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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락다운 디펜스'와 '스틸'을 논하지 말라 - 알빈 로벗슨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15.10.26|조회수5,478 목록 댓글 26


언젠가 한 번 제대로 소개를 하고 싶었던 선수였는데, 최근에 여러 댓글에서 언급이 되었고, 또 이 선수 관련한 요청글도 있었고 해서, 아주 간략하게나마 이 선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알빈 로벗슨 (Alvin Robertson)


1962년생으로서, 80년대 최고의 스윙맨 디펜더였던 밀워키 벅스의 시드니 몽크리프를 배출한 Arkansas 대학 출신입니다. 신장은 191센티였고, 온 몸이 말근육이었던 매우 빠르고 피지컬한 슈팅 가드였죠. 그 들어가기 힘들다던 바비 나이트 감독의 1984년 로스 앤젤리스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이 될 정도로, 수비와 개인기량 그리고 성실함에 있어선 별 약점이 없었던 선수입니다. 올림픽 때도 팀 내 최고 디펜더였고, 스페인의 세계적인 슈터, 에피파니오 같은 상대팀 에이스들을 꼼짝못하게 꽁꽁 묶어버렸던 명 수비수였죠.


대학 시절에도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수많은 에이스들이 이 선수의 락다운 디펜스와 디나이 수비 때문에 애를 먹었죠. 매직 존슨이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같은 장신 가드들에 대한 수비를 특히 더 잘했던 선수입니다. 포인트 가드부터 스몰 포워드까지, 수비명령만 떨어지면 다 막아낼 수 있는 스피드와 근력, 근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루키 시즌 (1984-85)


로벗슨은 84년 올림픽이 끝난 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7순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드래프트가 됐습니다. 조지 거빈으로선 스퍼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고, 특별히 거빈의 대체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거빈의 뒤를 이을 에이스로 지목받았던 로벗슨은 루키 시즌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확실하게 터뜨리며 리그 내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거빈이 벤치에 있을 때만 출전하는 벤치멤버였지만, 36분 출장으로 환산하면 평균이 거의 16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 3스틸에 달하는 놀라운 올라운드 기량을 과시했죠.




위 영상은 로벗슨의 루키 시즌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긴 팔과 재빠른 손놀림으로 상대방이 예측도 할 수 없는 각도에서 공을 쳐내고, 스틸한 후엔 곧바로 속공으로 연결시켜주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이 루키 시즌 때 보여준 로벗슨의 실력 때문에 거빈도 큰 미련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할 수 있었고, 스퍼스 구단 측에서도 확실한 에이스 감을 잡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조지 거빈(74년~85년)과 데이빗 로빈슨(90년~03년) 사이의 공백을 메꿔주는 스퍼스 구단 에이스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스퍼스 전성기 시절 (85~89년)


로벗슨은 조지 거빈이 떠난 85~86 시즌, 즉 자신의 프로 2년차 시즌부터 수퍼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팀의 전력은 점점 약화됐지만, 로벗슨의 스타성은 빠른 속도로 상향곡선을 그렸고, 시즌 평균 17점, 6.3리바운드, 5.5어시스트, 3.7스틸을 기록하게 되죠.


이 프로 2년차 시즌은 로벗슨에게 있어서 기념비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새로이 마련된 Most Improved Player초대수상자가 되었고, 올-NBA 팀올스타에도 선정이 됐으며, 스틸왕수비왕 (그의 대학선배였던 시드니 몽크리프는 이 수비왕의 초대수상자였기도 하지요) 등의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역대로 봐도 전무후무한 수상기록이었습니다.


이 시즌에 로벗슨이 정말 대단한 개인기록 또한 세웠죠. 바로 쿼드러플 더블 경기입니다.




1986년 2월 18일에 벌어진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 (위 영상 하일라이트 참조)... 로벗슨은 20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하며 (그 당시로선) 역대 두번째의 대기록을 수립한 것입니다. 이후에 올라주원과 데이빗 로빈슨 또한 쿼드러플 기록을 세웠지만, 스틸을 포함시켜 만들어낸 기록으론 로벗슨이 유일무이합니다.


스퍼스에서 다섯 시즌을 머무르며 올스타에 3회 선정되고, 올-디펜시브 팀에도 4회나 선정이 된 로벗슨은, 스틸왕 타이틀도 86년, 87년 백투백으로 가져갔습니다. 스퍼스에 있는 동안, 루키 시즌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시즌동안 연속으로 시즌 평균 3개 이상의 스틸을 기록하기도 했죠.



밀워키 벅스 시절 (89~93년)


로벗슨은 89~90 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벅스엔 이미 올스타, 또는 준올스타급 스타 플레이어들이 포진하고 있었죠 - 잭 시크마, 폴 프레시, 리키 피어스 등.  80년대말 스퍼스보다 강력했던 벅스 팀에서도 로벗슨의 존재감은 여전했습니다. 올스타올-디펜시브 팀에도 선정이 되고, 91년엔 또 한 번의 스틸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죠.


90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와 맞붙은 벅스... 그 벅스의 유일한 시리즈 1승이 이 알빈 로벗슨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로벗슨은 이 시리즈 내내 벅스의 공수 핵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매치업 상대는 '완전체' 마이클 조던이었고, 로벗슨은 벅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조던을 상대로 정말 멋진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3차전에서 로벗슨은 38득점, 8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마지막 클러치 상황에선 조던을 상대로 기회를 엿보다가 컷인해 들어오는 프레드 로벗츠에게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했고, 결국 이 로벗츠의 덩크가 결승골이 되면서 벅스에게 귀중한 1승을 가져다 줬죠.



