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야사 존자가 마명 존자에게 내린 전법게
迷悟如隱現(미오여은현)
明暗不相離(명암부상리)
今付隱現法(금부은현법)
非一亦非二(비일역비이)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 같고
밝음과 어둠이 서로 여의지 않나니
이제 숨음과 들어남의 법을 부촉하노니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로다.
[스님] 여러분은 여기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처음에는 미혹과 깨달음(迷悟), 밝음과 어두움(明暗)을 나누어서 얘기했는데, 마지막에는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다 라고 했어요. 하나 둘도 아니라는 게 무엇인가?
[대중1] 조사들 간에 법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 과정에서는 사실은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굳이 말로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외부적으로는 이렇게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것이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라고 얘기함으로써 그 어떤 이치나 견해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요, 한마디 붙인다면,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법이 하나도 아니고 또한 둘도 아니다 하니, 엄동설한에 손과 발이 꽁꽁 얼었으며,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 위에서는 썰매는 잘도 미끄러집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 여기에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했는데, 그렇게 이야기가 많으면 횡설수설이라고 해요.
[대중2]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허공에서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데, 허공은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닙니다.
[스님] 허공에는 눈도 비도 오는데 허공은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다는 뜻이라 이거지? 그건 허공이라는 걸 전제를 해놓고 말하는 것 아닌가. 여기는 그런 것이 없는데. 허공이라는 전제가 붙어버리면 하나라는 이름 붙는 거나 둘이라는 이름 붙는 거나 이름 붙는 거는 마찬가지야. 그래 되면 안 된다 이거지.
[대중3] 구름이 걷혀서 보이는 달은 하나지만 천강에는 천 개의 달이 다 비치는 이치입니다.
[스님] 구름도 아니오, 구름이 걷힌 푸른 하늘도 아니오, 밝은 달도 아니다 이랬을 때는 어쩌냐 이거라.
[대중3] 목전(目前)에 그대로 있습니다.
[스님] 그러니까 그러면 달이 있다는 말이나, 목전에 있다는 말이나, 말이 붙는 거는 마찬가지야. 여기서는 그걸 싹 끊어버리는데.
[대중4] 그럴 경우에는 대적(大寂)입니다. 말을 떠나 근본으로 돌아가면 오로지 침묵과 적막입니다.
[스님] 그게 대적이라는 이름이 붙는 거나, 밝은 달이 있다는 말이나, 이름과 설명이 붙는 거는 다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대적도 아니고 대적 아닌 것도 아니다 하고 싹 쓸어버렸다.
[대중5] 항상 접합니다.
[스님] 그게 말이 마찬가지라니까. 아까 여기 이 스님이 말한 거나, ‘접합니다’ 말 붙는 거나 마찬가지라.
[대중6] 말하면 안 됩니다.
[스님] “말하면 안 됩니다” 이러면서 말 했네? 허허허. 여기는 그걸 싹 뭉게 치워서 없어요.
[대중7] 저는 은현법(隱現法) 게송을 듣고서 곡중무인(谷中無人) 능작음성(能作音聲)이라는 게송이 생각났습니다. 산골짜기에 사람이 없는데도 능히 소리를 냅니다. 그 뜻은, 내가 없으니 하나도 없고 둘도 없고, 내가 없으니 달도 없고 깨달은 것도 없는 것 아닙니까?
[스님] 마찬가지로 거사님이 말한 것도 입을 열어서 말을 했으니 여기에는 어긋나는 거지. 그 말이 왜 나오느냐 이거거든. 없는데 나오잖아, 벌써 본인이 말을 해버렸으니까.
여기에서 여러분이 아직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네요. 여기에서 이걸 바로 알아차린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그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여기는 모든 걸 싹 잘라서 쓸어버렸는데, 지금까지 여러분이 이런 말 저런 말을 자꾸 하는데, 그러면 여기 이분이 말한 내용에 어긋나는 거예요. 개구즉착이다. 입을 열면 어긋난다. 천성(千聖)도 구괘벽상(口掛壁上)이라. 일천 성인도 입을 벽 위에 걸어버렸다 그러잖아요. 뭐라고 말하면 상신실명(喪身失命)이다, 몸이 상하고 목숨까지 잃는다 이렇게 돼 있어요.
[대중8] 입을 닫고 있을 때는 어떻게 질문해야 됩니까?
[스님] 그걸 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이 법상 위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니, 문수보살이 나와서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法王法如是). 오늘 설법은 다 마쳤습니다.” 그리고 문수보살이 죽비를 치고 좌복을 거두니 부처님은 곧 법상에서 내려와서 돌아가셨잖아요.
여기에서 非一亦非二(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라 한 이런 것이 부처님과 문수보살 같은 분들의 행리처라. 그걸 알면 오늘 여기에 계합이 됩니다. 근데, 지금까지 여러분이 말씀한 것은 여기에 다 해당이 없습니다. 아무 안 맞는 말이라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화두가 확실히 타파가 되고 해결이 돼야지 여기에도 바로 알아차리고 계합이 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 가지고는 여기에 절대 미치지도 못하고 전혀 맞지 않습니다.
('22.8.21 학산 대원 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