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달과 6펜스를 읽다 필 명: 미네르바 / 원문주소 : http://www.moveon21.com/bbs/tb.php?id=main2009&no=344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셋 몸이 75세 생일날 밤 한 친구에게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태평양 전쟁 때 어떤 미국 병사로부터 한 번도 사전의 신세를 지지 않고 소설을 읽을 수 있어 매우 기쁘고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개한 일화처럼 몸의 소설은 간결하고 어려운 말이 없으면서 스토리가 탄탄해서 잘 읽히는 힘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다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독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은 이후로 나는 쉬운 책만 읽는다. 나중에 보니까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기는 했지만 아무튼... 소설의 제목 가운데 "달"은 관능적이며 매혹적인 충동을 의미하고 "6펜스"는 물질과 세속적인 가치, 인습을 의미한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작가가 고갱을 모델로 창조해낸 독특한 개성을 가진 화가이다. 고갱도 주인공처럼 주식중개인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대공황기에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화가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주인공처럼 느닷없이 모든 것을 던지고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작가는 고갱을 모델로 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자료를 모으고 타히티를 직접 방문하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스트릭랜드는 동양에서는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나이 "不惑"이라고 말하는 마흔이 넘어 어느 날 갑자기 안락한 가정과 괜찮은 일터를 버리고 맨몸으로 파리로 떠난다. 치정에 얽힌 도피극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일상에서 탈출 한다.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또한 이해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를 구속했던 일상에서 탈출한 그는 철저하게 방관적이며 이기적이고 냉혹하게 보일 만큼 세상과 불화한다.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는데 세상의 평판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의 도움을 바라지도 않고 도와준다 해도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건져주었으며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유일한 동료화가의 아내를 빼앗는다. 아무것에도 구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자유인이었던 그에게 절망한 동료 화가의 아내 블란치는 결국 자살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약한 너희의 영혼" 때문이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뿐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영원한 현재이며 예술적인 욕망을 구현하는 데 있었다. 그가 냉혹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사로잡힌 영혼 탓인지도 모른다.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들끓는 내적 충동이 그를 예의 바른 신사가 될 수 없도록 만든다. 주식중개인이자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그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남자였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달>을 좇아 파리로 건너온 그에게는 야수적인 매력이 넘쳤다. 블란치도 아타도 거기에 압도되었다. <달>의 광기에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6펜스>서 헤어나오지 못한 속물들에게는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겉치레와 위선을 비난하고 남자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휘어잡고 싶어하는 여성들을 비웃고 스트릭랜드가 죽은 후 그가 남긴 그림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스트릭랜드는 런던을 떠났던 것처럼 파리와 마르세이유를 떠나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예술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원형을 찾아낸다. 순종적이나 바라는 것이 적은 아타를 아내로 맞이하고 아이도 낳는다. 짧은 동안 스트릭랜드는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결국 어울리지 않았는지 문둥병에 걸리고 만다. 천재가 일상적인 행복까지 누린다는 설정이야 재미가 없을 터이다. 문둥병에 걸린 그는 시력을 점차 잃어가면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걸작을 완성한다. 남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그는 죽어가면서 그의 분신과도 같은 그림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타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언대로 그림을 불태운다.
마치 해탈한 성자처럼 그는 성취하고 버렸다. 어떤 기업의 오너는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이 가지는 엘리트주의에 반대하지만 천재들에게는 존경을 보낸다. 천재들은 어딘가에 사로잡혀 기존 질서에 비협조적이지만 그들의 생산물들은 세상을 윤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은 그들에게 관대하다. 그러나 언제나 천재들은 세상을 앞서 가는 존재들이라서 동시대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천재들이 상냥하고 예의 바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19세기에 태어난 남자의 왜곡된 여성관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21세기 남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걸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갱에 대해서 뒤지다가 그가 남긴 "노아노아" 라는 타히티기행기를 발견했다. 꽤 읽을 만 했다. 고갱의 재발견이었다. 타히티여성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와 "황색 그리스도"를 가져다 붙인다. 나는 이 그림들이 참 좋았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렸던 스케치의 일부는 푸주간의 고기를 싸는 포장지로 쓰였다고 하고 고갱이 그려준 초상화를 걸기 부끄러운 그림이라고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땡순이 2009-09-12
오래된 기억속으로 차분하게 이끌어주시누만요. 기억에 남은 건 하나도 없지만요. 교실 맨 뒷자리에서 도시락 까먹으며 읽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사십 불혹의 '혹'은 의심한다. 헷갈린다, 이런 뜻이지만, '사로잡힘'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혹이 있어야 사로잡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거죠.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두 '혹'스러워 보이구요. 울나라 사십대들, 작가들, 사십 넘어가면,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확률이 거의 구십구퍼센트인데, 이거, 공자의 저 사십 불혹이라는 근거없는 - 사실 이 귀절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 따분한 설교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사십들 거의 모조리 '혹'덩어리들이구요.
암튼, '혹'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동무들, 나중에 개피보더라도, 혹 따라, 달 따라 갑세다!
