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역사란 무엇인가 / 싸리눈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1.05.06|조회수135 목록 댓글 0

 

제 목: [독서노트] '역사란 무엇인가'

필 명: 싸리눈  / 2006-11-13

원문주소http://www.moveon21.com/bbs/tb.php?id=editor&no=211

 

 

며칠 전 서점에 들렸다. 잠시 시간이 남은 이유도 있기도 하고, 서점에 들릴 수 있는 시간이 곧잘 오지 않은 탓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서점에 들렸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내 시선을 끄는 책들은 그다지 없었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역사관련 책들 중 아주 오래 전에 심취했었던 <역사란 무엇인가>를 한참을 바라봤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고딩이었을 때였다.

 

 

물론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역사를 공부하는데 지침서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E. 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자유주의 지식인이었던 서강대 사학과 길현모 교수가 '역사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당시엔 역사 이론에 관한 학술서나 교양서가 거의 없었던 시절, 꼼꼼하게 번역된 이 책은 지식인, 대학생 사이들에서 많이 읽혀진 걸로 알고 있다. 70년대를 거치고 격동의 시대 80년대에 소위 386세대들이 대학 신입생 시절에 필독서가 되었다.

 

사실 내가 처음 읽었던 때는 문고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하고 역사를 바라볼 때 지녀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읽으면서 참 난해하고 어려운 책으로 와 닿았다. 틈틈이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다른 역사이론서들을 함께 읽으면서 카가 보여준 철저한 사회과학적 접근법과 역사적 필연성,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역사를 실천해나가는 인간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유들을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및 해방이후의 실증주의 역사학으로 인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대한 도전이 바로 80년대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은 Carr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하는 볼순 없지만, 어째든 이 시절 젊은이들에겐 최소한 Carr가 제시한 사회과학적 접근과 역사적 필연성 그리고 이를 통한 인간사회의 진보의 역사관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가 국내에 소개되고 진보적, 발전적 역사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민중 사학,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아나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민족, 계급, 자본과 같은 전통적 역사 범주를 털어내고 문화사, 여성사,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등 새롭고 다양한 연구 분야로 확대되어 나갔다. Carr의 역사학은 20세기 한국 사회, 한국 역사학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Carr는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에서, 크로체와 콜링우드와 관념적 역사, 딜타이의 생철학을 거쳐 구조주의와 연계된 브로델의 아날학파,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영국의 막스주의와 현대 케이스젠킨스의 포스트모던적 접근까지 역사학의 관점에 대해, 어떤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객관 하기 위해서 역사가는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Carr는 역사가는 그의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닌 것으로 보고 역사가와 그의 사실에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로 해석하였다. 즉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Carr의 역사관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요약된다.

 

Carr는 역사가의 위치를 개별적인 개인으로 인식하려 하지 않았고 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일부로서 인식하였고, 역사가들의 사유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장소라는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Carr는 인식하였다. 위인에 대한 논의에서, 위인을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잇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 그들을 마치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역사의 진정한 연속성을 방해하는 요술 상사 속의 책과 같은 존재인양 생각하는 그런 견해에 대해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역사는 운동이다. 그리고 운동은 비교를 의미한다. 역사가들이 선이나 악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적대적인 용어보다는 진보적이라거나 반동적이라는 말과 같이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용어로 자신들의 도덕적인 판단을 표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절대적이고 역사외적이라고 생각되는 가치들을 검토할 때 그것들도 역시 실제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조 건지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우리가 가진 신념과 판단의 기준은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Carr의 역사관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진보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고, 요즘에는 철학자와 역사가들에 의해서 외면당하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Carr는 역사의 발전방향에 대해 진보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역사의 객관성을 논함에 있어서도 객관성의 기준은 과거와 미래의 일관된 역사성이라고 주장한다.

 

Carr는 진보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진화는 생물학적인 유전을 통해 이루어지고, 진보는 사회적인 획득을 원천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보았다. Carr는 진보에 대한 신념은 인간의 잠재력의 부단한 발전에 대한 신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Carr는 인간의 이성의 확대에 의해 역사는 진보하며 이러한 진보는 지역적으로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듯 우리가 미쳐 중요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서 필요로 한 것은 역사의 진보적인 요인으로서의 변화에 대한 감각 그리고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 주는 지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신념이 아닌가 싶다. 역사는 움직이는 것이고 끊임없는 객관화의 과정이다라는 것이  Carr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던 책, Carr "역사란 무엇인가"는 신 자유주의 파고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내용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과거와의 치열한 대화를 할 때인 것 같다.  

 

 

우리예리    2006-11-13

고딩때 "역사는 무엇일까"를 읽으시다니....
저도 10여 년이 지나 까마득하던 내용이 독서노트를 읽으면서 한 번에 확 떠오릅니다.
carr가 하고자 한 이갸기는 결국, '역사는 되풀이 된다.'가 아닌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객관화 과정이라는 것도 사실의 객관화가 아니라, 사실과 해석 사이의 객관화'였던 것 같구요.
저도 다시 한 번 읽어 보아야 하겠네요...

 

싸리눈    2006-11-13

사실의 객관화 과정은 아니죠. 그 자체가 실증주의로 회귀하게 되죠. 제가 서점에서 Carr의 "역사는 무엇인가"의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번쩍 생각난 것은 "블랙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넬이었습니다. 유럽의 주류사학계의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서양문명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한 이론적 근거의 틀이 Carr의 역사관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죠....

Carr의 책을 읽기 전에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동서문화원 1976년판 14권; 아직 소장하고 있음; 이 책은 오랫동안 장식품으로만 갖고 있음)을 읽었는데 그걸 다 읽는데 여름방학을 다 보냈지만, 남는게 없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는데, 그 메모한 량이 넘 많아서. 제가 메모한 것을 본 후에 다시 그 내용을 찾아 보고 했는데도 정리가 안 되더군요. 토인비의 책은 그 이후론 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Car의 "역사는 무엇인가"를 읽고 친구들과 스터디도 하고 했드랬습니다. 이 당시 고딩시절에 스터디 그룹이 하나의 유행성 문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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