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우리가 믿는 부활은 없다” [이제민 신부]

작성자고미생각| 작성시간13.04.21| 조회수95| 댓글 14

댓글 리스트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21 지금까지 컬쳐 클럽에 올라온 글을 꾸준히 읽으신 분이시라면 제가 그동안 피력해왔던 신앙관, 그리고 아프로만님과 길희성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신앙관이 하나의 통일된 맥락과 흐름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게 제가 이 글을 퍼온 이유입니다.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21 "사후의 삶을 지금 당신의 인생을 통하여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중략) 즉,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즉,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

    그렇습니다. 노무현이 남겼던 마지막 메시지 -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아니하다.' 라는 메시지가 이제민 신부의 지적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삶이었고, 예수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그렇게 살았고 죽었던 예수가 '옳았다'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겠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21 [트위터 비망록 2013년 4월 9일]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이 있다. '내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는 존재는 신앙할 필요가 없다'라고 여기는 사고방식..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애당초 '나는 왜 신을 믿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신 적이 있는지?

    @@@@@@@

    @uprightowalk 신앙이란 신이 원하시는 것에 나를 맞추어 가는 과정이지요. 신은 요술램프의 지니가 아닌 전지전능하신 분이니까.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21 고미생각 @uprightowalk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바로 그 말씀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신의 뜻이라는 게 개개인들이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이 바로 그 지점임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죠. :)

    예를 들어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활동,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비판적인 시선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신앙과 정치, 사회운동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그저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인가? 이런 질문들이 되겠죠.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21 고미생각 @uprightowalk

    신앙과 진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애당초 '진보'가 추구하는 목표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신의 뜻을 진보의 목표와 공명시키고 일치시킬 수 있을까? 그것이 나와 인류 공동체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멘션을 드렸던 겁니다. :) 모쪼록 신앙이 불필요하다거나 무용하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02 개신교 내부에 센세이션을 던진 제법 유명한 책이었고, 머리말을 읽으면서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과 많이 맞닿아 있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종교간의 대화와 교회 밖의 구원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성찰과 묵상을 하기에 적합한 책이라 생각하여 (예정)독서목록에 추가하고자 한다.

    "오강남, 예수는 없다, 현암사"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아프로만 13.05.17. 10:49

    붓다 설법 핵심- '윤회' 타파에 필생을 걸었는데, 180도 거꾸로 윤회귀의로 변질된 불교는 힌두와 샤먼으로 되돌아 갔다. 붓다가 통곡할 부처님 오신날.

    http://m.cafe.daum.net/knowhowup/_memo/689

    아프로만 13.05.17. 11:42

    01) 예수는 [멤버쉽 클럽 =선민] / 붓타는 [카스트 굴레 = 윤회] 타파에 필생을 걸었는데,
    가르침과는 180도로, 기독교는 유대교로 복귀했고, 불교는 힌두교로 복귀했다.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결국은 도로아미타불.. 핵심! 정곡!!

    가톨릭 쪽 얘기입니다만 올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다소 시차가 있습니다만 가톨릭의 1년 계산법은 일반적인 기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그냥 패스합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왜 가톨릭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게도 의미가 있느냐? 가장 큰 특징이자 파격(?!)을 딱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멤버쉽 클럽=선민 의식에 찌들어 있던 유대인에게 경종을 울렸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인 셈이죠. 하지만 말 뿐에 그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이죠.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정모날에 모여 술한자 하고 번개 모임하고 하면 무엇이 바뀔까요?그냥 우리 끼리 모여 있으면 세상이 절로 변할까요?/ 참사람 http://www.usimin.co.kr/70931

    문제의식은 좋았는데 결론이 삼천포로 빠진 글의 대표격입니다! "민주당이 중심이 되지 않는 민란 시즌2로 양대당 구도를 만들자?!"

    이게 그렇게 쉽게 가능했다면 유시민이 <실패>를 선언하고 직업정치를 그만 둘 이유가 없었죠. 제가 누누히 말했습니다만 대중들은 노무현을 사랑하지만 노무현의 꿈, 노무현의 한을 풀어주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 길은 결국 죽는 길이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진리를 실천하는 길의 끝에 결국 죽음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겠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오로지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 26:42) 예수의 죽음은 바로 이를 실현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부활 신앙>이 예수의 죽음을 가로막고 오히려 정반대로 해석하게 만들고 있죠.

    부활신앙의 핵심은 <변화>이지 <소생>에 있지 않습니다. 변화란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과도 비슷합니다. <깨우침>을 얻어서 예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것, 예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관성>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참된 <부활>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부활을 <육신의 부활, 소생>으로 치환시켜버린 통에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아프로만님의 말씀대로 예수가 의미가 있는 것은 <소승>이 아닌 <대승>적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진리를 독점하고 관성 속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 것.. 그게 예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소승적 차원과 측면>에서 보면 예수는 유대교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유대교의 핵심은 아프로만님 말씀마따나 <멤버쉽> = 선민의식입니다. 그 선민의식의 틀을 깨버린 것이 바로 예수의 <복음>입니다. 유대교가 갖고 있던 선민의식, 진리의 독점이라는 관성을 깨버린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그리고 그것이 진보이고 진리라고 선포한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얘기들은 결코 <장사>가 안됩니다. 진실을 말해줘도 대중들은 <외면>합니다. 그러니 대중이 원하는 <환상>을 심어줘야 종교는 살아남습니다. 그게 기독교와 불교가 <개인적 영달을 위한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이유입니다.

    결국 대중이 <각성>하지 못하면 종교도 정치도 결코 진보하지 못합니다. 왜? 그게 다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중이 각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최소한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판단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이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은 대중과 집단이라는 허상에 숨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되는 겁니다.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는 <책임의식>과 <부끄러움, 염치>를 탑재한 집단이 되어야 정치는 비로소 진보의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이게 안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권모술수도 결국엔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http://m.cafe.daum.net/knowhowup/_memo/752/comments
  •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5.31 플라자 합의로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기득권 수구보수우파라는 사람들이 생존하는 방식은 늘 약자에 대한 '전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떠넘기는 거죠. 그걸로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이제는 더이상 떠넘길 대상이 없어져서 활력이 사라진 겁니다.

    바로 이 '전가'의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했던 사람이 바로 <예수>였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야 한다”고 가르쳤죠. 현대의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70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