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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산수유 여행 기행문을 올려봅니다

작성자산수리|작성시간16.03.28|조회수185 목록 댓글 1




지리산 산수유와 카르페 디엠

 

꽃은 나를 조바심 나게 한다. 한껏 자신을 부풀려 유혹하지만 그 유혹의 시간은 고작 삼사 일. 그 시간을 놓칠까 개화시기를 몇 번씩 확인하게 하고 일정을 조절하게 한다.

그런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이번 지리산 산수유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3월 20일 아침 7시 29분, 수원에서 구례구행 열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의 네 시간. 여유 있게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를 펼쳐 들었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라는 챕터.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해진다’.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과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도시에서의 숨 가쁜 일상을 떠올리니 지리산으로 가는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번 일박 이일 지리산 여행 계획은 이랬다. 첫 날, 구례에 도착해 산동으로 가서 숙소를 구한 후, 여유 있게 산수유를 둘러본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동~주천 구간 둘레길을 걸어 남원으로 간다. 그리고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11시 30분,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의 포근한 공기를 느끼며 구례터미널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버스는 1시 40분에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샘. 택시 정류장 쪽을 보니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마침 건너편 도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구례읍까지 육 킬로미터.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리였다. 걷기로 했다. 여유 있게 걸으며 차를 타고 가면 놓쳤을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한 시간. 뒤에서 쌩쌩 지나가는 차를 피하느라 주변을 둘러볼 경황이 없었다. 자동차 이정표를 보고 따라오다 보니 걷기엔 위험한 자동차 길을 걸었던 것.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약이 올랐다. 의미 없이 힘 빼고 시간만 지체했다 싶었다. 더군다나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어야지 했는데,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십 분 뒤에 산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뭔가 조금씩 꼬인다 싶었지만 일단 산동만 가면 숙소를 구하고 여유 있게 남은 시간을 보내면 될 거라 생각하고 버스에 올랐다.

산동으로 가는 길. 산수유 축제가 시작된 휴일이라 그런지 차가 막혔다. 구례 산수유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지는 몰랐다. 숙소를 현지에서 구할 생각이었는데 구할 수 있을까? 이때부터 조금씩 불안하기 시작했다.

도착하고 보니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도착한 산동 원촌마을엔 숙소가 없었다. 좁은 도로는 관광 온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차량과 사람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축제장이 있는 곳일까? 그쪽을 따라 걸어갔다. 걸어가다 문득 든 생각. 기왕이면 내일 걸을 둘레길 코스 쪽으로 가서 숙소를 구하면 좋지 않을까? 지도를 확인해 보니 걸어 올라가던 길이 코스와 반대 방향이었다. 밀려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반대 방향, 현천 마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원촌마을을 벗어나자 단체 관광객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내 앞으로 밀려왔다. 둘레길을 걸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들 중 친절해 보이는 분을 택해 어디서 오냐고, 오는 길에 숙소를 보았냐고 물었다.

“그냥 앞사람을 따라와서...우리 어디서 왔지?”

“숙소를 본 것도 같고 못 본 것도 같고 모르겠네요.”

걷고 있는 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도, 주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앞 사람을 따라 행군하듯 걷고 있는 그들. 지금껏 대여섯 곳 둘레길을 걸으며 느꼈던 고즈넉함이 깨짐과 동시에, 저들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헛웃음이 나왔다.

SNS가 활성화 되면서 여행은 사람들에게 과시용이 되었다. 유명한 곳을 다녀와 근사한 음식을 먹고 호들갑스럽게 사진을 올린다. 사진 밑엔 감탄과 부러움의 댓글이 짤막하게 달려있지만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인 전달과 형식적인 인사의 댓글들 뿐. 저들도 집으로 돌아가 여기저기 사진을 올리며 자랑할 거라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속으로 단체 관광객 무리를 꼬부장하게 바라보며 눈으로는 숙소를 찾았다. 빨리 숙소를 구해 여유 있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첫날은 여유 있게 쉬며 보내려 했는데 자꾸 걷게 되는 상황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산수유 군락지는 언제쯤 나타나나.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산수유나무가 반가웠지만, 아직 이렇다 할 멋은 느껴지지 않았다. 날은 덥고 어디까지 걸어야 숙소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솔직히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어느새 나의 여행은 숙소구하기라는 목표로 좁혀져 있었다.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는데 마을의 한 집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물 한 병을 사들고 숙소를 물었더니 이 마을엔 없다한다. 힘이 빠졌다. 이 코스는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코스인데 이미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숙소가 없다면 밤 산길을 걸어야 할 터이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산수유 꽃구경은 이것으로 포기였다.

