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지금 어디에 - 1990 드래프트

작성자One And Only|작성시간23.07.21|조회수7,367 목록 댓글 18

1. 데릭 콜먼

 

 

샤크 : 난 인유어 먹은적 없은 아무튼 없음



거구임에도 농구선수로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췄었던 선수. 딱 하나, 노력하는 재능은 가지지 못했다. 그다지 노력 안해도 20-10을 기록하는 동시에 5x5를 기록하는 3인중 하나가 될 정도의 재능이 있었으니까. 은퇴후 최근에서야 시라큐스 대학을 최종 졸업했다. 가족 중 첫 대학학위를 취득했으며 은사 래리브라운이 축하해줄때 살짝 울었다고. DC Elite Basketball 이라는 유소년대상 농구교실을 운영중이다. 

2. 게리 페이튼

F...

NBA 역대 최강의 '주둥이'. 올타임 테크니컬 파울 4위. '조던 스토퍼' 
OKC로 영구결번은 거부한채 시애틀로 NBA구단이 다시 생기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지난 시즌 아들이 우승함으로써 5번째 아버지-아들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맷 고커스 시니어&주니어, 릭&브랜트 베리, 빌&루크 월튼, 마이칼&클레이 탐슨)

3. 크리스 잭슨 
 

커리 이전의 커리. 

 

 



가난한 가정속 뚜렛증후군을 앓으며 특수직업교육을 받던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제대로된 규칙을 모르는데 24득점을 올리거나 늦게 시작한 농구에서 고교 졸업반때 맥도날드 올아메리칸에 선정되거나. 정규시즌 자유투 1위를 두번 차지할만큼 정교한 슛메커니즘과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매서운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부상으로 9시즌만에 일찍 커리어가 종료되었다.  2011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하였다. 91년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이름을 무하메드 압둘-라프로 개명했다. 
2018년 근 50이 되어서 뛴 BIG3 리그에서 3점 야투 5위를 차지했다. 최근엔 강연이나 농구코칭을 하며 지내고있다.  

4. 데니스 스캇 

267개로 한시즌 최다 3점슛(레이 알렌이 경신), 11개로 한경기 최다 3점슛(코비 브라이언트에 의해 경신) 기록등을 가진 당대 이름 날린 슈터였다. 이후 샤킬오닐, 페니하더웨이가 들어오며 젊은 강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올랜도에서 7시즌 이후에는 세 시즌을 더 뛰었지만 올랜도 시절만한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아직까지 올랜도의 3점기록을 가지고있다. 현재는 터너스포츠에서 해설자를 하고있다. 

5. 켄달 길 

15득점 10리바운드 11스틸로 스틸 트리플 더블중 가장 많은 스틸을 기록한 선수이다. 컨디셔닝을 위해라고 핑계를 대며 취미로 복싱을 연마하다 2005년 프로 경기에 데뷔하기도했다. 4승 3KO의 하드펀처.여전히 일주일에 3회씩 체육관에 나가며, 21년엔 네이트 로빈슨을 때려눕힌 유튜버 제이크 폴에게 시합 신청을 하기도했다.  
 

 
6. 펠튼 스펜서 

7피트에 290파운드. 당당한 체격을 바탕으로  골밑을 사수하는 센터였다. 파울관리는 미흡했지만 나와있는 순간엔 더블더블에 준하는 기록을 남길수있는 센터로 유타에서 마크이튼의 뒤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아킬레스건 부상이후론 나머지 7시즌간 벤치워머 수준의 선수로 뛰었다. 은퇴 이후론 농구지도자 생활을 해왔으나 2023년 3월 12일 불과 55세의 나이로 루이빌 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미공개. 

 
7. 라이오넬 시몬스 

NCAA 역사상 처음으로 3000득점 - 1000리바운드를 달성했으며 상이란 상은 다 수상했던 대학무대의 전설.  특별히 뛰어난 사이즈나 운동능력은 없었음에도 다재다능했고 기술이 좋았다. 올해의 신인 2위에 랭크된 시즌 포함 4시즌동안 17-8-4를 기록했지만 큰부상으로 이후 3년간은 4-3-1에 불과했다.  은퇴 이후론 고향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여러 사회활동들을 하며 평범한 삶을 보내고있다.  루키시즌, 부상으로 두경기를 결장했는데 부상 이유는 과도하게 닌텐도 게임을하다 입은 오른팔 건염(...)

8. 보 킴블

 
대학무대 뛰어난 득점원이었으나 NBA에서는 별다른 기회를 받지못했고, 부상도 계속되며 세시즌만에 NBA에서 사라졌다. CBA에서 몇년간 선수생활을 더했고 이후 은퇴했다. 현재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Forty-Four for Life Foundation'의 창립자이자 오너로 활동중. 

