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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귀신의 첫번째 사업

작성자김형선박사|작성시간16.02.17|조회수75 목록 댓글 0

돈 귀신의 첫번째 사업

돈 귀신의 첫 번째 사업

 

 

학창시절 필자는 공부와 담을 쌓았었다.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 말해두고 싶다. 하하. 다른 아이들이 국어·영어·수학 공부에 여념이 없을 때, 필자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홀로 누워 부자가 되겠다는 공상만 했던 시간이 더욱 많았던 거 같다.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펼쳐놓고 공부에 집중할 때에도 필자는 선생님 몰래 어른들이나 읽는 케케묵은 처세(실용)서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숨죽이며 읽었다. 필자는 또래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비록 그것이 학업에 도움이 안 되는 책이었지만 말이다. ‘경제성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 모를 사람들의 자서전,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자기 홍보용 책자들을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이 닳도록 읽었다. 칠판위에 적힌 난해한 공식과 암기해야 할 문장들은 도통 멀게만 느껴지는 반면에 성공 처세서, 자기계발서의 글귀들은 하나하나가 필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인 것 같아 너무나 재밌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일푼에서 홀연히 일어서서 아주 작은 시작을 일궈나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끝끝내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성공담을 읽을 때면 마치 필자 자신도 똑같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기분, 또 성공한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이 좋아서 계속해서 비슷한 종류의 책을 구해 읽었다. 쉽게 말해 성공에 중독된 것이었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이거나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난했지만 끝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는 데에 있었다. 이런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머릿속에서는 돈 생각이 간절해졌다.


 

중학생 때까지도 필자는 풍요속의 빈곤 상태였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정작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그랬듯이 부모님은 엄격하게 용돈을 정해주시고, 필요 이상의 여윳돈이라곤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필자가 쓸 돈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생겨났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이것저것을 팔아치우고 그 차액으로 용돈을 하기도 하고, 며칠 동안 책이나 오락기를 빌려주고 돈을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가기 위해 관람료가 필요해졌다. 영화를 보고 이것저것 먹고 마시려면 여윳돈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용돈을 주기로 하셨던 아버지는 당최 보이지를 않았고, 어머니는 마침 수중에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다.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래봤자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른 대안을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처세서와 성공사례담,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다보면 사람이 과하게 담대해지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 때의 필자가 딱 그런 상태였다. 필자는 무슨 일이든 성공시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었다. 성공에 취해 있던 필자는 돈이 필요했고, 결국 하나의 대안을 마련했다. 수중에 지니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작은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다. 원체 작아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한 분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500여명의 전교생들이 득시글거렸기 때문에 오전만 되면 매점의 모든 물품이 동나버리기 일쑤였다. 때문에 학생들은 오후가 가까워지면 돈이 있어도 빵 하나 사먹을 수가 없었다. 한참 많이 먹을 나이의 학생들에게 이런 현실은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필자는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높은 확률로 돈을 벌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는 그 길로 시장으로 달려가 그동안 모아뒀던 비상금을 깡그리 털어서 간식거리를 사들였다. 매점에서 파는 가격의 반도 안 되는 액수로 꽤 많은 양의 초코바, 작은 과자, 카라멜, 츄잉껌, 음료수 등을 살 수 있었다.

 

다음 날, 교실에서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작은 매점이 오픈되었다. 교실의 뒤쪽 구석에 각종 교구들을 보관하는 캐비닛이 하나 있었는데, 그 중 두 칸에 간식거리를 진열하고 매점보다 살짝 싼 가격을 써서 붙였다. 그리고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홍보를 부탁했다. 친구들의 입에 초코바 하나씩을 물려주자 녀석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번째 쉬는 시간이 돌아왔다. 필자는 캐비닛 앞에 자리를 마련하고 하나 둘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삽시간에 몰려든 학생들 때문에 잔뜩 가지고 온 과자들이 절반이나 동이 나버렸다. 우르르 몰려와 돈을 내미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애쓴 시간을 제외하면 5분 만에 거덜이 난 셈이었다. 남은 물량은 그 다음 시간에 죄다 팔렸다. 수중에는 어느새 투자했던 금액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이 들려 있었다. 그것으로 영화 관람료는 충분했지만.

필자는 갑자기 욕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돈으로 다시 한 번 더 장사를 하고 이걸 계속 반복한다면.’

 

필자는 이전보다 조금 더 판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번 돈을 모조리 재투자하기로 결심하고 이도 모자라 친한 친구들에게 투자비를 받았다. 그리고 혹시 아이들이 따로 더 찾는 물품이 있는지 일일이 조사해 구매리스트까지 작성했다.

 

그 다음날 투자비를 지원한 친구들과 함께 낑낑대며 물건을 나눠들고, 그 어떤 선생님보다도 일찍 학교로 등교했다. 만에 하나 선생님들에게 걸리면 바로 끝장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원칙을 여러 책에서 읽은 바 있던 필자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위험만큼 얻는 메리트가 확실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전날 한 칸만 사용했던 캐비닛을 전부 써야했다. 필자는 아래 칸에 보관하던 교구를 죄다 청소도구함으로 옮겨버리고 과자와 음료수를 가득 진열했다. 종류별로 진열해놓으니 학교의 매점보다 더 매점같이 느껴졌다. 확장운영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종류도 제한되고 값비싼 매점을 찾는 대신 박규남의 작은 매점을 찾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생각했던 그대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사업은 이틀도 못가서 끝나고 말았다. 웅성거리는 학생들을 본 선생님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현장을 덮친 것이었다. 결말은 씁쓸했지만 이때의 기억은 내 인생 최초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가끔씩 일이 고되고 앞날이 불투명하게 느껴질 때면 필자는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그러면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그려지고 그래, 그 정도의 패기도 있었는데 지금의 어려움이 뭐가 대수겠어라는 생각에 새로운 활력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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