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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블루칼라워커' 故 폴 사일러스를 기리며 그의 선수시절을 돌아봅니다.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22.12.14|조회수1,497 목록 댓글 23

어제 79세를 일기로 작고하신 위대한 파워포워드, 폴 사일러스를 소개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그의 애석한 죽음을 기리는 글입니다.

 

폴 사일러스는 1943년생으로, 크리튼 대학 출신이며, 1964년 NBA 드래프트 10번 픽으로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6-7의 신장으로 과연 NBA에서 파워포워드로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부호가 많이 붙었던 선수였지만, 워낙에 타고난 리바운더였으며 근성가이였던 점이 그를 드래프트한 구단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3년 동안 NCAA 최다 통합 리바운드 기록을 세워버렸거든요. 

 

 

1.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구단에서 잠재력을 터뜨린 사일러스

벤치에서 첫 세 시즌을 보낸 사일러스는 네 번째 시즌부터 잠재력을 터뜨리며 구단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는 파워포워드로 급성장했습니다. 평균 13.4점, 11.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레니 윌킨스, 빌 브릿지스, 젤모 비티 등과 함께 호크스 구단의 중심선수가 된 것이죠. 

 

 

2. 피닉스 선즈에서 전성기에 돌입하다  

사일러스의 몸은 크지도 굵지도 않았고, 근육형도 아니었습니다. 사일러스의 최대강점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지구력, 내구력, 근성, 그리고 뛰어난 기동력에 있었죠. 그는 파워포워드였으면서도 리바운드 잡고 빨리 뛰어나가 속공에 참여하던 선수였습니다. 훗날 벅 윌리암스가 이런 스타일로 리그 탑 파워포워드 자리에 우뚝 섰었죠. 벅 윌리암스에게 큰 영향을 준 선수가 바로 이 폴 사일러스 입니다. 

 

 

3. 막강한 수비력을 갖춘 파워포워드

피트 마라비치의 속공 레이업을 그냥 찍어버리는 사일러스. 그리고 스틸에 이은 속공을 풋백으로 마무리하기도 하죠.

 

폴 사일러스는 수비 관련해서는 총 다섯 번의 올-디펜시브 팀 선정 외엔 딱히 수상실적이 화려하진 않습니다만, 당시에 감독들이나 선수들이 모두 인정하는 탑 클래스의 수비수였습니다. 몸싸움과 허슬플레이에 능해서 정말 중요한 수비 플레이들을 잘해주던 선수였죠.

 

 

4. 패싱력은 덤

안그랬을 것 같은데, 사일러스는 패싱력도 좋았습니다. 하이에서 컷인해 들어가는 선수에게 찔러주는 A패스나 로우포스트에서의 킬 패스 등에도 능했어서, 경기당 평균 3개 정도의 어시스트는 해주던 선수입니다. 요즘 어시스트 산정방식으론 4~5개의 어시스트를 해주던 파워포워드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5. 둘째가라면 서러울 골밑 터프가이, 그러나 인성도 좋았습니다.    

보스턴의 터프가이들, 존 하블리첵과 데이브 코웬스 상대로 보여주는 사일러스의 골밑 터프함. 그는 터프하면서도 혹시 상대팀 누군가가 자기에게 맞거나 하면 항상 체크부터 하고 미안하다 말하던 인성까지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하블리첵을 박스아웃하다가 자신의 손이 하블리첵 얼굴에 닿자 얼른 하블리첵에게 괜찮냐고 묻는 터프가이.

