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비망록] 노동이라는 프레임의 종말 (지여, 고미생각)

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3.04.25|조회수704 목록 댓글 3

※. 펌자 주. 


이 글은 2013년 4월 11일 지여님의 트위터 글을 읽으면서 펌자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점들까지 함께 묶어서 다시 정리한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위터의 원문과는 표현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원문의 의도는 그대로 살려서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의 원저자이신 지여님의 의도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서 말씀해주시면 바로 수정할 것을 약속드린다. 이 점 지여님께 정중히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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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는 사실 정치에서는 더이상 필요없는 단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현재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정리해고나 실업이라는 문제 혹은 어젠다가 더이상 본질과 핵심이 되는 시대를 지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 시대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동이 종말>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해고나 실업은 필요악이다. 왜 그럴까? 기술혁신이 일어나면 일자리가 열개, 백개 사라지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일자리 = 노동으로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간단하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게 전혀 안되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공무원과 대기업에 몰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안정적인 곳에서 근무를 해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간과하면서 모험을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라는 말로 언론과 기성세대가 신나게 질타를 퍼부으면 뭐하나? 결국 그런 여건을 만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반성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부와 세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눈앞에 닥친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무시한 채로 이른바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시민사회세력들이 <노동>에만 집착하게 되면 결국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란 말이다. 다시 말해 노동과 자본을 대립관계로 놓거나 노동자와 자본가를 적대 관계로 상정하려고 들면 계속해서 평행선만 긋게 될 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노동이라는 <프레임>이 주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한만큼 받는다>는 성과주의는 옳은 말일까? 그렇지 않다. 혹세무민하는 거짓말이다. 왜 그럴까? 다소 극단적일 수 있다는 반박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학력이 낮은 (중졸 혹은 고졸) 미군 병사가 한명 있다. 그런데 이 병사는 연봉 1억을 받으면서 근무를 한다. 왜? 그의 보직이 <탱크 운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탱크를 청소하는 대학졸업자 한국 청년이 있다. 그는 연봉 2천을 겨우 받는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길까? 이런 사례를 두고 <노동의 불평등>이니 하면서 노동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절대로 답이 안나온다. 핵심은 이거다. 탱크라는 과학기술이 집약된 중화기를 다룰 수 있는 사용권한이 차이를 만든 것이다. 결국 <권리 혹은 권한>이 임금격차의 본질이 된다는 말이다.

노동이라는 정치 슬로건과 프레임을 버리지 못하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계층간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앞에서도 잠시 지적했지만 노동(자)=약자, 자본가와 대립하는 개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시간제 근로자,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학생, 노인, 도시빈민들이라는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새로운 빈민층, 약자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노동>이라는 기준에 계속 집착하다보니 이들을 외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이들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수구 보수층에게 표를 내주게 된다. 그것이 이번 박근혜 당선의 핵심적 요인이기도 하다.


<노동> 단어는 정치에서는 필요없는 단어이다. 정리해고나 실업이 본질이 아니다. 과학이 발달하는 현대사회에서 해고나 실업은 필요악이다. 문제는 사회적 안정장치가 없는 것이다. 부자들이 상속세 탈세나 연구하는 국가는 국가이기를 포기한 씨족사회이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일자리=노동 으로 불균형 해소는 불가능하다. 기술혁신 하나로 노동일자리 열개 백개가 사라진다. 기부와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진보정당이나 진보세력이 노동으로 접근하면 모순이다.

 

<일한만큼 받는다>는 성과주의는 혹세무민하는 거짓말이다. 국민학교 졸업한 미군병사가 탱크운전 하면서 연봉 1억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한국청년이 그 탱크청소를 하면 천만원을 받는다? 노동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사용권한이 임금격차의 본질이다

 

노동자, 노동이란 정당과 정치단어를 버려야 계층간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노동()=약자, 자본가에 대립, 이라는 오해 때문에 시간제 근로자, 실업자, 학생 ,영세자영업자, 농촌노인들. 도시빈민들, 본질적인 문제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 2013년 4월 11일 지여님 트위터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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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프로만 작성시간 13.04.25 백미 대목
    ***

    " 지여- 학력이 낮은 (중졸 혹은 고졸) 미군 병사가 한명 있다. 그런데 이 병사는 연봉 1억을 받으면서 근무를 한다. 왜? 그의 보직이 <탱크 운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탱크를 청소하는 대학졸업자 한국 청년이 있다. 그는 연봉 2천을 겨우 받는다. 왜 이런 <격차>가 생길까? "
  • 답댓글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4.25 이것보다 더 적나라한(?) 사례를 또 한가지 더 들 수 있죠. 바로 같은 <청소>라는 노동을 두고 말입니다! 다시 예를 들겠습니다.

    탱크 청소를 하고 있는 대졸자 한국 청년은 그나마 연봉 2천(그나마 연봉 2천이 포인트입니다!!) 이라도 건지는데 반해서 일반적인 <건물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은 연봉 1천을 건지기도 어려워요.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게 그저 노동시간과 강도라는 <성과주의>로 더 설명이 되는 문제냔 말입니다. <노동 강도>로 따지면 건물 청소가 탱크 청소보다 더 쉽다는 말을 함부로 하긴 어렵죠.
  • 답댓글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4.25 결국 이 역시도 <대체제의 수급 여부> 그리고 <탱크라는 기술, 과학 집약적 첨단장비>를 다룬다는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얘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 탱크라는 장비 자체가 건물보다 여러가지 기준과 관점으로 봤을 때 밀도가 훨씬 높은 것이죠.) 리카도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로 연결되는 유물론 - 좌파적 관점과 흐름은 이를 제대로 담아내지도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18세기에 갇혀 캐캐묵은 꼰대 소리나 내는 헛똑똑이들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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