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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동북아 ② - 샤머니즘에서 유교로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1.05.07|조회수815 목록 댓글 0

문화평론 - 류가미 의 환상여행

<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보편사'속의 신화 와 의식>


 

(25) 동북아 ② - 샤머니즘에서 유교로  / 2005-06-27

 

 

안녕하세요. 류가미입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사실 6월 달에도 이렇게 더운데 7,8월 어떻게 넘길까 걱정입니다. 냉장고 속으로 이사 갈 수도 없고……. 그러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있는 오아시스 때문이고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여름휴가 때문이겠죠. 자 그럼 기운을 내볼까요?

 

지난 시간에 몽골로이드의 형성과 분화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잠시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동북아의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동북아의 고대사는 각 나라의 이익과 자존심이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서 고대사의 정립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체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제 식민통치라는 근대사의 비극 때문에 생긴 일이지요.

 

   ▶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 http://regentsprep.org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이걸 두고 식민사관이라고 하죠. 식민사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한번도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적인 자립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중국이나 일본의 반식민지 상태였고 한번도 주체적으로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본 적이 없는 정체된 나라라는 것이죠.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외부(일본)의 간섭이 꼭 필요합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된 후에도 이러한 식민사관은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해방 후 우리 강단을 지배한 것은 이병도 같은 친일 사학자들이었기 때문이죠. 역사를 보는 그들의 시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시각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나 친일 사학자 모두는 우리나라의 주체적인 발전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민족이 기원전 10세기경에(일본이 고대 국가를 건설하기 이미 오래 전에)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스스로 고대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고조선을 역사가 아니라 신화의 차원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면서 우리를 뿌리 없는 민족으로 만들었죠.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강단 사학자들이 아니라 재야 사학자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즘 요동 지방의 고고학적 발굴들이 이루어지면서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무척 기쁜 일입니다.

  ▶  북방계 몽골로이드가 세운 고조선의 지도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고대사를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역사적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자칫 민족우월주의로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죠. 요즘 우리의 선조가 수메르와 인도북부 그리고 시베리아 전역을 잇는 대 제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와 우리의 선조가 중국 상나라를 건국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싶은 것과 객관적인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 수메르와 인도 북부 그리고 시베리아 전역을 잇는 대 제국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메르와 인도북부와 시베리아 전역을 있는 고대 제국의 전설은 아마 신석기-청동기 문화의 이동 경로를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고조선이 선주민인 고아시아족과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에서 이동해온 원시 퉁구스족의 연합 국가였던 것처럼 상나라 역시 원시 퉁구스족과 원시 타이족의 연합 국가였습니다. 물론 이 두 나라의 건국 주체는 청동기 문화를 가진 퉁구스족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상나라와 동이족은 서로 앙숙이었다고 합니다. 상나라 왕의 가장 큰 걱정은 동이들이 쳐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동이는 요동지방에서 살았던 우리의 선조를 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수메르에서 인도 북부 그리고 시베리아 전역을 아우르는 우리 선조들의 대제국이 있었다는 주장과 상나라가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조는 북방계 몽골로이드만이 아닙니다. 확실히 고조선은 북방계 몽골로이드가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런 고조선으로부터 부여가 나왔고 부여로부터 고구려와 백제가 나옵니다.


 남방계 몽골로이드가 세운 삼한의 지도 http://mecry.com.ne.kr

 

그러나 한반도 남쪽에는 북방계 몽골로이드 문화가 아니라 남방계 몽골로이드의 문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한(三韓)의 문화지요.

 

그리고 이 삼한으로부터 신라가 발생합니다. (신라는 진한의 사로국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훗날 신라는 북방계 몽골로이드의 계보를 잇는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합니다.

