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지금 어디에- 1999 드래프트

작성자One And Only|작성시간22.08.11|조회수10,386 목록 댓글 40

1. 엘튼 브랜드  


데뷔 시즌부터 엘리트 빅맨의 척도인 20-10을 기록했다. 이 활약으로 프랜시스와 함께 공동 신인왕을 수상했다. 4,5번들이 '톨'맨이 아니라 '빅'맨인 이유를 보여주며 그렇게 동시기 최고의 파워포워드중 하나일 것만 같았던 브랜드는 아킬레스건 부상이후 이전만한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그래도 신뢰할만한 베테랑으로 17시즌 장수했다. 2016년부터 식서스의 선수개발 담당을 맡아, 2020년부터 식서스의 단장으로 취임해 활동하고 있다. 


2. 스티브 프랜시스 

험난했던 유년시절을 거쳐, 3년간 3개의 대학교를 옮기며 자신을 증명했고 2픽으로 NBA에 입성했다. 
올라주원의 이적후 리빌딩에 있던 휴스턴의 '프랜차이즈'로 떠올랐던 프랜시스는 데뷔시즌 18-5-6이란 훌륭한 스탯라인으로 공동신인왕을 수상했다. 당대엔 그리 인정 받지못했던 듀얼가드로 활약했지만 멘탈이 문제였다. 절친한 팀 동료 커티노 모블리의 이적에 힘들어하고, 휴스턴을 떠나서도 자유투를 넣은 이전 팀 동료와 악수하는등 '프로'로써 멘탈은 조금 아쉬웠다. 하락세를 걷던 프랜시스는 마버리-프랜시스라는 해괴한 조합이 완벽히 실패한후 부상으로 커리어를 9시즌만에 일찍 종료해야했다. 
선수 시절부터 이어온 우울증->알콜중독 문제가 있었고 음주운전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지금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있다. 

선수 이후의 삶도 순탄치는 않은듯... 


 
3. 배론 데이비스 


PG버젼 샤크. 190의 신장에 100KG에 가까운 몸뚱이가 날아다녔다. 그의 커리어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67승 매버릭스를 1라운드에 격파한 시즌일 것이다. 유명 여배우 제시카 알바와 친구사이로, 자주 홈경기장을 찾고는 했다. 은퇴이후엔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TNT 방송의 정규 패널로 일했고, NSNSS라는 흑인 기업가 양성단체에 이사로 참여하는등 많은 활동을 보이고있다. 

 

4. 라마 오덤 14


토탈패키지 혹은 토탈폐끼침. 매직 존슨에도 비견되었던 다재다능함으로 14시즌을 뛰었다. 
리핏 쇼타임레이커의 핵심 식스맨으로 국가대표에도 차출되는등 화려할 것만 같던 커리어는 크리스폴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멘탈이 완전히 망가진후엔 생산성을 되찾지 못했다. 선수기간중 불행한 사건을 많이 겪었다(https://cafe.daum.net/ilovenba/7i/25840) 미국의 이런저런 리얼리티쇼에 출연하고있다. 


 
5. 조나단 벤더 8


7풋의 신장에 스몰포워드로 여겨졌던, 어마어마한 포텐셜을 가지고있다고 평가 받았지만, 그 포텐셜을 터트리지는 못한채 8시즌만에 커리어를 종료해야했다. 선수시절 입었던 부상을 기억삼아 무릎운동기구인 JB Intensive Trainer를 만들기도하는등 사업가로써 활동중이다. 


6. 월리 저비악 


슈팅력이 뛰어나고 괜찮은 농구센스로 한때 올스타까지 올랐으나 지속적인 무릎부상으로 은퇴무렵엔 일상생활조차 위협이 될수 있어 10시즌을 마친뒤 은퇴를 결정지었다. 이후 방송인으로 전업하였다. 


7. 리차드 해밀턴 


필드골 없이 자유튜로만 득점하여 팀내 최고득점을 기록한 희귀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해밀턴은 
3점은 없었지만 당대 최고의 슈터를 논했던 선수였다. 14시즌을 뛴 후 은퇴했고 2017년 디트로이트에서 영구결번 되었다. 
현재는 농구캠프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있다. 