 
+ 행크 게터스 

보 킴블과 행크 게터스 

8번픽 보 킴블과 대학동창이자 친구. 살아있었다면 아마 로터리에 그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외곽슛이 없었던 단신이었지만 뛰어난 운동능력, 투지로 골밑을 종횡무진 활약한 선수로  샤킬 오닐의 LSU를 상대로 48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89년 코트위에서 쓰러져 심실빈맥을 진단받았으나, 치료약물이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게터스는 임의로 약물 복용량을 줄이고, 병원의 테스트도 피했다. 90년 준결승 전반전, 앨리웁덩크를 꽃아넣은 게터스는 백코트해서 자리를 잡던도중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누워있고 싶지않아!!' 라고 스태프들에게 말을했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향년 23세. 부검결과 그는 선천적 심장 장애인 비대성 심근병증을 앓고있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의사의 오진) 안타까움을 더했다. 게터스의 친구 보 킴블은 이후 경기에서 자유투를 왼손으로 쐈고(게터스가 왼손잡이, 킴블은 오른손) 세개 모두 성공시켰다. 그는 이후 크리스 보쉬가 복귀를 희망할때 ' 인생에서 할 수있는 일은 다양하며, 게터스가 만약 다시 기회를 얻는다면 그러지 않았을것이다.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이유가 없다. 자녀들에겐 보쉬가 필요하다' 며 조언을 건내기도 했다.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 세워진 그의 동상 

9. 윌리 버튼 

히트에서 데뷔했으나 꾸준히 역할과 출전시간이 줄어가던 버튼은 필라델피아로 이적한해 히트와의 경기에서 53득점을 올린다. 50+게임 역사상 2번째로 적은 필드골 횟수로 올린 기록. 그 게임과 그해의 기록이 커리어베스트였고 8시즌을 뛴 뒤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04년까지 계속했다. 22년부터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보조강사로도 일하고있다고 전해진다.  

 
10. 루밀 로빈슨 

 

어디서 파울인지???



대학농구 역사상 손꼽히는 최악의 콜을 받아 넣은 자유투로 미시건대학을 챔피언에 올렸던 선수. 재능자체는 괜찮았으나 부상으로 크게 성장하진 못했다. NBA 커리어동안 약 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NBA에서 은퇴한 이듬해 파산선고를 해야했다. 씀씀이가 헤퍼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선수 은퇴이후엔 부동산 사업을 벌이겠답시고 부모님을 포함 여기저기서 돈을 열심히 긁어모았는데 그 돈을 죄 자기 술먹고 밥먹고 명품사는데 썼다. 결국 사기혐의로 2011년 부터 2016년까지 교도소에 있었다.  

 
11. 타이론 힐 

거친 수비와 전투적인 리바운드, 전형적인 블루컬러 타입의 선수로 한차례 올스타에도 올랐으며 14시즌 장수했다. 
은퇴 이후엔 애틀란타 호크스에서 보조코치직을 수행하기도했다. 이후 근황은 알려져있지않다 

 
 
12. 알렉 케슬러 

대학무대 20-10을 기록했던 빅맨이지만 NBA에서 살아남기엔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4년간 히트에서 뛴 후 방출되었고 이탈리아 리그에서 한 시즌을 뛴 뒤 은퇴하였다. 이후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99년 졸업, 외과의사가 되었다. 2007년 픽업게임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40세. 그의 형 채드 케슬러도 농구선수였으나 NBA에서 뛰지는 못했다. 채드의 아들, 그러니까 알렉의 조카인 워커 케슬러는 지난해 유타 재즈에 드래프트 되었다.  

아카데믹 올 아메리칸에도 여러번 선발된 똑똑이. 

 
13. 로이 보트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과 괜찮은 공격능력을 겸비했었던, 약체 클리퍼스의 파워포워드. 94년부터 97년까지 16.2득점에 9.9리바운드를 올리며 전성기구간에 접어들었으나 큰 부상 이후엔 그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있으며, 렉시와 마야 두딸의 아버지이다. 마야는 고교시절 배구를 했었다. 

 
14. 트레비스 메이스 

대학시절엔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올해의 선수를 연속으로 수상하는등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허나 킹스에서 나름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별달리 유능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고 이듬해 트레이드, 호크스에서 2년후 NBA 경력이 끝이났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02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이후론 여자농구쪽으로 지도자 생활을 했다. 16년부터 21년까지 SMU의 감독직을 수행했고 현재는 백수. 

와이프가 이탈리아인으로, 메이스도 이탈리아 시민권자.

15. 데이브 제머슨 

대학시절 평균 30득점에 10개의 3점시도(.432%),  60득점에 14개의 3점(NCAA 역대 2위)을 넣는 폭팔력있는 슈팅가드였던 제머슨은 NBA에서는 전혀 그 모습을 보여주지못했다. 통산 .277의 3점을 기록했고 부상까지 입으며 세시즌만에 커리어가 종료되었다. 선수 은퇴 이후엔 텍사스에서 교회 목사로 지내고있다. 

