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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야기 - 노고단

작성자jirisan|작성시간12.09.15|조회수469 목록 댓글 0

이글은 제가 "지리산학교 온라인 교실"에 올리는 글입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천왕봉(하성목님 사진)

 

지리산학교 가족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리산학교에서 제가 아는 지리산이야기를 쓰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늘 지리산과 섬진강과 함께 생활했기에 제가 아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정리도 할 겸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저는 지리산 아래 구례에서 태어나서 젊었을 때 도시생활을 7년여 하다가 귀향하여 줄곳 구례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리산을 자주 오르셨고 섬진강에서 낚시를 자주 하신 아버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놀기를 좋아 하였습니다.


10대 때부터 아버님을 따라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으며, 등산로 개척 할 때도 참여 했고, 10대 후반에는 아버님의 지시로 등반인들을 안내하기도 하였습니다. 제 아버님은 연하반(烟霞伴)을 주도적으로 창립한 분이며, 지리산 종주 등반로를 개척하셨고, 지리산 등반지도를 최초로 만드셨으며, 음양수의 전설, 황호랑이 막터 등 20여편의 설화를 발굴하여 발표하고, 지리산국립공원 지정운동을 주도하셨으며,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돤 후  연하반을 지리산악회로 개칭하고 회장을 하시면서 산악활동과 지리산을 알리고 보존하는 활동을 하신분입니다.


20대부터는 사냥과 낚시를 즐겨하였으며, 사냥기나 낚시에 관한 책을 즐겨 읽고 내가 경험한 것들과 비교도 해보고, 동,식물에 관한 책들도 제법 읽었습니다. 저는 1995년 아버님께서 연로하시어 40여년 이어온 지리산에 관한 활동을 접으신 이후 1996년에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를 결성하여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등 지리산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리산 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연하반원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연하반의 활동시기는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던 때였는데 우리는 그때와 비교하면 어렵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연하반의 산행 사진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고 함태주, 양한익, 성만영씨등 연하반의 원로 분들은 제게는 자연의 스승이신데 많은 분들이 작고하셨습니다. 여건이 되면 이분들에게 조그마한 비석이라도 새겨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비석에 새겨드릴 글로 “연하인( 烟霞人)”이라는 단어가 성립되는지 아버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네가 연하인이다. 너 같은 사람을 연하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조그마한 비석에 “烟霞人”을 새겨 연하반 회원들에게 바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 활동내역


-“지리산 반달곰 서식실태조사”

-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 협조“

-”1997년 우리나라 최초로 담비 촬영(동영상)“

-”1997년 우리나라 최초 수달촬영후 환경부에 서식실태 보고“

-”1997년 뜸부기 23년만에 촬영확인함“

- ” 월악산 산양 2마리 생포(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요청으로)“

- 지리산에서 담비 3마리 생포( EBS 방송국 요청으로”

-”  KBS 일요스페셜 “ 반달곰은 살아있나(1997년),

   담비의 숲(EBS)” 등 자연다큐멘터리 20여편 제작협조하였음,

-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일본 이바라키 자연사박물관에서 “한국의 자연”을 전시하였는데 섬진강과 지리산의 자연을 소개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음.

 이밖에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자세한 활동내용은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학교에서 지리산이야기를 쓰기로 하고는 무엇을 먼저 써야 될지 무척 어렵습니다.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 몇 년 전에 쓰다만 “지리산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지리산 10경을 중심으로 제가 아는 대로 써 본 글인데 우선 “노고단이야기” “피아골이야기” “반야봉이야기”를 올린 후 다음 글을 구상해 보겠습니다. 아래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려 하는데 내용이 중복되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들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쓰는 글이니 두서 없는 글이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하반의 지리산 개척

-지리산국립공원 지정당시 연하반의 활동

-지리산의 야생동물 이야기 

- 지리산의 사냥이야기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의 활동(반달가슴곰등)

-깨끗했던 섬진강의 이야기와 현 실태(수달 ,은어 연어 등)

-구례의 문화유산과 사람들

-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


이러한 제목으로 써보려 합니다. 글의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지리산 


지리산은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산으로 3개도(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 5개 시,군(남원시,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에 걸쳐 있고, 그 둘레가 약850리, 국립공원 지정 지역만 해도  넓이가 440.485평방km(지정당시 면적)인 큰산이다.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지리산.한라산)의 하나로 불려지는 지리산은 조선시대 묘향선인 서산대사는 금강산은 빼어났으나 장엄하지 못하고(金剛秀而不壯), 지리산은 장엄하나 빼어나지 않았고(智異壯而不秀), 묘향산은 빼어나고 장엄하다(妙香亦秀亦壯)고 평하였다.


