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한민국 다 족구 하라 그래 (제 3회)

작성자kimdeoksoo|작성시간22.01.19|조회수268 목록 댓글 4

□ D. -110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성민의 모습이 보였다. 야구장이 아닌 허름한 포장마차였다.

카아~ 맞습니다.”

소주잔을 손에 성민의 얼굴에는 이야기를 다하네 하는 허탈함이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찾아오는 포장마차는 기찬과 성민이 일과시간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늘어놓고 맘껏 상상을 펼칠 있는 장소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명의 사내들이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40 후반의 자신감 넘치는 사내들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누구도 그들을 제압하지 못할 것만 같아 보였다.

내가 취임한지 6개월이 지나고 있어. 이제는 시작해야 . 내가 이야기했던 김정균 사장이야.”

기찬이 옆에 앉아있던 정균을 가리키자 정균은 미소를 보이며 성민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시도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스포츠 에이젼트죠. 우리나라 유망한 선수들을 해외 스포츠팀에 연결시켜주는 사업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기찬은 멈춤 없이 소개를 이어나갔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넘어선 자랑이 들려오자 정균은 앞에 놓인 소주잔에 손을 가져가며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어이~ 그래? 같이 마셔야지.”

기찬은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는 정균을 발견했다.

, 맞습니다. 잔은 함께 해야죠.”

어색해하는 정균의 모습을 본 성민도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소주잔에 손을 가져갔다.

알겠습니다.”

정균이 소주잔을 들자 나머지 사내도 함께 잔을 들었다. 청량하게 울리는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맑은 소주가 그들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소주가 목을 넘어가기 무섭게 앞에 놓인 고추장에 볶아진 다진 발을 젓가락으로 크게 올렸다.

평소 기찬과 편하게 이야기를 오던 정균이었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기찬에게 계속 전화가 왔다. 족구협회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스포츠 에인젼트를 운영하며 적지 않은 세계 스포츠계 인맥이 구축되어 있던 상황에 고민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결정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족구는 명이 하는 경기야. 명이 공격, 명이 수비역할을 하지. 번의 터치 안에 공을 상대방 코트로 넘겨야 하고. 배구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거야. 그런데 하필 안에 넘겨야지? 번이면 될까? 그리고 명이지? 다섯 명이 하면 안될까?”

갑작스런 기찬의 질문이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소주잔을 내려놓은 정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항상 던져오는 질문에는 의미가 부여되어있었다. 내용을 알고 있다는 성민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허허, 놀랐구나? 놀랄 필요 없어. 우리가 번으로 하면 되는 거고 다섯 명으로 하면 되는 거야. 족구를 관장하는 국제기구는 없어. 족구는 우리 대한민국이 만들었고 우리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야.”

맞습니다. 족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그림입니다. 경기 규칙뿐 아니라 국제적인 조직, 새로운 운영 시스템도 만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족구는 보는 즐거움과 함께 누구나 쉽게 직접 즐기는 스포츠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술기운이 오른 성민의 격앙된 목소리도 들려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지를 알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기찬은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워진 소주잔이 다시금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원하는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욕을 숨기고 싶지 않다는 듯 비워진 소주잔이 다시 채워졌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지도 알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알아. 그런데 추진동력이 없어.”

회장님 말이 맞습니다. 족구협회 조직은 기존의 업무만으로도 포화상태입니다. 도저히 새로운 일을 추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충분한 경험과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성민도 거들고 있었지만 족구협회장으로서 기찬이 무엇을 꿈꾸는지는 알고 있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그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 정균의 결정을 막고 있었다.

기획실장인 성민이와 함께 우리 그림을 그려보자. 부탁한다.”

입안이 들어오며 건조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균은 앞에 놓인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잔을 내려놓은 정균은 기찬의 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그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질 일을 굳이 지금 기찬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의구심도 고개를 들었다. 다른 생각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지금 준비중인 전국족구대회는 새로운 시도야. 이것까지는 기존의 조직과 성민이가 끌고 나가면 .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보다 더 중요한 나머지는 누군가가 해야만 . 바로 그게 너야. 다시 부탁한다.”

