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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살아서도 좋고 죽어서는 더 좋은

작성자최영훈|작성시간24.05.03|조회수35 목록 댓글 0

최근 장례식장에 조문 갈 일이 있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처음에는 망자의 영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중들과 함께 『아미타경』을 독송하고 ‘아미타불’을 염하다 보니, 그때서야 아미타 부처님과 함께 나타났다.

 

망자는 임종하자마자 곧바로 극락정토에 가서, 평소에 좋아하던 꽃과 나무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용모는 아직 살아생전의 나이 든 모습 그대로였다. 형편상 마정수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해 주시니, 곧바로 20대 극락 중생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분은 재가자로서 96세에 임종하셨으니 호상(好喪)이었다. 다행히 임종하기 20일 전에 따님의 권유로

금련결사(金蓮結社)까지 가입하였으니, 생전에 복을 엄청 쌓으신 분이 틀림없다. 금련결사는 살아서는

모든 부처님의 호념을 받고, 죽어서는 극락정토 금빛연꽃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모임이다. 이를 믿고

꾸준히 정진하면, 임종 시에 금빛 연꽃이 나타나 곧바로 극락정토로 모셔간다.

 

육신은 죽더라도 영혼은 마음의 형상[相]으로 존재한다. 형상을 무시하면 공(空)에 떨어지고, 

형상에 매달리면 상(相)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형상에 매달려서도 안 되고, 형상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금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물질이나 음성으로 나를 찾고 구한다면

잘못된 길 가는 자라, 여래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화엄경』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설한다.

 

몸뚱이는 부처가 아니요

음성 또한 그러하네.

하지만 몸과 음성을 떠나서,

부처님 신통력을 볼 수도 없다네.

 

『금강경』은 색즉시공인 제상(諸相) 비상(非相)의 도리로 형상에 대한 집착을 놓도록 설하고 있으며, 

『화엄경』은 공즉시색인 제상(諸相) 실상(實相)의 도리로 형상을 잘 활용하도록 설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몸과 마음은 아바타지만 아바타를 떠나서 관찰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아바타와 관찰자는

둘이 아니요, 방편과 진실 또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성품은 공(空)한 것이다. 하지만 참다운 공[眞空]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아니다. 

애착이 아닌 발원으로 존재하는 묘유(妙有)다. 지옥도 있고 천당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하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상현실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형상에 집착하면 착유(着有)가 되고, 형상을 무시하면 공[假空]에 떨어진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형상은 다만 형상일 뿐이라고 알면서도, 방편으로서의 형상을 잘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중도(中道) 수행인 것이다.

 

이를 『유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요,

방편이 있는 지혜가 해탈이다.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요,

지혜가 있는 방편이 해탈이다.

 

한마디로 지혜와 방편을 함께 갖추는 것이 진정한 해탈이다.

참선은 지혜요, 정토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참선과 정토를 함께 닦는 선(禪)·정(淨) 쌍수(雙修)야말로

진정한 해탈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선은 제상(諸相) 비상(非相)이라,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정토는 이상(以相) 치상(治相)이라, 활불활조(活佛活祖)하네.

죽이거나 살리기를 자유자재하면

살아서도 좋고, 죽어서는 더욱 좋네.

선(禪)·정(淨) 쌍수(雙修)!

 

-월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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