지리산은 6.25이후 입산 금지지역이었으나, 1955년 4월 구례중학교 교사 몇명이 구례경찰서에서 입산 허가를 받아 6.25이후 최초로 노고단을 등반하였다, 이분들은 1955년 5월5일 등반모임인 “연하반”을 결성하여 지리산 등반로 개척에 나서게 되었다..

지리산은 1957년 “연하반”에서, 화엄사-노고단-반야봉-세석평전-연하봉-제석봉-천왕봉-중산리 종주코스를 개척 하였다, 연하반은 종주코스를 개척한후 등반로를 정비하고, 이정표를 설치하며 종주능선상에 샘을 발굴하였고 무명봉우리의 이름을 지었으며 등반 지도제작에 착수하여 1962년 지리산 등반지도를 완성하여 무료로 탐방객들에게 배포하였다


연하반은 1950년대 후반부터 지리산의 숲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당시엔 건축재.땔감으로 많은 목재가 필요한 시기였으며 우리나라 온산이 벌거벗은 상태였다, 강원도 와 지리산등 높은 산에 남아있는 나무들도 남벌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1963년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정부 요로에 건의하였다.

1967년 마침내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 1호로 지정을 받게 되어 그나마 지리산의 자연이 지켜지고 있다.


                                       연하반이 1957년부터 착수하여 1962년에 완성하고 65년에 보완한 지리산 최초 등반지도

 

 

지리산은 야생의 땅


 지리산국립공원의 면적은 국제적으로 자연보전을 위한 “보호지역” 지정시 권하는 최소면적인 400평방km를 넘는 438.9평방km(1998.7 )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은 해발 700m를 기준으로 지정되었으므로-낮은 지역도 우수지역은 포함- 그보다  넓은 지리산권은 한반도 남단 고유의 자연생태계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리산권도 자연생태계 먹이 사슬 최 상층부 동물인 호랑이가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넓이다. 호랑이는 일 년에  대형 포유 동물인 멧돼지,노루,고라니 등을 60여 마리 이상 잡아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갈 수 있으려면 먹이가 되는 대형 포유 동물들의 개체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대형 포유동물의 개체수가 안정되려면 포식자, 질병 등에 희생될 개체수를 감안하여 약 300마리의 대형 포유동물이 안정적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학자들은 지리산에서는 호랑이가 2-3마리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호랑이가 향후 백년동안 유전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50개체 이상은 서로 접촉을 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리산은 호랑이가 살아갈 수 있는 땅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지리산에 가까스로 살아있는 표범(2-3마리 추정2002년)도 인간이 간섭해 주지 않으면 호랑이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리산의 자연 생태계의 먹이 사슬 최상층부 동물은 반달가슴곰이다. 지리산은 반달가슴곰이 150여 개체는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 지리산에는 야생 반달가슴곰이  5-8마리가 살고 있다. 이 야생곰들도 근친교배에 의한 폐해로 20년 이상 지탱하기 힘들다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지리산의 곰이 안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곰을 방사하고 있으며, 30마리의 곰을 더 방사할 예정이다.


 지리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달가슴곰(329호), 사향노루(216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등 포유류 36종(2004,무산 쇠족제비 서식확인 추가)과 조류 88종, 어류 29종, 양서류 11종, 파충류 27종이 서식하고 있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대대적인 산림의 남벌은 억제되어 숲이 비교적 잘 보전되고 있고, 1996년부터 밀렵퇴치를 위한 민간단체(지리산생태보존회)의 활동이 강화되어 야생동물의 개체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생명체들은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 종이 사라지면 그 종과 연관된 약10여종이 멸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은 알칼로이드등 약 10만 가지의 화학 물질을 합성하여 번식, 다른 종과의 대화, 천적으로부터 방어 등에 활용하여 생존하고 있다.  인간은 먹이는 물론이고 자연생명체들이 합성한 화학물질을 취하여 유용하게 활용한다. 아직 인간이 발견치 못한 유용한 물질을 함유한 종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생존도 비례하여 건전치 못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이웃으로 반만년동안 함께 살아온 다양한 생물 종들이 가까스로 살고 있는 지리산은 적극적으로 보전 되어야 할 야생의 땅이다.


 1972년 지리산악회 우종수 회장님은 “국립공원협회”에서 발행한 창간호 “錦繡江山”(계간지)에 지리산의 대표적 경관 열곳을 선정하여 "智異山 10景"을 발표하였다.

