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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14]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4.03.20|조회수75 목록 댓글 0

 

 

 

 

 

 

사랑을 위하여-14

그는 얼마 전에 아는 사람과의 뜻하지 않은 만남과 주선으로 한 여인과 조우하였다.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아름다움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두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캐나다로 이민하길 열망하는 금전적 재력이 충분한 여성이었다. 혼인신고만 하고 헤어져도 좋다고 하였다. 댓가는 충분히 지급할 것이라 하였다. 밴쿠버에 살며 한국으로 오가며 지낼 거라 하였다. 나이는 50이라 하였다. ‘당신은 원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한집에서 같이 필요한 기간 동안만 생활하고 언제든 떠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군요. 가능하군요. 충분히 유혹적인 조건들이군요. 좋습니다만 저에게는 과분하군요. 저 같은 구두닦이가 그런 류에 합류할 수는 없군요. 원하는 타입을 찾아 보시는 게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 일 겝니다.”

그는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 보지 않고 지하철을 탔다. 더럽게 비참한 기분을 억누르느라 진땀이 이마에 맺혔다. 그는 참기 어려웠다. 그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아랫배에 모아 깍지를 꼈다. 이 나이에 만난 사랑이 아무런 지불 없이 호락 호락 와서 뜻대로 간다면 그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인가. ‘미정아.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것들은 내가 너를 위하여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사랑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아직 그 지불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결국 다 지불할 것이다. 피눈물로 만든 댓가로. 그는 유니언 스테이션을 빠져나와 레이크쇼를 지나 온타리오 호숫가에 섯다.

 

‘미정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너를 만나기 전에는 호수를 앞에 두고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너는 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잊어버린 거냐? 기다리고 있는 거냐? 끝난 거냐?’

미정을 만나기 전에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고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은 그리움으로 아직은 혼자인 사랑으로 활 활 타고 있었다. 화산이 참고 견디다 마침내 터지는 것같이 언젠가는 그렇게 터질 것이다. 그는 그것이 두려웠다. 제대로 터지지 못하고 헛 터졌을 때 그는 화산을 잘 못 키운 것에 대한 죽음 같은 고통을 또 겪으리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끝내는데 몰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위하여 생각을 허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낚시도 이곳에 와서 세 번 밖에 가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규칙은 없었다. 고향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내켜서 집 문밖에만 나서면 낚싯대를 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던 타즈메니아를 택했다.

 

 

 

 

 

*****

“엄마! 나 오늘 엄마에게 진지한 권유 좀 하려고 해요. 들어주실 거죠?”

토요일 밤이었다.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커메디프로를 웃어가며 보고 있는데 은희가 전화해서 다짜고짜 권유한다며 빠르게 말하였다.

 

“왜. 은희야~ 엄마 지금 신나게 웃고 있는데 왜 김 빼니? 뭔데 그래? 이 밤늦은 시각에.”

“어휴~ 엄마. 토요일 밤. 그거 보는구나. 그렇지? 엄마! 내 말 좀 진지하게 들어줘요. 네?”

“그래. 알았다. 뭔데 그러니?”

“엄마. 내일 정오에 뭐 할 거예요?"

“응. 내일 정오에. 특별한 것은 없고 절에나 다녀올까. 아니면 글 쓴 것들 좀 교 정도 봐야 하고… 왜? 무슨 일인데. 나 긴장되네.”

“내일 12시 30분에 안산 부흥동에 있는 디스티네이션이라는 까페에서 저 좀 만나줘요. 김 서방도 같이 있을 거예요.”

“은희야! 무슨 일이니? 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솔직하게 지금 말해봐. 무슨 일이야?”

“엄마는~. 그때 오시면 알게 될 거예요. 엄마~ 아주 이쁘게 해서 오세요. 김 서방이 반할 정도로.”

“으~ 김 서방. 왜? 내가 김 서방에게 잘 보여야 돼? 무슨 일인데 그러니? 너무 궁금하다. 둘 사이에 별일은 없는 거지? 그것부터 말해.”

“예. 별 일없어요. 전혀 걱정 마요.”

“디스티네이션을 어떻게 찾아가. 나는 전혀 모르는데…”

“응. 엄마~ 차는 두고 택시 타고 부흥동 디스티네이션 갑시다 하면 금방 올 수 있어요. 한 10분도 채 안 걸려요. 그럼, 내일 12시 30분에 그곳에서 만나요. 사랑하는 미정 씨~”

“은희야~ 너 엄마 아주 기분 좋게 만드네. 그래. 알았다. 그런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 엄마 이제 안 이뻐.”

“엄마는 요. 지금 그대로도 이쁘고 아름다워요. 엄마~ 편안하게 잘 주무시고 기분 좋게 일어나셔서 그때 만나요.”

전화가 끝나자 미정은 우선 은희 부부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다는 말에 안심하였지만, 무슨 일이기에 자기를 끌고 가려는지 궁금증에 쉽게 잠에 빠질 수가 없었다.