 

 

6. 그의 골밑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를 영입한 보스턴 셀틱스

빌 러셀이 은퇴한 후, 셀틱스는 존 하블리첵 중심으로 팀 재건에 나섰고, 조조 화이트데이브 코웬스, 이 두 명의 걸출한 젊은 재능을 뽑으면서 빅 3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센터들 전성시대에 데이브 코웬스 하나로는 골밑이 너무 약했습니다. 그래서 코웬스와 함께 골밑을 책임져 줄 근성가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7. 새롭게 구축이 된 보스턴 셀틱스 빅 4

폴 사일러스(35번)는 보스턴 왕조의 재현을 꿈꾸는 셀틱스의 마지막 퍼즐이었습니다. 72-73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이 사일러스를 영입하자마자 보스턴 셀틱스는 68승을 거두며 엄청난 강팀이 되었고, 폴 사일러스가 골밑에서 분전을 해주자 데이브 코웬스가 부담을 떨쳐버리며 마음껏 활약, 시즌 MVP까지 거머쥐게 됐죠. 사일러스는 13.3점, 13.0리바운드, 코웬스는 20.5점, 16.2리바운드를 평균으로 기록했습니다.

 

사일러스 영입으로 빅 4를 구축한 셀틱스는 60년대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 정도로 강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1973-74 시즌, 그들은 기어코 우승을 하고 맙니다.

 

 

8. 부잣집 망해도 3년 간다 

1974년 파이널에서 커림 압둘자바의 밀워키 벅스를 만난 보스턴 셀틱스.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셀틱스가 신승을 합니다.

 

이 시리즈는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파이널 시리즈이기도 하죠. 온갖 명승부 장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파이널 시리즈 영상을 꼭 찾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존 하블리첵이 왜 위대한 선수인지를 잘 보여준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물론, 파이널 MVP는 하블리첵의 몫이 되었습니다. 

 

오스카 로벗슨이 압둘자바에게 넣어주는 패스를 스틸해 속공 레이업을 성공시키는 폴 사일러스. 이 시리즈를 상징하는 하일라이트 중 하나입니다.

 

특기할 점은, 폴 사일러스가 점프력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빌 러셀 옹께서 항상 농담으로 하시던 말씀, "폴 사일러스, 그 친구는 이상하게 흑인인데도 점프를 못해. 덩크도 간신히 하더구먼, 껄껄껄."

 

역설적으로, 2미터 신장에 점프력도 없어 덩크도 간신히 하던 선수가 그렇게 리바운드를 잘 잡는 괴물이었단 말도 되겠죠.

 

 

9. 1976년에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는 사일러스와 보스턴 빅 3 

동부컨퍼런스에서 만난 클리블랜드와의 대접전입니다. 시리즈를 결정짓다시피한 5차전.

 

40여 초 남기고 보스턴이 3점차로 앞서있던 상황에서 사일러스가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내고, 20여 초를 남기고 보스턴이 1점차로 앞서있던 상황에서 풋백을 성공시키며 3점차로 달아나는 순간. 왜 사일러스가 중요한 선수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죠.

 

사일러스는 이 75-76 시즌에 10.7점, 12.7리바운드를 했고, 피닉스 선즈와의 파이널에선 12.8점, 13.8리바운드로 우승에 매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제 76년 파이널 장면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10. 사일러스 투 하블리첵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사일러스의 패싱력은 매우 좋았습니다. 턴오버 된 공을 잡아 신속하게 존 하블리첵에게로 연결하며 멋진 속공 플레이가 완성됩니다.

 

 

11. 환상적인 패싱 연계 플레이

하블리첵 - 짐 아드 - 에드 시어시 - 사일러스 - 짐 아드 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움직임. 마치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들 같습니다. 

 

 

12. 사일러스의 페이스업 돌파

하이에서 패스를 뿌려대다가 갑자기 기습 돌파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은근히 돌파도 잘했어요.

 

 

13. 보스턴 빅 4의 합작품 

데이브 코웬스 - 존 하블리첵 - 폴 사일러스 - 조조 화이트

 

 

14. 풋백으로 파이널 클러치 상황 장악하는 사일러스

보시는대로, 기가 막히게 포지셔닝을 잡으며 풋백으로 상대팀 기를 다 빼놓는 사일러스의 활약상입니다.

