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7)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09.12.24|조회수345 목록 댓글 5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제1부>  족구이야기

     <제6장> 겨울잠을 모르는 그들


-축제는 한겨울 족구장에서도 시퍼렇게 존재한다.

12월 첫째 일요일. 아침 일찍 회원들이 모여 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그들의 족구장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아직 도착하지 않은 회원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구장에는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후, 회원들이 다 도착하자 자동차 몇 대로 나누어 타고 그들은 출발한다.

오늘은 시(市) 족구연합회에서 주최하는 관내 족구클럽 교류전이 있는 날이다. 매년 12월 초에 족구축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때는 한 해의 족구대회가 끝나는 시점이어서 클럽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거였다. 매년 이 행사가 있었지만, 잔다리 족구클럽은 올해 창단되었기에 당연히 처음 출전하게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첫 교류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였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몇 대의 자동차가 시내 외곽으로 진입하고 있다. 교류전 행사는 자동차로 이십여 분 정도 걸리는 시내 외곽에 있는 ‘하나농원’이라고 했다. 큰 길에서 샛길로 접어들자 비포장 산길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조금 굽어 들어가자 농원의 모습이 보인다. 주차장에는 벌써 도착한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우리보다 부지런한 팀이 많네.”

누군가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자동차에서 내린다. 가지고 온 가방들을 어깨에 메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좀 낮은 곳에 초원처럼 넓은 운동장이 보인다. 운동장 너머로 겨울 하늘이 한 폭 눈에 밟힌다. 눈이라도 내릴 듯 많이 흐려있다.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었지만 아직 눈은 내리지 않고 있다.

어느새 운동장 한쪽에서부터 두터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네트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이곳은 체육대회나 단합대회의 장소로 안성맞춤이고, 체험학습장으로도 활용된다고 하였다.

주변에는 철지난 현수막도 보이고, 농장의 체험안내판들도 보인다. 계절에 따라 캠핑장이나 통나무원두막 체험, 물고기잡기, 사냥 체험, 조각배놀이 등 도시 아이들을 위해 체험학습장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잔다리 회원들도 짐을 한쪽에 정렬해놓고 운동장으로 나가 다른 팀들과 함께 축구 골대가 있는 운동장에 족구장 코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지주대 보조 끈을 매기 위해 쇠말뚝을 박는 망치소리가 탕탕, 아침 공기를 가른다.

네트를 설치하고 그 양끝에 안테나를 매어달고, 흰색 라인을 땅바닥에 설치하고, 점수판을 거치대에 걸어놓고, 코트별 번호표를 네트 끝에 부착하면 한 코트의 작업들이 모두 완료된다. 한 줄에 3코트씩 네 줄이니까 12개의 코트가 들어서는 거였다. 최강부와 일반부와 장년부 그리고 실버부와 여성부도 있으니 그만한 코트가 있어야 될 터였다.

설치가 끝난 코트에서는 벌써 족구공이 네트 위에서 춤을 추며 족구시합의 전조를 알리기도 한다. 교류전이 시작되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한 성급한 연습들이 웃음을 띠게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서 담배연기처럼 허옇게 입김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본부석으로부터 안내방송이 들린다.

“각 팀 감독님들은 본부석에 오셔서 대진표를 받아가기 바랍니다. 경기는 십분 후에 시작됩니다.”

방송이 끝나자 본부석으로 향하는 감독들이 보이고, 교류전 집행부원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본부석 위에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선수들의 사기를 한층 높이는 듯하다. 지금은 코트 주변에서 다른 클럽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들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어느 팀이 성급하게 연습경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한 송이 두 송이 눈발이 비친다.

감독들이 대진표를 받아들고 돌아오자 삼삼오오 모여 인쇄물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최강부 3팀과 일반부와 장년부들의 명단을 보니 대략 30여 팀이 참가한 모양이었다.

‘관내에 이렇게 많은 팀이 있었다니...’

성구는 대진표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금부터 경기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부석 방송이 떨어지자, 배정된 코트로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한다. 잔다리 일반부는 첫 게임이, 장년부는 두 번째 게임부터 시작이다. 먼저 게임이 시작되고 나중에 개회식이 진행될 터였다.

2번 코트에는 최강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먼저 코트에 들어선 팀은 ‘평택마루’와 ‘쌍용자동차’ 선수들이다. 그리고, ‘태양족구단’ 선수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다. 유니폼을 보지 않아도 익히 낯이 익은 선수들이다.

‘중소도시에서 최강부를 세 팀이나 보유하고 있는 도시가 거의 없다고 하던데, 대단해...’

성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런 환경에서 족구를 하고 있는 자신이 행복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경기가 시작된다.

공격수가 A킥으로 공격한 공이 언 땅에서도 여지없이 크게 바운드된다. 얼어버린 땅을 녹일 듯 텅, 텅, 바운드되는 공의 기운이 용이 승천하는 기세와 같다. 저 멀리 도약하는 족구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지개를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 멀리 도약하는 공이 지면에 닿기 전에 개처럼 뛰어서 정승처럼 받아내는 수비를 보고 있노라면, 자식이 시험지에 100점을 받아왔을 때처럼 감탄하게 된다.

