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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탁구 - (5) 종교 유전자와 탁구

작성자Oscar|작성시간18.08.06|조회수484 목록 댓글 13

최근들어 글 연재를 상당히 오랜 기간 중단했는데요,

이제 다시 글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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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요.

신앙이 있는 분들은 신이 인간에게 계시해 준 것으로 생각하지만,

종교의 기원을 인간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 볼까요?


탁구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운동인 듯 합니다.

우선 타 운동들에 비해서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운동입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못 쳐서 일방적으로 경기가 끝난다면, 재미가 없어서 다시 치고 싶지 않을 거에요.

어느 정도, 자기 공을 받아 주고, 그리고 자기 공의 결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경기를 해야 이겨도 이긴 맛이 있지요.

그리고 경기 과정을 떠나 연습 과정을 보면,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집니다.

상대방이 자기 공을 잘 받아 주지 못 하면 연습도 안 되고 몸도 풀리지 않아요.


그래서 탁구는 2인간의 인간 관계를 이어주는 데 좋은 역할을 합니다.

경기를 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는지,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승부욕은 얼마나 되는지, 마음이 좁은지 넓은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배려하는지, 배려하지 않는지,

참을성이 있는 사람인지, 속이 얕고 부글부글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보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도 하고, 또 우리 마음을 들키기도 합니다.


지난 글들에서 제가 강조한 탁구의 매력은 사냥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승부의 관점을 많이 봤습니다.

즉 원초적인 승부욕, 정복욕, 살육의 욕구를 탁구는 매 경기 포인트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소시켜 주시 때문에,

원시적인 사냥꾼의 유전자가 담긴 우리들에게 탁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 담긴 중요한 또 다른 하나의 요소는 바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과거로부터 인간 사회를 보는 여러가지 틀이 있습니다.

홉스는 인간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봤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이며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사회를 통제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지요.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통해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고,

플라톤은 소수의 뛰어난 권력자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철인 정치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권력이 폭력과 억압을 통해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소수의 권력자에게 이양하여

사회를 권위적으로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들은 사람의 사회가 먼저 있고, 그 사람의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 권력체가 뒤에 생긴 것으로 가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먼저 사회가 형성된 이후에 철학을 했기 때문이지요.

인간 사회가 형성되지 않은 원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권력이 형성되고, 인간 사회가 이루어 졌는지를 생각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인간들이 정말 원시적인 수렵 채집 상태에서 살아가던 그 시점에,

이 인간의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 사회 단위들이 국가나 제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려면

이런 이론들만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거대한 육식 동물들과 맞서서 싸우기에 인간은 신체적인 능력이 아주 부족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 부족의 인간들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그런 형태의 삶이었지요.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최근에 인간 사회가 대규모로 조직화 되는 과정에 대해 과거의 철학자들은 생각하지 못 했던 새로운 설명이 등장했습니다.

아주 강력한 이론이지요.

그래서 상당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곧 "종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큰 사회 단위를 만든 다음에 그들의 필요에 의해 종교가 생긴 것이 아니고,

종교가 있는 사회가 점점 더 큰 사회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고,

종교가 없는, 혹은 종교의 힘이 약한 사회는 그 발전의 흐름에서 밀려나 소멸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 용적을 가지고 인간이 몇 명의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유인원 다수 종의 뇌를 살펴보면 그 뇌 용적에 따라 비례하여 함께 살아가는 무리의 숫자가 결정된다고 하네요.

즉 뇌가 발달한 종은 더 큰 무리를 이루고, 뇌 발달이 부족한 종은 소규모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유인원들은 신체적으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살아갈 수록 힘있는 동물들에 맞서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뇌 용적에 따라 무리를 이룰 수 있는 규모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침팬지의 경우 약 120마리 정도가 무리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비교하여 볼 때, 인간의 뇌용적은 150명 정도가 무리를 이룰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과거로부터 하나의 마을은 보통 150명 정도의 인구를 한계로 하여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150명이 넘어서면 그 사람들을 친근한 하나의 공동체 내 사람으로 다 기억하고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최근에 이 이론에 반기를 들고 150명 이상의 사람들과 친근하게 교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페이스북에서 150명 이상의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 이야기와 저 사람 이야기를 혼동하여

엉뚱한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했다는 얘기도 들리네요.


아무튼, 인간은 뇌 용적상 150명 이상의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시대에야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원시시대에는 이 인간 네트워크 용적의 한계가 큰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150명 이외의 사람이 150명 이내의 무리에 들어 오면, 이 사람이 도둑질을 할 사람인지, 나를 죽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인류 초기의 원시 사회가 식인도 마다하지 않는 흉폭한 사회였다고 한다면,

이 150명이라는 한계치는 결과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150명 정도까지는 한 부족을 이루고 살아 가지만, 150명을 넘어선 순간, 부족은 갈라지고,

또 150명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진 이웃 부족과는 생존을 위해 전쟁을 벌이며 살아가는 그런 형편에서 생존했을 것입니다.

