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칼럼]영화 '26년'의 테러리스트 심미진의 아빠는 시민군 장갑차 사수였다

작성자역사학도|작성시간12.12.27|조회수4,104 목록 댓글 353

영화 '26년'의 여주인공 심미진은 아빠 영정을 들고 있는 다섯살짜리 소년에게서 그 모티브를 따온 영화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도 이 소년의 아빠가 도청광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년의 아빠 이름은 광천동에서 자영업을하는 모나미문구 아저씨이다.광천동에 군납업체 아세아자동차가 있었으며, 외지에서 동원된 깡패 수백 명이 5월 21일 오전 9시에 갑자기 광천동에 나타나 아세아자동차에서 수백 대의 차량을 탈취하였을 때 그 동네 모나미문구 아저씨도 어느새 그들 틈에 어울렸다. 5월 21일 시민군 특공대만 시민군 장갑차 사수가 될 수 있었는데, 조사천씨도 시민군 장갑차 사수 중 한 명이었으며 여기 장갑차를 탄 그의 모습이 있다.


아래 사진 우측의 장갑차 시민군과 위의 영정 사진을 비교해 보라, 동일인물이다. 시민군 장갑차 사수 조사천씨가 이 사진의 주인공임을 입증하는 두 가지 사실은 첫째, 태극기를 단 장갑차 사수가 5월 21일 오후 1시 반에 왼쪽 가슴에 시민군 카빈 총탄을 맞았다는 사실이요, 둘째로 23일 상무관에서 그의 시신이 확인되었을 때 그가 입고 있었던 옷이 사진에 보이는 봄잠바를 입고 있었음을 시숙이란 분이 확인하였다.



그러면 영화 '26년'의 여주인공 심미진 양의 아빠의 실제 인물 조사천씨는 누구 총에 맞아 사망하였는가? 시민군 총에 맞았다. 사진에서 보는 대로 그의 앞을 가려주는 물체가 있어 앞에서 날아오는 총탄은 절대로 그의 목에 맞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는 뒤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맞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의 뒤에서 총을 다를 줄 모르는 고교생 시민군이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누구든 일단 시민군 차량에 탑승하면 그 후부터는 깡패 두목의 명령대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5월 21일 오전 깡패 두목이 시민군 군용차량들 집결 위치를 지시하는 장면이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의 영상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뒤에서 계속 시민군 차량들이 따라오니 조사천씨는 두목이 시키는 대로 도청 분수대를 향하여 달려야 했다. 그런데 힌츠페터의 영상물은 그의 목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며 달리는 시민군 차량 행렬들을 포착하였다.






위 사진들에서 보이듯 난생 처음 만져 보아 총을 다를 줄 모르는 시민군들은 자기 앞 시민군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돌격하였으며, 그래서 그 시간 대에 많은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들이 있었다는 시민군 증언들이 있다. 조사천씨는 분명 뒤의 시민군이 쏘는 총에 맞았다. 그의 장갑차 구조상 앞에서 날아오는 총탄이 그의 목에 맞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시민군 총탄에 맞아 숨진 사실은 그가 카빈총 사망자라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영화 '26년'의 여주인공 심미진의 아빠의 모티브였던 5.18 사건 희생자 조사천씨는 시민군 장갑차 사수였으며, 그는 자기 뒤에서 쏜 시민군 카빈총 희생자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봉선화 작성시간 22.02.21 5.18 재단 설립자! 윤한봉씨의 약력으로도
    5.18은 절대 민주화운동이 될수없습니다.
    호남인들은 여태까지 제 인터넷도 막아놨더니
    이제야 풀어놓았더군요.
    호남인들이 떳떳하다면 왜인터넷은 막아놓는것이며
    보수의 유튜브는 차단하며 폭파시키는것인지
    좌파의 몰상식한 본성이 드러납니다.
  • 작성자봉선화 작성시간 22.02.21 대선을 앞두고 5.18의진실을 밝혀 역사를 정리하고
    가야함에도 정치권 자들은 집권의 탐욕애만 눈이멀어
    콩인지.팥인지도 모르는 파리떼들이 모여
    꼴깝을 떨고있으니 현명하신 김대령님께서
    5.18의진실을 명확히 정리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오죽하면 5.18책을 몽땅 광주시장에게 보여주었건만
    지만원박사님은 유죄라고합니다.
    좌파들이 문제인지 보수가문제인지 정리좀 부탁!
  • 작성자봉선화 작성시간 22.02.27 5.18은 제가 제보한 장갑차주인공 조사천씨가 핵심인물!
    호남인들은 조사천씨가 맞은 총소리를 전두환의 발포명령이라고함!
    조사천씨는 21일 1시반경 첫발포에 맞아 적십자병원으로옮겨사망함.
    수사기록에 카빈총사망[맹관상]5.18재단에서는 수시로 고쳤음.
    그 즉시 광천동으로 연락이왔으며 제가 그분의 처에게 직접전해주었건만
    그여자는 거짓증언을 하였음.교육대앞에 살았다고.
    그러나 1990년 10주기 때에 시사저널 김당기자가 취재함!
    이웃사람에게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들었다.
    2005년도에는 사장댁에 돈 받으로가다가 진압군총에 맞아[처.정동순]
    우리아빠는 진압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아들:조천호]
    죽음을넘어 시대의 어둠을넘어[황석영 476P]
    시체옆의 사진은 훗날 갖다부친것.
    그당시는 시청 청소차에실려 공원묘지로 운반했다는것이
    윤상원의 약력에 명확히 기록되어있으며
    1980년 우리나라 관행상 상주는 남자만 기록할수있었음.
    조사천씨는 다섯살난 여식과 남자아이는 갓난아기 1묘역[조용현]기록!
    홍보용으로 이용한 조천호는 친아들이 아님.2묘역[천호.현숙.용현]기록!
    민주화운동으로 뒤집으면서 좌파들은 수시로 법을 바꿨으며
    지금도 인권위원회에서는 장갑차주인공을 홍보용으로!



  • 작성자봉선화 작성시간 22.03.04 제가 인터넷을 상세히 배우지않아 미숙한점이있고
    정보가 잘못되면 피해입을것같아 함부로
    인터넷 사용하지않고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저는 5.18만 끝까지!
  • 작성자봉선화 작성시간 22.03.08 5.18 문익환목사의 12일 목포방문이 시발점이 되었다고합니다.
    13일부터 전대나 호남의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하였고
    점점더 과격해지니 도경국장 안병하님은
    경찰천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수가없어서
    가까운 군부대에서"긴급 군출동 요청"을하여
    광주 중요기관에 배치하였다고함.
    점전 더 과격해지니 타지에서 공수부대 파견함!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