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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작성자김형선박사|작성시간16.02.24|조회수91 목록 댓글 0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인터넷 기사를 읽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해외 토픽에 실린 기사였는데, 이탈리아의 어떤 20대 청년이 아버지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법원에 고소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에서는 당연히 부모님의 손을 들어주었고, 오히려 그 청년에게 부모님의 집에서 나가 자립하라는 퇴거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기사에 나오는 청년에게서 필자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중학교 3학년에 접어들면서 사춘기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의 사춘기는 이유 없는 반항, 괜한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반면 필자의 사춘기는 꽤나 현실적이었고, 명확한 편이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결국 또 돈 때문에 시작된 사춘기였다.

 







중학교 시절 내내 느껴오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중학교 3학년 여름에 폭발하고야 말았다. 대관절 내가 자식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냉정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용돈을 좀 달라고 했을 뿐인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한동안 삐져서 아버지가 건네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호되게 혼을 내셨다. 맞은 것도 억울했지만 그것보다 더 뼈아픈 것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혼자 꽁해 있다가 아버지는 돈도 많이 벌면서 왜 내게는 용돈 한 번 주지 않으시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해 결국 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실 생각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 큰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아버지는 강하고 또 엄한 편이었다. 평상시에는 자유 방목형으로 우리 형제들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도록 강조하시면서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는 확고한 선을 그어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를 훈육하셨다. 아버지는 예의와 도덕, 특히 웃어른에 대한 공경을 중요시했으며, 유독 경제관념에서 흐트러짐이 없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예컨대 졸부들이나 보일 법한 방만함과 오만함을 경계하셨던 것이다. 혹시나 자식들이 몇 푼 안 되는 돈에 휘둘려 인격에 흠이 갈까봐 조심성을 기하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중학생 때의 필자는 그런 아버지의 큰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지도 모르면서, 아니 그 전에 돈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돈을 주지 않는다고 야단을 피웠으니 말이다.

 

철없는 시절이었지만, 그 순간 속에서도 나름의 성찰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스키도 타고 골프도 치고,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마음 내키는 대로 돈을 쓰고 살고 싶은데, 그것은 모두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뤄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 내게 옷과 음식, 살고 있는 집을 제공해주시지만 내가 다 큰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게 된다면 이 모든 지원도 끊기게 될 것이다. 우리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용돈도 안주는 냉담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서 시작된 필자의 생각은 언젠가 닥쳐올 현실에 대해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그렇게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게 되었다. 부족한 현실이 아닌 아버지가 만들어 낸 풍요속의 빈곤 속에서 말이다.

 

세상이 그렇다. 인생이란 결코 누군가의 도움으로 완성되지 않는 법이다. 언젠가는 나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필자는 조금씩 성숙해졌다. 부자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은 그대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병을 앓았다. 모든 일을 해보고 싶고, 모든 것을 알고 싶어졌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 어떻게 해야 큰돈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작 중학생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조바심만 커져가고 허황된 꿈을 꾸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지금의 필자를 만들어 냈다.

 



당시 필자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나중에 커서 딱 아버지 정도로만 살자. 바로 이것이었다. 원망스럽긴 했지만 필자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필자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필자의 롤모델은 아버지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져간다. 시간이 흘러 필자 또한 자식을 가진 부모가 되어보니 새삼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두터워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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