 

 

 

 

 

 

 

*****

꿈에 체이스를 만났다. 포구에서 그는 작은 고깃배를 타고 떠나가고 있었다. 미정이 울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외쳤으나 그는 미소만 지으며 파도를 헤치며 떠나갔다. 그건 꿈이었다. 꿈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중추월(中秋月)은 겨울을 가까이 두고 떠날 채비로 마지막을 아름답게 펼치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이런 날은 바람이 없어야 제격이라는 것을 늦가을도 알고 있었다. 공기마저 오랜만에 신선하여 분위기가 쾌청하였다. 미정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싱싱해졌음을 스스로 느꼈다. 미팅의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뭔지 모르는 그 미팅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저도 몰래 휘파람을 내면서 깜짝 놀랐다. 얼마 만인가. 이런 기분을 가진다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일요일이라서 거리가 조용하였다. 몇 년 전부터 타국인들이 많아지며 늘 거리는 인종 전시장처럼 분주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집 앞에서 택시를 쉽게 잡았다. 그녀를 태운 택시가 ‘디스티네이션’에도착한 시각은 정각 12시 30분이었다. 아마 10개 정도의 짙은 커피색 대리석 계단이 끝나는 2층 바로 맞은편에 있는 눈같이 하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측에는 카운터가 있었고 그 카운터 맞은편 창가에서 미정을 발견한 은희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어머니. 여기예요.”

김 서방이 일어나 미정이에게 다가왔다. 실내가 그리 밝지 않아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사물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 접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리로 가시지요.”

“응. 김 서방. 내가 좀 늦었나?”

“아닙니다. 제 시간에 도착하셨는걸요.”

“엄마. 컨디션 좋아? 근데, 엄마 정말 아름다우세요. 10살은 젊게 보이세요. 그렇지? 여보!”

“음~ 맞아. 정말 장모님은 아름다우세요.”

"웬일인가? 자네까지. 손님이 계시는데…”

그 말들은 가식 없는 진정이었다. 딸과 사위로서의 아부성은 찾을 수 없었다. 미정의 미모는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이목구비와 얼굴 모습이 미인형의 표준을 넘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녀의 맑고 검은 큰 눈은 세상의 악을 다 빨아들여 순수하게 정화할 것이었다. 이것 역시 아부성이 아니다. 언젠가 아니면 혹... 만나게 되면 수긍할 것이다. 아니 감탄할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그 6인용 식탁에는 은희 부부 외에 낯선 신사분이 앉아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진성입니다.”

그가 일어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엄마. 이 원장님이셔요. 안산 다국(多國) 병원 원장님이세요. 산부인과 전문 의학박사이시고 서울 S 의대에 교수로 강의하셔요. 저희 결혼식 때 주례를 해 주셨잖아요. 엄마 기억나세요?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미안해요. 새로운 만남이라는 것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 같아서… 엄마. 괜찮지요?”

미정은 놀랐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을 봤다. 어딘가 모습이 체이스를 닮았다고 느꼈다. 그는 짙은 밤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그리고 밝은 갈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체이스 보다 키가 좀 작았으나 더 멋져 보였다. 그는 폴라이트하였다. 그의 매너는 부드러웠으며 미정에게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신이었다. 40대에 아내를 잃고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거다. 자식도 없었다. 그의 상체는 운동으로 다져져서 탄탄해 보였다. 어디에 내어놔도 부족함이 없었다. 60이라는 나이가 잘 스며들어 포근하고 부드러우며 온화한 분위기가 풍겨졌다. 홀로된 중년 여인에게는 매혹 덩어리였다. 우선 조미정. 그녀도 그의 외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음의 모든 조건도 그녀를 흔들리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중년 여인 특히 홀로된 여인이 이 남자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을 것인가. 그는 외견상 숨은 진주였다. 객관적으로 따진다면, 체이스와는 하늘과 땅이었다. 정한구회장, 이진성 박사 그리고 체이스. 체이스만 빼면 둘은 비교 대상이었다. 체이스는 그들과 비교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 교육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차이가 났다. 엄청 달랐다. 그중에서 이 박사는 미정과 같은 환경의 여자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은희와 사위는 미정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아마. 미정 씨를 만나게 하려고 그토록 오랜 세월을 혼자 살게 하였나 봅니다. 그 생각이 들면 전율을 느낍니다.”

그는 대부도 다리를 건너며 나직이 말하였다.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저녁노을에 비치는 그의 옆모습은 목에 간간이 생기는 주름 외에는 준수하였다. 점심때 이야기가 길어지며 마신 맥주에 의한 취기는 없어진 것 같지만, 약간 남은 불그스레한 그의 뺨은 정말 보기가 좋았다. 미정은 머리를 흔들었다. 세잔 마신 포도주의 취기가 아직 좀 남았는가 생각하였다.

 

“이런 박사님을 혼자 살게 하신 그 무엇이 있었든가 봐요.”

“저도 지금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뻗어 미정의 왼손을 살며시 잡았다. 미정은 뿌리치지 않았다. 그 손은 따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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