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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투자전문가가 되기 전,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작성자김형선박사|작성시간16.03.02|조회수73 목록 댓글 0




2 장 맨손의 두 번째 연습


(투자전문가가 되기 전,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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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으로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고

어떻게 부동산 투자를 하여 돈을 벌게 되었는지 공개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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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움직이는 만큼의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청년기의 필자는 정말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만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필자가 접하는 모든 것은 가능성이 그 자체였고, 필자는 가능성을 향해 달릴 의지와 체력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그 기회들을 모두 살리지는 못했다. 처음엔 잘 풀렸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넘어지는 사업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쫄딱 망한 사업도 있었다. 열의만 넘치다보니 미처 객관적으로 일을 타진하는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청년기 거의 대부분은 암흑기나 다를 바 없다. 거의 모든 시간을 사업이 넘어지며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움직였고, 접시닦이, 웨이터, 치킨배달, 대리운전 등 온갖 잡일에 치중했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너무나 뜻 깊은 시간들이다. 결국 그 긴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진정으로 필자가 가야할 길을 찾아필자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벌려놓은 많은 일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을 안겨주고, 보답해준 고마운 일. 토지 투자를 말이다.



 

이 챕터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땅은 기회이자 미래다.’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처세서를 보면 왜 꼭 부동산이야기가 나오는지 이 챕터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인생을 바꾼 군대에서의 시간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군 입대를 피할 수는 없다. 군대는 빨리 가냐 늦게 가냐의 차이지 결국 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일찍 가는 것을 택했다.

 


한국의 남자들에게 군대란 말 그대로 영원히 잊고 싶은 지옥 같은 곳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정말로 은혜와 같은 곳이었다. 몸은 고되지만 머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모두 똑같다. 이병, 일병 때까지는 정신없이 바쁘고, 상병과 병장 때는 거의 대부분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뭘 할지를 고민한다. 필자는 이 시간을 정말 보람차게 보냈다. 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는 책이 한 권쯤은 있다. 필자의 경우 병장 때 읽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책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은 필자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줬다. 이 책을 통해 돈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다시금 강력하게 다질 수 있었다. 내용 한줄 한줄을 뼈에 새기듯이 읽었다. 행동은 늘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자를 이긴다.’ 같은 책 속의 문장에 영감을 얻고 나라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지 하루 종일 고심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한 편이었다. 주로 투자를 어떻게 하는가. 진짜 부자는 어떤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늘려나가는지에 대한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놓는 책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책은 만나보지 못했다.

 




기상해서 구보하고 밥 먹고 삽질하고 훈련 받고 구두 닦고 담배피고. 국방부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흘러갔다. 필자는 잘 때 마다 상상했다. 성공한 모습, 멋진 생활. 필자가 지은 아파트를 직접 광고하고 있는 그런 웃긴 상상까지. 오만가지 좋은 상상을 하다가 잠드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 당시 제대하기 전 사회에 적응 하라고 인터넷 교육을 2주간 실시하고 있었다. 인터넷교육병사인 후임과 관계가 좋아 두 달 전부터 작업열외를 받고 인터넷을 할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 해보니 카페 초대장이 와 있었다. 들어가 보니 명품 천국 아니던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짝퉁을 판매하는 쇼핑몰 카페였다. ‘. 요즘 이렇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매하는구나. 군대에 있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가고 있구나. 나도 이 사업을 해보자.’ 군대 오기 전 명품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바로 이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카페를 보고 그날 오후 판매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저도 해볼 수 있을까요?” 하니 그냥 무덤덤하게 그래요, 해보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즉시 카페를 만들어 이름을 박규만의 명품, 애인, 친구만들기로 만들고 명품사진을 퍼와서 상품 구성을 하였다. 이름. 참 유치했다. 하하 첫손님은 군대 후임들이었다.

 

절대 강요는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명품이 유행하지는 않았지만 명품을 아는 후임들은 지갑과 시계를 구매하였다. 제대를 앞둔 후임들은 보스턴백을 사고 여자 친구가 있는 후임들은 지갑과 가방 등을 구매하였다. 군대와 명품이 의외로 잘 맞았었다. 그렇게 군 생활을 끝마치고, 전역을 맞이했다. 카페회원은 고작 5명이었다. 홍보를 안했으니 고객이 있을 리가 있나.




제대를 하자마자 집에 컴퓨터부터 교체했다. 그리고는 회원 수를 올리는데 온 시간을 보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나의 홍보 글을 많이 보게 만들까 하는 궁리에 다른 상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회원 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간간이 주문이 들어오던 것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 쇄도해왔다. 하루 종일 물건을 포장하기에도 벅찰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돈이 미친 듯이 계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동구매를 하면 하루에 200만원이상의 돈이 통장에 입금이 되었다. 그나이대 써도써도 돈은 줄질 않고 돈이 쌓여나갔다.. 덜컥 겁이 날 정도로 통장의 액수가 불어나갔다.

 





그러다 한 번의 초대박이 터졌다. 월드컵의 열풍이 한창이던 그때. 기적의 역전골을 넣은 안정환 선수가 쓴 유명 브랜드의 선글라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그 선글라스의 짝퉁을 찾는 사람들이 전부 필자의 쇼핑몰로 몰려든 것이다. 아는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아 일주일을 작업했지만, 주문량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물량이 폭발했다. 중국에서 저렴하게 제작한 선글라스는 10배의 이익을 남기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여자, 남자,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전부 그 선글라스를 주문했다. 사이트가 마비되어 업무가 몇 번이나 중단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 순간, ‘아 됐다! 난 이제 부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는 건축이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그냥 부자가 되었다는 기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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