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워즈>시리즈를 통해 본 신화읽기, 또는 변용이야기 - 23

작성자피콜로|작성시간11.05.13|조회수607 목록 댓글 0

(유목민인) 셈족이 모신신앙체계를 지닌 농경문화권을 침략함으로써 남성 위주의 신화가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모신은 자꾸만 뒤로 물러나면서 급기야는 조모신(祖母神)이 되는거지요. 이즈음이 바로 바빌론이 융성하던 시기입니다. 바빌론의 고대 도시에는 나름의 수호신, 혹은 수호 여신이 있었어요.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의 특징은 침략한 나라의 지역 신을 우주의 어정쩡한 촌뜨기로 만들어 버린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자면 먼저 거기에 있던 신과 여신을 없애 버려야겠지요. 바빌론에서 남신(男神) 마르둑 (Marduk)이 득세하기 전에 있던 신은 <만물의 어머니 여신> (티아마트) 여신이었어요.  이 이야기는 천상의 남신들이 회의를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즈음의 신들은 모두 별이었지요. 이들이 회의를 하는 까닭은 마르둑 신의 조모가 되는 티아마트 여신이 온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아마트 여신은 마르지 않는 생명의 근원인 ‘심연’입니다. 그런 티아마트 여신이 거대한 물고기, 혹은 용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데, 어느 용기 있는 신이 나가 이 조모신을 맞겠느냐, 바로 이것을 정하기 위해 회의가 열린 겁니다. 이만한 용기가 있는 신이면 최고신이 되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바빌론의 신 마르둑이 나갑니다.   마르둑은 티아마트 여신이 입을 여는 순간 그 목구멍을 통해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그러자 티아마트 여신의 배가 터집니다. 이렇게 되자 마르둑은 이 여신의 몸을 토막내어 땅과 하늘을 만듭니다.  원초적인 존재의 몸을 잘라 우주를 빚는다는 이야기는, 모습이 조금씩 다를 뿐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티프입니다. 인도의 경우 이렇게 토막 나는 신은 그림자가 곧 우주인 푸루샤입니다. 그런데 태고의 모신 신화에 나오는 모신들은 누가 어떻게 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원래 우주의 모습으로 존재하던 여신들입니다.  따라서 마르둑 신의 위대한 창조적 행위는 사실 불필요한 행위입니다.  그 조모신(티아마트 여신)의 몸을 잘라 우주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왜냐하면, 그 조모신 자체가 우주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남성 위주의 신화는 남신(男神)을 불러들여 창조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빌론의 남성 실권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 가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기원전 1750년 경 여가장제(女家長制) 사회는 끝나고 맙니다.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신화의 힘>중에서]

 

 

인류의 문명사를 살펴보면, 여가장제 중심사회에서 가부장제 중심사회로 사회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는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도래와 거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소위 중근동 지방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Fertile Crescent)”는 문명의 요람으로 유명한데, 이 지역은 대대로 농경문화가 발달 되었다. 이 비옥한 지역에서는 여신숭배사상이 강했고, 사회제도도 재산상속이 모녀간에 이루어지는 여가장제 중심사회에 가까운 사회였다.  하지만 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축으로 해서 남북에는 각각 유목민들인 인도-유럽어군의 부족들과 셈족이 살고 있었다. 주로 흑해 부근의 대초원 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인도-유럽어군의 부족들은 기후의 변화 때문인지 점점 남쪽과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말을 처음 가축화한 사람들인데, 아마도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청동무기를 든 기마족의 모습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처음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거의 전 유럽 지역과 터어키, 중앙 아시아와 인도까지 진출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비옥한 초승달”지역 남부와 아프리카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던 셈족도 기후의 변화로 대지가 건조해지자 서서히 “비옥한 초승달”지대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셈족은 “가부장제”의 모습은 별로 강하지는 않았으나, 북에서 온 인도-유럽부족들의 강력한 가부장중심제 문화에 많이 물이 들었고, 또한 사막기후의 확대라는 생존환경의 변화 때문에 가부장제로의 변질은 가속화되어 갔다고 본다.