8. 안드레 밀러 


올스타에 등극하지 못한 선수중 16000득점 8000개의 어시스트, 1500스틸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인 밀러는 
뛰어난 포스트업 능력을 보여줬다. 17시즌동안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는 단 세경기. 뛰어난 운동능력에도 
덩크를 잘 선보이지 않았다. 발보아 스쿨이라는 사립학교 대학원 농구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9. 숀 매리언 


런앤건 피닉스의 심장. 다재다능한 멀티포지션 수비수인 '매트릭스' 매리언은 4번의 올스타, 2번의 서드팀, 1번의 우승까지 16시즌 뛰어난 커리어를 보냈다. 프로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슛폼에 비해 피닉스 시절 경기당 3점슛 1개를 넣으며 .342%,  .830의 자유투를 기록했다. 댈러스에서 우승도 거머쥐고 은퇴한 지금은 NBA 은퇴선수협회의 이사이며 호주 리그 팀의 소유권 그룹에 참여하였다. 


10. 제이슨 테리 


스타팅으로도 괜찮은 커리어를 보냈지만 식스맨 역할을 맡고서는 '악마'가 현신했다. 4쿼터 매버릭스의 공격을 주도하며 
우승을 차지한 테리는 17-18시즌 이후 은퇴하여 19시즌을 보냈고, 통산 3점 성공갯수 2282개로 7위에 올라있다. 
22년 7월 유타의 새감독 윌하디의 보조코치로 합류했다. 


11. 트라잔 랭던 


대학 최고의 슈터였지만 NBA에서는 활약하지는 못했다. 세시즌 이후 건너간 유럽 무대에서는 최고수준의 선수로 맹활약했다. 야구에도 재능이 있어 대학시절 여름엔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은퇴이후 브루클린 네츠의 부단장을 거쳐 현재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단장으로 있다.


 
12. 알렉산더 라도비치? 


첫시즌 형편없는 세경기를 치른후 부상을 입고 그대로 루키시즌이 끝났다. 유럽에서 성장의 시간을 가졌고 4년이지나 NBA에 복귀했으나 크게 다르지 못했다. 221cm의 거구치고는 센스가 괜찮았지만 NBA에 통용될만큼은 아니었다. 2012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뮤지션, 정치인과 동명이인인데다 흔한이름인지 도저히 근황은 못찾겠다. 

 

13. 코리 머게티 


 05-06시즌 엘튼 브랜드와 함께 팀을 47승35패 2라운드까지 올렸다. 그리고 그게 머게티 커리어의 고점이었다. 그 시즌과 데뷔시즌을 제하고 커리어 전부 5할승률 이하의 팀에 소속되어있던, 약팀의 에이스. 14시즌을 NBA에서 보낸후 BIG3 무대에서 뛰었다. 아킬레스건을 다치기도 했으나 회복하여 2018 MVP를 수상했다. 현재 FOX SPORT의 애널리스트로 있다. 


14. 윌리엄 에이브리 

세시즌간 야투율 .330을 기록하며 NBA커리어를 접었다. 이후 해외무대에서 2011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농구캠프를 열었으며, 2019년엔 대학 졸업을 위해 듀크대학교로 돌아왔다. 

15. 프레드릭 와이즈 

뉴욕 닉스에의해 지명되었지만, 계약하지 않았고 결국 단 한시즌도 NBA에서 뛰지 못했다. 11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빈스카터가 그를 뛰어넘어 덩크를 성공시킨 '죽음의 덩크'로 농구역사의 한페이지를 영원히 장식하게 되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를 둔 아버지로, 프랑스 리모주에서 담배가게&바를 운영하며, 농구 분석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자서전을 발간했다. 

