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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있으신가요?

작성자Oscar|작성시간18.01.29|조회수1,060 목록 댓글 73

여러분은 고향이 있으신가요?


제 어린 시절에는 다들 고향이 있었지요.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도 고향이 있었어요.


고향은 그런 곳이었죠.

명절이 되면 아무리 멀어도, 차가 아무리 막혀도, 찾아가야 하고,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나는 잊었는데, 그곳에는 그 철없던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어르신들이

왔느냐고 맞아 주고, 잘 살고 있냐고 안부 물어 주고,

또 알지도 못 하는 분들에게 큰 절 하고나면 누구 아들이구나 하면서

어둑한 방 안에 고구마 몇 개와 신김치를 곁들여 가면서 도시 얘기를 들어 주시고,

그런 곳이 고향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희 아이들은 고향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고향집은 할머니 돌아가신 후 사라졌고,

고향에 있던 논 몇 마지기도 이제는 다 팔아 버렸네요.

부모님들도 다 도시에 계시니 저에게는 고향이 없어져 버렸어요.


고향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고향을 찾아가시는 분들이 지금도 스트레스 받는 것이 그런 것이죠.

누구 누구는 돈 벌었네, 누구 누구는 이쁜 색시랑 결혼했네, 이런 얘기들 하시면서,

미주알 고주알 비교하시는 것 때문에, 은근히 고향 싫으신 분들도 계실 거에요.


하지만, 이제 고향이 없어져 버린 저에게는, 그곳에서 별반 지내지도 않았는데,

고향이 있던 때와 없는 지금이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예전에 써 두었던 시 한편 올려 볼께요.





물 문

 

고향 길

차가운 공기에 얼어 갈라진 땅을 걸어

물문에 갔었다.

한켠에

칠 벗겨진 늙은 배 하나

소주병 뒹구는 흙 바닥에 누워 있었다.

먼데도 기척을 알아 챈 개가

빈 들에 긴 울음을 뿌린다.

 

유제가 아퍼 갔고 군대서 나왔어야.”

이름도 낯설은 동갑내기 얘기로

할머니는 아침상을 차리셨다.

손주 때문에 차린 상에는

끝내 손주 사는 도시에 못 배겨 난

할머니의 자족스런 시골 삶이 올라와 있었다.

 

그 밥을 먹고 나서니

노인네 악착같은 고향 사랑이 스미었나,

발걸음은 아는 이 없는 물문까지의 고향길로 향해

난 이제 막 난산을 마친 듯한

거치른 겨울 들을 걸었다.

 

그닥 추억 거리도 없는 이 물문이

십 수년 정든 친구처럼 그리웠던 것은

왜일까?

 

물문을 사이에 두고

한 켠엔 얼음 서린 동진강이

갈대 어린 강가를 다독거리고

맞은 편 닻 내린 배들 사이로는

겨울만큼 잔잔한 서해가

추억을 더듬는 가슴처럼

쓸쓸한 거품을 낸다.

철문을 넘어 선 물은

대를 이어 살아 온 고깃 배 뱃전을 때리고

아련한 설렘에 말을 잃은 내 가슴 언저리에

거친 세월의 거품을 일어 낸다.

 

아버지가 살아 낸 세월이

탁한 물거품에 어려

가슴 속에 고인다.

 

물문에서 굽어 보면

가난에 찌든 땟국물 어린 아버지도 보이고

사변에 돌아 가신 할아버지도 보인다.

그리고

그 세월 살아 넘긴 유산

내 고집 센 얼굴도 보인다.

 

동진강에 서린 얼음을 보고서

그 물이 흐르지 않으리라 여겨선 안 된다.

세월이 아버지를 지나 나로 흐르듯

그 얼음 밑 물은 물문을 지나

저 망망한 검은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겨울이 얼어 붙은 빈 들을 지나

십 수년을 버텨 온 녹슨 철문이 물을 막아 선

물문 위에 서서

난 세월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고향을 잃은 세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그런 얘기들을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와서 살고 있고, 농촌에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부채 의식이 있어 상대적으로 농촌에 대한 배려가 정책적으로 있는 나라라구요...

물론 실제로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는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구요,

과거의 세대는 항상 고향에 대한 빚을 지고 살았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온 만큼, 출세해서 고향에 가 번듯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고,

고향은 어떻게 보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 보도록 한 어떤 동력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향은 삶의 뿌리가 되는 곳이고, 언제건 그곳에 가면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만큼 고향은 자신의 평판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평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였지요.