최강부 경기는 다른 코트와 달리 주변에 관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든 늘 인기가 많다. 사람들은 그들의 경기를 즐기며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량을 본받으려 하는 거였다. 그들의 경기력에 감탄하며 자신들의 실력을 가름해보기도 할 터였다.

교류전이기 때문에 어느 코트에서나 2세트만 진행하였다. 경기가 없는 팀에서 주심과 선심을 돌아가며 보고, 다시 다른 팀들과 경기하였다. 본부석 주변에 여성부 족구선수들도 보인다. 성구가 옆을 지나는데 누군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박성희 선수다. 그러고 보니까 어느새 홍승덕이도 그 옆에서 성구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는 거였다.

‘애인사이 아니랄까봐, 어느새 빛과 그림자처럼 붙어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잔다리 팀!”

주변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다. 성구를 보고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성구는 여기저기 코트를 쳐다본다. 어느 곳에서나 열띤 경기가 진행된다. 추위를 녹이는 파이팅 소리, 공을 타격하는 소리, 공이 바운드 되는 소리, 선수들의 입김과 외침들이 운동장 가득 넘치는데, 어느새 눈발이 솜처럼 커지고 있었다. 축제의 한마당에 함박눈까지 내리니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시루떡처럼 함박눈이 쌓인다.

“잠시 후에 개회식이 있겠습니다. 각 코트에서는 잠시 경기를 중단하고 본부석 앞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되었는지, 연합회 사무국장의 안내방송이 게릴라처럼 코트에 침투되고 있다. 어느 팀은 이제 막 분위기를 타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기도 할 것이고, 어느 팀은 풀리지 않던 경기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코트마다 넘겨진 점수판 점수를 그대로 가슴에 품은 채 선수들은 본부석 앞에 팀별로 도열한다. 열띤 경기를 치룬 듯 반바지를 입고 그대로 도열해 있는 선수들도 보인다. 개회식을 알리고, 내빈 소개를 하고, 축사를 한다. 시장과 국회의원도 보이고 족구연합회장도 보인다. 족구 행사 때마다 빠짐없이 단상에서 보는 모습들이다.

개회식이 끝나고 다시 코트로 돌아가자 잠시 비운 자리마다 소금을 뿌린 듯 얇게 눈이 쌓여있다. 코트 옆자리들은 더 많이 쌓여 있다. 강한 팀이나 약한 팀이나 다 설원(雪原)이다.

“우리 구장에도 지금쯤 눈이 쌓여 있겠네.”

“빨리 가서 눈 치워야 되는 거 아냐!”

회원 누군가 말하자, 자기들끼리 함박눈처럼 웃기도 한다. 일요일은 체육관 운동이지만, 토요일에는 그들의 구장에서 족구를 해야 하는 사정을 그대들은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경기는 다시 열띤 공방으로 이어지고, 함박눈은 조금씩 성기어 가다가 멈추기도 하고 다시 함박눈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는지 운동장 끝에 마련된 곳에서는 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술을 마시기도 한다. 국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면서 왁자지껄 질펀한 농담들도 오고간다. 여자선수들이 서비스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축제의 시간은 코트에서나 식사하는 장소에서나 눈 내리는 하늘에서나 족구를 위해 존재하는 거였다. 축제는 족구장에서도 분명 존재하는 거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경기가 진행되어 선수들의 승부욕이 하늘을 치솟는데, 아니 벌써!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많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미숙한 수비수의 리시브처럼 겨울 해는 너무 짧은 거였다.

“우리 팀 승률이 어떻게 되나요?”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구는 묻는다.

“일반부는 반타작은 한거 같습니다.”

“장년부는 그 정도 이상입니다.”

회원들이 와, 하고 외친다.

“내년에는 승률 80% 이상 올립시다.”

회장이 말하자, 회원들이 오, 하며 탄성을 지른다.

교류전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네트 장비들을 거둬들이며 마무리를 하였다. 짧은 해나 짧은 리시브처럼 좀 아쉽지만 내년 이때쯤 다시 만날 것을 예감하며 선수들은 팀별로 농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자신들의 기량을 절감하며 서둘러 돌아간 팀들도 있을 거였다.

산길을 굽어가며 포장도로 큰길로 향하는 자동차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 눈 시린 유리창 밖에는 해가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 있는 듯하다. 축제가 끝나고 어느새 눈도 그쳐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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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공사랑 | 작성시간 09.12.25 한겨울의 족구~멋집니다. 평택, 지역 교류전 부럽습니다~ㅋ
  • 답댓글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01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9.12.28 어제 운동장에 소금뿌리고 운동을 했는데... 오후에 눈이 오더군요. 딱 그 광경이네요... 눈발 맞으며 족구하는 기분... 캬아~~!
  • 답댓글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01 네, 참 즐거운 족구를 하셨군요~ 다음 연재도 눈과 족구 이야기입니다~감사~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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