16. 테리 밀스 

미시건 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대학시절과 선수경력 초반만해도 3점슛과 전혀 인연이 없는 파워포워드였지만 전성기무렵엔 경기당 5개씩 3점을 시도하는 (.422%) 스트레치포로 리그에서 11시즌을 뛰었다. 현재 미시건 대학의 라디오 해설자이며 선수시절부터 드래그레이싱이 취미라고. 

 
 
17. 제로드 무스타프 

뉴욕에서 드랩되어 피닉스로 트레이드, 3년간 찰스 바클리의 백업으로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못했고 4년만에 NBA경력은 끝이 났다. 01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피닉스 시절인 93년 지인 알테아 헤이즈가 임신하고 무스타프를 아버지로 지목하자 무스타프는 낙태를 종용했으며 헤이즈는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후 머리에 총을 4발 맞아 사망한채로 발견되었다. 유족들은 무스타프가 여기에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했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었다. (긴밀했던 사촌이 현재 복역중) 현재 그는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Take Charge Juvenile Diversion Program 등 각종 활동을하며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고있다. 


 
18. 듀완 커스웰 
 

블락과 리바운드에 재능이 있던 7푸터 센터. 주로 벤치 멤버로 킹스에서 7년 히트에서 4년의 커리어를 보냈다. 현재 그의 아들 놀런 커스웰이 대학에서 농구를 하고있다. 
 


19. 디 브라운 

 



래리 버드의 보스턴에서 경력을 시작해 레지 루이스가 세상을 떠난 암흑기 보스턴을 떠받....치진 못했고 뛰었다. 단신이지만 뛰어난 운동능력과 괜찮은 센스를 보유했었고 20분 정도를 뛰는 백업가드로 12시즌을 NBA에서 뛴 뒤 은퇴했다. 은퇴 이후 2005년 드림잡이라는 리얼리티쇼에서 대니스 스캇, 맷 불라드, 대럴 도킨스, JR리드, 제럴드 윌킨스와 경쟁하여 최종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품은 ESPN의 애널리스트 자리. CITY SLAM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현재 클리퍼스 산하 G리그팀 온타리오 클리퍼스의 GM이다. 딸 렉시는 2018년 전체 9번픽으로 WNBA에 선발되어 뛰고있다. 

헤어라인이 완전 똑 닮았네 


20. 제랄드 글래스 

파워는 있었지만 슈팅능력이 좀 떨어졌던 슈팅가드. 세시즌이후 타리그에서 뛰었다가 NBA로 복귀해 한 시즌을 더 뛰었으나 활약은 미미했다. 99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 이후로는 고교팀 감독으로 일하고있다. 

 

21. 제이슨 윌리엄스 


매우, 매우 거칠고 험난하고 불행한 유년시절을 거쳐(누나가 폭행으로 수술중 수혈을 받다 에이즈 걸림, 마약에 빠짐, 자매가 주사기를 공유하다 에이즈에 같이 걸림, 둘다 사망, 셋째 여동생은 남편이 총 쏴죽이고 자신은 자살) NBA올스타까지도 이르렀지만 팀동료 마버리와의 충돌에서 입은 다리부상으로 9시즌, 30살의 나이에 은퇴해야했다. 2002년 총기사고로 사람이 죽어 이를 은폐하려하다 적발되어 재판끝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도중에 자살소동, 폭행, 음주운전등으로 매우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으며 출소이후에도 알콜중독으로 센터에 들어갔다. 이후로는 책도 쓰고 약물남용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하는등 정상적인 삶을 살고있다.

 
 
22. 테이트 조지 


 대학시절, CBA시절 클러치 능력을 보여줬으나 클러치능력 말고 다른 능력은 NBA에서 뛰기엔 부족했다. 4년간의 NBA커리어를 보낸후 97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 이후엔 부동산개발그룹 The George Group을 세웠으나, 활동 당시 폰지사기 혐의가 인정되어 복역후 21년 석방되었다. 


23. 앤서니 보너 

대학에선 멀티포지션 포워드였지만 NBA에서는 트위너로, 이를 극복할만한 기량은 없었던 선수. 6시즌 이후 06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아들 브록 보너는 2027클래스, 14살의 나이인데 벌써 2m까지 자랐으며, 향후 7'2까지 클수도 있다고 한다. 
 

