다. 성구도 학교를 몇 번이나 찾아가 담당자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마침내 임대 계약서를 쓰고 나오면서 그는 뛸 듯이 기뻐했었다.

‘어렵게 얻은 만큼 열심히 참여하여 운동하는 것이 그에 보답하는 것임을 회원들은 알아야 할 터인데... .’

성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실내를 둘러보고 있다.

“족구라인을 다시 붙여야겠지?”

성구가 회원들에게 묻자, 그들이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한다. 준비한 청색 테이프를 붙여 코트를 만들면 될 터였다. 전에 설치된 라인의 테이프가 모두 제거되었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어 그 위에 그대로 부착하면 될 것이었다.

몇 사람이 테이프를 길게 풀어 바닥에 부착하자, 작업은 금방 끝이 난다. 코트에 밝은 청색 라인이 선명하게 설치되자, 족구 코트는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했다는 듯 늠름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이제 회원들이 무거운 지주대를 재료실에서 가져다 둥근 홀이 파인 자리에 집어넣자 그대로 네트 지주대가 완성되었다. 배구 지주대와 겸용으로 쓰고 있는 거였다. 가져간 네트를 풀어 지주대에 팽팽히 당겨매자 비로소 족구 코트가 실내 체육관에서 생생하게 태어나는 거였다.

“앗싸! 한번 때려보자!”

공격수 영훈이 말하며, 코트 앞에 공을 띄워놓고 회심의 강타를 날려본다.

“와, 멋지다!”

회원들이 탄성을 지른다. 타격이 멋진 것이 아니라, 공이 울리는 소리가 멋진 거였다. 실내에서 느끼는 소리들이 운동장에서 느끼는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텅텅, 울리는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린다. 성구는 회원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하고, 말을 꺼낸다.

“오늘 처음 우리 클럽이 체육관에서 운동하게 되었는데, 모쪼록 즐건 운동이 되기 바랍니다. 이 뜻 깊은 날에 처음 오신 회원이 두 분 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두 분 앞으로 잠깐 나오시죠?”

두 사람이 앞에 나서자, 회원들이 주시한다.

“본인 소개 한 마디씩 하시죠?”

회장이 말하자.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연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이낙신입니다. 다른 족구단에서 두어 번 운동하다가 우연히 이곳에도 족구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장이 바로 옆 아파트라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자, 회원들의 박수가 우렁차다.

“저는 임동수라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잔다리 카페가 제일 활성화된 것 같아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잘은 못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원들의 박수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진다. 박수란 격려할 때나 환영할 때 치는 것이므로 그 소리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마력이 있는 거였다.

실내에 퍼져있던 박수소리의 여운이 잦아들자, 그들은 코치의 지시에 의해 몸을 풀기 시작한다.

먼저 실내 코트를 돌면서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두 줄로 나누어 질서정연하게 달리면서 실내 체육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다. 높은 천장 아래 매달린 조명기구들, 정면에 설치된 단상, 한쪽으로 치워진 농구 골대들, 옆면에 설치된 스탠드, 한 가운데 설치된 족구코트. 실외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집중된 분위기를 그들은 오늘 처음 만끽하는 거였다.

잠시 후, 그들은 숨을 고르며 스트레칭을 한다. 마루바닥이니 편하게 앉아서도 스트레칭을 할 수 있어 좋다. 겨울에는 오래도록 충분히 몸을 풀고 경기를 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을 터였다. 원으로 둘러서서 때론 앉아서 성심껏 동작들을 반복한다.

“어이구! 아~악!”

여기저기서 외침들이 새어나온다. 사지가 한 매듭씩 풀리거나 늘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쩌면 겨울 추위에 위축된 어눌한 마음까지도 털어내고 있는지 몰랐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편을 나누어 랠리연습을 하고, 공격연습을 하고, 서브 리시브 연습들을 한다. 마루바닥을 퉁기는 공들의 파열음이 상당하다. 부수적인 효과음이랄까,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집중력이 있다. 훈련하기에는 실내가 훨씬 좋은 것 같다. 겨우내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기량이 상당히 오를 것만 같다.

연습이 끝나자 벌써 땀을 흘리는 회원도 있다. 감독과 코치, 공격수들이 모여 팀을 나누는 동안 회원들은 물을 마시거나, 사온 귤 박스에서 하나씩 집어 들고 까먹는다. 겨울에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귤이 최고인 것 같다.

세 팀으로 나누어 그들은 게임에 돌입한다. 나머지 회원들은 주심을 보거나 점수판을 넘기거나 선심을 본다. 주심은 높게 설치된 좌석에 올라가 코트를 내려다보며 경기를 진행하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어 좋고, 그만큼 본때가 난다. 어느새 챙겼는지 주심은 호각을 불고 있다. 공이 바운드 되거나 발을 맞고 튈 때마다 소리가 크게 울린다. 에코가 들어간 음향처럼 텅, 텅, 울린다. 마루바닥에 바운드되는 공이 모두 규칙적으로 튀어 올라서 좋다.

수비수는 수비수대로 세터는 세터대로 예측 방향으로 공이 튀어 오르니까 한결 여유가 있다. 세터에 의해 띄워진 공이 규칙적으로 곱게 바운드되니 무엇보다 공격수가 좋을 수밖에 없다. 수비수들은 뒤로 흐른 공을 가지러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멀리까지 뛰어다니지 않아서 좋을 것이고...ㅋㅋ

새로 들어온 공격수 이낙신 회원도 기량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가능성 있게 보인다. 공격수를 하기에는 키가 좀 작은 편이지만 유연성이 뛰어나 발이 높게 올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그 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김현우 선수나 LG족구의 성낙신 선수도 키가 큰 편은 아니지 않은가?

경기가 진행될수록 회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게 바로 행복인 거였다. 행복해서 족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족구를 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었다.

어느덧, 4시간여의 운동시간이 끝나고 그들은 네트를 거둬들이고 지주대를 원위치로 갖다놓고, 마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뒷정리를 한다. 일사분란하게 끝마친다.

회원들은 긴 나무의자 옆에서 남은 귤을 먹으며 음료수를 마시며 갈 채비를 한다.

“두 분, 오늘 처음 운동한 소감이 어땠습니까?”

성구가 그들을 보며 묻자 임동수 회원이 먼저 입을 연다.

“네, 분위기가 낯설어서 좀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에 이케 실내체육관에서 족구를 할 수 있는 잔다리 클럽에 들어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와, 하며 박수를 친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낙신 회원도 만면에 웃음을 띄며 말을 마치자, 다시 회원들이 하하하, 웃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취와 웃음소리를 실내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다. 다음 주에 다시 운동할 것을 인사하며 각자 자동차에 탑승한다. 곧 자동차들이 체육관을 뒤로 하고 줄지어 출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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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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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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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24 연재가 늦어 죄송합니다~^-^~('십이월'은 '11월'로, 웃음을 '띄며'는 웃음을 '띠며'로 바로잡습니다.)
  • 작성자공사랑 | 작성시간 09.11.13 한겨울에 체육관 운동...참 부러운 조건이죠~~족구는 겨울에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ㅎㅎ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12.18 실내에선 한번도 못해봤는데... 글로만 봐도 부럽습니다.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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