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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반의 지리산개척사 - 6

작성자jirisan|작성시간15.11.16|조회수133 목록 댓글 2

지리산 이야기- 연하반(지리산악회)의 개척사 6

 

‘山’지 74년- 2월호


임걸령의 전설


지리산의 삼대 주봉중의 하나인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향하여 힘차게 뻗어나간 주능선 상의 4Km 지점 약간 움푹 파인 지역에 반야봉을 등에 업고 임걸령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이곳이 지리산 종주등반 코스 중의 물 맛 좋은 샘터로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신라 화랑들의 연마도량으로서 임걸령 몰두덩이란 이름을 남겨 놓고 있다.


 저 씩씩하고 날쌘 신라 화랑들이 임걸령에서 노고단을 향해 스스로 힘껏 활줄을 당겨 쏘고, 동시에 말을 몰아 천마가 비상하듯 단숨에 몰두덩을 달리면 날아가는 화살보다도 오히려 화랑이 먼저 노고단에 당도하였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슬기로운 신라 화랑의 날랜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 같다.

 또 그 보다 후세의 어느 옛날에 임걸이란 녹림의 호걸이 있었는데 수백 명의 졸병을 이끌고 지리산에 들어와서 공수의 요새지인 임걸령에 목책을 쌓아 소굴로 삼고, 때마침 난세의 틈을 타서 지리산 일대를 마음대로 지배하며 한 때 기세를 크게 떨쳤단다. 그 후부터 이곳을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근자에도 숲 속에서 마구, 활촉, 칼등 쇠붙이가 발견되어 옛 전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전설인 "황호랑이 막터"(산지 43호 게재)도 샘터에서 동편 피아골 쪽으로 절벽 밑에 있으니 찾아보기에 힘들지 않다.


‘山’지 74년-3월호


달궁의 전설


 오랜 옛날에 우리 민족이 부족국가사회를 이루고 서로 대치하던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에 부족 상쟁으로 크게 전쟁이 일어난 때가 있었는데, 이 때 마한의 대군에 쫓긴 진한 왕이 위급하게 되자 난리를 피하여 문무백관과 비빈궁녀들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외적을 막으며 오래도록 피란생활을 하였다 하며 그 때 그 임시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노고단에서 발원한 계류가 반야봉을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는 그윽한 절경에 자리 잡고 있는 심원 달궁은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이고 보니 이곳이 소수로서 다수의 적을 막기에는 안성맞춤의 천혜의 요해지였으리라.

 

그 당시 진한왕은 달궁을 방비하기 위하여 서쪽 10리밖의 영마루에 정장군을, 동쪽 20리 밖의 영마루에 황장군을 그리고 남쪽 20리 밖의 산 정상에는 3명의 각성바지 장군을, 또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마루에는 8명의 젊은 장병을 배치하여 땅의 이로움을 얻어 일당백으로 외적의 침공을 막아냈다 하여 정령재, 황령재, 삼성재, 팔랑재의 이름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애환 어린 전설의 고장 달궁 마을에도 이제는 40여호의 화전민이 정착한지 이미 오래며 옛날의 궁터는 찾아 볼 길이 없다.


‘山’지 73년-7월호


칠불암의 전설


 칠불암은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의 오랜 옛날에 가락국의 수로왕이 입산수도하여 성불한 그 아들, 칠형제를 위하여 건설한 암자로서 높은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처음에 운상암이라 불렀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도승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해동에서 제일가는 대선원으로 손꼽게 되었으며, 특히 대 선방으로서 아자방이 갖는 그 구조의 신비성 때문에 더욱 유명하거니와 아래와 같은 전설은 남기고 있다.

 

옛날에 서천 월씨국 보옥선사께서 그 누이를 데리고 인도양을 거쳐 바다로 건너와서 김해 가락국 김수로왕과 결혼을 시켜 뒤에 아들 십형제를 두게 되었다.

