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생각] 관성에 '안주'하는 진보, '집단사고'에 매몰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4.12.09|조회수61 목록 댓글 0

고미생각입니다.

 

 

언젠가 나는 한겨레 이봉현 에디터의 칼럼을 인용하면서 “집단사고”라는 부분에 주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집단 사고는 이른바 엘리트 집단의 전유물 혹은 전매특허가 아니다! 자기 집단, 우리 집단 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지난번에 나는 서울시 인권조항의 동성애 관련 문제에 얽힌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생각을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에게는 집단사고가 없는 걸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의 집단사고는 무조건 보호받아야만 하는가? 물론 인권이라는 문제 자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바로 "공존"에 대한 생각과 방식이다. 한마디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일전에 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분리하는 것을 매우 합리적이며 전향적인 시각으로 착각하는 것을 잘못된 처사라고 비판했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다면 마찬가지로 일부 동성애자들이 박 시장의 처신을 비난하며 서울시청에서 합창 시위를 한 것을 두고 스스로 자기 만족과 자기 연민의 함정에 동시에 빠져서 자화자찬을 남발하는 것 또한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비판하는 것을 진보연은 절대로 참질 못한다. 마치 사회적 약자들의 집단 사고는 무조건적인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허나 과연 그건 옳은 생각일까?

 

물론 구조적 소수와 상대적 약자의 보호 문제라는 측면을 아예 외면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집단사고가 마치 “신성불가침”이라도 되는 양 접근하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관점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진보연이 툭하면 저지르는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집단사고는 가루가 되도록 비판하고 반대해야 마땅하지만 우리편의 집단사고는 그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과 폭력을 감안했을 때 무조건 수용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진영의 통념이 오히려 그들을 망친다는 역설을 그들은 모른다. 집단사고의 가장 큰 위험성은 바로 진영논리를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점에서 약간 벗어난다는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 이 문제야말로 새민련 전반에 걸친 내부 갈등의 핵심요소에 해당한다는 점도 아울러 살필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 한 우리나라 범야권 진보진영에 미래 따윈 없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덧붙여 그런 의미에서 타일러 라쉬가 공자의 논어를 인용하며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를 언급한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는 점도 덧붙인다. 사실 저것이야 말로 민주주의 특히 정당정치를 제대로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정치다!

 

 

덧말.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갖고 들여다 본 지는 10년 남짓 밖에는 안되지만 아무래도 살아온 곳이 살아온 곳이다 보니 어지간한 5공 이후 현대사는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거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절실히 느끼는 게 있다. 87년 이후로 우리나라 민주화 시계는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노무현인데 노무현과 진보진영이 대립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차이점이 바로 저기에서 나온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하고 싶다. 집단 사고에 매몰되지 않는 '원칙과 상식의 합리성'이라는 부분에서 노무현과 진보진영의 생각이 갈라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하길 거부했다.

 

그들이 말하는 균형 감각이란 상대방에서 당한 것만큼 조금이라도 우리도 "똑같이" 누려야 마땅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진영논리'고 '집단사고'라는 걸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면.. 첫째로 "진영논리"로 빠지게 되면 결국 모든 정치적 논쟁은 소모적 공세로 낭비된다는 점이 있다. 둘째로 그렇기 때문에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공세는 쉽게 무마시켜버릴 수 있음이다. 그런데 지금 범야권 진보진영은 수적, 세력적으로 열세라는 사실은 앞으로 한동안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결국은 상대방에게 계속 끌려가고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하면 진보진영은 외려 더 반발을 한다. 일단 저들의 '권위와 관성 혹은 족보(!)'을 건드렸다는 것이 일종의 "역린"이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고 또 한가지는 어차피 저들의 입장에서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으로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정치 독과점 체제'가 완전히 굳어진 대한민국 정치판 구도 자체에 아예 안주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러니 무엇이 바뀌겠는가? 이런 체제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무슨 진보를 논한단 말인가? 에효...

 

한나 아렌트가 말하길 "성공한 혁명가는 그 다음날로부터 바로 '보수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라고 일침했다. 더불어 조지 오웰은 그의 작품 '동물농장'을 통해 혁명의 완수라는 과업(?)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로 이어지는 지를 통렬하게 파헤친 바 있다. 대한민국 범야권, 진보연이 한나 아렌트와 조지 오웰의 충고를 무시하는 한 그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진보의 길"로 이끌고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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