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워즈>시리즈를 통해 본 신화읽기, 또는 변용이야기 - 24

작성자피콜로|작성시간11.05.13|조회수650 목록 댓글 0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해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서구문화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에 의해서 유명해진 개념이기는 하지만, 오이디푸스 신화라는 신화소는 수천년 동안 이미 서구문명권에 존재해 왔던 이야기 틀이다. 물론 이 오이디푸스 신화가 현재의 형태로 정립되기 이전에는 몇개의 민담들로 얼기설기 이루어진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느슨한 형태의 이야기에 주제의식을 불어넣고, 긴장감을 고양시키는 구조를 갖추게 되며, 하나의 드라마적인 형태의 이야기로 재탄생 시킨 것은 고대 희랍의 비극작가였던 소포클레스이다.  이 오이디푸스 신화는 서구의 문화적인 단면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꼭 있어야 할 요소이다. 

 

오이디푸스 신화이야기를 잘 뜯어 보면 최소한 3개 이상의 조그마한 이야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스핑크스에 관한 이야기, 영웅탄생과 버려짐 과 같은 영웅신화적인 요소, 그리고 비극적인 라이우스 왕 가문의 이야기 요소 등이다.  스핑크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왕좌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연결점이 되긴 하지만, 영웅신화적인 관점에서 보건대 어딘지 모르게 억지로 끼워 맞춰졌다는 생각이 크다. 오이디푸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신화적인 면모이다.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라이우스 왕을 만나 시비끝에 라이우스 왕을 죽이는 비극적인 후반부 부분은 영웅신화적인 면모가 전혀 아니다. 왜 이런 이야기의비틀기”가 필요했을까?

 

먼저 오이디푸스 신화 이야기를 한번 음미해 보자.

 

테바이의 라이오스 왕은 젊었을 때, 엘리스의 펠로프스 왕의 궁궐로 망명하여 생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망명생활 중에 라이오스 왕은 펠로프스 왕의 왕자였던 크류이시포스를 사랑하게 된다. 라이오스 왕은 하지 말아야 할 동성애를 범했기 때문에 펠로프스왕의 저주를 받는다.

 

훗날에 라이오스 왕은 테바이로 돌아가지만, 라이오스 왕이 자식을 얻으면 , 그 자식에 의해서 목숨을 잃으리라는 신탁이 그에게 떨어진다. 그 무렵에 라이오스왕은 아내 이오카스테에게서 아들을 하나 얻게 된다.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였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 라이오스왕과 이오카스테는 신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부하를 시켜 인적 없는 산에 오이디푸스를 버리게 한다. 라이오스 왕은 갓 태어난 오이디푸스를 버릴 때, 발목을 묶어 버린 채로 버렸는데, 이때문에 아기는 발이 퉁퉁 부어 버린다.

 

그러나 아기를 버리는 일을 맡은 부하는 차마 어린 오이디푸스를 버리고 오지 못하고,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넘겨 주게 된다. 어린 오이디푸스를 받은 목동은 코린토스의 왕인 폴뤼보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에게 바친다. 아이는 발견 당시 발이 부어 있었기에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코린토스 왕가에서 자라게 된다.

 

세월이 흘러, 코린토스의 왕자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어느날 연회석상에서 술 취한 친구로부터주워온 자식”이라는 취중진담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 이에 마음이 상한 오이디푸스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내려졌던 신탁의 내용을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가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황당한 내용의 신탁이었다. 자기에게 떨어진 이 가혹한 운명을 벗어나고자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조국인 코린토스와 폴뤼보스왕과 그의 아내 메로페의 곁을 떠나 방랑의 길을 걷게 된다.

 

오이디푸스는며칠째 방랑하던 중 어느 날 사거리가 있는 길에서 시종을 거느린 한 마차와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서로 길을 비키라고 다투다가 마차에 타고 있던 노인이 채찍질을 하며 거칠게 나오자, 이에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한칼에 노인을 살해한다. 살해된 노인은 테바이의 라이오스왕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길을 계속 갔고 테베 입구에서 스핑크스를 만났다. 스핑크스는 가정의 신 헤라가 갓난아기를 버린 라이오스를 응징하기 위해 테베로 보낸 괴물이었고, 테베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기묘한 수수께끼를 내어 틀릴 경우 가차 없이 죽이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라이우스 왕이 죽자 테바이의 섭정을 맡게된 크레온은 누구든지 이 스핑크스 괴물을 처치하기만 하면 테바이의 왕위는 물론이거니와 이오카스테 왕비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다고 널리 공표해 버린다.

 

  그때까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스핑크스는 자신만만하게 문제를 냈다.

  처음 생겨날 때 가장 크고, 한창일 때 가장 작고, 늙어서 다시 커지는 것은?”

  그림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낳고, 태어난 자가 다시 자기를 낳은 자를 낳는 것은?”

  낮과 밤.”