 

이들 인도-유럽어군의 부족들 중에는 오늘날의 슬라브(러시아, 동유럽 언어계), 그리스, 게르만(북유럽어, 독일어, 영어를 포함), 라틴(이탈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스페인어 포함), 켈트(웨일즈어와 아일랜드어 포함), 이란-인도 어군 들이 있다. 일례로 인도-유럽어군의 부족 중에 하나인 아리안(Aryan)족을 따져봐도, 인도와 이란 그리고 독일까지 광범한 지역에 퍼져있는 부족들을 통칭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말이 통했기에 이들 각부족들이 가진 신화체계도 비슷하다. 물론 이들 부족들이 각각 정착한 지역에 따라서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화체계를 어느 정도 흡수했겠지만 기본적인 토대는 별로 다름이 없다.

 

보통 인도-유럽 신화는 히타이트 신화, 아리안 신화, 아르메니아 신화, 희랍 신화, 로마 신화, 켈트 신화, 독일 신화, 북구신화, 발트 신화, 슬라브 신화 등을 통칭한다.  근데 이들 인도-유럽신화에는 다섯가지 정도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기본적으로 담겨 있다. “하늘의 신”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보통 전쟁을 관장한다. 하늘의 신은 또한 “우뢰의 신”과도 비슷한데, 이 신은 이들 인도-유럽 부족들 중에서 무장전사 집단이 숭배하던 호전적인 신이라고 보여진다. 앞에서도 애기했지만, 이들 유목부족들은 무장전사들을 일종의 군대로 따로 두어서 자신들의 공동체와는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주둔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들 무장전사들은 싸움터에 나가 자신의 보호신이 되어줄 호전적인 남성신을 숭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지의 신이라는 신도 있는데 이 신은 농경작물의 재배와 주술을 관장했으며 농부들과 승려집단에 의해서 숭배되었다. 그리고 신과 부족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자 또는 매개자 역할을 했던 영웅()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복수 기능형의 대모여신이 있었다.


 

민족이동을 하기 전에 인도-유럽부족들이 쓰던 말 중에서 “하늘”을 가르키는 말이 “deiwo”이다. 이 말은인도-유럽 부족들이 “하늘의 신”을 지칭할 때 부르던 말 “dieu-s”을 낳게했으며, 이 말은 나중에 라틴으로 가서는 “dius” 그리고 희랍으로 가서는 “Zeus”로 변형이 된다. 그러니까 희랍신화의 최고의 신 제우스는 그냥 “하늘의 신”쯤이 되겠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제우스를 “Zeu pater”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버지 제우스”쯤으로 해석이 되는 말이다. 이 “아버지 제우스”가 로마신화로 가서 그대로 번역이 된다. , 로마신전의 최고의 신은 쥬피터 (Jupiter)인데, 이는 “Zeu”의 라틴식 발음인 “Ju”와 “아버지”를 가리키는 “-piter”의 합성어어이다. 이정도이니 로마신화가 얼마나 희랍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셉 캠벨의 말을 희랍에 적용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제우스 신의 “질투많은 아내”로 유명한 헤라는 본래 제우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신격체였다. 헤라는 제우스를 숭배하는 일단의 인도-유럽부족들이 펠로폰네스소 반도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희랍땅에 존재하고 있고 농경관련 여신이었다.  헤라는 희랍민족이 나중에서야 올림포스 신전에 등록을 했으며, 아주 부정적인 모습의 여신으로 그려졌다.  조셉 캠벨의 말이 들어맞는 일이 되겠다.