 

16. 론 아테스트 


아테스트의 사고일지는 짧게 언급하기힘들다. 그는 게리 페이튼 이후 빅맨들의 전유물이었던 올해의 수비수를 수상한 선수로 '그 사건'이 없었다면 카와이 이전의 공수겸장 포워드를 봤을지도 모를일이다. 레이커스에서 우승을 경험했고 2017년까지 17시즌간 NBA에서 뛰었다. 이후 BIG3 무대에서 뛰었고 2020년 아내의 성을 합쳐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로 공식 개명했다. 
mettaphorically_speaking 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중이다. 


17. 칼 보들러 3

세시즌간 NBA에서 뛴 후 05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이후 컴캐스트에서 근무했었고 현재는 애틀란타의 다양성 및 포용성 위원회의 이사로 있다. 한경기 7개의 파울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원의 실수로 가능했다. 그는 이를 'CURRENT NBA RECORD HOLDER' 라며 트위터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15분간 7파울도 재주여
하긴 다시는 못나올 기록이긴해

 
18. 제임스 포지 


 수준급의 3&D로 12시즌간 뛰었다. 05-06마이애미, 07-08보스턴에서 우승반지를 두개나 거머쥐었다. 
2013년부터 코칭 커리어를 시작해 2016년 코치 소속으로 우승을 한번 더 경험했다. 현재는 워싱턴 위저즈의 보조코치로 있으며, 주간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19. 퀸시 루이스 4

유타와 미네소타에서 4시즌을 뛰었고, 09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이후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방송일도 하며 지내고 있다. 
 

20. 디온 글로버 

6시즌을 뛴 후 해외에서 08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BIG3리그 첫 우승팀인 트릴로지의 멤버 였고. 현재 덴버 너게츠 산하 G리그팀 보조코치로 일하고 있다.  .


 
21. 제프 포스터 13


인디애나에서만 13시즌을 보낸 원클럽맨. 성실하고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과 궃은일을 마다하지않는 마인드로 인디애나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은퇴시점 전체 리바운드 비율에서 8위, 공격리바운드에서 4위를 기록한, 리바운드 하나는 정말 뛰어났던 선수였다. 은퇴 이유인 허리부상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건강재활 센터를 오픈했다. 


 
22. 케니 토마스 


데뷔시즌부터 팀내 리바운드 리더를 기록할만큼 뛰어난 리바운더였다. 03-04시즌 두자릿수 리바운드를 기록한 11인중 가장 작은(6'7) 선수이기도 했다. 11시즌을 NBA에서 뛴 후 은퇴한 이후에는 매직 존슨의 조언을 받아가며 사업을 시작해  T3 Productions LLC의 사장, CEO로 활동하고있다.  


23. 데븐 조지 11


쓰리핏 레이커스의 일원으로 일찌감치 반지 세개를 따낸 행운아인 조지는 11시즌을 보냈다. 2009년부터 고향 미네소타에서 저렴한 다가구 주택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George Group North를 설립하여 지역공헌사업을 하고있다. 

 

24. 안드레이 키릴렌코 13
 


AK47가 최초로 제조된, 러시아의 아이제브스크에서 태어난 키릴렌코는 뛰어난 수비력과 다재다능함은 있었지만, 공격력은 모자랐다. 5X5를 통산 3회 기록했으며 이를 2회 이상 기록한 선수는 줄리어스 어빙(2회), 하킴 올라주원(6회) 뿐이다. 
선수생활동안 열혈 와우저로 유명했고, 1년에 한번 다른 여자와 외도하는것을 허락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러시아 농구연맹의 회장으로 있다. 

못알아볼뻔 했어


 
 
25. 팀 제임스 3


세시즌을 보낸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09년 군에 입대하여 이라크에서 군생활을 했으며 군생활동안
자신이 NBA선수 출신이라는 것을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고한다. 전역후 VGCC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6. 본테고 커밍스


세시즌을 뛴후 해외무대에서 2015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고향 조지아에서 고등학교 코치이면서 활발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2022년 2월 GRPA 선정 올해의 자원봉사자로 뽑혔다. 

