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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방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것과 책을 출판하는 것은 다르지요.

작성자Oscar|작성시간18.02.01|조회수457 목록 댓글 13

이틀 전에 둘째 딸과 음악회를 다녀 왔어요.

둘째는 플룻을 하는데요, 아주 잘 해요.

그런데 자기 친구가 무대에 서게 되었네요.

그래서 같이 갔어요.


저희가 간 음악회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였는데, 나름대로 4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4명의 객원 연주자가 출연하는 규모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딸 아이 친구는 플룻 협연을 했구요, 중학교 1학년인 그 아이 외에도 중학교 1학년인 피아노 연주자도 무대에 섰어요.


플룻 하는 아이는 모짜르트 곡을 했고, 피아노 하는 아이는 베토벤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피아노는 독주 악기로 많이 쓰이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도 있어요.

콘체르토라고 부르는 곡들이지요.

그리고 플룻은 원래 독주 악기라기 보다는 협주 악기이죠.


두 아이들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제 아이가 음악을 하기 때문에 그런지, 아빠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보게 되더군요.

연주 하기 전 긴장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구요, 연주 중간 중간에 몰입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모습도 보였어요.

무엇보다도 저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했을까 생각하니까, 가음이 아프더군요.

굳이 둘째에게 훌륭한 플룻 연주자가 되라고 하기가 미안한 거 있죠?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 무대에서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습을 해 왔는지를 보여 주기도 하구요, 자세 하나 하나 만들 때, 소리 만들 때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얼마나 고생하면서 연습했는지를 관객들에게 다 들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객 중 어느 누군가는 플룻이나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보다 더 뛰어난 연주자가 앉아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운 일이지요.


사실 탁구도 그렇지요.

한 게임을 치를 때 그동안 연습해 온 모든 것, 자기의 장점과 약점, 자신의 성격 같은 것들을 우리는 상대방에게 다 보여 줍니다.

고수와 시합을 할 때 더 어려운 것이 그것이지요.

자신을 금방 읽어내는 사람과 마주하여 자기의 탁구 인생을 다 보여 주게 되니까요...


저는 무대에 선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의 모든 연습 과정을 하나의 곡에 담아서 다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조금 압박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제 아이가 저런 압박감을 견뎌 내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안스럽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국 자신이 평생 해 온 것들,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매개가 되는 어떤 것에 담아서 승부를 낼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입니다.

탁구 뿐만이 아니고 많은 부분에서 그렇지요.

제가 여기에 글을 쓸 때에도 여러분들은 제 글을 통해서 저를 읽어 내시잖아요?

어떤 삶을 살아 왔을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 가는지, 들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악기를 한다거나 탁구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실력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이 들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덜 들키겠지만, 글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를 들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여러분들과 소통하면서, 특히 카페지기로서보다도 넥시라는 브랜드 운영자로서 넥시의 브랜드 정체성을 저의 글과 연결지어 평가하실 여러분들 앞에서 글을 쓰는 것에 상당한 조심성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제품을 내 놓을 때, 이 제품으로 인해 나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으로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라고 할까요?


그냥 어떤 회사의 직원으로 자신이 맡은 파트가 제품 개발이어서 해마다 일련의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조금 덜 하겠지만, 넥시 제품을 내 놓을 때마다, 제 인생의 평가가 소비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제품을 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블로그에도 같은 내용을 적었습니다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책을 쓴 마가렛 미첼 여사는 이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 1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구요, 이 책을 쓴 이후에는 어떤 책도 쓰지 않았어요.

가끔씩 제 삶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턱없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순간 순간 계속해서 평가 받는 그런 것이 아니고, 또 수없이 탈고를 거듭하며 최종본을 내 놓기 전까지는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소설가처럼... 어떤 하나의 완결된 제품으로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마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마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치면서 대학만 가면 이 12년 세월에 대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고 희망하는 것처럼, 그런 인생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서 삶을 다 바치고, 그 인생 프로젝트로 인해 저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으로 완결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제품을 설계할 때마다 그 제품이 마치 제 인생 마지막 제품인 것처럼 공을 들여 설계합니다.


자전거는 어떻게 보면 조금 그런 개념이 가능한 것 같아요.

5년 세월을 보내서 하나의 자전거를 완성해, 이제 곧 출시합니다.

하지만 탁구는 그런 개념이 어렵지요.


저는 매 제품마다 이전의 제품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무대 위에 서야 해요.

하나의 공연 레퍼토리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순회 한다기 보다는, 동일한 관객들 앞에서 끊임 없이 새로운 곡을 연습해서 연주해야 한다고 할까요?



현재는 새로운 표층과 새로운 복합소재를 사용한 모비딕 블레이드 개발 막바지에 있구요,

새로운 탁구화와 새로운 가방도 조만간 출시 예정입니다.

무대에 설 날짜가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는 연주자의 심정이라고 할까요?


두려운 것은, 그 제품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저를 읽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참 부담 스러워서, 넥시 브랜드와 저를 분리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참 자주 생각해 왔는데,

카페지기가 되면서 이것은 영영 어려워 졌네요.


좋은 제품으로 여러분들에게 끊임 없이 검증 받아야지요.

넥시는 타 브랜드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해야 하구요,

그리고 그것을 제품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봄이 다가 오고 있군요.

넥시의 봄을 조금은 희망적으로, 또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기다려 봅니다.

여러분들도 같이 기다려 보시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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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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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2.02 예, 감사합니다 😊
  • 작성자도모드라이브 | 작성시간 18.02.01 저는 넥시 한니발을 써 본후 깜짝 놀랐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에 따른 개인 취향일 수 있겠지만ㅋ

    그 가격에 그 성능에 놀라고 놀라울 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2.02 한니발은 100년 갈 거에요~^^ 제가 최초 소개글에 그렇게 적었죠.
  • 작성자공든탁 | 작성시간 18.02.09 모비딕이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하네요.
    오스카님은 작곡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듯 합니다. 연주자는 그걸 사용하는 유저들이라고 보고요 ㅎㅎ
    좋은 곡은 수백년을 이어가면 연주되죠. 물론 좋은 연주자를 만나면 훨씬 훌륭해지죠^^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2.10 예, 좋은 곡을 써서 오래도록 연주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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