 

 

15. 근성으로 잡아내는 오펜스 리바운드

마치 데니스 로드맨을 연상시킵니다. 파이널 시리즈의 중요한 순간마다 오펜스 리바운드를 줄기차게 걷어냅니다. 결국, 알반 아담스와 폴 웨스트폴이 이끈 친정팀 피닉스 선즈를 4:2로 격파하며 본인의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쥡니다.

 

 

16. 1979년 우승팀 시애틀 수퍼소닉스의 정신적 지주

거스 윌리암스, 잭 시크마, 데니스 존슨, 로니 셸튼, 20대 초반 빅 4로 구성된 이 수퍼소닉스를 한 팀으로 묶어준 라커룸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가 바로 폴 사일러스(35번)였습니다. 호크스 시절, 소닉스 감독인 레니 윌킨스의 팀원이기도 했던 사일러스 영입 덕분에 시애틀은 망나니같은 싸움꾼 로니 셸튼을 영입하고,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잭 시크마를 드래프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7. 79년 소닉스 우승에도 공헌을 한 사일러스

윗 장면은 우승이 결정된 5차전 4쿼터 클러치 상황인데, 소닉스가 한 골 차로 앞서있는 상황에서 사일러스가 골밑에서 리바운드 경합을 하다가 손에 공이 맞으며 튕겨나갔고, 이 공을 거스 윌리암스가 잡아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소닉스가 우승을 하게 된 상황이죠. 리바운드를 잡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지막 공격에 관여를 한 것도 사일러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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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폴 사일러스를 소개하고 동시에 기리는 조악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오래 전 선수를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 소개한다는 건 너무도 힘들고 또 불공평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들을 공유하고자 노력은 했습니다. 이 점, 예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감독으로서, 또 행정가로서의 그의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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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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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15 올스타 2회, 올-디펜시브팀 5회, 2회 우승팀의 주역, 리바운드의 대명사... 폴 사일러스는 70년대 수퍼스타들 중 하나였습니다. 블루칼라워커였지만 인기와 인지도가 높았던 선수였어요.
  • 작성자Statistics | 작성시간 22.12.15 코웬스의 리바도둑(?)이긴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서 오히려 코웬스는 이전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지 못했던 점을 본다면 찰떡듀오가 아니었나 합니다.. 70년대 백투백 파이널만 해도 잘한 시기에 2회나 우승을 하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다른 포스트듀오보다 리바운드가 균형이 잡힌 건 코웬스는 수비리바가 강하고, 사일러스는 공리가 강한 스타일인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우승 시즌에 셀틱스의 리바 장악력은 리그 탑이었죠 둘뿐만이 아니라 팀원들 전부가 박스아웃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나 수박겉핥기로 추정을 해봅니다. 사일리스는 하블리쳌 다음으로 16년의 선수생활을 소화한 2번째 선수이기도 했죠.. 카림 이전에 엘빈헤이스까지 16년이 선수생활의 맥스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장수왕 타이틀을 줘도 이의는 없었을 듯 합니다. 중간에 70경기 미만 출석 시즌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내구력도 좋았죠...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15 폴 사일러스를 규명지을 수 있는 단어 세 개가 쓰신 댓글에 모두 나왔군요. (1) 공격리바운드 (2) 박스아웃 (3) 내구력 !!!
  • 작성자용룡이 | 작성시간 22.12.1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닥터님덕에 또 좋아 하는 스타일인 블루워커
    한분의 멋진 영상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
    감사합니다 ^^
    전 블루워커, 3&D 선수가 우승에 필수라고 봅니디.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선수가 있더라고요~

    어쩌면 화려함보다는
    블루워커 스타일과 PG를 좋아해서
    제조업쪽이 저에게 좀 맞는 것도 같습니다 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16 네, 요즘은 보기가 흔치 않은 선수들이죠.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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