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스물하나(2)
그녀는
지나가는 말처럼 내게 말했다.
"나 선봐도 돼?"
"..............."
대답이 없자
" 엄마 때문에
한 번은 봐야 될 것 같아"
그렇게 내게 말하고
얼마가 지난 후
그녀는
"나 억지로 선을 봤는데 그 남자 웃긴다.
오늘 만나자며 회사로 연락이 와서
쫓기듯 이리로 온 거야
엄마가 계속 결혼하라고 재촉하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맘 속으로 우려했던 결혼 얘기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우선
겁이 났다.
그녀는 그렇다 치고
남겨진 그녀의 어머님과 두 동생들은
당시 백수였던 내게는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어서
뭐라고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을 보자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뭐 그렇다는 얘기이지 신경 쓰지 마
벽창호 가는 길에 김X숙이도 함께 간다!"
"........."
"우리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라고
말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으나
우리 사이는 서먹해졌다.
그리고 나는 3월에
구미 산업단지에 취업이 되어
내려가 첫 직장에 적응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고
반년이 지난 그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날 서울로 올라와
하계동 언덕바지
그리운 그 교회를 찾았다.
트리가 반짝이는 교회 안
성가대에 그녀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낯선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계동 땅 부잣집
막내아들에게로 시집을 갔다는
소리만 내게 돌아왔다.
쫓기듯 다시 내려와
그녀가 내 곁에 없는
얼마 동안은
세상은 온통 잿 빛이었고
하염없이 슬프고 아득했다.
청량리 남지 음악다방에 마주 앉아
신청곡
"Changing Partners"
가
흘러나오자
뒤돌아 눈물을 찍어내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못내 가슴에 남았다.
한평생 살아보니
살아가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겁이 나고
용기가 없었을까?
내 나이
스물아홉
그녀의 나이
스물하나이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글/벽창호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수피 작성시간 24.04.25 추억 되새김 글 잼납니다.
누구에게나 한 두 가지씩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뇌리 속에 들어 있겠지요. ^^~ -
작성자복매 작성시간 24.04.25 한편의 드라마 같아요
더러더러 비스므리한 추억들 간직 하고 계실테지요
사랑 이별 후
가슴 한켠이 아리고
그렇게 세월은 무심히 가 버리고~
말입니다
너무 재미 있어요
독자1인 추가 입니다 -
작성자흐르듯이(無香) 작성시간 24.04.25 청량리 남지다방.....익숙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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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단테 작성시간 24.04.25 그녀는 땅부자한테로..
슬픈 연애사가
해피엔딩 되기를 고대하는 마음 이겠지요 모두들
성급하게 다음편 기대하며 -
작성자자유노트 작성시간 24.04.25 아, 참 마음씨 곱고 생각도 깊은 아가씨였는데,
운명이 머누 가혹하군요?
이 노래는 학창시절에 참 많이 들었는데,
오늘 들으니 그 느낌이 새롭네요 이미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