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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하루

술만 드시면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어릴 때 생각이 나면 불안해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2.01.09|조회수17 목록 댓글 0


“저는 어렸을 때 술만 드시면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디선가 아버지의 술 드신 목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쿵닥쿵닥 뛰고 불안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남겨진 어머니와 저희 자매들은 생활고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저는 가족밖에 모르는 착실한 남편과 흠잡을 데 없이 바르고 착한 두 남매의 엄마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황인데도 저는 어떤 일이 생기거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 문제의 원인이 저 자신에 있음을 알고, 내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4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행을 하면서 괴로움을 없애겠다는 저의 마음이 집착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저의 상황에서 어떤 관점으로 수행을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스님께서 따끔하게 한 말씀해주시면 감사히 따르겠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옛날에 본 공포영화를 꿈에서 혼자 다시 돌려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은 증상입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공포영화를 본 것과 같은 거예요. 이미 지나가버린 30년 전에 겪었던 일이 뇌리 속에 남아있어서 그것이 늘 재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 현실에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거예요. 이것을 현대 의학에서는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수행정진을 통해서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신경정신과 병원에 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심해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될 정도라면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통해 응급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약물치료란 신경이 흥분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정제를 섭취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에요. 트라우마가 심하면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비디오가 자동으로 돌아가듯이 머리에서 계속 과거에 충격받은 일이 떠오릅니다. 이때 약을 먹으면 이런 정신작용을 안정시켜줍니다. 어쨌든 정신의 현상도 다 신체 작용이니까요.

상담치료란 대화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겪었던 일을 더 세세하게 꺼내서 그 일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방법입니다. 어른이라면 놀랄만한 일이 아닌데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놀란 일이었거든요. 그때는 놀라서 상처가 되었지만 지금 관점에서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도 지금 내 나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 거잖아요. 어쩌면 더 나이가 적었거나요. 세상이 뜻대로 안 풀리고 힘드니까 술을 먹고 한탄을 하셨던 거예요. 아내가 등을 두드려주고 받아주면 좋았겠지만, 그때 어머니도 나이가 어렸고 자식도 있었으니까 남편에게 실망해서 잔소리를 하게 된 거예요. 아버지는 말로 안 되니까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고요. 이 일은 어린애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힘든 일이지만 커서 가만히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사람이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이상 더 잘 살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신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세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입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어야 내 상처가 치유됩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여겨질까요? 질문자의 엄마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집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에게 실망을 하니까 악을 쓴 거예요. 아버지는 아내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아내가 악을 쓰니까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요. 이렇게 각자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든 어머니든 다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예요.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셨잖아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간 거고, 아버지 역시 자기 인생이 힘들어서 아웅다웅했지만 그래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즉 아이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볼 때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닙니다. 당시에 내가 어린애였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어른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아버지는 원망하거나 비난해야 할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치료해줘야 할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보살피고 치료해줘야 할 불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면 질문자 속에 아버지로 인한 상처는 치유된 거예요.

질문자의 증상이 심하면 먼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서 트라우마를 조금 완화시키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일상에 큰 지장은 없지만 내게 여전히 상처가 있는 정도라면 자가치료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내가 나를 치료하는 거예요.

자가치료를 할 때는 두 가지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괴로움을 완전히 없앤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하고 자각하는 겁니다. 과거의 비디오에 빠지지 말고 지금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을 하면서 지금 상황에 깨어있기 위해 이렇게 되내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과거의 비디오를 끄는 기도를 꾸준히 해야 해요. ‘괴로움을 없애주세요’라는 말은 지금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지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여기의 상태로 늘 돌아오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다른 한쪽으로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도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어릴 때는 어린 나의 입장에서 힘들었지만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까 아버지도 참 힘드셔서 그러셨군요. 제가 만약에 그때 어른스러웠다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의 등도 두드려주고 위로도 해줬을 텐데, 아버지를 그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s://m.jungto.org/pomnyun/view/83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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