노고단운해, 피아골단풍, 반야봉낙조, 벽소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봉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1972년 발표된 순서에 따름) 이다.


                                     2002년 지리산에 반달곰 복원 시험용으로 방사한 막내라는 곰

 

 

노고단 이야기


1936년 8월 5일자 조선일보에 주필 서춘(徐椿)이 연재한 “남조선 편력기행”에는 “지리산통로 구례”라는 제목으로 노고단과 지리산을 소개하고 있는데, 고래로 “지리산은 전라도 지리산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명산에 소지를 올렸는데 지리산에 올린 소지는 타지 않아  불복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는 옛 이야기가  있으며, 전라북도 남원 광한루에서 전라도 선비들과 경상도 선비들이 시회를 하다 서로 지리산 주인이라 주장을 하여, 좋은시를 짓는 편이 지리산을 갖기로 하였는데 전라도 선비들이 이겨 지리산이 전라도 지리산이 되었고 이러한 내용을 현판에 새겨 광한루에 걸어놓았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있다.


아무튼 전라도 지리산중에 있는 노고단(老姑壇.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이다, 지리산 서쪽 끝에 우뚝 솟은 산을  吉祥峰이라고 하는데 그 봉우리에 단을 쌓아 노고(老姑,할미)에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노고단이라 하였다,  노고(老姑,할미)라는 이름은 지리산 산신 仙桃聖母를 존칭하는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길상봉에 오르면 동쪽으로 반야봉-세석평전-천왕봉까지 주능선으로 연결된 지리산의 주봉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동남쪽으로는 남해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남으론 광양 백운산이, 서쪽으로는 광주의 무등산이 우뚝서있고, 북으론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만복대등 서북능선이 조망된다. 길상봉은 지리산에서 지리산을 조망하는 최고의 봉우리라 할 수 있다,


 지리십경에 노고단의 운해를 제 일경으로 발표 하였는데,노고단 운해(雲海)라 함은 밤에 섬진강,엄천강 등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산 아래로 낮게 깔려 구름 바다처럼 보이고 구름 바다 위로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떠있는 노고단에서 조망하는 정경을 말한다. 골짜기 아래 세속의 흔적들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끝없는 운평선위로 산봉우리가 섬처럼 떠있는 정경은 태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운해는 가을에 많이 형성된다. 운해의 모습은 계절에 따라, 조망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겠으나, 원추리가 피는 여름 달밤에 보는 운해를 제일로 꼽고 싶다. 늦은 밤 하늘엔 밝은 달과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나고 원추리 꽃밭아래 하얀 구름바다는  끝없는 운평선을 형성한다.


운해가 노고단의 1경이라면 2경은 “산상의 화원”이다.  노고단은 약 30만평의 고원이 형성되어있다. 고원엔 실개천이 흐르고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이 피고 진다. 봄에는 철쭉꽃, 여름에는  원추리, 가을에는 구절초가 대표적인 꽃이다. 노고단에는 1920년대에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외국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피하고 교육, 수양을 위해 휴양관을 건립하였다. 1922년 천막을 치고 시작한 휴양지는 1928년 18채의 석조건물을 건립하였고, 이후 58동의 건축물이 들어서 유럽풍의 산상 마을이 형성 되었다. 이곳은 일본과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이용하기도 하였다. 1935년 스웨덴의 왕립 박물관에서 조선의 생물상을 조사하고 그 표본을 확보하기 위하여 파견된 슈텐 베리만(Sten Bergman)은 노고단을 방문한 소감을 저서인“한국의 야생동물지”에서  "4,200피트 높이의 정상에 위치한 몇 채의 크고 작은 유럽풍의 오두막과 별장들은 낙엽송들이 그늘을 드리운 사이에 있었다. 노란백합(원추리), 붉은 봉선화(물봉선화) 보라색 제라늄(둥근 이질풀)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수풀들과 온갖 꽃들이 만발하였다. 지리산은 여름철을 보내기에 황홀한곳이었다”고 피력 하였다,


