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하나: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예수교도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예수를 세상을 직접적으로 해방시켜줄 유대교식 "메시아"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렇게 매가리 없이 승천하자 공포에 휩싸인채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일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지중해 일대의 거점 도시들로 도망을 갔고, 또한 일부는 이집트의 사막지대로 도망을 갔다. 가자지구와 이집트의 나일강 사이에 있는 광활한 사막지대. 이곳으로 도망간 예수교의 제자들은 크고 작은 사원들을 세우고 수도승처럼 산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예수교의 첫 모습이다. 이 사막지대에 존재하는 조그만 석굴수준의 사원에서 부터 규모가 큰 사원에 이르기 까지의 유적들은 예수교의 초기모습을 담고 있는 보고이다. 지금은 엄두도 내고 있지 못하지만, 앞으로 연구가 진행이 되면 초기 예수교의 모습을 규명하는데 좋은 성과가 있을거라고 본다.
삽화 둘: 원래 이스라엘 국가는 12지파의 통일국가였다. 하지만 나중에 남유대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는 양쪽 지역을 잘 다독이며 통치했던 다윗왕과는 달리 솔로몬은 남유대지역을 더 우대했다. 결과적으로 솔로몬의 사후, 유대지파와 벤야민 지파가 주축이 된 남유대왕국과 나머지 10지파가 주축이 된 북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아는 "사마리아"가 바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다. 역사를 보면 이 북이스라엘은 이민족의 칩입을 받고 멸망한다. 그리고 이 지역은 비옥한 옥토와 지중해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주위에 에속이 되고 만다. 이 지역에 살던 10지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사마리아인들은 10지파와 앗수르인들 사이의 혼혈이다.
삽화 셋: 나는 인간 예수를 바리새인으로 본다. 그가 주로 회당에서 강론을 펼치거나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봤을 때,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소수파 의견을 가졌던 랍비로 생각한다. 사두개인들은 거의 반쯤 정도는 이미 로마화 또는 헬라화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사회의 깊숙한 내부에서는 예수가 사두개인들과 별로 부닥칠 일도 없었다. 헬라문화를 교양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각설하고. 예수는 유대지파에 속하지만 갈릴리인에 가깝다. 그가 공생사역을 시작하고 주로 돌아다닌 곳들은 사마리아를 비롯한 옛 북이스라엘 지방이었다. 어떤 분들은 이를 두고 이방인사역이라고 평하는데 나는 10지파 회복운동이었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 12지파 온 족속들이 맺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종교적인 충정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원칙을 깐깐하게 지켰던 인물로 보여진다.
삽화 넷: 알다시피 하나의 국가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다 갖춰져 있어야 유지가 된다. 이스라엘 왕국이 건재할때는 이 상부와 하부구조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정교가 일치했던 신정국가로서 존속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방국가들에 정복당하고 많이 지도급인사들이 이스라엘 땅 밖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스라엘 사회의 하부구조는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했다. 남은 것은 종교적인 정신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부구조가 받쳐주지 않는 종교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변해간다. 점점 현실도피적이 되어간다. 이것이 유대인들 사이에 바리새인류들이 많아지게 된 이유라고 본다.
삽화 다섯: 예수의 인생을 보면 특이한 존재가 하나 있다. 그는 세례 요한이다. 요한은 예수의 친척이기도 했다. 근데 요한의 행적을 보면 그는 마치 광야에서 수도하는 수도승 같다. 또는 광야 깊숙한 곳에서 은거하는 엣세네인들 같다. 나는 바리새인이었던 예수가 요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본다. 예수는 기도를 아주 많이 하는 인물이었다. 새벽에 혼자 조용한 기도시간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나는 이 기도하는 예수를 수도하는 요한과 겹쳐서 생각한다. 예수는 수도승의 생활을 했었던 인물이었다고 본다. 40일 금식생활이 괜한 에피소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본론: 본래 소승은 깊고, 대승은 넓다. 소승들이 깊이 깊이 깨닫고 퍼 올려진 물들이 대중들에게 넓게 넓게 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포교전략은 복음의 전파에 있었지만, 그는 수도승적인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다고 본다. 바울서신에는 로고스가 넘쳐나지만 뭐랄까 영험함은 부족한것 같다. 훗날에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으로서 기독교는 기성복같은 규범이 되어 버렸고 사회교양이 되어 버려서 정치와 사회과학분야에서도 이용당하는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예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한 개인이 우주와 자연과 창조주의 섭리에 대해서 진솔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고 깨달음으로서 영적인 고양을 경험한 후,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까지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를 사회과학적으로 풀어 볼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도 이것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피콜로 / 2011-11-02
원문: http://moveon21.com/?document_srl=769419
땡순이 2011.11.02
흥미로운 글 잘 읽어습니다...
