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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이야기-3

작성자jirisan|작성시간13.02.02|조회수371 목록 댓글 3

                                                                               묘향대 샘

 

반야봉 이야기-3


 화엄사 사적기에 따르면 연기조사(緣起祖師)는 이따금씩 연(鳶)(용의 머리에 거북이 등을 가진 상서로운 동물)을 타고 지리산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니다 반야봉을 주봉으로 정하고 이름을 반야(般若)라 명명했다고 한다.

 연기조사는 반야봉 동사면 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이름을 묘향대(妙香臺)라 하였다. 옛 부터 지리산에 영험한 기도처로서 지리산의 5대(臺)가 있는데 문수대(文殊臺), 묘향대(妙香臺), 서산대(西山臺), 무착대(無着臺), 관음대(觀音臺)이다. 묘향대는 6.25이후 화엄사의 도광스님이 복원한 이후 평전스님이 오래 사셨는데 19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수도하시는 스님이 길을 은폐하여 쉽게 찾지 못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묘향대를 찾는다. 지리산 암자 터 마다 좋은 샘이 있어 물맛을 자랑하지만 묘향대 샘의 물맛 또한 일품이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붕까지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샘은 맑은 물이 사시사철 넘치거나 줄지 않는다고 한다.


 묘향대 주변에는 금강굴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는데, 이 굴은 입구는 좁아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가면 굴이 매우 넓고 샘도 있어 화엄사의 스님들이 모두 들어가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난리가 나면 화엄사 스님들이 그 굴로 피신하기도 했는데 평소에는 입구를 막아놓았다고 한다. 이굴의 입구는 화엄사의 주지스님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때인가 화엄사 주지스님이 입구를 알려주지 않고 돌아가셔서 그 후 금강굴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 묘향대에서 수도를 하고 사셨던 평전스님은 반야봉 주변에서 금강굴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는데, 그때 곰이 겨울잠을 잔 흔적이 있는 굴을 두 개 보았다고 하셨다. 묘향대 주변과 심마니능선에는 많은 바위굴이 있다. 평전스님은 묘향대에 사시다 노고단 남사면에 있는 문수대에 토굴을 짓고 사셨으며, 천은사, 화엄사주지를 역임하셨고, 천은사계곡 상부의 수도암을 중건하신 스님으로 지리산 주변에 복원되지 않은 암자터를 찾아보는 취미가 있으셔서 1980~90년대에 필자와 함께 지리산 곳곳을 다녀보기도 했다. 6.25이후 폐허가 된 칠불암에서 통광스님(칠불사를 복원한 스님)과 함께 천막을 치고 사시다 묘향대로 옮겨 사셨던 평전스님은 구례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왔다가 밤길도 무서워하지 않고 돌아가셨던 분으로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지리산 곳곳을 잘 아셨다.  필자가 반달가슴곰 서식실태를 조사했을 때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분이다. 

 

                                                               묘향대

 

 하늘 아래 첫동네라 불리는 심원 마을은 동에는 지리산의 삼대 주봉 중 하나인 반야봉, 서에는 만복대, 남으로는 노고단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심원(深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지리산 관통 도로가 개설되어 접근이 용이하나 과거에는 지리산에서 가장 접근이 어려운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제의 압정을 피해 하나둘 모여들어 많았을 때는 약 100가구가 되었다고 한다. 여순사건과 6.25를 거치면서 모두 철수했다가 1958년부터 다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곳 주민들은 임산물 채취를 하거나 사냥을 하고 담배를 재배하는 등 전형적인 산간마을이었다. 1988년 지리산 횡단도로가 확포장 된 후 이 마을은 민박집과 식당이 하나둘 들어섰고 지금은 산간 마을의 면모는 사라지고 상업을 하는 마을로 변하였다.


 심원계곡 일원은 구상나무, 신갈나무 등이 극상림을 이루어 자연환경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자연생태계 보전을 위한 핵심지역이다. 반야봉 정상부에는 아직 초지가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이 나물을 뜯으러 다닌다.

