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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선교소식

세번 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성지순례

작성자simon|작성시간24.05.04|조회수46 목록 댓글 0

오늘(5월 2일) 세번 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성지순례를 위해 배티성지와 봉암성지를 다녀왔다!

신자들이 원주,제천,단양에서 모두 10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여덟 명의 사제들과 함께 한 오늘의 성지순례는 가히 장관이었다. 저는 명륜동,일산동 신자들의 버스에 탑승했는데 오전 8시 조금 넘어서 원주 따뚜 주차창에서 출발, 버스 안에서 묵주기도와 "사랑으로 길을 걷다, 한국인 최양업" 영상을 본 후 배티성지에 오전 10시 조금 넘어서 도착, 배티성지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이어서 오전 11시 배티성지주임 이성재 사도요한 신부의 주례, 원주교구 총대리 곽호인 신부 등 8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한 성 아타나시우스 주교축일미사가 있었다.

배티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에 소재한 성지로 오래 전부터 신실한 신자들이 모여살던 교우촌이자, 조선에 파견된 많은 프랑스 사제들이 사목의 중심지로 삼아 활동했던 곳이다. 또한 조선에서 최초로 소신학교가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최양업 신부는 다블뤼 신부의 뒤를 이어 1853년 여름부터 1856년 여름까지 배티의 소신학교를 맡았으며, 1854년 3월에는 신학생 3 명을 선발하여 말레이지아의 페낭의 신학교에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순례단은 배티성지에서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2시경 배티성지에서 40 km 떨어진 봉암성지로 향했다. 이 성지는 충북 음성군 맹동면 봉현로 145에 소재한 곳이다. 봉암성지의 방축골과 계마대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신앙생활을 이어온 곳이다. 최양업 신부는 사목방문 중 이곳에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이곳에 살던 신자 김백심의 아들 사도 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했다. 그는 배티신학교를 거쳐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나 사제가 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 김백심과 그 아들, 김 사도요한을 비롯하여 총 7명의 순교자가 나온 곳이다. 그 중의 한 분은 예비자였는데 순교했다고 한다. 봉암성지는 현재 성지개발을 하는 중이어서 맣은 신자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꽃동네 출신 정광렬 디모테오 신부가 힘을 쏟고 있는 곳이다.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와 땀이 서려있는 배티성지와 봉암성지를 순례하면서 참석자들은 희망의 성지순례를 통해서 하루 빨리 그가 땀의 순교자로서 시복,시성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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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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