"예수교의 첫 모습"은 영지주의적 풍경이 압도적이죠?
지금 우리나라 기도교 특히 개신교야 소승도 대승도 아니고 거의 미신에 가까운 잡승이라고 생각해요. 개개의 신앙인들이야 또 다른 문제지만 말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댓글 수정했습니다. ㅋㅋ
피콜로 2011.11.03
밑에 아프로만님도 언급하시고, 제가 또 이집트 사막지역에 있는 예수교도들의 사원들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이유는 바로 인간 예수의 영지주의적 면모를 더욱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헬라문화는 엘리트 문화였기 때문에 일반민중들이 이해하고 소화하기엔 난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민중사역을 꾸준하게 벌렸던 예수를 단순히 엘리트적 영지주의자로 놓기엔 부족한 면이 있죠.
당시 유대사회 내부에서 헤게모니랄까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은 바리새인들이었고요, 예수는 이 바리새인들의 논리에 일 대 일로 맞대응을 하죠. 이렇게 보면 예수의 스탠스는 사회정치적으로는 바리새 소수파였을거란 것이죠. 그리고 초기 사역이 주로 북쪽지역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어떤 정치적인 목적 (유대사회통합운동 같은)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복합적인 인물이었다고 봅니다.
한국기독교는 땡님의 말씀이 거의 진실이라고 봅니다. 철학적이지도 않은 것이, 영지주의적이지도 않은 것이, 바리새주의적인 것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수도적이거나 성찰적인 것도 아닌 것이 괴상한 기복주의적 신앙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죠. 표피는 기독교인데 근저에는 무교에 가깝다고 봅니다. 고등종교가 대중과 만나서 하향평준화가 되어 버린 경우이죠.
아프로만 2011.11.02
' 나자레 예수 ' = 이것이 예수 시대에 예수를 정의한 이름 입니다.
나자레 사람으로 불리웠죠 예수.
'나자레' 라는 단어가 그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예수를 표현하는 결정적인 '증거' 입니다
나자레 = 로마인들의 집단 이민지역 이었습니다
즉. 예수는 '헬레니즘' 속에서 교류하며 성장 했습니다.
비록 종족으로는 유대인이었겠지만, 사고하는 방식은 그리스 철학체계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한 '훈련' 받을 수 밖에 없는 성장 환경 입니다
고로, 예수는 애초부터 '그노시스 (= 영지주의 )' 일 수 밖에 없습니다
" 나자레에서 신통한게 있겠소? " = 이것이 바리새들의 통념 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바로 그 '나자레' 였습니다
' 성서 고고학' 적으로 분류하자면, 그러므로 예수는 바리새하고는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겁니다
붓타의 불교가 바라문의 힌두교가 아니듯이, 예수는 바리새가 아닙니다
그러나 3천년이 지나고 나서, 붓타는 힌두교가 되어 버렸으며, 2천년이 지나고 나서 예수는 유대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면, 수행하는 것만 본다면, 붓타의 그것은 기존의 바라문과 다를 바 없고, 예수의 그것 또한 기존의 바리새와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 입니다. 기실 '수행' 이란 영역에서는 '혁신' 없기 마련 입니다. 그래서 '수행' 으로만 본다면 붓다는 힌두교와 구분 되지 않으며 예수는 바리새와 구분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 수행 = '소승' 영역
사회적 혁신 = '대승' 의 영역 입니다
저는 붓타나 예수가 단순히 소승만을 위해서 그러한 '혁신'을 주창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붓타나 예수 둘 다 '사회적 구제' 의지가 있었습니다.
'소승' 으로는 구분 되지 않습니다. 기실 '소승' 과 '샤먼' 도 구분 되기 어렵습니다
붓타나 예수가 기존의 종교와 차별화된 의미를 갖는 영역은 '혁신' 입니다. 즉 '중생' 이라는 '대승' 영역 입니다
' 종교란 그 자체가 권력의지 이다 ' - 아프로만 어록
여기서의 '권력' 이란 사회적 변화 ( = 예수), 중생구제 (= 붓타 ) 하려는 '혁신의 권력의지' 를 말 합니다. 이것이 대승 영역입니다. 여기서 그 '권력의지' 가 빠진다면 그것은 '소승' 의 영역입니다
소승에서 붓타는 힌두교와 구분 되지 않으며, 예수는 유대교와 구분 되지 않습니다
피콜로 2011.11.02
네 그런 면도 있죠. 예수가 세포리스라고 하는 헬레니즘적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성장했다고 하니 영지주의적인 예수로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