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신화 이야기] - 블레이드 러너

작성자피콜로|작성시간11.05.13|조회수443 목록 댓글 0


- 죽음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바른 인간성일까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왠만한 영화비평가들이 세계영화 100선에 꼽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래의 세계에 생명공학이 발달하여 인간이 “복제인간”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생길 수 있는 일을 다루는 공상과학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두 개의 판본 (제작자판과 감독판)이 있는데, “복제인간의 시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 같은 감독판을 다루겠다.


때는 서기 2019년. 지구인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큰 전쟁을 벌이고, 이 결과로 지구는 방사능의 재가 불을 뿜는 곳으로 변한다. 승자도 없었고 패자도 없었던 이 전쟁의 와중에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오존층은 파괴되고, 하늘에서는 하루 종일 산성비가 내린다. 이런 지구에서 지배자들은 600층이나 되는 거대한 빌딩을 짓고 거기에 살고 있으며, 도시의 거리에는 범죄자와 노동자들만이 햇빛이 없는 지상에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그들을 감시하는 경찰들과 함께… 얼마간 여유가 되는 중산층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 “집단이주”를 한다. 원래 전쟁터에서 “전사”로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들은 이 우주개척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 “노동자”로 개조된다. 이들은 유전학적으로 우수하긴 하지만, 4년간의 수명을 가진 것으로 설정된다.


바로 이 리플리컨트중 몇몇은 반란을 기도한다. 이들은 출입이 금지된 지구로 몰래 들어와 자신들을 만들어낸 과학자 타이렐을 찾아가 생명을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알게 된 경찰에서는 리플리컨트 전문처리가인“블레이드 러너” 덱카드 형사(해리슨 포드)를 투입한다.


리플리컨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다. 리플리컨트들은 우주의 행성정복과 개발에 전투력 및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 보다는 훨씬 월등한 육체적 능력과 지력을 가졌다. 다만, 그들은 지배자에게 순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으며 그들의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이런 구도는 지배자인 인간 창조자(타이렐)와 피지배계급인 (복제인간)들의 대립이 성립된다. 무엇보다도 이 복제인간들을 괴롭힌 것은 아주 짧은 “수명기간”이었다.


리플리컨트들은 기능적으로는 우수한 복제인간들이지만, 감정에 아주 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덱카드 형사는 이들 복제인간들을 하나 하나 끈질기게 추격하여 무자비하게 사살한다. 하지만 이 리플리컨트들은 동료의 죽음에 슬픔을 나타낼 줄 아는 복제인간들이다. 되려 인간인 덱카드 형사는 무덤덤한데 말이다.


이 영화는 “사람의 눈”을 크게 부각시킨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눈”은 세상을 보고 느끼는 첫 관문이다. 사람이 주위를 인식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은 이 영화에서 많은 상징성을 가진다.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심어진” 과거의 기억들을 가진 리플리컨트와 진짜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눈”을 통해서 이다. 덱카드 형사는 리플리컨트들을 찾아내는데 남다른 솜씨를 가진 형사이다. 


하지만, 이들 리플리컨트들에게 있어서 “눈”은 세상의 고통이 들어오는 관문이다. 얼마나 그 고통이 힘겨웠으면, 이들 복제인간들은 그들의 “눈”을 만들었던 기술자에게 “츄, 당신이 만들어 준 눈으로 내가 본 것들을 네가 보아야 하는데."("Chew, if only you could see what I've seen with your eyes.")"라며 절규를 했을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리플리컨트들의 리더인 로이가 타이렐을 찾아가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한다. 로이는 그가 살면서 느꼈던 그 모든 고통 보다도“생명”을, “살아있음”을 더욱 원했던 것이다. 그 간절한 소망이 거절당하자 분노한 로이는 타이렐의 목을 비틀고 눈을 뽑아버리며 그를 죽인다. 


로이가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없앤 것은, 일종의 오이디푸스 신화의 패러디이다. 살부의식이다. 그리고“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 또는 복제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인간이 고통을 느낄줄 알때, 타인의 고통도 이해할 줄 알며, 인간이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느낄 때, 타인의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할 수가 있다. 이것을 “인간적”이라고 부른다.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복제인간이 더욱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복제인간 로이는 복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덱카드를 용서해 주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당당하게 맞는다. 이런 것이 로이를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오리온좌 옆에서 불타던 전함/탄호이저게이트 근방에서/어둠 속을 가로 지르는 c-빔의 불빛도 보았어/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 곧 사라지겠지/빗 속의 눈물처럼/이제 죽을 시간이야."라는 대사를 읊으며 스스로 손바닥에 못을 박고 빗속에서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오이디푸스 신화소도 등장하지만, 성경적인 신화소가 도처에 깔려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인간”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화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인간이 자신의 편안함만을 위해서 복제인간을 만들어 또 하나의 착취 계급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들고, 이로 인해서 무고통적인 삶을 사는 것과 “죽음”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바른 인간성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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