노고단은 여순 사건과 6.25를 맞아 대부분의 건물들은 파괴 되었고, 산불이 발생하여 키 큰 나무들이 모두 불에 타서 초원이 형성 되었다. 초원엔 원추리, 둥근 이질풀, 동자꽃, 곰취, 물봉선화 등이  무리지어 피었다.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 노고단은 '산상의 화원'을 형성한다. 몇 년 전부터 야생화가 관상용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탐방객들이 귀한 꽃들을 캐가면서 앵초, 복주머니난, 물매화등은 쉽게 볼 수 없지만 길상봉 부근에는 숨어있는 복주머니 난의 군락지가 있으며 눈여겨  보면 숨어 있는 많은 꽃들을 볼 수 있다. 원추리는 알뿌리를 멧돼지가 파서 먹기 때문에 군락지 형성이 쉽지 않다.  6.25이후 노고단에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멧돼지들의 접근이 차단되어 유래 없는 원추리 군락지가 형성되었다. 1970년대 초에 노고단의 원추리 군락지는 절정이었다. 지리산악회에서는 봄에 철쭉제(제1회,1973)와 여름에 산나리(원추리)잔치(제1회,1974)를 개최하여 지리산으로 많은 등산인 들을 불러들이기도 하였다. 이후 너무 많은 등반인들이 산을 찾아 국립공원 지역 내에서는 축제를 하지 않게되었다.


노고단의 화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신갈나무등 키 큰 나무들이 자라나 초원이 잠식당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키 큰 나무들은 더 높이 서식지를 확장할 것이다. 아름다운 산상화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탄생하고 생장하며 절정기에 이르며 소멸하는 자연의 순환이지만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길상봉 주변과 KBS방송국 중계소 가는 길에 원추리 군락지가 남아있다. 야생화는 화창한 날보다 구름이 껴있는 날에 선명한 색이 살아나며 촉촉한 질감이 느껴진다. 실비 내리는 날 낮은 바람에 무리지어 춤추는 원추리 군락지의 정경은 환상이다.


                                                                       노고단 서편 탐방로

 

                                                                       원추리, 동자꽃, 둥근이질풀

 

                                                                         범꼬리, 원추리

 

노고단 주변의 이모저모


 노고단 정상인 吉祥峰에서 동쪽으로 반야봉-세석평전-천왕봉까지  연결된 지리산 주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리산에서 장엄한 지리산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최고의 조망처다.  천왕봉과 장터목에서 반야봉-노고단을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5m)을 향해 조망할 수 있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보는 것으로 언젠가 주능을 타고 고지를 향하여 오르고 있을 자신을 상상할 수 있으니,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이 든다. 천왕봉에서 반야봉-노고단을 바라보는 것은 성취감은 있지만 허탈함과 함께 뒤돌아보는 느낌이라 쓸쓸함이 느껴지며 곧 하산하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길상봉에서는 차일봉-만복대로 이어지는 북부능선과 반야봉에서 북쪽 달궁으로 이어진 심마니 능선, 삼도봉(날라리봉)에서 남쪽 황장산으로 이어진 불무장등 능선, 그 뒤로 영신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악양 형제봉(성제봉)으로 이어진 남부능선을 조망 할 수 있으며, 남쪽 발아래 문수리계곡과 그 넘어 광양 백운산이, 서남쪽으로는 구례분지가 조망되며, 섬진강이 곡성으로부터  남으로 잔수(원효대사가 구례군 남쪽 오산 사성암에서 수도를 한때 섬진강 물소리가 시끄러워 물이 잔잔히 흐르도록 도술을 부려서 잔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함)를 지나 북쪽으로 머리를 돌려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水太極이라 불리우는 S자로 굽이치는 아름다운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다. 사방으로 높은 산군들을 거느린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노고단 가까이 스님들이 수도처인 문수대와 우번대(종석대)가 있다. 문수대는 길상봉 남사면 가까이 있는데 노고단에서 KBS 중계소 앞을 지나 피아골로 가는 등산로를 30분쯤 가면 나타난다. 6,25이후 폐허가 된 칠불사에서 천막을 치고 수도하던 평전스님(전 수도암 주지)께서 묘향대에서 지내시다 문수대를 복원하여 거쳐하신 곳이다.  1950년대 후반에 지리산악회에서 개척한 등반로인 이곳은 중산리에서 천왕봉 코스와 함께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인 이 찾던 길이었다. 지금은 등산로가 폐쇄되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적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문수대 입구 바위에는 항상 삵(살쾡이)의 배설물을 볼 수 있는데, 배설물의 크기로 보아 지리산에 서식하는 삵 중 세석평전 음양수 주변에 서식하는 삵과 함께 가장 큰 삵으로 추정된다.


