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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법의 혹독한 심판을 받다

작성자김형선박사|작성시간16.03.02|조회수244 목록 댓글 0





법의 혹독한 심판을 받다

 

 



안정환 선글라스를 팔아치우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됐다. 그러다보니 씀씀이도 커지기 시작했다. 스포츠카를 사고, 부모님에게 용돈도 턱턱 드리고 친구들에도 매일 같이 시원하게 술을 샀다. 군대에서 상상하고 간절히 원하던 삶이 이뤄진 것이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 동대문에서는 박규남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테이션 물류의 핵심으로 고작 25살 청년이 우뚝 섰던 것이다. 수익은 물론 이름까지 유명세를 타자, 사업 비결을 알려달라는 사람들도 줄을 섰다.

 



세상이 신기한 게 돈이 생기자 여기저기서 필자를 찾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생전 연락을 안 하던 지인들이 갑자기 나타나고,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줄 수 있느냐 전화가 오고, 온갖 잡상인은 물론, 주거래 은행에서도 이런저런 상품에 가입하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이 왔다. 필자는 어차피 여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그런 권유를 거의 대부분 들어줬다. 한마디로 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날로 번창하는 사업에 웃음 짓고 있을 때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래하는 우체국 지점장이었는데 형사들이 와서 수사영장을 들이 밀고 필자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빼 갔다는 것이다. 배송을 많이 하다 보니 우체국에서 필자는 VIP였다. 미리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경찰서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와 출두하라고 했다. 상표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짝퉁을 거래하는 것이 불법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날로 모든 거래를 정지하고 운영하던 쇼핑몰 또한 폐쇄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경찰서에 가니, 험악하게 생긴 경찰이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저 아르바이트 정도로 시작했다가 일이 잘 풀려 여기까지 왔음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이야기했다. 조서를 작성하고 귀가조치를 받아 집에 가니, 부모님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필자를 다그쳤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며 별 일 없을 거라 둘러댔다.

 



그러나 일은 필자 생각과 달리 점점 커져만 갔다. 별 것 아닌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경찰서로 모자라 검찰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 취조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대로 대답하는데, 검사는 필자를 순악질 사업가를 대하듯이 했다. 도대체 어떤 조직이랑 연계해서 국내에 이런 상표법 위반 물품을 유통했느냐는 것이었다.

 




검사는 필자의 뒷배경에 모종의 거대한 조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배후를 추적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물건은 원래 동대문에서 다 팔고, 그 물건들을 가져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한 것뿐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검사는 필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위조 상품이 어떻게 동대문에 있냐며 계속해서 윽박질렀다. 있는 걸 있다고 말했는데 믿질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필자를 구한 것은 옆방 검사였다. 취조실에 커피를 마시러 잠깐 들린 동료 검사가 필자의 말을 듣더니 담당 검사에게 얘 말이 맞어, 동대문에 가면 이런 거 많이 팔아.” 라고 말해준 것이다. 담당 검사는 ? 진짜?” 라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렇게 검찰을 수차례 방문하며 약 1년간 조사를 받았다. 학교에 복학해서도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수업에 빠지고 검사에게 갔다. 1년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초조해서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었다. 꼬박 1년을 그렇게 보내자 결국 판결이 나왔다. 배후가 없고, 범죄 여부를 몰랐던 어린 학생인 점을 참작하여 봉사활동 처분을 받고 끝이 난 것이다. 대신 가지고 있는 상표법 위조 상품은 전량 폐기하고 그 기록을 검찰에 넘겨야 했다,

 



고작 25살의 나이였다. 필자는 창고에 가득 차있는 옷과 선글라스 등을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내서 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다. 물건도 많아서 일주일 동안 가위질만 해야 했다. 전부다 내 피 같은 돈이었지만,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 마음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면서 물건을 폐기했다.

 




그 뒤로는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돈이 얼마가 되었건 내가 속이 편하고 걱정 없이 살아야 행복한 삶이구나.’ 하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벌었던 돈으로 토지투자를 해두었다. 그 것이 필자 인생의 최대 기회를 만들게될 줄 그 때는 몰랐다. 모든 걸 다 날려도 땅은 남아있었고 그 땅은 필자가 재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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