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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A lonely man)-06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4.05.02|조회수81 목록 댓글 0

 

 

 

 

 

 

 

외로운 남자-06 / A lonely man-06

 

 

 

지향은 커피잔을 들고 창가로 가서 다시 정리된 메모를 읽어 보았다. 정리된 문제에 대한 답만 찾으면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반둥의 하늘은 오후의 중간인데도 짙은 구름으로 인하여 어두워지고 바람이 일고 있었다. 싱싱하던 초록색 열대 숲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아지 못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서 검푸른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열대의 우기라더니 소낙비라도 한 줄기 쏫아질려나보다 생각하며 어두워진 거실의 불을 밝히고 컴컴해진 계단을 조심스레 밟으며 일층으로 내려가서 좌측에 있는 손님용 화장실 문을 찾아 입구의 스위치들을 올렸다. 스위치는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층 복도의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화장실도 환하게 불이 켜졌다. 하나는 어디일까? 지향은 궁금하여 나머지 하나의 불이 켜졌을 곳을 찾았다. 화장실 반대편 쪽 문 아래 틈 사이로 불빛이 보였다. 이 집에는 베이스먼트가 없었다. 이 집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하우스들이 지하실을 갖추지 않고 있었다. 아마 열대기후와 습도가 높고 지질학적으로 또는 자연환경적 영향에 대비하려는 준비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북미나 유럽 같지 않게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하였다.

 

다가가서 손잡이를 살짝 밀었더니 문은 열렸다. 옷을 걸어 놓는 옷장이었다. 여름용 정장 양복이 4벌 그리고 여성용 정장이 3벌과 가벼운 운동용 점퍼와 넥타이들이 걸려서 옷장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어느 집이든 당연히 있는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옷장이었다. 특별히 문을 닫아 둘 필요도 없는… 돌아서려다 한쪽 구석 바닥에 걸려진 옷에 가려져 조금 보이는 회색 물체가 눈길을 끌었다. 지향은 옷을 조금 밀어내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었다. 서류용 가방이었다. 지향은 망설였다. 굳이 그 서류 가방을 열어 보아야 할 특별한 이유를 금방 생각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기심에 대한 유혹도 대단하여 잠겨있다면 열지 않기로 정하고 조용히 가방을 눕혀 양쪽에 있는 오픈 버튼을 눌렀다. 의외로 가방은 잠겨있지 않았다. 윗부분을 열고 들여다보니 관심 갈 만한 내용은 없었다. 한-인니 사전과 명함 책 카다록들 그리고 볼펜 몇 개와 새로 산 듯한 팬티 2장과 사용하다 세탁한 듯한 팬티 1장이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언제든 출장 가기 위한 기본 준비물들이 들어있었다. 지향은 미안한 마음이 들자 가방을 닫으려고 들쳐 흐트러진 내용물들을 정리해 두려다 가방 아래 바닥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들쳐보았다. 그 안에는 노란 봉투가 들어 있었다. 숨겨진 것을 발견한 두근거림과 호기심이 발동하여 봉해지지 않은 봉투 속의 내용물을 끄집어 내었다. 영문으로 작성된 복잡한 내용들이었으며 5장의 카피본이었다. 지향의 추리 작가적 두뇌가 회전하며 추정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분명 제부인 김철호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서류들은 단순한 그의 업무용 서류라면 굳이 깊이 넣어 두어야 했었는가. 지향은 마지막 페이지 뒷면에 급히 메모된 내용을 보았다.

 

몇 줄의 영문으로 된 메모 사이에 눈에 띄는 글자가 있었다. [Project-Padding of Protection from UltraTemperature -> 설계도 (누구에게? 얼마에?<-전무)]. 지향은 그 마지막 장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모두를 제자리에 두었다. 지향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향은 다 식어서 차거워져 버린 남은 커피를 컵을 흔들어 다 마셨다. 그리고 조만수를 떠 올렸다. 남성다운 용모와 매력 있는 남자였다. 성적 호감을 그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한다 하여도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왜 이곳에 왔을까? 그의 말대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을 요청에 의하여 형식상 처리하고 휴가나 즐기려 왔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까? 지향의 조민수에 대한 호감은 다각적으로 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소향이 며칠 전 언니에게 푸념 삼아 하는 말이 떠올랐다.