27. 저메인 존스 

20세기의 마지막 득점

20세기의 마지막 득점을 한 선수이다. 8시즌을 보낸후 해외무대에서 16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그는 최근 
조지아주 발도스타에서  정신 건강 심포지엄, 농구 캠프, 축구 캠프 및 유명인 농구 경기를 주최했다. 
 

28. 스캇 파젯 8

98년 NCAA우승팀 출신인 그는 그런대로 괜찮은 외곽슛을 가진 빅맨으로 8시즌을 뛰었다. 09년부터 코칭커리어를 시작했고 14-15년부터 샘포드 대학의 감독을 맡았으나 6년간 .422의 승률을 기록하며 경질되었다. 2022년 맨해튼대학의 보조코치로 고용되었다. 


29. 리온 스미스 2

고졸로 NBA문턱을 두드려 1라운드 끝자락, 하지만 여자친구와 다툰후 기물파손하고 아스피린 과다복용으로 자살기도를 하는등 정신적으로 무척 불안정한 선수였고 돈넬슨 감독과 갈등끝에 팀에서 쫒겨났다. NBA 데뷔는 2002년이었다. 03-04시즌 딱 한경기를 출장한 것이 NBA경력의 마지막. CBA에서는 수준급의 선수로 활약했다. 07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것은 확인된다. 

 


32. 마이클 러핀

NBA에서 9시즌을 뛰었다. 리바운드와 수비가 괜찮았던 빅맨이었다. 08-09시즌이 NBA출전 마지막이었고, 11년 덴버와 계약했으나 정규 로스터에 합류하진 못했다. 이후로 코칭커리어를 시작해 현재 피닉스 선즈의 보조코치이다. 

 

 

33. 크리스 헤렌

 

94년 올아메리칸에 선정되는 유망주였다. 딱 두시즌을 소화한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CBA에서는 한경기 63득점을 기록하기도. 술과 약물문제가 많은 선수였다. 술은 13살때부터 마셨고, 대학시절엔 코카인, 마리화나등 약물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고, 프로기간 중에도 진통제등 약물을 사용했다. 2008년 헤로인 맞고 30초간 죽었다 살아난 이후로 갱생했다. 이후로 연설자로 나서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약물사용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있다. 약물과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와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있다. 


 
35. 캘빈 부스 

블락에 제법 능했던 센터로 10시즌을 NBA에서 버텼다. 12-13부터 뉴올리언스의 스카우터로 시작, 현재는 덴버 너게츠의 GM이다. 


 
36. 왕즈즈

"중국에선 야오밍 담당일진이던 내가 NBA에선 찐따?"
중국에선 다재다능한 센터였지만 NBA에서는 통할 무기가 없었다. 그나마 공격은 조금 할 수 있었지만 수비에선 자동문 그 자체. 5시즌간 평균 9.2분만을 뛴채로 중국으로 돌아가 2016년까지 뛰었다. 2018년부터 감독직을 수행중이다. 

 (이 선수였나 다른선수였나... 한국 여자농구선수한테 반해서 연락처를 물어봤었다던 얘기를 들었는데.... 확인안되는 이야기) 

 
40. 고단 기리첵

NBA에 드래프트 된 후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에서 뛰었으며, 데뷔는 02-03시즌이었다. 데뷔전 29득점을 뽑아냈고 00년 이후 데뷔전에서 25득점 이상을 기록한 루키 2인(르브론, 기리첵)에 포함되었다. 두자릿수 득점을 꽤나 고효율로 뽑아냈던 롤플레이어로 6시즌을 뛴후 유럽으로 돌아가 11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최근엔 크로아티아 U16 대표팀의 스태프로 참가했다. 

 


41. 프란시스코 엘리슨 9시즌

 

06-07 스퍼스에서 20분정도를 출전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네덜란드 출신 최초로 NBA챔피언. 11-12시즌을 끝으로 NBA에서 9시즌 여정을 마무리 지었고 이란에서 한시즌을 뛴 후 2014년 공식으로 은퇴했다. 네덜란드어, 스페인어, 영어, 포르투칼어,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알려져있다. 사업가로도 활동중이며 농구캠프에도 얼굴을 비추고있다. 


