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연재28)

작성자전◐ㅠ철|작성시간10.01.01|조회수1,206 목록 댓글 7

[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단 고문)

 

<제1부>  족구이야기

     <제6장> 겨울잠을 모르는 그들


-강한 팀은 눈을 치워 족구장을 만드는데, 약한 팀은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

눈이 내렸다. 겉치레만큼 조금 내린 것이 아니라, 폭설이 내렸다. 이번 주 들어 두세 차례 내린 것이다.

지난 주, 시 족구연합회 교류전을 하던 날에 내렸던 눈을 시작으로 자주 내린 한 주였다. 내린 눈에 눈 더하기를 두세 차례 하니 온 세상 백설기처럼 쌓였다.

‘아, 오늘 족구를 해야 하는데...’

토요일을 맞은 성구의 첫 번째 걱정은 족구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일요일에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토요일 운동은 난감하게 되었다.

‘오늘 족구장 눈 치울 겁니다. 11시까지 집결바랍니다. 8282오시면 자장면 한그릇 공짜~ㅋ’

성구는 회원들에게 단체로 문자를 날린다. 눈 쌓인 족구장을 겨우내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 눈을 치우지 못하면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며 족구장은 황량한 갯벌처럼 방치되다가 봄을 맞이할 것이 분명한 거였다. 토요일 운동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 토요일에 족구를 하지 말라는 것은 토요일에는 밥을 먹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

성구는 시간에 맞춰 두툼한 옷과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를 나서니 온통 눈 세상이다. 지상 주차장에도 화단 위에도 주위 나뭇가지 위에도 모두 눈옷을 입었다. 주차된 자동차 위에 쌓인 눈 때문에 자동차의 형태가 동화속의 한 장면 같다. 발(바퀴가)이 묶인 자동차들이 눈 속에 그대로 고립되어 있다. 온 세상이 설원(雪原)이다. 그래도 날씨는 그렇게 춥지는 않다.

족구장으로 향하는 옆길은 아무도 눈을 밟지 않은 곳이 많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숫눈‘이라고 했던가.’

성구는 그 ‘숫눈’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족구장으로 향한다.

비가 오면 갇혀서 사랑하고 / 눈이 오면 헤매면서, 헤매면서 사랑하리라.

성구는 그런 싯귀를 생각하며 사랑의 흔적처럼 한 발짝씩 걷는다.

옆 어린이 놀이터도 동화의 나라로 변했다. 아이들 몇 명이 깔깔거리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 뭉치를 굴리기도 한다. 저 앞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달려가고 있다.

족구장에 도착하니 코트의 형체를 가늠할 수 없다. 쌓인 눈이 20cm가 넘는 거 같다. 저 눈 밑에 라인이 있었는데... .

회원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회원마다 절망한 듯 난감한 표정들이다. 

“이걸 언제 치우죠?”

“여럿이 달라붙어 합심하면 치워지지 않겠어?”

“그래, 한번 해봅시다.”

회원들이 한 마디씩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자, 각자 아파트 동에 가서 제설 장비들을 가져옵시다. 경비 아저씨에게 잘 말씀드리고 말이죠.”

성구는 회원들에게 행동을 말하고 자신도 옆 동(棟)으로 향한다. 경비실에는 아저씨가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는다.

지하실로 계단을 내려가니 문 앞에 제설 장비가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눈삽도 보이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넉가래도 보인다.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우선 눈을 치우고 돌려놓으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시 구장으로 돌아오니, 회원들이 가지고 온 제설 장비들이 많다. 나무로 만든 넉가래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넉가래도 있다.

“자, 한번 해보자구! 군대에서 눈 치우던 실력들 있잖아~.”

감독이 말하자, 하나씩 장비들을 챙겨든다.

한 사람이 넉가래로 죽 밀고 나가자, 얼핏 땅이 보인다. 쌓인 양이 많아 넉가래는 멀리 가지 못하고 금방 막힌다. 힘에 부쳐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거였다. 2m 이상 밀고 갈 수 없다. 우선 그 길이만큼만 나란히 밀어놓고 나중에 눈삽으로 떠서 날라야 한다.

회원들이 게임하듯이 열심히 치운다. 저 앞 테니스장 안에서도 눈을 치우는 모습이 보인다. 농구 골대 위에도 눈이 위태롭게 쌓여 있고, 주위 나뭇가지 위에도 아슬아슬하게 눈이 붙어있다.  겨울에 피는 꽃은 눈꽃인가.

눈이 내려서 좋아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선 아이들과 강아지들이겠지. 그리고 연인들이겠고, 보드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좋아하겠지. 그럼, 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선 족구를 하는 사람들처럼 야외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 제설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 자동차를 운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군인들일 것이다. 군인들은 눈이 내리면 그 넓은 연병장을 다 치워야 하니까 눈이 남아있는 군대생활만큼이나 지겨울 것이다. 사회에서는 눈이 엄청 좋았을지라도, 연인과 함께 엄청 낭만을 즐겼을지라도.

회원들이 하나씩 윗옷을 벗어놓는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다. 작업은 힘들지만 회원들과 더불어 눈을 치우니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넉가래로 한 곳에 모아놓고 눈삽으로 떠 나르고 하다보니, 손수건만 하던 넓이가 더블침대 넓이로 확장되고 마침내 코트의 라인도 보인다. 고구려인들이 북방을 향해 영토를 넓혀갔듯이 조금씩 구장의 넓이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강한 팀으로 성장하려면 눈을 치워 족구장을 만들어야 하는 거였다.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면 그건 진정 족구인이 아니다. 그냥 동네족구일 뿐이지.