 장자는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허왕후의 후사가 되고, 넷째로부터 열째까지지 칠형제는 선사를 따라 처음에 가야산에 입산수도하였다가 뒤에 다시 지리산으로 옮아가 좌선수도한지 수년 만에 칠형제가 다 같이 도통하여 부처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매우 기뻐하여 성불한 아들 칠형제를 위하여 쌍계사에서 약 8Km떨어진 토끼봉 남쪽 기슭의 높은 대에 암자를 지으니 이곳에서 칠형제가 모두 같이 성불하였다하여 칠불암이라 부르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성불한 칠형제는 속세와는 완전히 모든 인연을 끊고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모후인 그 어머니가 아들이 보고 싶어 출가한 칠형제를 만나 보려고 불원천리하고 지리산의 심산유곡을 더듬어 온갖 고생 끝에 칠불암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불법이 엄하여 속인은 일체 신성한 선원에 들어갈 수 없으니 비록 모처럼 찾아간 그 어머니라 할지라도 예외 일 수 없었다.

 칠형제를 만나볼 길이 없어 여러 날 동안 선원 밖에서 안타까이 서성거리던 그 어머니는 애타는 심정에서 칠형제 아들들의 이름을 차례로 목메어 불러보았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아들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오는데 "우리들 칠형제는 이미 출가 성불하여 속인을 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어머니께서는 과히 섭섭하게 여기지 마시고 그대로 돌아가시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음만 들어보아도 반가웠으나 그러나 그 모습을 보지 못함이 너무나 슬퍼서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다고 애원하듯 다시 간청하여 보았더니 또 들려오는 말이 정히 그러시다면 선원 앞 연못가로 찾아오란다.

 

그 어머니는 이제야 만나보게 되는구나, 기뻐하면서 연못가에 당도하여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조용하기도 한데 연못 수면을 살펴보니 이상한 일이다.

 뜻밖에도 성불한 아들 칠형제가 합장하고 나란히 서 있는 근엄한 모습이 거울 같은 물속에 완연히 비추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성불한 아들들이 도력으로 효심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이에 감격한 어머니는 아들 칠형제의 훌륭하게 성불한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었으나 그러나 잠시 후에 그 모습이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애환 어린 연못은 그때부터 영지라 부르게 되었단다. 또한 신라 경덕왕 때 사찬 공영의 아들 옥보고는 지리산 운상암(칠불사)에 들어가 거문고를 연구한지 50년 만에 스스로 34개의 신곡을 작곡하여 신묘하게 타니, 현학이 날아와서 그 거문고 소리에 맞춰 춤을 너울너울 추는지라 이에 거문고를 현학금, 또는 현금(거문고)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하여 온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또 유서 깊은 해동 제일의 대 선원 지리산 칠불암이 6.25 동란 때 애석하게도 병화를 입어 당우가 소실되고 없어졌으며, 지금은 영지의 폐허 속에 잡초만 무성하여 제상이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할 뿐 숲 속에서 구슬피 울어대는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더욱 처량하게 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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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악회의 지리산 보호활동


천은사 뒤 골짜기의 소나무 숲을 벌목의 위기에서 구하다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지정 이후 대대적인 도벌은 근절되었으나 소규모의 도벌은 끊이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전라남도청 산림과(영림과)직원이 지리산악회에 편지를 보냈다. 어떤 사람들이 천은사 뒤 소나무를 베기 위하여 신청을 하였는데 허가를 해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니 지리산악회에서 제지를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종수회장님은 구례군청에 내용을 확인해 봤더니 사실로 확인되었다. 우회장님은 구례군,전라남도, 건설부에 진정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지리산의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는데 나무를 베어낸다면 국립공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허가를 취소해줄 것을 진정하였다.

 

 며칠 후 구례경찰서의 경찰이 우회장님에게 찾아와 경찰서장님이 보자고 한다면서 경찰서로 함께 가자고 하였다. 경찰서장실로 들어가니 서장님과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들어가자 마자, ‘야이 새끼야 필요 없는 소나무 베어내고 좋은나무 심으려고 하는데 네놈이 뭘 안다고 진정서를 내고 그래 이 새끼야 하면서 곧 주먹질을 할 것처럼 호통을 쳤다고 한다. 우회장님은 침착하게 당신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받을 때는 산림을 보호하려고 온 군민이 나서서 지정받았는데  나무를 벤다면 구례군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나도 우리지역 국회의원과 대통령각하에게 부당함을 호소하겠소, 그러니 나무를 베는 것을 단념하시오 하고 말하니. 한 시간쯤 화를 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하더니 서장에게우리는 바빠서 갈 테니 ‘당신이 책임지고 이사람 설득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시오. 하고는 갔다고 하였다.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서장님이 ’우회장님 그분들은 중앙정보부 분들인데 내가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으니 반대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하더라는 것이다. 우회장님은 이 일은 이미 지리산악회 회원들과 국립공원추진위원으로 참여한 유지분들이 알고 있는 사항이니 누가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서장님은 그분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해주십시오 하고 경찰서를 나오셨다고 하였다.  며칠 후  벌목허가가 취소되었다고 전라남도의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성삼재 위의 숲을 보호하다.