타이티는 급속히 서구화되어서, 지금은 혈통으로나 언어로나 순수하게 타이티적인 것이 남아있지 않다 하더군요. 고갱이나 스트릭랜드 같은 이들 때문에...
미네르바 2009-09-12
땡순이님은 능히 <달>을 따러 가실 거 같아요. 저 같이 밋밋하게 재미없게 살아서 평생 모험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참 한심하죠. 이래저래 저는 한심한 사람입니다. ㅋㅋ
땡순이 2009-09-12
주옥같은 글 올리시고나서 웬 뜬금없는 자학이십니까? ㅋㅋ 제가 좋아하는 시인 다섯 손가락에 마흔에 노처녀로 죽은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이 있는데, 이 벽창호 아줌마는, 평생 고향마을을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연애도 한번 변변히 못했다고 하데예. 그런데 이 아줌마의 시에는 세속에서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액체가 고여 있어서 읽으면 정말 가슴에 스며듭니다. 달 따라 세상끝까지 헤매고 다녔노라는 근육질의 상처투성이 용사 중에 짜증나는 허풍선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달은 앞뜰에도 뜨고 뒷뜰 장독대 위에도 오롯이 뜨는 건데...저는 솔직히 달 뜨면 달 뭐 떨어진 거 없나 길바닥만 들여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는 잉간입니다.
피콜로 2009-09-12
저는 솔직히 달 뜨면 달 뭐 떨어진 거 없나 길바닥만 들여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는 잉간입니다. - 요것이 이 소설의 숨은 뜻을 압축한다고 봅니다.
예술에 온 신경이 팔린 천재가 등한시 하는 것은? 그게 식스펜스라고 봅니다. 한국의 속담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죠.
미네르바 2009-09-12
그림 위치를 바꾸고 싶은데 제 재주로는 안됩니다. 파일첨부를 했더니 저렇게 붙어버립니다.
복사해서 붙이니까 배꼽만 보이구요. 제목도 친절하게 달고 싶은데... 컴맹이 올리는 그림이니 양해 하세요. ^^
로시난테 2009-09-12
편집모드로 들어가서, 아랫그림을 '잘라내기' 해서 윗 그림 위에 '붙이기'하면 되는뎅...
소양강 2009-09-12
오랜만에 대하는 달과 6펜스입니다.
미네르바님의 독후감을 통해서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네요.
미네르바 2009-09-13
저도 스무살 무렵에 이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파괴적이면서 창조적인 주인공의 삶이 강렬하게 다가왔었는데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주인공 보다는 그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천재 주변에 있다가 벼락 맞는 사람들과 또 기꺼이 천재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요. 주인공의 괴팍함이나 광기어린 천재성이 그 때처럼 제게 자극을 주지 못한 것은 아마도 요즘 세상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제 감수성이 많이 무뎌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네르바 2009-09-13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글을 올린 탓에 올려놓고 많은 부분을 고쳐 썼습니다. 문장호응도 안되고 표현이 어색한 부분들이 몇 군데나... 고치기 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고역을 치루셨겠습니다. 고쳐봤자 크게 낫지도 않지만... ^^
무사 2009-09-13
좋은 겪언 하나 곱씹어 보시지요...............
"지나친 겸손은 오만과 다르지 않다." ^^
글 정말 좋습니다.
질투심이 날 정도로................... ㅡ,.ㅡ
오기래 2009-09-13
파격적인 삶과 숨겨진 천재성과 에너지는 많은 부분 연관성이 있는거 같아요.
음치에 몸치인 저는 일상에서 탈출한들 할게 아무것도 없을것 같아요. 피씨방가서 쥐새끼 욕하고 있겠죠. 타이티에도 피씨방이 있을라나 좀 알아봐 주실랍니까
로시난테 2009-09-13
확실히 있습니다. 에어컨 빵빵하구요. ISDN 사용하던 걸 몇년전에 광으로 다 바꾸었습니다. 타이티 사람한테 직접 들은 사실입니다.
우렁이 2009-09-13
이런 글을 이제서야 내 놓다니~~
프리스타일 2009-09-15
와, 고갱 그림이닷!
양란 (didfks) 작성일 2010년11월26일
저만 그러는줄 알았어요. 참 다행이다.ㅋㅋㅋ
그래서 전,베르나드 베르베르와 작가가 생각이 안나는데,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썻던...
기분좋게 읽을수 잇는 책이 더 좋죠.
절대 동감.
월꽃 (awse7208) 작성일 2010년11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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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글, 그림, 문학, 다양한 장르로 .. 미궁의 외로움이 다소 해소되는 듯한 .. 달과 육펜스를 젊어서 본 기억이 있는데.. 키에르게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어찌어찌 보고 한참을 멍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으니.. 한번 빌려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
포르테 작성일 2010년12월1일
독일의 노벨상 수상 작가 권터 그라스 의 책, 대표적 소설 양철북이 있고 모두 영화화 되었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의 하나가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말 제목은 "프라하의 봄")인데요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명연기와 줄리엣 비노쉬의 청순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