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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이야기-2

작성자jirisan|작성시간12.10.10|조회수137 목록 댓글 0

피아골 이야기-2

 

피아골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직전부락이다.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직전부락 산아래첫집까지 포장도로이다.

승용차는 산아래첫집 직전의 통제선 까지 오를 수 있다.  선유교를 건너면서 계곡 길이 시작되는데 선유교 건너 표고막터를 지나 울창한 숲과 계류를 끼고 오르는 피아골 대피까지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피아골대피소에서 왼쪽으로 질매재로 오르면 문수대를 거쳐 노고단으로 오르며(등산로폐쇄) 대피소 우측으로 5분쯤 오르면 불로교 지나 용수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계속 계곡 길을 따르면 용수암을 거쳐 삼도봉으로 올라서고, 왼쪽 지능선 길을 오르면 임걸령 서쪽 안부 삼거리로 이어진다.

삼거리에서 임걸령까지는 약 2.5km로, 매우 가파른 길이다. 폭우에 의해 많이 파여 나간 구간을 따라 나무계단으로 만들어놓았지만, 계단 턱이 너무 높아 한발 한발 오를 때 마다 힘이 많이 드는 길이다. 내려올 때도 무릎과 허리에 충격을 주게 되니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산행을 많이 한 분들이 나이 들면 무릎과 허리가 좋지않아 고생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무거운 배낭을 지고 내려올 때 급히 내려오면서 허리와 무릎에 충격을 많이 주어 그렇다. 산행시에는 귀찮더라도 스틱을 가지고 다녀 허리와 무릎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 하는 것이 좋다.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 고갯마루까지 체력과 지구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1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너무 한 번에 오르려 하지 말고 쉬엄쉬엄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하반은 1966년 피아골 상류 노고단에서 문수대를 지나 질매재-피아골 삼거리(현 대피소)-직전부락코스를 개척하여 이정표를 설치하였고, 노고단에서 대판봉을 지나 임걸령 못미처에서 피아골 삼거리코스는 1971년에 개척하였다.

 

                                      노고단에서 KBS방송국 중계소앞 으로 피아골 가는 길에 있는 문수대입니다

 

피아골 하류 연곡천은 화개천과 함께 지리산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하천이다. 섬진강을 통로로 바다와 연결 되어있다. 지리산 북부 엄천강, 경호강은 진주 남강댐에 막혀 바다에서 강과 계류로 또는 역으로 이동하며 서식하는 어류들의 이동이 차단되었지만 지리산 남부의 서시천, 화엄천, 문수리 덕은천, 피아골 연곡천, 화개천은 섬진강을 통하여 바다로 열려있어,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은어, 황어, 참게, 뱀장어, 농어 같은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3월말경 지리산에 봄비가 와 섬진강의 수량이 늘어나면 바다에서 사는 황어들이 산란을 하기위해 섬진강을 오른다. 황어들은 섬진강에서 산란을 하는데 연곡천과 화개천 입구도 중요한 산란처이다. 산란은 밤에 이루어지지만 아침까지 계속된다. 연곡천 맑은 물에서 수많은 황어 무리들이 산란을 하는 광경은 경이롭다. 황어가 산란을 하면 계류에 사는 어류들이 황어 알을 먹기 위해 분주하다. 바다로부터 오른 황어는 겨우내 꽁꽁 얼었던 섬진강과 지리산을 깨운다. 황어들은 산란을 하면서 서로 암컷을 찾이 하려 몸싸움을 하다 물밖으로 튀어 나와 죽기도 한다. 삵,너구리,족제비는 물가를 어슬렁거리다 죽은 황어를 물고 가거나, 직접 얕은 물에 들어가 사냥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지리산의 반달곰들이 황어를 사냥하는 것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황어는 바다의 에너지를 지리산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계류에 살던 은어가 9-10월에 강에서 산란을 하면 부화된 새끼가 바다(기수면)로 내려가 살다가 다음해 4월경에 강을 거슬러 올라 강과 계류에서 서식한다, 피아골 깊숙이 살고 있는 생명들이 바다와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강들이 오염되었거나 강 하류에 댐이 축조되어 바다와 연결되는 하나의 자연생태계가 단절되고 있지만 피아골 연곡천은섬진강을 통하여 바다와 열려있어 자연생태계의 연결고리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지리산 계곡 수는 수량이 풍부하고 깨끗하여 상류에서 오염되어 흘러온 섬진강에 합류하면서 섬진강물이 현저히 깨끗해진다. 피아골 연곡천 수계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쉬리, 꺽지, 자가사리들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섬진강 수계중 지리산 계류는 수  생태계의 보고다.