우번대는 노고단 서쪽에 있는 차일봉 남사면에 있는데 종석대(鍾石臺)라고도 한다. 신라시대때 우번조사께서 차일봉아래 상선암에서 성불을 하기 위해 홀로 10년 동안 수도를 하기로 결심하여 9년째 나는 어느 따뜻한 봄날, 선녀 같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홀연히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마치 따라 오라는 듯 가는 것이었다. 우번조사는 자신이 수도승이라는 위치도 망각한 채  황홀감을 느끼며 그 여인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여인은 숲을 지나 차일봉을 향하여 보일 듯 말듯 올라가고 있었다.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따라 가다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앞에 가던 여인은 보이지 않고 관세음보살이 위엄을 갖춘 표정으로 앞에 서있는 우번조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우번조사는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으니 관세음보살은 간  곳 없고 그 자리엔 큰 바위가 우뚝 서있었다. 우번조사는 비로서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 나타난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참회하고 바위 아래 토굴을 짓고 수도에 정진하던 중 돌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마침내 득도 성불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선 그 후 많은 고승들이 득도를 하였는데 성불하는 순간마다 석종 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번대는 돌종이 울렸다고 해서 종석대, 관세음보살님이 나타 나셨다고 해서 관음대 라고 도 불린다.


노고단 초원에는 멧돼지, 삵, 담비, 노루, 고라니, 족제비, 너구리가 먹이를 찾아 자주 나타나며, 특히 토끼와 꿩이 많이 서식한다. 비가 많이 와서 계곡수가 불어나면  물까마귀도 볼 수 있다. 꿩은 고지에 잘 살지 않는데, 노고단에는 1950년대에 서식이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1978년부터 1983년 무렵에는 표범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었다. 그 무렵 여름 KBS  중계소를 지을 때 한바(인부들 밥집)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아침을 차려주고 나물을 뜯으려고  숲에 들어가서 나물을 뜯다가 볼일을 보고 있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큰 동물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소리가 들리더니 호랑이가 앞에 나타나서 멈칫 하더니, 가만히 노려보는데 정신이 아득해져서 그만 바지도 입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배설물에 주저앉아서 다시 앞을 보니 호랑이는 온데 간데 없었다고 한다. 며칠 후 새벽에 판자로 지은 한바에서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오니 호랑이가 가까이에서 한바를 쳐다보고 있어 황급히 한바로 다시 들어가서 무서워서 잠도 못 잤다고 하였다. 이분은 이후 호랑이에 겁을 먹어 한바를 다른 분에게 넘기고 하산을 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노고단 산장 관리인이던 함태식 선생님도 호랑이 목격담을 많이 수집하셨으며, 우종수 지리산악회 회장님께서도 여러 목격담을 기록해 놓으셨다. 1978년 겨울 적설기 등반에 나선 필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상태에서 노고단을 올라 하산을 차일봉을 지나 천은사 계곡으로 하였는데, 우번대 아래에서 호랑이로 추정되는 족적을 목격하였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고양이과 족적의 형태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족적은 호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은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1984년 1987년에도 지리산 다른 지역에서 표범으로 추정되는 족적을 목격한 사실이 있다. 1996년 이후 목격담을 분석해 보고 1980년대 전 후반에 노고단 주변에서 자주 목격된 고양이과 동물은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으로 추정했다.


글쓴이 : 우두성

1952년 구례 생


경력 

현) 지리산악회 회원

현)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 회장

현)(사)한국수달보호협회 전남 지회장

현)구례문화원장


전) 푸른구례21 의장

전) 야생동물연합 공동대표

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부회장

전) “지리산 열린연대”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전) 멸종위기종 복원 자문회의 자문위원장(국립공원관리공단)

전) 국립환경연구원 강사(1999~2003)

전) 환경부 자연자원 전문조사원 (1999~2009)

 

 

                                                 차일봉을 뒷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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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 안치환

눈보라 몰아치는 저 산하에 떨리는 비명소리는
누구의 원한이랴
죽음의 저 산 내사랑아
피 끓는 정열을 묻고 못다부른 참 세상은
누구의 원한이랴
침묵의 저 산 지리산
일어서는 저 산 지리산
(- 남겨진 상처를 가슴에 보듬어 안고서 -
- 못다한 사랑을 목놓아노래하랴 -) 2부 합창.
지리산 반란의 고향

푸르른 저 능선 저 깊은 골에 찢겨진 세월의 자욱
무엇을 주저하랴
부활의 저 산 솟구치는
대지의 거친 숨소리 눈부신 조국의 하늘
무엇을 주저하랴
투쟁의 저 산 지리산
다가오는 저 산 지리산 / 살아오는 저 산 지리산
(-남겨진 상처를 가슴에 보듬어 안고서-
-못다한 사랑을 목놓아노래하랴-) 2부 합창.
지리산 반란의 고향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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