아빠 안봐줌

 


 
24. 드웨인 신치우스 

218cm의 장신, 대학시절 트러블에도 불구하고 기량만큼은 스퍼스가 슬리퍼를 뽑았다고 평가받았으나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그의 경력 8시즌을 거의 백업센터로 뛰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당시 대학과 프로 모두 자르기를 권유받았는데 대학에선 거절, 프로에서는 머리를 잘랐고 그 자른 머리칼을 밥 배스 당시 스퍼스 GM에게 보냈다고 한다(...) 영화 에디에서 러시아 선수 라도바도비치를 연기했다. 09년 백혈병을 진단받았고 골수이식을 받았고 잘 회복되는가 했으나 합병증으로 다시 쓰러져 1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3세. 

 

25. 알라 압델나비 

아랍공화국(현 이집트) 출신으로 그가 2살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NBA에서 5시즌동안 5개팀을 떠돌았고 이후론 하부리그와 해외생활을 전전했다. 1995년 당시 리그에서 유일한 아랍어 사용자로 NBA가 올스타전을 아랍권에 송출하기위해 그에게 접근하기도. 이후로도 아랍권 방송사에서 일을 하기도했다. 현재는 CBS스포츠 스튜디오 해설자로 일하고있다. 


 
26. 랜스 블랭크스  

디트로이트와 미네소타에서 세시즌을 뛰었고 이후엔 해외무대에서 뛰었다. 방송일을 거쳐 프런트일을 하며 클리블랜드, 피닉스에서 GM일을 보기도 했었다. 20년부터는 ESPN의 대학해설자로 일해왔다. 23년 5월 23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7. 엘든 캠벨 


15년의 긴 커리어, 노 올스타, 수상없음. 견실하지만 평범했던 그의 커리어는 늙고지친 몸으로 마지막 순간에 빛났다. 
레이커스와의 결승, MDE 샤크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그렇게 우승반지를 차지하며 명예롭게 은퇴했다. 뚜렷한 근황은 없고, 종종 팟캐스트나 인터뷰를 하곤한다. 

다빈햄과 엘든 캠벨

 
2라운드
 

29. 토니 쿠코치 

 



당대 유럽 최고의 재능. 72승팀의 올해의 식스맨. 이후로 여러번 팀을 옮겼지만 시카고 시절만큼 빛나진 못했다. 05-06 밀워키를 끝으로 은퇴했고 현재는 시카고 불스의 고문직을 맡아 일하고있다. 21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마이클 조던이 참석했다. 

45. 안토니오 데이비스 

13년을 NBA에서 뛰며 올스타에도 올랐다. 드래프트되고 첫 2년은 유럽무대에서 뛰었고, 이후 인디애나에서 데일 데이비스와 '데이비스 듀오'를 결성하여 인디애나 영광의시대 일원이었다. 이후 토론토에서 올스타에도 오르며 본격적인 전성기에 올랐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전미 농구선수협회의 회장이기도 했던 그는 현재도 농구선수협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아들 AJ 데이비스도 농구선수였지만 NBA에 가지는 못했다. 


48. 세드릭 세발로스 

 



뛰어난 운동능력과 득점능력, 리바운딩을 겸비했던 스몰포워드. 92년엔 슬램덩크 챔피언의, 95년엔 올스타의 영예도 안았다. 
오닐이 영입된 이후 자신의 입지에 불만을 가지다 선즈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후론 평범한 커리어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모르겠고 여튼 활발하게 살고있는거 같다. 르브론이 그에게 전화해서 23번을 써도 되냐고 해서 쓰라고 했다고 한다. (쓰지말라고할 입장도 아니지않나...?)


언드래프티 

키스 앳킨스

특기할만한 능력은 없었으나 수비전문요원으로 마이애미에서만(그때부터 언드래프티를...) 뛴 나름 원클럽맨.
은퇴후 히트에서 2013년까지 보조코치직을 수행했고 이후론 여전히 히트에서 스카우트일을 하고있다.

 
맷 불라드 

대부분의 커리어를 휴스턴에서 보냈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운동능력은 저질이었지만 기본적인 높이가 괜찮았고(6'10) 뛰어난 외곽슛이 있었기에 벤치의 한자리는 차지할 수 있었다. 휴스턴 우승때의 멤버이기도하다. 휴스턴에서 오랜기간 방송을 했으며 21년부터는 프런트 오피스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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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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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ALONE 32 | 작성시간 23.07.26 말론의 팬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파워포워드에서 최고의 재능은 콜먼이었다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휴~~ | 작성시간 23.07.26 역시 세월이 세월이다보니 다들..ㅜ.ㅜ
    글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타이론힐 | 작성시간 23.07.28 드디어 제가 나왔군요.
    지금 근황은 안나와 있지만 농구할때의 열정으로 잘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One And Only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8 열심히 찾아봐도 나오는게 없었네요 🤣
  • 답댓글 작성자타이론힐 | 작성시간 23.07.28 One And Only 고생 많으셨어요.
    저도 저의 행방을 모른다는게 아이러니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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