그곳은 좁은 곳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며, 그곳에 가면 다시 나는 예전의 나를 마주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시의 삶은 좀 달랐어요.

나를 알아보지 못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는 곳,

무엇인가 실수를 해도 지나치고 나면 그만인 곳,

그런 곳이 도시였지요.


저는 여러 대리점들을 순회하느라 지방 여러 도시들을 다닐 일이 많이 있는데요,

다니다 보면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작은 도시일수록 따뜻하고 사람을 챙겨 줘요.

물론 일반화의 오류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얼굴 알음으로 기억되고 엮이는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낯선 이로 끝나지 않지요.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언젠가 우연히 또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큰 도시에 가면 그런 개념이 흐려지지요.

이곳에서는 오늘 마주친 사람을 언젠가 다시 만날 가능성이 낮습니다.

현재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이익을 보면 되요.

다시 되갚아 줘야 할 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고향이란 곳은 평판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도 한 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금 더 조심하게 되고,

또 오늘 본 사람이 계속 사귀고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도시의 삶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구분해 볼까요?

도시의 삶은 익명성이 크고, 고향의 삶은 익명성이 거의 없다구요...


제가 왜 뜬금없이 고향 얘기를 했을까요?

이쯤에서 궁금하신 분들 계시죠? ^^


본론을 얘기해야 겠네요.

요즘 탁구계에도 점차 고향의 개념이 약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탁구장에 등록을 하고, 그곳에서 탁구를 치게 되면 그곳이 곧 고향이지요.

나에 대한 평판이 있고, 내가 무엇을 하던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곳,

고향이 있다는 것은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합니다.

언제나 가면 같이 탁구칠 사람이 있고, 그들은 나를 알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잘 하면 그만큼의 대우를 받습니다.

물론 잘못하면 대우를 잘 받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하나의 탁구장, 혹은 하나의 동호회에 소속이 되면 줄곧 그곳에서 탁구를 쳐야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지요.

이동성이 늘어 가면서 차를 타고 주변으로 돌아 다니면서 레슨을 받으시는 분들도 계시고,

여러 동호회를 옮겨 다니시는 분들도 있어요.

고향이 없어지니 홀가분하고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구요,

굳이 고향이 필요하냐,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고향이 없어요.

탁구닷컴 직원들과 간혹 같이 탁구를 치는 정도이니, 사실 탁구 자체를 많이 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고향이 있던 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이제는 그냥 일반 탁구 동호인이 아니니 그 분들과 예전처럼 어울릴 수 있지는 않아요.

그래도 저를 아는 분들과 매일 이기고 지고 하면서 같이 탁구 치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탁구카페 운영진들과 함께 그런 모임을 하고 싶기도 한데, 다들 바쁘고 멀리 계시니 고향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향 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이곳 탁구 카페는 고향을 가지고 이곳에 계신 분도 계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다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본래 이곳은 고향 없는 도시였지요.

정모라는 개념도 없었고,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친목 활동 자체를 금해서, 서로 서로 알음 알음으로 엮여 있어도 그것을 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을 고향 삼아서 정감 어린 말들을 주고 받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장단점은 있을 거에요.

어떤 분들은 카페에 친목 활동이 늘어가면 그 친목 활동 범주에 들지 못 하는 사람이 소외될까봐 걱정 하시기도 합니다.


혹시 카페를 고향 삼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추후 있을 정모를 참석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탁구 치는 것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더 늘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이곳이 여러분들의 고향이 될 수도 있을 거에요.


카페의 역할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다가...

이 글을 적습니다.

이곳이 활발해 지는 것만큼,

그만큼 더 따뜻해 지면 좋겠다는 생각....


아마 이곳을 고향 삼는 분들이 많아 지시게 되면,

조금 과한 표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글들이 조금은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이곳을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여기시게 되겠지요?


탁구카페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어 주시면... 그런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설 앞두고, 탁구닷컴 명절 이벤트 준비하다가...

불현듯, 설이 되어도 갈 고향이 없다는 생각에 이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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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산 | 작성시간 18.01.31 내가 살고있는 곳이 정붙이면 고향인거지요
  • 작성자qwerty | 작성시간 18.02.01 '고향, 엄마'... 이런 단어는 왠지 코끝을 시큰하게 합니다!
  • 작성자불사조② | 작성시간 18.02.01 늘 이곳을 응원합니다^^*
  • 작성자ddiluk | 작성시간 18.05.08 이제 오래산곳이 고향이 아닐까요?
  • 작성자야랑 | 작성시간 18.06.14 정붙히고 사는곳이 고향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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