(물론 150명이 딱 떨어지는 숫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시지요? 가정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부족이 300명, 400명이 모여서 살아가는 부족이라고 한다면,

그 부족은 150명의 부족을 약탈하고 흡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그 부족이, 자신들은 신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누구와 전쟁해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고,

신이 타부족을 정복하라고 명령했다고 믿고 있다면 더더욱이 그렇겠지요?


그러므로 신을 가진 종족, 특히 호전적인 정복의 신, 축복의 신을 믿는 부족은 점차 그 세를 키워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의 신을 같이 믿는 사람들은 이 150명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서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또 연대를 하기도 했을 것이니까요.

이런 이론에 대해서는 최근에 여러 책들이 증언하고 있겠지만, 제가 주로 참조한 책은 "종교유전자"입니다.


고대 문명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사람들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는 데 이런 배경들이 존재합니다.


1. 농사를 지을 것

- 수렵, 채집 경제를 할 경우에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한 자리 모여 정착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게 되면 농경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부족의 규모는 더 커지게 됩니다.


2. 물가에 있을 것

-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고대 문명은 물가에서 형성됩니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은 물가에 말라리아 모기들이 많아서, 모기 때문에 물가에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규모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대규모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큰 사회 단위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는 큰 국가나, 제국이 등장하지 않았지요. (총균쇠 참조)


3. 강력한 종교를 가질 것

-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종교가 없으면 150명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제국의 형성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옆 마을을 쳐들어가도록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권력자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기는 쉽지 않지요.

  그 권력자가 신이거나, 혹은 신의 아들이거나 할 때에, 신을 두려워하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는

  왕이 곧 신이거나 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왕들은 신의 권위 아래 백성들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가정들을 고려할 때, 곧 강력한 신을 갖는 다는 것이 타 부족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자신의 부족을 거대 국가로 키워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요건 중 무엇이 선후사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물이 있어서 농사를 짓다 보니 강력한 신이 등장했을 수도 있고,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물을 찾아 다니고 그 이후 강력한 신을 차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강력한 신의 개념을 가진 부족이 확장을 거듭해 물을 차지했을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신의 개념이 인간 사회를 제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적었던 탁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어린 시절, 탁구를 처음 배웠던 곳이 어딘지 물어 보면,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배웠다고들 하시더군요.

탁구는 폭력의 정서를 완화시켜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교감을 증진 시키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 주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탁구가 서로 생각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묶어 주는 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적으려다가 '있습니다'로 적습니다.)

그래서 탁구는 여러가지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종교 단체에서 회원들의 친목을 다지기에 좋은 운동입니다.

(물론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실내 운동이라는 장점도 있지요.)


그런데 탁구의 또 다른 장점을 살펴 보면,

이렇게 150명이 넘어가는, 즉 내가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에 대한 본원적인 두려움이나 적개심 같은 것을

해소하기에 매우 좋은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친근하게 잘 알지 못 하는 사람과 있을 때,

단순한 긴장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낍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건장한 깍두기 아저씨와 같이 있을 때를 상상하시면 어떨까요?)


그러므로 탁구는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는데,

아주 탁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 하고

사람 사이에 두려움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동일 집단 내부의 사람들에게는 친근함을 강화시키지만,

집단 외부의 사람이나 혹은 타종교인들에게 적의를 보이게 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다소 엉뚱한 결론 같지만,

탁구가 원시 시대의 종교가 했던 역할,

즉 150명 너머의 사람들을 두려움 없이 신뢰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제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은, 저를 잘 알지 못 하더라도,

일말의 신뢰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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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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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재즈핑퐁 | 작성시간 18.08.07 저는 우리나라 5대 종교를
    카톨릭/불교/개신교/대학교/생활체육교
    라고 봅니다 ㅋㅋ

    단순히 운동으로만 보기엔 무리가..이 카페만 해도 광신도들 많지 않나요~ㅋ

    매 주말 정기모임을 갖고, 때로는 큰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용품사와 탁구장에 정기적으로 헌금도 하고, 주중에도 소모임과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며, 언제나 마음의 중심에 탁구를 품고 살며, 탁구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인간의 탈을 쓴 탁구 신들(마롱같은..)을 흠모하며 동경하고, 심지어는 갈등과 내분을 겪는 모습까지, 이건 영락없는 종교입니다 ㅋㅋ
  • 답댓글 작성자재즈핑퐁 | 작성시간 18.08.07 아니면 반대로, 종교를 믿는 행위가 스포츠를 즐기는 행위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거 같습니다 ㅎ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07 재즈핑퐁 아, 그렇죠~^^
  • 작성자갈비탕한그릇 | 작성시간 18.08.07 https://youtu.be/bQ-sJxuJ5R8
    여기 내용과 유사하네요.
    영상으로 보실 분은 참고하세요
    첨부된 유튜브 동영상 동영상
  • 답댓글 작성자Osca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07 영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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