로벗슨은 12년 간의 프로생활을 마치며 커리어 평균으로 14.0점, 5.2리바운드, 5.0어시스트, 2.7스틸이란 스탯을 남겼습니다. 이 커리어 평균 2.7개의 스틸은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그리 평탄치 못했던 말년 (93~96년)


근육으로 똘똘 뭉쳤던 강철같은 사나이였지만, 아마도 그동안 너무 몸을 험하게 많이 굴린 탓일까요? 로벗슨은 30줄에 들어서면서부터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신음해야 했습니다. 디트로이트, 덴버, 토론토 등을 전전하며 전성기 때의 모습은 완전히 뒤로 한 채 은퇴를 해야만 했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그에게 고질적인 부상은 너무나도 큰 후유증으로 다가왔습니다.

로벗슨은 신생팀 토론토 랩터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시즌 첫 경기에서 경기 시작하자마자 3점슛을 넣으면서 그 주인공이 되었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절인 93년엔 샤킬 오닐과 주먹을 주고 받았던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골밑에서 빌 레임비어가 '루키' 샤킬 오닐에게 파울을 했고, 성질이 난 오닐이 레임비어에게 뭐라고 하자 싸움을 말리려던 로벗슨에게 오닐이 주먹을 날리면서 시작된 싸움이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찍힌 영상이 없고, 심판의 머리에 가려져서... 당시엔 오닐이 작은 선수에게 주먹을 날린 것으로만 보도가 됐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 주변에 있던 선수들의 증언에 의해, 로벗슨도 오닐의 안면에 제대로 된 강력한 주먹을 작렬시켰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게 되었죠.  


로벗슨은 원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던 선수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레슬링을 농구와 함께 익혀왔기 때문이죠. 대학 시절엔 자신보다 15센티가 더 크고 몸무게도 25킬로가 더 나가던 미식축구 선수, 로버트 브래넌을 때려눕힌 적도 있습니다. 농구선수들 사이에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실 대학 때도, 프로 때도, 로벗슨에게 싸움을 걸거나 시비를 건 선수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터프함이 바비 나이트 감독으로 하여금 그를 올림픽 팀의 일원으로 뽑게 했던 것입니다.


트래쉬 토킹으로 유명했던 레지 밀러가 전해준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의 루키 시즌 때, 스퍼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을 무렵, 인디애나 선수 하나가 밀러에게 이런 충고를 해준 것이죠.


"너, 로벗슨 앞에선 트래쉬 토킹 하지 말아라. 절대로. 시비도 걸지 말고, 눈을 쳐다보지도 말아. 걔가 널 쳐다보면 그냥 눈깔고 다른 데로 걸어. 로벗슨한텐 인사도 하지마라."


그리고 레지 밀러는 이 충고를 로벗슨 은퇴할 때까지 지켰다고 합니다. 레지 밀러가 유일하게 트래쉬 토킹을 하지 못한 선수가 바로 로벗슨이었습니다.



로벗슨의 이 주먹질... 불행하게도 이 주먹질은 1997년에 여자친구의 얼굴에도 작렬이 됐었습니다. 이 구타사건으로 로벗슨은 1년간 감옥에서 복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샌안토니오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로벗슨은 (로벗슨은 지금도 샌안토니오에 살고 있습니다) 2007년에 아내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엔 아동 인신매매 건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죠. 본인이 자신은 함정에 빠진 거라며 항소를 했지만, 법정에선 로벗슨이 주범은 아니었어도 공범엔 해당이 된다는 판결을 내렸죠.



  1997년 폭행으로 구속됐을 당시의 모습



30대 초반부터 그를 괴롭혀 온 고질적인 부상이 그를 이토록 삐뚤어지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무튼, 로벗슨의 말년은 부상과 범죄행위로 얼룩졌다고 밖엔 볼 수 없겠습니다. 


로벗슨은 현재 개과천선(?)한 것처럼 보입니다. 샌안토니오 지역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죠. 본인 스스로 너무나도 사랑했던 샌안토니오...어쩌면 이 구단을 떠나던 89년부터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샌안토니오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은퇴하자마자 지금까지 이 도시에 살고 있죠. 하지만, 그는 자기가 '탕아'란 사실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작년에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구단을 얘기할 때 제 얘기는 빼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구단, 이 커뮤니티는 전국을 통틀어 손꼽을 만한 최고 중 최고입니다. 너무나도 모범적이고, 법 없이도 살 만한 선수들과 시민들... 그런 구단과 도시를 저는 너무나 사랑합니다. 하지만 제가 저지른 수많은 악한 행동이 이 위대한 구단의 이미지에 누를 끼칠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제가 스퍼스의 수퍼스타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현재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글: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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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B.ROY | 작성시간 15.11.19 타고난 운동 선수네요 진짜 날래다는 느낌이 딱! 맞는 선수. 카와이 레너드의 선배격이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성규 | 작성시간 15.12.10 던컨전에 21번 선수라 흥미롭네요. 팀에 오래있지 못해서 영구결번이 아닌가요?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2.10 5시즌 밖에 있지도 않았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구단에 누가 될 만한 행동도 좀 많이 했죠.
  •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23
    7년 전에 썼던 게시물입니다. 제 개인 게시판이 생겼으니, 이런 위대한 선수 글은 옮겨놓아야 할 것 같아서 운영진께 부탁을 했습니다.
  • 작성자Statistics | 작성시간 22.12.24 포인트가드 중에서 그와 스타일이 비슷했던 무키 블레일락이 빵에 갔던 경험도 비슷하죠 둘다 그그컨(블레일락이 더 낫지만)에 지금은 대접 못받는 선수라는 점두요.. 카와이의 하위호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을 내주는 실력과 득점력에서 카와이가 월등히 앞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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