 

고조선을 세웠던 북방계 몽골로이드가 우리의 조상이듯 삼한을 세웠던 남방계 몽골로이드 또한 우리의 조상입니다. 이들 중 어느 한쪽의 역사만을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서, 고대 동북아의 모습이 복원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자신의 민족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이 민족 우월주의에 빠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릇된 민족 우월주의에 빠진 제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나라와 주변 국가들을 망쳐왔는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히틀러가 게르만의 우월성을 부르짖은 것은 유럽에서도 가장 민족국가로서 발전이 늦었던 독일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2 차대전 때,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본도 역사상 동아시아에서 중심이었던 적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저는 우리가 민족 우월주의에도 민족적 열등감에도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동등한 눈높이에서 다른 나라들과 연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 쓸데없는 제 걱정은 이 정도로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동북아 문화권에 대해서 다루어 볼 까 합니다. 1만 년 전까지 중국 대륙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이었습니다. 뷔름 빙하기가 끝나고 신석기가 시작되자 이 빈 땅에 다른 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는 단일하지가 않습니다.

 

사실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신석기 문화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 대륙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신석기 문화는 호남성에서 발견된 양사오 문화, 산동성에 있는 룽산 문화, 내몽고 대·소릉하 유역에 있는 홍산문화, 양자강 유역에 있는 양저문화 등입니다.

 

앙소문화에서 발굴된 채도

 http:// www. gs. xinhua.org

  용사문화에서 발굴된 흑도 

  http:// www. daito.ac.jp 



지금의 미국처럼 신석기-청동기 시대 중국은 다양한 문화의 멜팅 포트(melting pot)였습니다. 중국은 자기를 중심으로 원시 투르크족을 북적(北狄), 원시 퉁구스족을 동이(東夷), 원시 티베트족을 서융(西戎), 원시 타이족을 남만(南蠻)이라고 했지만 중국 역사 자체가 이들의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나라의 유적지 은허 http:// homepage2. nifty. com

 

신석기가 그렇듯이 중국의 청동기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청동기 국가가 ‘상()’이라는 데는 다른 의견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나라는 원시 퉁구스족과 원시 타이족의 연합 국가였습니다. 반면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는 원시 투르크 족과 원시 티베트 족이 주축이 된 나라였습니다. ()이 중국을 통일하면서야 비로소 영토 안에 모든 종족을 포괄하는 한족(漢族)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한족의 나라가 아니고 중국사 또한 한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것은 언제나 한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 몽고, 청은 한족이 아니라 이민족이 세운 정복 왕조였습니다. 중국은 중국 대륙에 있는 나라를 말하며 중국사는 중국대륙에 있었던 나라의 역사를 말합니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영토주의를 포기한다면 중국사는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는 시기마다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사실 요즘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것도 이러한 영토주의 입장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현재 중국 영토에 있었던 모든 나라의 역사가 바로 중국사라는 것이죠. 이런 중국을 보고 역사 도둑놈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정체성 없는 놈들이 라고 해야 할까요?

 

앞서 말했다시피 상나라는 원시 퉁구스 족과 원시 타이족의 연합국가였습니다. 북방계 몽골로이드였던 원시 퉁구스족은 사냥과 함께 채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반유목민(伴遊牧)이었습니다.

 

원시 퉁구스 족에서 사냥을 맡은 것은 남성이었고 채집을 맡은 것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경제 활동 중에서 채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퉁구스족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도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원시 퉁구스족은 모계사회였습니다.

 

원시 퉁구스족의 종교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이었습니다. 사실 시베리아 샤머니즘은 북방계 몽골로이드가 시베리아 지방에 갇혀있던 뷔름 빙하기 때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시 퉁구스 족의 종교는 신석기 문화보다 더 오래된 지층인 구석기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에는 여러 신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각각의 신들에게는 위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신들 중 가장 위계가 높은 것은 하늘의 신입니다.

 

여기서 잠시 시베리아 샤머니즘 전통 안에 있는 민족들이 그들의 최고신을 어떻게 부르는 지 살펴보죠.

