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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이야기-6

작성자jirisan|작성시간18.12.03|조회수115 목록 댓글 0

19961014일 하동군 화개면으로 탐문을 나갔다. 화개면 범왕리 목통부락 김봉래 이장님을 찾아가서 최근에 마을 사람들 중 산에서 반달곰을 본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다.

함께 계셨던 이장님 부인께서 봄에 연동골(칠불사 좌측으로 올라가는 골짜기)로 수액채취 작업을 하러갔다가 직접 반달곰을 봤다고 했다.

2월초에 이장님 부부와 아들등 5명이 고로쇠 수액채취를 위해 연동골에서 작업을 했는데 아들이 곰이다 곰이라고 큰소리를 쳐서 봤더니 작은 반달곰 한 마리가 도망을 가는 것이 보였다고 하였다.

아들은 수액채취를 위해 고로쇠 나무에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가까이 큰 신갈나무에서 진돗개 크기의 곰이 내려와 도망을 가서 곰이다 곰이라고 외쳤다고 했다.

곰을 본 사람은 아주머니와 두 아들이었다.

김봉래씨 부인은 해마다 곰이 열매를 따먹으려고 나뭇가지를 꺽어놓은 것을 보았으며 어떤 해에는 도시락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작업을 하다 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찾으니, 나뭇가지에 걸어둔 도시락을 곰이 먹어버려서 배가고파 혼났다는 얘기도 했다.


                 1996년 가을에 발견한 어린곰이 나무에 올라가면서 남긴 발자국.

                 발자국의 크기가 직경 6cm로 1995년 봄에 태어난 곰이 1955년 가을에

                 나무위에 올라가면서 남겨진 족적으로 추정됨.


김봉래씨는 20여 년 전 칠불암 아래 범왕마을에 사시는 분이 산에서 곰에게 공격을 받아 죽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범왕에 사시는 두 분은 삼촌과 조카사이인데 버섯을 채취하러 산에 갔었다고 한다. 삼도봉에서 칠불암으로 뻗어 내린 능선으로 올라 좌측 연동골 상류로 들어가는데 앞에서 곰이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먼저알고 도망을 갔다고 한다. 삼촌되는분이 곰이 가로질러 도망을 가는 것을 보고 곰이다 곰하고 소리를 지르니 도망가던 곰이 뒤돌아 쫒아와서 앞에 있던 삼촌 되는 사람을 덮쳤다고 한다. 조카는 놀라서 산 아래로 뛰어서 도망을 했는데 다행이 곰이 쫒아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을에 내려와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곰이 삼촌을 덮쳤던 곳을 가보니 삼촌은 넓은 바위에 누워서 죽어있었다고 한다. 곰이 발톱으로 할퀴어 상처가 있었지만 죽을만한 상처는 아니었는데 곰의 공격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곰은 시체를 훼손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김봉래씨는 매년 고로쇠채취를 위해 산에 가면 곰의 흔적을 보아왔고 마을사람들이 가끔 곰을 보았다는 얘기도 들리기 때문에 지리산에 반달곰이 제법 살아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린곰이 1995~1996년 겨울잠을 잦던 신갈나무 수동굴

 

그동안 탐문도 다니고 직접 조사도 했지만 그해에 직접 반달곰을 목격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목격된 반달곰은 어린개체로 2월에 목격되었으니 1995년 초에 태어난 곰으로 추정되었다.

이장님에게 곰을 목격한 장소를 안내해줄 것을 부탁하였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여서 다음날 우두성, 유판열, 김인동 세 사람이 이장님과 함께 연동골 반달곰을 목격한 장소로 갔다.