설득은 계속 이어지며 다른 생각을 떠 올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물론 일의 가치를 따져야겠지만 서로에 대한 사람의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될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듯 미소를 보이는 정균의 얼굴에 집중되는 시선들이 내 뿜는 따가움이 느껴졌다.

내가 오히려 고맙다. 그래 함께 가자!”

머뭇거림 없는 결정이었다. 기찬과 성민의 얼굴은 곧바로 반응하며 웃음 꽃을 피워 올렸다.

변화는 항상 그를 거부하는 기존과의 싸움임을 알고 있어. 새로운 시도 없이 변화는 없다. 변화의 과정에서 오는 두려움과 고통을 즐기자!”

잠시 숨을 고른 정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균아, 고마워. 누군가가 지도자는 욕을 먹고 골통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항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했어. 조직은 생명체야. 변화하고 살아서 움직여야 . 그러면 썩고 문드러질 밖에 없어. 아무튼 족구협회라는 배를 타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선장을 믿어준 친구, 너무 고마워.”

오우~ 말씀들이 너무 지십니다.”

말없던 성민의 웃음 섞인 마무리와 함께 남자의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 쌓여가는 술병들을 통과한 달빛이 만들어낸 빛의 여운과 홀로 어둠을 가로지르는 보름달을 친구 삼아 사내들의 웃음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 D. -109

많은 사람들이 WOC본부 건물의 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세계 각국의 스포츠조직의 실무책임자들이 모이는 WOC 정기회의가 열리는 대 회의실은 웅성거림과 웃음으로 활기가 넘쳐났다.

이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명패가 놓인 테이블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며 각국의 스포츠 정책이며 새로운 의제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체육회의 이사 순서가 돌아왔다.

단상 앞에선 이사는 참석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시작된 발표는 순조롭게 진행되며 마지막을 숨가쁘게 향해 나갔다. 발표 시간이 다 되어감을 알려 주 듯 최 이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정한 스포츠는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합니다.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고도의 전문적인 과정을 거친 스포츠 기계를 양성하여 그들만의 스포츠로 전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즐기는 스포츠는 사라져가고 엘리트 스포츠 기계들이 펼치는 스포츠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물론 보는 즐거움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WOC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세계각지의 고유 스포츠를 발굴 육성하며 그들을 지켜야 합니다.

스포츠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끈입니다. 세계인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즐기는 스포츠야 말로 스포츠의 미래입니다. 존경하는 사무총장 그리고 자리에 참석해 주신 관계자님들께 다시금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누구나 즐기며 하나가 되는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합시다. 그리고 WOC 이제는 과감한 변화를 해야 합니다. 각국에서 벌어지는 스포츠관련 행사에 개입이 아닌 지원을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WOC 역할이며 나아가야 방향입니다.”

평범하게 흐르던 발표가 갑자기 WOC 향한 질타의 목소리로 바뀌자 회의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의아해 하는 참석자들과 놀란 표정의 참석자들 사이에 묘한 감정의 골이 느껴지려는 순간, 이사는 단상 위에 놓여 있던 발표문을 조심스럽게 접어 수트 상의에 집어 넣었다.

지금까지 발표를 경청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발표를 마무리 지으며 이사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고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물론 박수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발표 사전에 진행된 실무회의 결과는 작년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자리에 앉은 이사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사님, 멋있는 발표였습니다.”

중국체육회 총괄경리가 웃음을 보이며 이사에게 다가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 최 이사 역시 가벼운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이어지는 다른 참석자들의 발표에 집중했다.

최 이사님!”

 

중국체육회 총괄경리의 목소리다 다시 들려왔지만 최 이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발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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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명(정봉혁) | 작성시간 22.01.19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
  • 작성자kimdeokso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19 고맙습니다~~
  • 작성자두루마리 | 작성시간 22.01.19 글제주가 소설가인 듯/우수회원 등급업 꾸준히 연제해 주세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kimdeokso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19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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