 

1998년 큰 홍수가 났을때 피아골 계류의 입구인 외곡부터 국립공원 경계지점 하천에는 수해복구 공사를 하면서 계류의 돌을 들어내 시멘트를 발라 양안에 축대를 쌓았다, 자연하천의 아름다움과 자연 생태적 가치를 모르는 지자체들의 무지의 소산이다. 어찌 지자체들만을 탓할 수 있으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런 환경 훼손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조원의 예산을 들여 청계천을 복원하고 있는 시점에 오히려 돈을 들여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우리의 현실이다. 가까운 미래에 연곡천은 복원 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자연 생태적 소양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무더운 여름 도시에서 열대야 현상으로 잠을 설친다는 뉴스가 전해지는 날 밤에는 피아골 계류에서 오래 목욕을 해도 춥지 않고 시원하다. 연중 기온이 높은 며칠쯤은 오래 몸을 담글 수 있다, 국립공원 지역 내에는 목욕이 금지되어 할 수 없지만 국립공원지역 밖에서는 할 수 있다. 피서 철에는 연곡천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사용한 비눗물이 쌀뜨물처럼 흐르기도 한다. 무심코 저지르는 일이지만 어류들에겐 치명적이다. 비누만 사용치 않는다면 어류들도 인간의 목욕을 반겨줄 것이다. 인간들의 때는 어류의 훌륭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무더운 초저녁 산간 계류에서 세상을 훌훌 벗고 목까지 잠겨서 계곡을 가로로 흐르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면. 귀신새(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서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수리부엉이의 우~억 우~우억 계곡을 울리는 울음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일상의 틀 속에 묶여 살던 조급함을 버릴 수 있다면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지리산을 사랑하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지리산의 깊은 맛이다.

 

                                                        피아골 대피소 앞에서 함선생님과

피아골에는 함선생님이 오래 사셨다. 현재 피아골 산장지기인 함태식씨는 구례에서 천석을 하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학교를 나오신 분으로 풍모도 걸출하시고 성격이 호방하신 분이다. 1973년 지리산악회의 권유로 노고단 산장에 산장지기로 입산한 후 지금까지 지리산에서 사셨다. 연하반의 회원으로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 함선생님은 연하반이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등산로를 개척할 때 함께하여 천왕봉에서 천주(천왕봉 서쪽 암벽에 음각되어 있음)를 우연히 처음 발견하였고, 국립공원 지정 운동 때도 일익을 하셨다. 노고단 산장지기를 하실 때 올바른 등산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산에서는“조용히” 깨끗이“를 실천하기 위해 야영지에서 기타를 치거나 카세트 녹음기를 트는 사람들에게는 불호령을 날리는 지리산 호랑이였다. 1974년 지리산악회에 노고단 ”산나리(원추리)잔치“를 제안하여 노고단의 원추리 군락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필자가 1회 산나리 잔치에 참석했을 때는 하늘의 별자리를 설명해주고 밤에 운해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기도 하셨다. ”노고단 운해를 보시다가 “운평선“ 이라는 신조어를 만드시기도 한 함선생님은 지리산악회 부회장으로서 지리산을 보호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셨다. 당시 노고단에는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에 ”국토건설단“들이 닦아논 비포장 길이 노고단까지 나있어 군인들의 부식을 보급하는 군용 트럭이 한 달에 한 번씩 노고단을 올랐다. 군용 트럭이 내려올 때 군인들이 성삼재-노고단 구간에서 미리 베어놓은 아름들이 나무들을 싣고 내려와 재재소에 팔아 먹었다. 함태식씨는 이러한 정보를 지리산악회에 알렸다. 우종수 회장님은 군용트럭이 노고단에 올라오는 날 하산하는 등산인편에 쪽지를 보내 연락해 주도록 하였다. 몇 일후 등산인이 함태식씨의 쪽지를 가지고 왔다. 우종수회장님은 지리산악회 회원들 몇 명을 소집하여 구례 광의면 파출소로 가서 군인들이 노고단에서 도벌한 나무를 싣고 내려오고 있으니 함께 가서 적발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역시 군용트럭 가득히 나무를 싣고 내려왔다. 구례 경찰서에서는 적발은 했으나 난감한 표정이 역역했다. 당시는 군인들의 위세가 막강했던 시절 탓이다. 다음날 노고단 주둔군 연대의 연대장이 지리산악회를 찾아와 다시는 나무를 베지 않겠다고 사과하면서 취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현재 성삼재-무넹기 구간의 오른쪽에는 큰 나무들이 없다. 길로 끌어 내리기가 쉬워 당시 군인들이 큰 나무를 베었기 때문이다. 함선생님은 노고단 산장지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 등산문화의 틀을 잡아나갔다.

