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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시리즈


(월드뮤직) 1부: 탱고

작성자유희|작성시간11.08.07|조회수634 목록 댓글 3

월드뮤직이란...


월드뮤직 음반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지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후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각 매체에서 BGM으로 보사노바나 탱고 같은 월드 뮤직을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는 추세이고 수많은 티비 광고에서도 다양한 월드 뮤직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월드뮤직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음악” 혹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그 관심이 집중돼 있다.

 

물론 월드 뮤직은 영미 대중음악계에서도 진부한 음악적 사운드와 형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사운드를 찾기 위한 시도로서 진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월드뮤직의 진정한 가치는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는 ‘창’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음악으로서 즐기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창’으로서의 월드뮤직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월드뮤직의 의미


월드뮤직은 클래식, 재즈, 록, 블루스와 같은 장르는 아니다. 뉴에이지(new age)음악이 장르가 아닌 것처럼, 월드뮤직 역시 장르를 의미하지 않는다.

 

뉴에이지 음악이 장르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뉴에이지 음악이 인본주의와 자연주의, 신비주의를 토대로 한 뉴에이지 운동에 뿌리를 둔 음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뉴에이지 음악이 뉴에이지 운동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 운동과 관련된 아티스트나 그들의 음악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뉴에이지 음악은 1980년대 미국에서 붐이 일기 시작한 뉴에이지 운동에 편승하여 메이저 음반사들이 붙인 마케팅 용어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이라는 말 대신 ‘현대화된 연주음악(contemporary instrumental music)이라는 용어로 통일을 하자고 주장을 하는 연주자들이 많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야니는 뉴에이지 아티스트라는 이름을 거부하는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월드뮤직의 종류


1. 탱고의 아르헨티나

2. 보사노바, 삼바의 브라질

3. 슬픈 선율의 아일랜드

4. 영혼의 음악 인도 

    *****

 

1. 탱고(Tango)


탱고의 어원은 ‘만지다’는 뜻의 라틴어 ‘탄게레’(Tangere)에서 비롯되었다.

탱고는 19세기 유럽의 댄스와 댄스 음악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리듬이 혼용된 복합적인 음악 산물이다.

 

탱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의 유기적인 결합은 19세기 아르헨티나의 복합적 문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남부 유럽의 고전적인 춤곡과 아프리칸 이주민들의 민속음악이 결합된 탱고 음악은 모체, 또는 원조로 쿠바 아프리칸 노예들의 음악 하바네라(Habanera)를 모시고 있다.

 

하바네라는 19세기 초 쿠바에서 유행한 2/4박자의 춤곡으로, 아바나에서 이 우아한 춤곡을 접한 아르헨티나의 선인들에 의해 19세기 중엽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왔다.

쿠바의 하바네라는 아르헨티아에서 더 강한 템포감과 아르헨티나 목동의 노래, 가우초의 멜로디가 차용된 ‘밀롱가’(Milonga)―현재 탱고의 변형된 형식이나 댄스 홀을 지칭한다―라는 고유한 형식으로 발전한다.

 

1860∼70년에 즈음하여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확산된 밀롱가는 아프리칸 흑인 노예의 주술적 의식을 표방한, 독특한 싱커페이션을 가진 2/4박자의 카니발 음악 칸돔블레(Candomble)로 진화하고, 이는 탱고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음악이 되었다. 그 밖에 유럽의 폴카와 중남미의 격렬한 축제 음악 살사와 볼레로에서도 그 내용을 흡수하게 된다.

 

탱고 음악에 함유된 복잡하고 다양한 다문화적 배경은 탱고 음악이 오늘날 인종과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월드뮤직으로서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탱고의 산지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 지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된 것은 1880년대이며, 1930년대까지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져, 짧은 시간에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럽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이주민들로 가득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열기가 가득한 이국적인 ‘남미의 파리’의 거주자 중 75% 이상이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거나 그들의 자손들이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남쪽에 있는 지저분한 항구인 보카에는 부두와 신생 공업 지대가 인접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에서 이주해온 극빈층 이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이 가난한 서민의 도시에는 유럽의 생활양식 그대로인 카바레와 음악이 흐르는 선술집과 레스토랑이 보헤미안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고 있었다.