‘KJ 회사가 특수 옷 같은 것을 개발한다고 남편이 말하더라’ 그것들과 이 메모들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러한 생각까지에 미치자 아지 못할 소름이 전신에 돋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지향은 이 메모를 제임스에게 보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향이 택시를 타고 한적하고 고요한 잘란엠브리야따 (거리 이름)를 떠나 더운 열기가 훅하고 덮쳐오는 시내의 소고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해가 푸르게 맑은 하늘에 석양을 남긴 채 저물어가고 있을 때였다. 반둥 다운타운도 여너 도시의 번화가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고급 호텔 앞에는 많은 택시가 정차하고 있었고 현관 앞에는 제복을 입은 서비스 맨들 이 분주히 주차하는 차들을 따라가 문을 열어주고 짐을 꺼내고 있었다. 지향은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자 퍼플칼라 스커트를 한 손으로 잡고 날렵하게 뻗은 보기 좋게 곧은 다리 아래 발을 감싼 진홍색 하이힐을 바닥에 딛고 차에서 내렸다. 우아하면서 시원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운 몸짓과 우유처럼 뽀얀 얼굴은 까무잡잡한 인도네시아 토종 도어맨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호텔 라비의 한 쪽에는 지향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제임스와 에버 타냐 장군이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임스! 아하~ 에버 타냐 장군님! 못 만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정말 이렇게 계획된 것같이 만났군요.”

“지향아. 어쩐 일이야? 어떻게 연락도 없이 여기로 왔어?”

제임스의 걱정 어린 물음 뒤로 에버 타냐가 지향에게 인사를 하였다.

 

“미세스 김. 나이스 밋츄 어게인. 하와 유 투데이?”

“제임스! 나 좀 살려줘요”

지향은 숨가퍼게 두 사람이 번갈아 하는 인사말에 미소로 답하고는 제임스를 불렀다.

 

“지금 긴히 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여기서 보여 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에버 타냐 장군을 힐끗 보고는 제임스의 판단을 기다렸다.

지향이 건네준 5장의 카피본은 3PUT[Project-Paddingof Protection from Ultra Temperature]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김철호의 생각을 메모해 둔 것이었다. 그러나 <설계도 (누구에게? 얼마에?<-전무)>라고 쓰인 메모를 읽고 난 제임스는 더욱 심각해졌다. 제임스는 에버 타냐에게 그 문서를 보였다.

 

“에버 타냐! 3PUT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습니까?”

그는 제임스가 준 문서를 훑어 보고는 생각을 하였다.

 

“얼마 전에 그런 유사한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만 흘러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습니까?”

“선 후가 다르지만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알아보지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곧 전화드리도록 하지요. 씨 유 순. 미세스 장.”

에버 타냐 장군은 지향이 인사도 할 틈 없이 급히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지향이 뭔가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어떤 설계도.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지향은 궁금하였다.

 

"제임스! 무슨 일이에요? 뭐가 잘 못되고 있는가요?"

"아니야.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야. 나하고 룸으로 올라가겠어. 할 이야기가 있어."

"예. 그렇게 해요. 저도 당신과 단둘이 있고 싶어요."

 

그들이 룸에 당도하자 제임스는 문틈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상 없다는 듯 카드 키로 문을 열고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겨누고 방을 살폈다. 지향은 놀랐다. 탐정소설에서나 읽어왔고 단순히 공상적 추측에 의하여 써왔던 추리소설에 잠깐 등장하는 권총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권총을 들고 방안을 살피는 그런 장면이 눈앞에서 더구나 사랑하는 제임스가 그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제임스가 방 안 곳곳을 살피고 난 다음 지향을 쇼파에 앉으라고 할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보! 제임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 그 권총 진짜인가요? 왜 지금 그렇게 진짜처럼 그렇게 행동하세요? 어떻게 된 건지 말씀 좀 해주세요?"

"그래. 지향아. 놀랐지. 사태가 좀 심각해지고 있어. 자. 여기 콜라야. 마셔. 그리고 놀라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 알았지?"

그는 냉장고에서 콜라가 든 캔을 가져와 지향에게 마실 것을 권하고 창가에 서서 캔을 따서 타는 목을 단숨에 마셔 적셨다. 그러고는 지향 앞에 앉았다.

 

"지향아~"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사랑이 가득한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예. 제임스."

그녀는 이 순간에도 뭔가 기대하는 듯한 촉촉한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 앞에서만 나오는 습관적 교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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