 

1970년대 초부터 1988년 천은사~성삼재~노고단 도로가 포장되기 전까지 노고단산장은 지리산의 꽃이었다. 많은 유명인들이 노고단을 찾았고 함선생님은 훌륭한 지리산 안내인 역할을 하셨다. 함선생님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노고단에 대피소를 신축하고 직영하기로 결정되면서 1988년 피아골 산장으로 옮기셨다. 1996년 필자가 지리산악회 젊은 회원들을 주축으로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를 결성하고 반달곰등 지리산권의 자연생태계보호활동을 시작한 이후 함선생님은 격려의 전화를 주셨다. 필자는 피아골 부근에 조사를 나가면 산장에 들려 함선생님을 뵙고 와야 마음이 편했다. 2002년 늦은 가을 피아골 산장에 들렸다. 함선생님은 겨울을 나기위한 땔감을 마련하느라 바쁘셨다. 함선생님은 산장 옆 식당겸 차실인 무애막에 들어오라고 하시더니, 손수 원두차를 끓여 내놓으시면서 이 커피는 “블루 마운틴”인데 두성이가 왔으니 특별히 좋은 커피를 대접한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옛날 함선생님이 산에 다니시던 얘기를 듣다가 출발했는데, 배웅을 해 주시면서 산장 앞 철다리 끝에까지 오시더니 내가 사람들을 배웅할 때 철다리 끝까지 배웅을 하는데 오늘은 한걸음 더해야겠다고 한걸음 더 놓으시면서 하얀 긴 수염이 흔들리도록 파안대소를 하셨다. 연하반 초창기 맴버중 지리산에서 활동하는 마지막 분인 함선생님의 건강을 빌면서 하산을 서둘렀다.

함선생님은 지리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신 분으로 지리산에 잠들기를 원하신다. 필자에게 “나 죽으면 화장해서 이곳에 뿌려줬으면 좋겠네” 하시던 함선생님은 2009년 피아골 대피소에서 내려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생활하셨는데 2011,12,15일 인천에 사시는 둘째아드님 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피아골 입구에는 무수히 많은 계단식 논이 있다,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확보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저수시설이 없었던 시절에는 한해가 들면 초근목피를 먹으며 살아야 했다. 피아골은 계곡이 깊고 넓어 물이 풍부하다. 평야지대에 극심한 한해가 들어 농산물 수확을 못해도, 피아골 같은 골짜기에서는 종자는 수확할 수 있었다 한다. 피아골 비탈진 계곡에는 계류를 따라 무수히 많은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땅을 한 뼘이라 도 더 넓히려고 직각으로 석축을 쌓았고, 비탈진 땅이 수평을 유지하면서 더 넓게 하려면 석축의 높이도 높아야했다. 따라서 석축의 높이가 3m를 넘는 곳도 많이 있다. 인력으로 아무리 높게 석축을 쌓아도, 논배미는 올망졸망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논들은 생긴 모양에 따라 다랭이배미(다랑이), 꼬막배미, 삿갓배미라 불렸다. 피아골에는 이러한 계단식 논들이 100층을 넘는 곳도 있다. 굶지 않으려고 대를 이어 만들었을 노고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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