곰이 내려와 도망을 갔다는 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액채취인들은 매년 고로쇠 나무에 구멍을 뚫고 수액채취를 위한 호스를 연결하는 등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채취하는 고로쇠나무가 몇 주인지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곰이 내려온 신갈나무도 그 옆에 있는 고로쇠나무를 기억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곰이 내려왔다는 나무는 생각보다 큰 나무는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에 희미한 곰의 발톱자국이 보였다. 발톱자국은 곰이 내려오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김인동씨가 나무를 세심히 살피다가 유판열씨의 어깨를 밟고 나무위로 올라갔다. 신갈나무는 약 2m30cm정도 곧게 자라다 오른쪽으로 굽어있었다. 김인동씨는 굽은 지점에 올라가더니 오래전에 한 가지가 썩어 위에서 구멍이 생겼는데 반달곰이 그 수동굴에 있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나무에 구멍을 뚫으며 시끄럽게 하니 구멍에서 나와 도망을 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필자도 나무위에 올라가서 그 수동굴을 촬영하였다. 그 구멍은 약 직경 36cm로 매우 작았다. 이렇게 작은 구멍에 반달곰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후에 일본 곰 전문가인 마에다 가츠히코씨는 입구는 작지만 수동굴 안은 더 넓으며 곰의 머리만 들어가면 들어간다고 했다. 곰은 수동굴이나 바위굴에서 동면을 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몸이 어렵게 들어갈 수 있는 굴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큰 굴은 덩치가 큰 적이 침입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대를 정밀 조사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층층나무에 어린 곰이 올라간 생생한 발톱자국이 보였다. 그 발톱자국의 가로 6cm였다. 그 주변에서 그해(1996) 9월 달쯤에 도토리를 따먹기 위해 신갈나무 가지를 꺽어 놓은 것이 보였고 그 신갈나무에 큰곰이 오르내린 발톱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겨울에 낙엽이 다 지고 나면 반달곰이 신갈나무,층층나무,산벚나무등의 열매를 따 먹기 위해 가지를 꺽어 놓은 것은 낙엽이 지지 않고 나뭇잎이 가지에 그대로 붙어있다. 그래서 낙엽이 다 진 숲을 조사할 때는 나무위에 낙엽이 붙어있는 나뭇가지가 있는지 조사를 한다. 낙엽이 지지 않고 붙어있는 가지가 보이면 접근해서 그 나무 가지가 태풍으로 꺽어졌는지 곰이 도토리나 벚찌.산뽕나무 오디. 층층나무 열매등 견과류나 장과류를 먹으려고 휘어잡아 꺽어졌는지 살핀다. 바람에 꺽어지면 나뭇가지가 찢어지는 모습이고 곰이 꺽으면 부러지는 형상이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곰이 꺽은 가지가 보이면 그 나무아래에도 꺽어져 나뭇잎이 붙어있는 가지가 있기 마련이라 곰의 식이흔적을 판단할 수 있다.

나무위에 꺽은 가지를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쉬기도 하는 데 그것을 상사리라고 한다. 상사리를 만들면서 또는 열매를 먹기 위해 꺽은 가지를 다 먹고 버리기도 하는데 나무 에 걸쳐있거나 그 나무아래 떨어져 있기도 한다.

산에 갔다가 곰이 나무위에서 열매를 먹기위해 가지를 잡아 당겨서 꺽어진 나뭇가지를 쌓아놓은 것을 상사리라고 하는데 곰이 상사리를 매놨어라고 표현한다.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서로 묶어놓았다는 표현이다. 상사리의 어원은 곰이 상수리(도토리)나무위에 나무가지를 꺽어서 쌓아놓은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확실한 곰의 서식흔적을 발견하고 들뜬 마음으로 그 일대를 정밀 조사하다 보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하산을 서둘었지만 산계곡은 어둠이 빨리 왔다. 언제나 후래쉬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하산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반달가슴곰 서식실태조사와 밀렵구제거 활동.

사진 좌 우두성,정진오,천명준, 김송식(구례군 의회의장 2018년),백순기,유판열,최동기,백성주


사무실에 오니 문화일보 이정세 기자님이 와 계셨다. 지리산에서 반달곰 서식실태를 조사하고 밀렵구를 제거 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차 왔다고 하였다.

 

다음날(1996,10,16) 다시 우두성,유판열.권재헌,백춘기,최수원이 이정세기자와 연동골로 가서 전날 발견한 곰의 족적과. 식이흔적등을 이정세기자에게 보여주고 흩어져서 또 다른 흔적들을 수색하였다. 이정세기자는 사진 전문가답게 곰의 흔적을 꼼꼼히 촬영하였다.