 

거친 항만 노동자와 도축업자, 밀수꾼과 거리의 여인들이 뒤엉킨 이 도시의 풍경에는 생활에 찌든 노동자의 권태와 고독감이 가득하였다. 이렇게 하층민의 가난한 삶과 체념적인 인생관은 라틴 음악의 격정과 융화되어 탱고 음악의 정서와 내용이 되었다.

 

흥청대는 밤거리와 어둡고 습기 가득한 보카의 일상은 2/4박자의 강렬한 리듬감과 악센트를 자아내며, 강한 호소력으로 그들의 삶과 영혼을 지배했다. 보카의 빈민굴에서 발생한 탱고는 처음에는 항구에서 기생하는 도박사·밀수꾼 등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했으므로 ‘포르테냐 음악’(Musica Portena)이라고도 불렸다.


초기 탱고 음악의 발전

최초의 탱고 곡은 1880년대에 발표된 ‘Bartolo’로 기록되고 있으며, ‘El Choclo’의 작곡자인 앙헬 비요르도가 기타와 하모니카를 동시에 연주하며 장난스럽게 불렀던 노래가 탱고 음악의 원형이었다.

 

초창기의 탱고는 플루트·클라리넷·기타·바이올린으로 연주되었지만 1910년 무렵 ‘El Amancer’의 작곡자인 로베르토 피르포가 처음으로 독일에서 수입해온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사용하면서, 반도네온은 탱고를 특성화하는 상징이 되었다. 어둡고 무거운 음색의 반도네온은 강력한 스타카토·레가토 주법으로 아르헨티나 탱고의 독특한 리듬감을 재현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도구였다.

 

1910년대 오스발도 푸글리에세에 의해 제안된 탱고의 기본적인 편성은 ‘오르케스타 티피카’라는 고유한 명칭의 반도네온 2대, 바이올린 2대, 피아노 1대, 베이스 1대로 구성된 6중주 편성으로 확립되었다. 때로 오르케스타 티피카를 축소한 반도네온 1∼2대, 바이올린 1∼2대, 피아노 1대, 베이스 1대의 편성인 ‘콘훈토’는 더 밀도 높은 연주에 사용되기도 했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탱고 음악의 첫 번째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아름다운 음색, 뛰어난 작곡 능력을 보유한 그는 여러 방면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탱고 스타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서 유럽과 남미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결합하며 탱고 음악의 특성을 대중들에게 설파했다.

 

그는 자신이 주연했던 영화에서 13세 소년,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발탁하기도 했다. 가르델은 1937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백 곡의 히트곡을 남겼다. 초기에는 주로 왈츠나 쿠에카·가우초 등의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을 연주하다가, 1917년 최초의 탱고 히트곡 ‘Mi Noche Triste’를 발표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Mi Buenos Aires Querido’는 그의 이름을 오늘에까지 지속시켜주었던 초기 탱고 음악의 명곡들이었다. 가르델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 그가 뿌린 씨앗들은 하나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가르델과 함께 ‘현대 탱고의 시조’라 불렸던 훌리오 데 카로를 비롯해서 로베르토 필포, 프란시스코 카나로, 오스발도 프레세도, 후안 필리베르토 등이 포스트 카를로스 가르델 시대의 주역으로 초기 탱고의 발전을 진두 지휘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탱고의 또 다른 의미인 무용을 위한 목적을 특화시켰다. 이때부터 탱고 음악은 춤곡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띠기 시작했으며, 탱고 음악을 위한 대규모 밴드가 조직되었다. 후안 데 아리엔조와 아니발 트로일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라 쿰파르시타’와 같은 정식 오케스트라 버전의 곡을 생산했다. 탱고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1930년대는 탱고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혼란의 시간이었다.

