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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은혜멘트)]

(펀글)이상한 성탄절 이브

작성자정성진|작성시간12.12.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이상한 성탄절 이브

미국의 어느 화려한 예배당.
한 흑인 여인이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했습니다.
흑인은 입장이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기도를 하려니 눈물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럴 수가 있으냐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쫓겨났소."
그 흑인 여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얘깁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 전야에 어느 교회에서 아이들끼리 선물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 상자들을 가운데에 쌓아 놓고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사회자가 한 사람씩 불러내 그것을 뜯어보게 했습니다.
과연 무슨 선물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며 다들 포장을 뜯는 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저능아인 한 아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그래도 산타클로스만큼은 자기를 기억해 주리라
고대하며 앉아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제일 나중에야 산타클로스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커다란 상자를 건네주자, 아이들이 또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 아이를 놀려 주려고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아이는 상자를 거꾸로 들고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아이는 텅빈 상자를 안고 바닥에 앉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을 안고 큰소리로 웃으며 하나씩 밖으로 나갔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찬송가를 부르며 말입니다.
오색등이 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 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아이의 눈물처럼 말이죠.

성탄절 전야는 우리의 가슴을 늘 두근거리게 합니다.
학창시절, 교회에서 학생 회원들과 밤을 새우며 선물을 주고받던 일이 생각납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제비를 뽑아 파트너를 정하고 상대가 모르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어서 두고두고 추억 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상한 선물에다가 짓궂은 벌칙을 써넣어
선물을 받는 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성탄절 전야가 되면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명동으로 나가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새벽에야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성탄 전야에 잠을 자지 않고 놀다가 정작 성탄절 예배에는 참석을 하지 않거나,
예배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탄절 아침에 걸인으로 변장을 하고
몇 몇 교인의 가정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더랍니다.

성탄절이 되면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속한 모임에서라면 여러 상자를 마련하여 고아원에 전달한 일이 있습니다.
라면 상자들을 쌓아 놓고 고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 한 아이가 우리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퍽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절 문화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화려한 날이 아닌데도 일년 중 가장 화려한 날로 바뀌었습니다.
백화점마다 요란스럽게 불을 켜 놓고 호화로운 선물을 파느라 야단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 12월24일 저녁은 환락과 술취함과 사고의 밤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일이 연인들의 만남의 날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없는 비신자들이 설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이상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수가 많습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선물 상자,올 나잇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코 '화려한 스타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6절 이하에 그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그런 화려한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분이 어디에 관심이 있었는지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를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 조용하고도 기쁜 성탄절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는 것이지 산타클로스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818년 성탄절을 일주일 앞 두고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교회에 시무하던 26세의 젊은 신부 모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성탄절 연극을 준비 하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풍금이 고장이 났다. 수리공이 온통 분해하여 늘어놓았지만 성탄절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 신부 모올은 근심 중 마을의 밤 풍경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고요했다.
이전에 시를 써본 일이 없었던 모올이지만 그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썼으며
그 교회의 organist인 구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내 그 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이 노래는
오늘날 성탄절에 가장 많이 애창되는 성탄곡이 되었다.


전쟁터의 성탄절

2차 대전 차디찬 겨울에 있었던 실화다. 12월24일 성탄 전야에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살벌한 전쟁터는 아롱지는 별빛으로 인해 고요하고 적막해져갔다. 이 고요함 가운데 참호 속에 앉았던 한 프랑스 병사가 고향생각을 하며 무심코 낮은 휘파람 소리로 성탄 캐롤을 불렀다
. 이 휘파람 소리가 적막한 강 주변을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 애닮프고 잔잔한 휘파람은 이내 건너편의 독일 병사의 마음을 향수에 잠겨버리게 했다. 독일병사가 그 멜로디를 따라 마음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후 아군과 적군의 캐롤 멜로디가 함께 강을 멤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의성탄을 그리워하던 모든 병사들이 이 합창의 멜로디를 듣고는 다 함께 부르게되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강은 캐롤의 향연이 되었다. 아군도 적도 없는 성탄의
밤이었다. 모두가 서로 피 흘려야 하는 병사로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성탄을 축하하며 그리워하는 애절어린 사람의 마음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가의 캐롤 향연은 적과 아군이 한 자리에서 드리는 성탄의 예배로 이어졌고 즐거운 파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파파노의 성탄절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절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
이 몰려 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 때 한 할머
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다. 그
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
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
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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