43. 리 네일런 6시즌

그럭저럭 10분정도를 뛰는, 공격력은 쓸만했던 팀의 세번째 네번째 빅맨이었으나, 04-05시즌 리그 꼴찌 득점팀 호네츠에서 14.2득점 4.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보냈다. 이듬해 이적하여 한시즌을 뛰고 NBA에서 종적을 감췄고 해외무대에서 뛰었다. 잠시 KBL 오리온에서 대체 외국인선수로 몸을 담기도했으나, 활약은 매우 미미했다. 2018년 BIG3 무대에서 뛰었다. 22년 카본데일 고교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57. 마누 지노빌리  

비록 2라운드 최고선수 타이틀은 니콜라 요키치에게 넘어간듯 하지만, 마누 지노빌리의 이름은 농구사에 남을 이름임에 틀림없다. 총 23년의 커리어동안 유로리그 타이틀(2001년), NBA타이틀(4회), 올림픽 금메달(드림팀 형성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아닌팀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는 유이한 기록이다. (한명은 65년 드래프티, 전 미국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22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은퇴 이후론 농구와 거리를 두고 살다가 21-22시즌부터 스퍼스의 농구운영부문 특별보좌역을 맡았다. 포포비치 왈 마누의 아내가 제발 집 밖에 좀 나가라고했다고. 

“나를 축구계의 마누 지노빌리라 불러달라. 사람들은 지노빌리를 농구계의 메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틀린 표현이다. 내가 축구계의 지노빌리로 불려야 한다” -리오넬 메시

언드래프티 
 
크리스 앤더슨 

무제한으로 시도하던 덩콘이 기억남음

드래프트에 낙방한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은 해외무대를 돌다가 2001년 D리그 2경기만에 덴버와 계약을 맺으며 NBA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리그에서 퇴출되었다. 어마무시한 문신과함께 컴백한 앤더슨은 12-13시즌 마이애미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활약했다. 16-17시즌까지 뛰었고, 2018년 빅3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타투에 들어간 잉크만 한말은 나오지 않을까?

라자 벨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라자 벨은 하부리그에서 뛰었고, 2001년 스퍼스와 계약하였으나 퇴출, 최종적으로 식서스와 계약을 맺었다. 데뷔 첫해부터 파이널 5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던 벨은 07~08년 수비 퍼스트, 세컨팀을 한차례씩 수상했고 12시즌 커리어 통산 4할이 넘는 3점슛을 기록한, 리그의 대표적인 3&D로 활약했으나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현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선수관리 이사로 재직중이다. 


파블로 프리히오니 


스페인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베이징에서 동메달을 따낸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12-13시즌 그의 나이 35살이 되어서야 NBA에서 뛸 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나이많은 루키로 이름을 남겼고, 4시즌간 백업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현재 미네소타 팀버울브즈의 보조코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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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MIN]KAT | 작성시간 22.08.12 생각없이 내리다 마지막 마누가 나올줄이야..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sunpa | 작성시간 22.08.13 오 리그탑급선수는 없지만 준수한 선수들이 많네요
  • 작성자KGarnett | 작성시간 22.08.14 99년 드래프티 선수들을 보니 안드레 밀러-코리 매거티-라마 오돔-엘튼 브랜드가 클리퍼스에서 같이 뛰었던 시즌이 기억나네요..(다른 한명인 다리우스 마일스는 00년 드래프트 3픽)
  • 작성자Jason-Kidd | 작성시간 22.09.13 운영진 복귀 기념으로 여태까지 작성하신 글을 이동하였습니다. 드래프티 관련 퀄리티 좋은 글들이 게시판을 채워준 느낌이라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글 작성해주셔서 재차 감사드린다는 말씀 드립니다.
  • 작성자환영의 밀리아 | 작성시간 22.09.14 프랜시스, 베론데이비스, 안드레밀레, 엘튼브랜드 ...
    nbalive 2003 즐길때 애용? 하던 추억속의 선수들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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