구례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 방을 예약하고, 구례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하루 예상 밖의 행군으로 진이 빠졌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는 영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정류장에 붙여 놓은 버스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명색이 산수유 축제인데 관광객을 위한 교통편이 전혀 없다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시 버스정류장은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몇 분 후 도착하는지 정류장 전광판을 보거나 인터넷에 버스 노선만 검색해도 바로 알 수 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니 주변을 돌아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건너편에 보이는 산동 경찰서로 향했다. 가서 따지려고 했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축제기간에 버스배차가 왜 이 모양이냐,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는 없는 거냐. 이곳에 찾아온 관광객으로서 당당하게 추궁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해볼 심산이었다. 세 걸음쯤 걸었을까? 버스가 보였다. 후다닥 사람들을 헤치고 버스 앞으로 뛰어 갔다.

구례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사장님께 오늘 나의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현지에 사시는 분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축제 준비의 미흡한 구례 행정에 실망스러웠음을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예의 느긋한 말투로 천천히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텐데요, 하신다. 바쁜 일정 쪼개어 온 도시 사람 입장에선 그런 기다림이 시간낭비로 느껴진다고 슬쩍 대답했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 현천마을에서 복수초는 보고 왔냐고 물으셨다. 복수초? 복수초는커녕 산수유 꽃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순간, 내가 오늘 무얼 하고 왔지? 아차 싶었다.

내가 귀촌을 꿈꾼 이유. 하나를 얻기 위해 둘을 더 벌어야 하고, 둘을 벌기 위해 시간을 더 쪼개 써야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낸다는 건, 무언인가 더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손해 본 것이 되는 생활. 욕심을 비우고 살기엔 늘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 천지인 곳.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숙소를 찾아 헤매며 걷고 있던 내 모습이 앞사람만 보고 둘레길을 걸었던 단체 여행객들과 뭐가 다를까. 목표를 향해 가되, 그 과정에서 보고 들으며 느껴야 했을 ‘카르페 디엠’은 사라지고 숙소라는 목표만 맹목적으로 바라보며 걸었던 것이다. 시간을 낭비한 것에 화를 내며 경찰서에 들어가 따지려고 했으니...

 

다음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산수유 마을로 다시 향했다. 상위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산수유를 보며 천천히 내려오면 산수유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 하셨다.

산수유는 기대 이상으로 멋졌다. 노란 꽃술 사이엔 바람이 들락거리고 하늘이 머물기도 했다. 꿀벌은 꽃향기에 취한 듯 몽롱한 날갯짓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꽃을 따라 발길이 닫는 대로 내려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꼭 들르라고 했던 반곡마을을 지나쳤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꽃 사이를 꿈꾸듯이 내려왔으니까.

나에겐 여행이 무엇일까. 기다림의 시간을 낭비라고 느끼는 것, 이것이 도시에서 시간을 쪼개 하나라도 더 가지려 했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현재를 즐기지 못한 채 달려가기만 했던 도시에서의 관성을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귀촌을 생각했던 나의 시작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 부끄러운 여행이었다.

 

 

 

작년 그 꽃

윤제림

 

말이 쉽지,

딴 세상까지 갔다가

때맞춰 돌아오기가

어디 쉬운가.

모처럼 집에 가서

물이나 한 바가지 얼른 마시고

꿈처럼 돌아서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 쉽지,

엄마 손 놓고

새엄마 부르며 달려오기가

어디 쉬운가.

이 꽃이 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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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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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irisan | 작성시간 16.03.28 위 사진이 반곡마을입니다.
    잘 찾아가셨네요.
    산수유꽃이 가장 볼만한 곳이죠.
    오늘 구례는 벚꽃 꽃망울이 터지려 합니다.
    이번주가 절정일것 같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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