  목소리는 같지만 아침에는 세발로 낮에는 두발로 밤에는 세발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사람.”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모두 맞히자, 스핑크스는 굴욕감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자살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처치해 버린 공로로 왕위가 비어 있는 테바이의 나라의 왕권을 차지하며, 왕권의 신성을 위해서 전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니케스, 그리고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얻는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왕위에 오른 지 15년이 되자 전염병이 갑자기 번지면서 테바이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이에 테바이의 장로들은 오이디푸스에게 마을을 구해 줄 것을 탄원 한다. 오이디푸스는 아폴론 신을 찾아 그 원인을 알아본 결과   선왕 라이어스를 살해한 범인을 색출해 낼때 까지  전염병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그 범인을 찾을 것이라 다짐 한다.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라스는 선왕을 살해한 사람이 오이디푸스이며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피할수 없는 운명의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오이디푸스의 파멸이 두려워 말을 하지 못했다.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선왕이 살해될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하기 시작 하자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이디푸스의 마음은 크게 흔들게 된다.

 

일찌기  너는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 너의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불륜의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피해 두려워 방랑의 길을 떠나 테바이 가까이 왔을 때 노상에서 말다툼 끝에 한 노인을 살해한 사실이 떠올라 유일한 목격자인 양치기를 불러 진상을 알아 본다.

 

양치기의 증언을 통해서, 오이디푸스는 노상에서 말다툼 끝에 죽인 그 노인이 아버지인

부왕 라이오스 였고 친어머니인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이 무서운 진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고, 자신에게 내려졌던 무서운 신탁이 모두 실현되었음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를 빼어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소경이 되고 만다. 절망한 오이디푸스는 테바이를 크레온에게 맡기고 딸인 안티고네에 의지하여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외롭게 살다가 아테네 근처의 콜로누스의 숲속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이 오이디푸스 신화는 잘 보면 최소한 3개 이상의 민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오이디푸스가 장성해서 라이우스 왕을 만나기 이전 까지가 하나의 무난한 영웅신화이고,  스핑크스 이야기는 하나의 첨가된 이야기이고,  그리고 오이디푸스 신화의 후반부 이야기는 거의 소포클레스의 창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고대희랍의 극작가였던 소포클레스가 일정한 틀을 정립시켰다. 근데 소포클레스는 보통 희랍의영웅신화가 갖춘 이야기 구조 중에 몇 개를 일부러비틀어” 버린다. 첫번째는 어린 영웅의 비상한 출생과 이 어린 영웅이 버려지는 부분의 중요성이 사라진다. 드라마 극적인 분위기를 위해 그 이야기 부분은 나오지만, 그 비장감이 있는 뉘앙스는 없다.  이렇게 버려졌던 어린 영웅은 나중에 장성해서 그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고 그 분노로부친살해 (또는 권력교체)”라는 과업을 이루어 내는 것이 영웅신화의 골자였다. 그런데 오이디푸스 신화에는 그런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길을 가다가 시비가 붙어서폭력적인 충동”을 못이기고 라이오스 왕을 살해해버린 유아기적인 오이디푸스가 있다. 또한 오이디푸스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찔러 자책하는 장면은 전혀 영웅신화의 주인공 영웅답지가 않다. 이런 설정 또는비틀기”는 영웅신화의 구조를 깨는일이다.

 

그러니까 소포클레스는 이런비틀기”를 통해서 무언가 자신만의 메세지를 집어 넣은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그 자신이 살았던 당대의 시대에 이런힘의 폭력”을 자주 봤을 것이다. 마초적인 힘이 숭상받고, 성질이 불같고 괄괄한 남성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 그는 살았을 것이다. 유목민 전사집단의 무지막지한 가부장적인 사회이다. 소포클레스는 이런 영웅들을 좀 더인간화”시킬려는 목적으로 오이디푸스 신화를 각색하지 않았을까? 프로이드의 말을 빌자면, 파괴적 본능이 밖으로 향하면 타인을 향한 폭력, 혹은 전쟁의 모습을 띠고 내면을 향하면 자기학대 혹은 우울로 나타난다고 한다. 유목민 전사의 특유의 폭력성을 제어시킬 필요성을 소포클레스는 느꼈을 가능성이 많다. 영웅신화는 일종의 권력 전복의 이야기이다. 이런 권력전복에 수반되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지양하고, 기존체제의 유지존속을 목적으로 이런 오이디푸스 신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사람의 안에 있는 폭력성 또는 파괴본능은 나쁜 것이고 죄악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이럼으로서 가부장 체제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들은 폭력적이라고 말하고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시키지 않았을까? 내면의 폭력성이 거세된 영웅, 더 나아가서 그 폭력의 행사에 부끄러워 하는 영웅은, 그래서 전복의 위험이 사라진 영웅은 가부장적 도덕의 참피온이 아닌가? 프로이드는 수천년이 흐른 뒤에 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들고 나와 내면의 폭력성을 (비록 리비도라고 말을 하지만) 자연의 본능으로 정당화해 버린다.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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