 심원마을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은 국립공원 지정 전부터 나물채취, 고로쇠, 거자수 수액채취를 하여 소득을 얻고 있어 자연환경보호지역 지정 이후에도 허용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심원마을에서 장사를 하는 한 반야봉 일대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가 쉽지 않다. 1996년 환경부에서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려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필자를 찾아왔을 때 심원마을을 안내하여 심원마을을 이주시켜야만 지리산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심원마을에는 송어양식장이 있었고, 식당에서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흘려보내 초여름 갈수기 때는 심원계곡이 오염되어 달궁 마을 주민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나물 채취 등 임산물 채취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못했기 때문에 봄이면 관광회사에서 나물채취 관광객을 모집하여 심원계곡서 나물을 채취하게 한 후 잉여 나물은 백화점과 연결하여 팔아주기도 하는 실정이었다. 심원계곡 주변의 얼음골, 큰방아골, 작은방아골에서는 엄나무(엉개 나무) 순을 채취하기 위해 수많은 엄나무를 톱으로 베는 실정이었으며, 심원마을은 밀렵도 극심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반달가슴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심원마을 이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 지리산 관통도로는 언젠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거나 폐쇄해야 하는데, 심원마을을 이주시키지 않고는 관통도로를 통제하거나 폐쇄할 수 없으니 심원마을을 이주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심원마을 주민들도 90%이상 이주를 희망하고 있어 우여곡절 끝에 심원마을은 2014년 이주될 것으로 믿고 있다. 심원마을이 이주되면 심원계곡 일원은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노고단~심원마을, 임걸령~심원마을, 반야봉~심원마을은 영구 휴식년제 적용구간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매우 다행이다.


 

                                                             이끼폭포-하성목씨 사진-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예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맸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비만 내린다.


남부군 문화지도원이었던 최순희씨가 만들어서 부른 지리산 곡(哭)이라는 노래다.


“내가 왜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이라고 했는지 알아? 하루는 남부군이 노고단 근처에서 숙영을 했어. 다음날 반야봉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어. 동지들이 총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거야. 그 겨울 하얀 눈밭 위에. 알겠어? 그 붉은피…….”(진달래산천 조성봉씨의 인터뷰에서)

붉은 피가 눈 위에 철철 흘러 철쭉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고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1996년 가을 반야봉 정상부 일대에서 반달가슴곰 서식흔적을 조사하다. 반야봉 중봉에서 심원으로 내려오는 능선에서 몇 개의 탄피를 줍기도 했었다.  반야봉 인근에는 빨치산의 흔적들이 어느 곳보다 많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시인의 지리산 대표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안치환씨는 지리산을 매우 좋아하신다. 2006년 여름 안치환씨 가족과 필자의 가족이 함께  반야봉을 올랐다. 조기 축구를 하신 탓인지 체력도 좋으셔서 나보다 더 산행을 잘하셨다. 당시에는 인터넷에서 ‘안치환’을 검색하면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노래 파일을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소리바다에서 검색하여 자주 들었다. 필자는 안치환씨에게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언제 CD취입하느냐고 물었다.  안치환씨는 미국에 사는 지인이 이 노래는 타령조로 평소 부른 노래와는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취입 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아보였다.  필자는 반야봉을 가면서 개략적인 지리산을 소개하는 페이퍼를 만들어 안치환씨에게 드렸다. 그 페이퍼에는 필자의 아버님이 1972년에 정리하셔서 발표한 “지리산10경”에 관한 글도 있었다. 안치환씨는 9집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취입하셨다. 2010년 구례 산수유축제때 오신 안치환씨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처음으로 무대에서 부르셨다. 그 긴 곡을 외워 틀리지 않고 부르신 것이다. 안치환씨는 반야봉을 오를 때를 생각하시면서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축제에 참여한 구례분들은 환호했다. 안치환씨가 ‘행여~’를 부를 때 마다 지리산을 경험한 감동이 살아나 듣는 사람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것이다. 2011년 초에 인사차 문자를 보냈더니 ‘’지금 공연 중인데 행여~를 부를 차례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필자는 안치환씨가 지리산가수가 된 것에 대하여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지리산을 보전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반야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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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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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k2안나 | 작성시간 13.04.03 지리산행복학교에서 선생님글 먼저 읽고, 오늘 여기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글 진즉에 봤었더라면 지리산 산행이 훨씬 풍요로워졌을것 같습니다. 아는것 만큼 보인다는 ...., 몇해 전, 지리산종주를 마치고 하산해서 받은 '지리산국립공원 생일잔치' 초대장에 초대글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를 접했었는데요..."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는 글귀에 가슴저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 초대장이 우리집 식탁 유리 아래 끼워져 있지요. 앞으로 틈틈이 들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k2안나 | 작성시간 13.04.03 지난 주 30일 그곳에서 묵고 오미마을을 향해서 둘레길 걸었던 김석란입니다. 닉네임으로 모르실 것 같아서요~^^
  • 작성자jiris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28 지리산을 좋아하시는분을 만나면 오랜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지리산을 인연으로 오래오래 함께 지리산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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