1970년대 초 노고단 산장지기이며 지리산악회 부회장이신 함태식씨가 우회장님을 찾아와 노고단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부식을 공급하는 차가 노고단을 올라오는데 (당시 비포장도로가 개설되어 트럭은 다닐 수 있었다) 부식을 실은 차가 올라올 때가 되면 군인들이 소나무,전나무,구상나무같은 나무들을 베어 놨다가 빈차로 내려갈 때 그 나무들을 싣고 내려와 제제소에 팔아 먹는다고 하면서. 좋은 나무들이 많이 베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우회장님은 함태식씨에게 부식을 운반하는 차가 노고단에 올라오면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부탁하여 차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알려주면 하산하는 차를 적발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얼마 후 한 등산객이 함태식씨의 쪽지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보급차량이 노고단에 올라왔다는 소식이었다. 우회장님은 즉시 지리산악회 회원 몇 명을 소짐하여 함께 구례군 광의면 파출소에 가서 경찰에게 노고단에서 도벌을 하여 나무를 싣고 내려오는 차가 있으니 적발을 하러 가자고 하여 경찰 두 명과 함께 천은사 앞에서 기다리니 과연 보급 차에 벌목한 나무를 가득 싣고 내려왔다고 한다. 경찰들에게 군인들의 차라는 얘기는 안했었는데, 군인들 차이고 보니 군인들이 어쩌다 한번 나무를 싣고 오는 것이니 다시는 나무를 베어 싣고 가는 것을 않기로 하고 그냥 갑시다 하더라고 했다. 우회장님은 여보시오 당신은 경찰이니 구례경찰서에 사실대로 보고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찍은 사진을 첨부하여 상급기관에 진정서를 내겠소. 하고는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날 그 부대의 연대장이 지리산악회를 찾아와 부대의 부식이 열악하여 나무를 팔아 몇 푼의 돈으로 부식을 사려고 한 일이니 용서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도로위에는 굵은 침엽수가 거의 없는데 그 당시 군인들이 베어낸 탓이라고 한다.


지리산악회는 국립공원 지정이 후에 지리산의 자연을 보호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78년에는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와 함께 ‘지리산사향노루 특별보호 위원회결성대회’를 개최하고 우종수회장님이 위원장으로 취임하셨으며,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와 함께 섬진강 수달서식실태를 조사하였고, 1980년에는 ’섬진강보호회(회장 우종수)‘를 결성하여 섬진강의 수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연하반과 지리산악회의 자료를 다 점검하지 못하여 상기 내용은 제가 아는 대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차 후에 우회장님이 남겨 놓으신 자료를 모두 정리하여 보완해 보려합니다.


사진 몇 장을 올리면서 연하반 지리산악회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지리산 반달곰이야기를 연재하겠습니다.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받으면 지리산의 숲을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준 김헌규박사(좌), 우종수회장(우)

 

1970년대(?) 우로부터 다섯번째 신업재(부산산악인)씨를 안내하여 지리산을 종주하여 구례에 온 허우천씨(우 첫번째분)(우,두번째 양한익 이사님) (우, 네번째 우종수 연하반 총무님)(좌, 네번째 손재훈 연하반 회장님)(좌,첫번째 김태준씨)(좌, 두번째 안기호씨)

 

                                                                               연하봉

 

1974년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시 많은 노력을 하신 박창권씨(위, 카메라 건설부근무)아래 좌, 우회장님 (우, 함태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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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재생기간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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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두번째 우두성, 우측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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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jiris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1.21 감사합니다^^
  • 작성자주리정 | 작성시간 15.12.23 길지만 지리산 지도를 펼쳐두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종주전에 읽고 올랐으면 더 즐거웠을텐데 싶네요 ㅎㅎ재미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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