“아, 점심때도 다 되어 가는데, 짜장면 시켜먹읍시다!”

“그럽시다!”

회원들이 잠시 담배를 피우며 한 마디씩 한다.

총무가 인원수대로 메뉴를 선택하여 전화로 주문을 한다. 이런 곳에서 메뉴가 어찌 다양할 수 있겠나. 자장면 아니면 짬뽕이지. 자장면 시키면 짬뽕이 맛있어 보이고, 짬뽕 시키면 자장면이 맛있어 보이는 그 자연의 이치 때문에 짬자면(짬뽕+자장면)이 ‘탄생’했다고 하던가. 예수의 탄생보다 거룩한 그 ‘탄생’이 말이다.

이제 족구장 넓이는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좀더 넓게 영토를 탈환하면 충분히 족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철가방을 들고 오는 청년이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족구장 안까지 들어왔겠지만, 쌓인 눈 때문에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을 터였다. 주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배달되는 것을 보면 역시 빠르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성에 맞추려면 사업장은 모두 번개를 닮아야 하는 거였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중국집 음식이 빠르지 않으면 그건 중국집 음식이 아니라고, 그냥 일반 음식이라고.

정자 모양으로 지워놓은 그들의 아지트에 십여 명의 회원들이 둘러 모였다. 나무의자에 앉아서 또는 서서 자장면과 짬뽕을 먹기 시작한다.

“아, 맛 좋은데요!”

힘든 일을 하고, 땀을 흘리고 먹는 음식이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 음식의 가장 좋은 재료는 배고픔이라고 했던가. 게다가 설경을 바라보며 야외에서 먹는 운치도 있으니, 어찌 이 작은 홍복(洪福)이 아닐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 한 잔씩 하시죠?”

총무가 눈 쌓인 철제 사물함 안에서 종이컵을 꺼내와 소주를 한 잔씩 돌린다. 회원들이 짬뽕 국물을 안주삼아 한 잔씩 들이킨다.

음식을 다 먹고 잠시 담배를 태우고 족구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다시 작업 현장으로 다가간다.

“자, 빨리 치우고 한 게임 합시다.”

성구가 미리 다음에 할 일을 제시한다.

회원들이 네, 하며 한 동안 널브러져 있던 제설장비를 하나씩 든다. 코트 넓이에서 더 넓게 충분히 수비할 수 있는 영역까지 치워야 한다. 주위까지 넓은 곳을 다 치울 수는 없지만 최소한 눈이 녹더라도 물이 흘러들어 올 수 없을 정도까지는 치워야 했다.

코트로부터 눈을 치우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주변의 눈높이는 높아만 간다. 눈을 떠서 쌓아놓기 때문이다. 이 눈이 다 놓으려면 아마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였다. 더구나, 아파트 건물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하는 곳이기에 더 빙하의 나날이 될 터였다.

회원들이 다시 한바탕 제설작업을 하자, 비로소 충분히 눈이 치워진다. 마지막으로 흩어진 잔설을 빗자루로 쓸어내자 라인이 선명히 보인다. 주위는 온통 설원인데 족구장만 황토 흙을 드러내자 주위와 극명한 대비가 된다. 마치 아파트 고층에서 내려다보면 잘 닦아놓은 헬기장 같을 것이다. 족구장 풍경이 더욱 운치가 있다.

“참 수고들 많았어요. 이제 아까 가지고 왔던 장비들을 제자리로 갖다놓읍시다.”

성구가 말하자, 회원들이 가지고 왔던 장비들을 챙겨들고 각자 아파트 동(棟)으로 다가간다. 공격진지로 침투하는 게릴라처럼.

잠시 후에 회원들이 임무를 마치고 다시 모였다. 한 사람도 경비 아저씨와 다투지 않고.

“공 가지고 올 게요.”

“오케이, 한 게임 합시다!”

총무가 집에서 가지고 온 족구공을 의자 위에서 가져온다. 겨울에 사물함에 보관하면 공이 얼어서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가져오는 거였다.

양 팀으로 갈라져 코트에 들어선다. 제설 작업하느라 몸을 다 풀었으니 따로 스트레칭이 필요 없다.

색다른 분위기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공격이 이어지고... 뒤로 빠진 공이 눈을 치우지 않은 곳까지 흐른다. 쌓인 눈 때문에 공은 멀리 가지 못한다. 눈 위에서 색깔이 선명한 족구공은 새색시처럼 아름답다.

때로 옆 나뭇가지로 공이 날아가면 흰보라 눈꽃이 쏟아진다.

회원들이 그 운치에 아, 하고 신음처럼 감탄한다.

그렇게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처럼 한겨울 설경 속에서 족구를 즐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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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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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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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전◐ㅠ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04 네, 고맙습니다. 새해에 좋은 일 많고, 복 많이 받으세요~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 작성자조영철 | 작성시간 10.03.04 족구를 하고픈 열정이 보이네요
  • 작성자아자 아자 | 작성시간 10.08.07 족구 ...........^-^
  • 작성자ivybreaker | 작성시간 14.03.04 작가님의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족구에 대한 열정이 솓구쳐 오르네요. 고맙고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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