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생각]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4.09.29|조회수55 목록 댓글 0

고미생각입니다.

어제 한줄 코멘트에 올렸던 포스팅에 덧붙여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자. 어떤 이들은 내 의견에 대해 이렇게 반박할 지도 모른다.

"당신 주장의 가장 큰 오류는 구한말 이후의 근현대사 만이 우리 역사의 전부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는 것에 있다. 오천년 빛나는 우리 역사에서 기억하고 알고 있어야 할 자랑스러운 내용이 얼마나 많은데 근현대사에 치우친 편협한 의견을 마치 정론인양 포장하는 것인가?"

찬찬히 들어보건대 한 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오천년 우리 역사에서 근현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해야 100년 전후의 시간 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이 주장의 논점은 근현대사 뿐만이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공부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소양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환기하려는 목적으로 수능 시험에서 국사 과목을 포함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허나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주장은 큰 틀에서는 옳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역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관점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이 얘기를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예전 포스팅에서 역사란 사실과 판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발자취라고 정의한 바 있다. 내 정의가 다소 고상하지 못하고 거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니 좀 더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자.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새는 두 날개가 있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 왼쪽 날개나 오른쪽 날개 하나만으로는 결코 날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를 100퍼센트 사실 혹은 팩트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역사를 구성하는 첫번째 요소는 사실이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한번 지나간 사실은 두번 다시 100퍼센트 똑같이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6하 원칙을 모두 100퍼센트 만족하는 사실을 두번 이상 반복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들이 시간이 지나서도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사실이 과거에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의 가장 고전적이며 일반적인 수단이 바로 '문자'를 통한 '기록'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녹취나 녹화와 같은 수단들도 훌륭한 기록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문자를 통한 '기록'은 지나간 사실을 입증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록을 통해 '사실'을 보관하고 전승하기 위해서는 그 기록 내용에 어떠한 개입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저 눈에 본 그대로 귀로 들은 그대로 적어서 보관해야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 '신뢰성'이 보장되어야 그 기록은 역사적 사실, 즉 '팩트'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이나 자신이 한 일을 그럴 듯하게 날조한 기록을 '팩트'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도 않은 일이나 사실과 다른 일을 '기록'해두었다는 이유 만으로 그것을 '팩트'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팩트'로서의 기록은 '신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을 지켜야 제대로 된 역사를 전승할 수 있다는 인식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왕조시대의 사초를 기록한 사관들이다.

그리고 그 사초는 그 어느 누구라도 절대로 열람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초를 열어보았던 조선 시대 왕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역사를 대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것은 바로 사실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만이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고 보관하여 전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뢰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역할 만을 담당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의를 갖지 못한다. 그렇게 기록된 사실들을 사람들이 '열람'을 하고 그 열람의 과정을 통해 어떠한 교훈이나 가치나 의의 등을 '판단'하여 서술하는 것 까지를 포함시킬 때 비로소 역사는 역사로서의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똑같은 사실을 접하면서도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사실에 대한 판단이나 해석은 충분히 다르게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판단과 해석의 차이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란 사실 그대로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이 기록을 통해서 파생되는 '판단 영역'까지를 포함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를 이루는 나머지 날개인 셈이다. 이쯤 되면 내가 글의 서두에서 역사를 두고 '사실과 판단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라고 했던 언급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정리하자. 역사란 100퍼센트의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 간의 연관성과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주관적 판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100퍼센트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를 절반만 이해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판단이 역사서술의 양대요소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역사가의 서술이 100퍼센트 사실을 기술한 것인양 착각한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문자로 기록된 역사적 서술'은 무조건 신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자세하게 상술하는 것이 사실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지만 쓰다보니 글이 너무도 길어지는 바람에 이 부분은 부득이 이 정도로만 서술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 노하우업 회원들이라면 나와 아프로만님의 대화를 엮은 “팩트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 글에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언급이 다 들어있다. 재삼 일독을 권한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소 장황하게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얘기가 앞에서 했던 내 주장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역사서술을 함에 있어 주관적 판단을 개입시킬 때 가장 중요한 규칙이 있다. 첫째, 팩트의 신뢰성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 둘째, 팩트의 선택과 경중의 판단은 서술자의 주관에 달린 자유 영역이지만 최소한 팩트를 훼손시키면서 선택하고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내가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은 구한말 전후의 역사 약 100년 남짓의 기간이다. 그런데 이 역사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기록들이나 사실들이 '정권의 필요성'에 따라 훼손되는 사례가 발생하게 되면 우리가 그 팩트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게 되겠는가? 판단은 사람의 자유지만 적어도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록들은 절대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과거의 오래된 역사도 아닌 가장 최근의 역사를 대함에 있어 기본적인 규칙을 망각하는 바탕 위에서 서술되고 학습이 된다면 이는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의미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그저 과거의 사실 만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역사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가장 기본적이며 근원적인 역사인식과 역사판단의 틀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행동을 자행하게 만든 결과야말로 무리하게 역사 과목을 수능 필수 과목으로 편입시킨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진정성 만으로 모든 것을 돌파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고 누차 강조한 것이다. 파급성과 방향성에 대한 안목이 없는 주장은 엉뚱한 결과에 복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 사초를 담당했던 사관들이 목숨을 걸었던 이유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후대에게 안전하게 전승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선대의 역할이라는 자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숭고한 소신을 본받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사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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