 

그리스 신화의 주요 부분은 이미 선사시대에 형성되었다. 희랍문화의 여명기에 해당하는 크레타 섬의 역사는 대략 기원전 6천년전부터 시작한다. 처음에 이 섬에 온 이주자들은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방)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여신을 숭배하던” 농경부족이었다.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농경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석기인으로 분류된다. 크레타 섬으로 이주해온 신석기인들은 그들의 생활수준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서 기원전 2천년 쯤에 소위 미노안 문명을 꽃피우기 시작한다.  이때에도 이들의 주요 생산수단은 농경이었으며, 축적된 물자를 가지고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크레타인들은 생명과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으며, 아주 상당한 수준의 건축양식이나 미술양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지위가 동일했던 “수평적인”사회였으며, 남성과 여성이 상호보완하며  “상생”하던 사회였다. 이 시대에 이 섬에서는 전쟁이나 대규모 학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크레타가 아니더라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심지어는 범그리이스까지도,  처음 정착했던 사람들은 농경을 주로 했던 농경인들이었다.  이들은 “여신숭배”신앙을 가지고 자연과 융합하려는 수평적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다. 헤라, 디미터,  가이아, 이쉬타르, 아르테미스, 이시스, 아프로디테, 세벨레  등의 각 여신들은 세계 곳곳의 농경중심지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숭배했던 대상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농경정착민들은 소위 땅이 기름졌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주변부에서 살던 호전적이고 남성우월적 유목민들에 의해서 차례로 정복당한다. 이들 유목민들은 인간을 서열로 평가하는 “수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에 유럽의 농경지역을 침입했던 유목민들은 쿠르간족 (Kurgans)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도-유럽인들로 불리거나 아리안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쿠르간 족들은 수천년에 걸쳐서 농경지역으로 칩입해 남하해 들어왔는데, 학자들은 보통 3차례의 대규모 칩입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1: 기원전 4300년에서 4200, 2: 기원전 3400년에서 3200, 3: 기원전 3000년에서 2800) . 그뿐 만이 아니다. 아리아인들은 인도를 쳐들어 갔으며, 히타이인들과 미타니안들은 중동을, 류위안인들은 아나톨리아를, 아카이아인들과 도리아인들은 그리이스를 정복한다. 

 

이들이 새롭게 들여오거나 숭배하기 시작한 남신들은 번개와 불의 상쟁적이고 호전적인 심볼로 상징되는  제우스, 쥬피터, 야훼, 마르둑 등이다.  이들 호전적 유목민들은 남성우월적 전쟁신들을 섬겼던 사람들로서, 사제와 전사들을 두루 갖췄던 조직적인 유목민들이었다. 이들은 위의 크레테인들과 비슷한 “상생”의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던 “유럽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고 , “상쟁”적이고  호전적인 세계관을 인류에게 심기 시작한다. 인간의 타락이 시작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옛날 이야기처럼 돌던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헤라여신은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여신이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신을 다스리려 한 운명 때문에 질투의 여신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헤라가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세멜레와 그 아들 디오니소스, 알크메네와 그의 아들 헤라클레스 등, 남편의 수많은 애인과 그 자식들을 박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상 헤라여신은 원래 결혼과 출산을 관리하며 기혼여성을 수호하던 희랍땅의 토착신이었다. 제우스의 누이이자 여왕으로서 이름의 뜻은 <귀부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전 1200년경에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북부에서 칩입해온 기마민족의 영향으로 주신의 위치에서 끌어내려진 여신이다. 이맘 때쯤에 희랍에 칩입해온, 정복자들은 인도-유럽어를 쓰는 아리안족 기마전사들이었다.

 

지리적으로 조그만 골짜기와 평야로 분할된 희랍은 사람들을 분리시켜 지역별로 여러 가지 정령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북부에서 침입한 북방인들은 희랍인들에게 새로운 신의 체계를 전해주었다. 기왕에 희랍땅에 있던 각종 신 또는 여신 개념들은 북방인의 주요한 신이나 여신에 흡수되어 기존의 역할과 의례, 경력등을 넘겨주는 반면 그 고유한 성격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제우스 신의 경우도 침입자의 신이 토착신의 의무를 양도받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Jane Harrison에 따르면 제우스와 헤라의 결합은 북방인의 침입으로 토착원주민이 정복된 사건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헤라는 원 희랍인의 모계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산악 오지 주민의 여왕이고, 제우스는 부계전통을 가진 북방인의 우두머리로, 제우스가 피정복민들 사이에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헤라와 결혼하였다고 하는 해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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