 

사모예드 사람들은 최고의 신을 (Num)이라고 부르고 퉁구스 인들은 최고의 신을 부가(Buga)라고 부릅니다. 몽고인들은 최고의 신을 텡그리(Tengri)라고 부르고 터키인들은 최고의 신을 탕그리 (Tangri)라고 부릅니다. 부리아트인은 최고의 신을 텡게리(Tengeri)라고 부르고 볼가-타타르인은 최고의 신을 탱게레 (Tangere)라고 부릅니다. 밸티르인은 최고의 신을 팅기르(Tingir)라고 부르고 야쿠트인은 최고의 신을 탕가라(Tangara)라고 부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최고의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중국 사람은 최고의 신을 티엔()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발음 되었든, 이들 민족의 최고의 신은 하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시 퉁구스족과 달리, 원시 타이족은 신석기 농경 문화에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벼농사를 했고 계단식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문화 곳곳에는 용과 뱀 돼지와 초승달 모양의 뿔을 가진 소와 같은 위대한 어머니의 도상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용을 신성하게 여겼으며 뱀을 숭배했습니다. 또한 신석기-청동기 시절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돼지를 위대한 어머니에게 제물로 받쳤습니다. 또한 그들은 초승달 모양의 뿔을 가진 물소를 길렀지요. 그와 동시에 원시 타이족은 조상신을 숭배했습니다.

 

 ▼ 중국 문명의 요람 황하강 http:// i.photo.empas. com

기원전 16세기경, 황하 유역에서 샤머니즘 성향이 강한 원시 퉁구스족의 유목 문화가 위대한 어머니를 숭배하는 원시 타이족의 농경문화와 부딪힙니다. 마치 셈족과 아리안의 유목문화가 메소포타미아와 유럽과 인도의 농경문화와 부딪혔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황하 지역에서도 유목민족이 농경 민족을 말살하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위대한 어머니’인 용을 죽이는 드래건 슬레이어 신화가 발생했을까요?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유럽, 인도와 달리, 황하 지역에서는 유목문화가 농경문화를 말살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시 퉁구스족의 유목문화는 원시 타이족의 농경문화와 융합해서 중국 최초의 청동기 국가인 상()을 건설하게 됩니다.

 

      상나라의 청동기 http:// 100. empas.com

 

물론 상의 지배계층은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있던 원시 퉁구스족이었습니다. 시베리아 샤머니즘 전통에 따르면, 최고신인 하늘의 신과 교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최고의 샤먼뿐입니다.

 

이런 하늘의 신과 교류할 수 있는 최고의 샤먼은 동시에 그 나라의 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전통 그대로 상나라의 왕은 대대로의 최고신인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상나라의 왕은 대지의 여신과 강의 신 그리고 조상신에게도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확실히 원시 퉁구스적인 (시베리아 샤머니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대지의 여신, 강의 신,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원시 타이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나라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상나라의 유적과 갑골문을 통해서입니다. ‘갑골문 이야기’이라는 책에서 김경일 교수는 갑골문의 발견과 해석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의 문자 갑골문 http:// homepage2. nifty .com

 

갑골문은 복사(卜辭)라고도 불리는데 그렇게 불리는 것은 갑골문이 점칠 때 사용된 글자였기 때문입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거북껍질이나 소뼈에 구멍을 뚫거나 불로 지져 거기에 생기는 갈라짐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쳤다고 합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점의 내용을 점을 칠 때 사용했던 거북껍질이나 소뼈 위에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상나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역사를 갑골문 위에 기록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바로 김경일교수의 이 책에는 갑골문 2기와 5기를 해석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원전 1324년 상나라의 왕 조갑은 형이었던 조강을 물리치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조갑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조갑은 최고신인 하늘의 신이나 대지의 여신, 강의 신에 대한 제례를 폐지합니다. 그 대신 자신의 조상인 제곡(帝嚳)에 대한 제례만을 강화합니다. 조갑은 하늘의 신 대신에 자신의 조상인 제곡(帝嚳)을 최고의 신으로 격상시킵니다. 상의 조상신 제()는 이제 하늘의 신(天神)을 누르고 최고의 신이 됩니다.

 

김경일 교수는 이러한 종교 개혁이 종법(宗法)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종법 제도가 완성되는 것은 주나라 때 일이긴 하지만요. 이러한 종교 개혁을 통해서 중국에서는 영적인 위계가 혈연적인 위계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따라야 할 최고의 신인 하느님이 아니라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 종법제도를 바탕으로 유교가 생겨나게 되지요.

 

종법 제도와 유교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한 주가 되시길....

 

 

류가미 ⓒ

원문 출처: 연재 시리즈 -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미지 복원: 노하우업 (Knowho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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