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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78

작성자주태백|작성시간24.05.01|조회수88 목록 댓글 0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78)

 퍼펙트 칸 장승철 ・ 2023. 5. 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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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78)

#쥐구멍

농사일 없는 겨울을 좋아하는 박서방

마누라와 금실 좋게 지내려 하는데…...

 어떤 사람은 기나긴 엄동설한이 물러나고 남풍이 불어와 새 생명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 하고, 혹자는 햇살이 대지에 내리쬐다가 먹구름이 좌르륵좌르륵 쏟아부으면 하루가 다르게 만물이 쑥쑥 자라는 여름이 계절의 으뜸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후텁지근한 삼복을 밀어내고 상큼한 바람이 불어 오곡백과를 추수하는 가을이 최고라 하지만, 박 서방은 겨울이 가장 좋다.

 새벽같이 일어나 논밭으로 달려갈 일 없지,

비가 안 와도 비가 퍼부어도 걱정할 일 없지,

곳간에 곡식은 가득 찼지,

땀에 젖은 옷 입을 필요 없이 비단마고자에 뒷짐을 지고 어슬렁 주막집이나 오가는 낙을 겨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맛볼 수 있는가!

 박 서방에게 겨울의 참맛은 또 있다.

농사철인 봄 여름 가을엔 저녁 숟갈 놓으면 쓰러져 코를 골기 바쁘지만 겨울철엔 동네 사람들과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와 뜨뜻한 안방에서 호롱불을 끄고 마누라 옷고름을 풀고 고쟁이를 벗기니, 박 서방은 그 맛을 최고의 덕목으로 친다.

 그런데 이 마누라가 박 서방의 뜨거운 겨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사타구니에 자물통을 찼는지 허벅지를 꼭꼭 오므리고 말도 못 붙이게 하고,

옷고름을 풀고 말고가 아니라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것이다.

 이유는 있다.

며칠 전 집에 오니 마누라가 얼굴은 뽀얗고 머리는 윤기가 흘렀다.

방물장수에게 쌀을 퍼주고 박가분과 동백기름을 산 것이다.

박 서방은 서방 허락도 없이 쌀을 축낸 마누라에게 삿대질을 하다가 경대 앞에 있는 박가분과 동백기름을 낚아채 뒷간에 처박아 버렸다.

그 이후로 마누라는 토라져 박 서방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귀싸대기라도 후려갈겨 덮치고 싶지만 혼례 전에 장인과 맺은 약조가 걸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색시에게 손찌검하지 않기로 각서를 썼고 혼수로 문전옥답 세마지기도 받았다.

성질 지랄 같은 처남들도 겁이 났다.

 금쪽 같은 겨울날은 자꾸 지나 입춘이 됐다.

술이 불콰해져 늦은 밤 집에 들어온 박 서방이 이불을 똘똘 말아 벽을 보고 누운 마누라에게 말을 걸었다.

 “임자의 옥문은 임자가 나한테 시집온 날부터 나의 것인데 어찌하여 꼭꼭 닫아서 임자가 끼고 있는 거야?”

 마누라는 앙칼지게 달려들었다.

 “내 몸에 달린 게 내 것이지 어째서 당신 거야!”

 밤새도록 싸우다 이튿날 두사람은 동헌으로 가 사또 앞에 섰다.

옥문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결을 내려달라고 사또에게 청을 올리자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남편 박 서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혼인이란 암묵적으로 색시의 옥문을 서방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이날 이때껏 본인의 소유로 본인이 써왔으니 본인이 쓰고 싶을 땐 어느 때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누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흥”

콧방귀를 뀌고 나서 말했다.

 “현명하신 사또나으리께서 바른 판결을 내리시리라 믿습니다.

내 몸에 붙어 있는 게 내 것이지 어째서 서방의 것입니까.

이용자는 소유주의 허락 하에서만 사용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사람의 주장은 끝없이 이어졌다.

마침내 사또가 판결을 내렸다.

 “벽에 쥐가 들락날락거리는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이 벽에 있다고 ‘벽구멍’이라 하는가?

아니다!

비록 구멍은 벽에 달려 있어도 ‘쥐구멍’이라 하느니라.

마찬가지로 그 구멍이 어디 붙어 있든 소유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사또의 추상 같은 판결에 박 서방 마누라는 꼼짝 못하고 의기양양한 박 서방 뒤를 따라나섰다.

만물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박 서방이 말했다.

 “가장 좋은 박가분과 동백기름, 그리고 꽃신도 한켤레 주시오.”

태그#조주청의#쥐구멍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78)|작성자 퍼펙트 칸 장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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