 

                                                     권재헌, 최동기, 우두성

19961019일에는 구례군 광의면 연 파리 하대마을에 사시는 이민선씨를 찾아갔다. 이민선씨는 당시 60세쯤 되어 보였는데 어렸을때부터 농한기에는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러 다녔다는 분이었다. 이민선씨는 같은 마을에 사는 김영감님(당시 79)을 따라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러 다닌지가 7~8년쯤 되었는데 1994년 여름에 차일봉 아래 장태골과 삼도봉 북사면에서 아주 큰곰을 직접 보기도 했다고 하였다. 김영감님은 가족도 없이 혼자 사셨는데 평생을 농사도 안 짖고 지리산에서 산나물이나 약초를 캐어 생활하시는 분이라고 하시면서 김영감님에게 물어보면 곰에 관하여 많이 아실 것이라고 하였다. 김영감님 댁에 갔더니 출타 중이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쯤 다시 방문했더니 혼자 식사를 하고 계셨다. 깡마른 체구의 김영감님은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조그마한 상에 밥과 시래기 된장국, 배추김치, 무김치와 종지그릇에 생된장이 있었고 상옆에는 통나무 도마 위에 삶은 두터운 돼지고기에 놓여있었다. 식사를 하지 않았으면 함께 먹자고 하셨다. 식사를 하고 왔다고 사양하고 이민선씨의 소개로 여쭈어 볼게 있어서 왔다고 하면서 식사를 마저 하시라고 했다. 김영감님은 돼지고기를 칼로 두텁게 썰어 된장을 찍어서 밥과 함께 드셨다. 밥 한 그릇과 제법 많은 돼지고기를 천천히 드셨다. 평생 산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산 숲처럼 조용한 성격이었다. 말씀도 조용조용하셨다.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980년대까지는 곰을 자주 봤었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 여름에 심원계곡에서 세 사람이 야영을 하는데 모닥불을 피워서 밥을 해먹고 있는데 멀리서 곰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함께 있던 사람이 장난으로 곰이 우는 소리를 흉내 내어 소리를 쳤다고 한다. 잠시 후에 숲에서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큰 곰이 나타났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본 반달곰은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더라고 하셨다. 약초를 캐러 지리산에 가면 보통 56일쯤 야영을 하는데 여름에는 종종 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셨다. 1995년에도 차일봉 아래에서 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시면서 곰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1970년에는 이포수(서울출신이며 지리산에서 빨치산 토벌을 하는 경찰출신)가 심원계곡에서 곰을 쏘았는데 설맞은 곰이 이포수를 덮쳐 발이 부러지고 온몸을 물려 크게 다쳐서 몰이꾼들이 메고 나왔는데 다행이 회복되어 구례를 다시 왔었다고 했으며, 같은 동네 살았던(구례 연파리) 양포수라는 분이 천은사계곡 복성봉 아래에서 이른 봄에 곰을 한 마리 잡았는데 어린 새끼 곰이 두 마리가 죽은 어미곰 옆을 떠나지 않아 생포하여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우리는 그동안 조사된 반달곰 서식실태를 환경부에 보고하고 보호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정세기자는 신문사에 좀 더 취재하겠다는 허락을 받고 계속 구례에 머물며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정세 기자님의 협조로 그동안 조사한 반달가슴곰의 서식실태에 관한 내용과 밀렵구가 설치되어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19961025일 환경부에 발송하였다. 그동안 취재한 문화일보는 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지리산에 서식하는 발달곰의 실태를 발표하는 날 동시에 신문에 발표하기로 약속하였다.

 

 

한편 권재헌씨는 C씨의 협조로 불무장등 서사면을 조사하여 곰이 꿀을 먹기 위해 꿀벌이 사는 나무를 찢어놓은 흔적을 발견하고 사진촬영을 했다.

그 나무를 찢어놓은 흔적은 큰 곰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은 곰이 나무에 벌이 사는 것을 발견하면 그 나무를 파내어 벌꿀이나 벌집, 벌의 애벌래를 먹기 위해 잊지 않고 있다가 몸집이 커지면 기어이 그 벌집을 파내어 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벌꿀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권재헌씨가 촬영해온 곰이 벌이 살고 있는 나무를 꿀을먹기 위해 뜯어낸 흔적은 큰곰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흔적이었다.

 

  곰이 나무가 썩어 생긴 나무굴에 사는 벌지의 꿀을 먹기위해 나무를 물어뜯어 찢어놓았음. 나무를 이처럼 뜯어놓은 것은 곰만이 할 수 있는 흔적임 1996년 발견함 



                                              오래된 반달가슴곰의 족적


19961031일 환경부에서는 지리산에 반달가슴곰 5~6마리가 살아있다는 것과 밀렵에 의해 멸종될 우려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문화일보에서는 같은 날 지리산반달곰 멸종위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의 전면에 대서특필하였다.

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살아있다는 것을 발표하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행되고 있던 밀렵실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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