 

1930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군부가 아르헨티나를 점령하면서 탱고 음악은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3명 이상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문화를 향유할 수 없었던 폭정 시대에 탱고 음악은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탱고가 연주되고, 탱고 춤이 함께 흐르던 클럽과 댄스 홀은 폐쇄되었고, 수많은 탱고 작곡가와 뮤지션들이 블랙 리스트에 오르며, 창작의 날개를 꺾어야만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시민들이 정치적 자유를 회복하면서 탱고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고, 탱고 음악은 ‘아르헨티나 서민들의 자유를 위한 찬가’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가난한 빈민층의 음악이었던 탱고는 지식인과 상류층으로까지 확산되었으며, 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이미지로 변모되어 갔다. 1946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표방하며, 기층 민중의 지지를 얻었던 정치군인 후안 페론이 집권하고, 아르헨티나 국민의 연인이자 성녀였던 영부인 에비타가 정열적인 탱고를 선보임으로써, 탱고는 다시 한 번 최고의 중흥기를 맞게 된다.

 

1952년 에비타가 사망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의 전역에는 수백 개의 탱고 오케스트라가 번성하였고, 크고 작은 댄스홀에는 수만 명의 댄서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론주의가 선택한 정치적, 외교적 고립, 그리고 1955년 로나르디 군부의 집권과 경제적 공황을 겪으면서 탱고는 20여 년 동안 암울한 어둠 속에서 버려져야만 했다.


탱고의 부활

 

에비타의 사망, 그리고 기층 민중의 힘을 두려워했던 군부 독재가 탱고를 억압하면서, 탱고는 2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침묵해야만 했다. 탱고가 연주되던 클럽이나 살롱은 문을 닫았고, 자연스레 탱고 오케스트라는 하나둘 해체되었다. 탱고를 연주하던 뮤지션들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만 했으며, 수많은 초기 탱고 음악의 선구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오르케스타 티피카의 편성은 축소되고, 레코드 녹음이나 해외 공연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탱고는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탱고 음악이 겪은 모진 풍파와 함께 대중들의 기호도 변모했다. 이런 변화의 요구에 발맞추어 탱고 음악 역시 새로운 체질 개선을 시도하게 된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였다. 영원히 소멸될 것만 같았던 탱고가 새로운 부흥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 탱고의 우상,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는 기존의 닫혀진 음악, 제한된 음계와 화성학에 갇혀 있던 탱고 음악에 날개를 달아 드넓은 창공을 보여주었다. 그는 독창적인 화음 개념을 부착시켜 1959년 ‘Adios Nonino’를 발표한 이후 ‘Berretin’ ‘Verano Porteno’ ‘Melancolico Buenos Aires’ 등의 현대 탱고의 걸작을 쏟아내면서 탱고의 새로운 차원과 부흥을 꾀했다.

 

피아졸라는 “탱고도 재즈처럼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탱고 음악이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양식으로 진화·발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내딛은 ‘새로운 탱고’(El Nuevo Tango)를 향한 선언 아래 깨어 있는 탱고 작곡가와 연주자가 몰려왔으며, 이 변화의 흐름 속에 탱고는 오늘까지 닫혀진 음악 형식이 아닌 열린 음악으로 진화하고 있다. 피아졸라의 고군분투 속에 탱고는 재즈와 클래식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음악가의 귀와 가슴을 유혹했으며, 더 이상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음악으로만 구속되지 않았다.

 

1977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카를로스 가르델과 훌리오 데 카로의 탄생일인 12월 11일을 ‘탱고의 날’로 제정했으며, 1980년에는 탱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고 부흥의 리듬은 고조되었다. 1987년 탱고의 명곡에 당시의 스텝을 가미한 ‘탱고 아르헨티노’의 공연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가들은 자신의 창작에 탱고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격정과 비감 어린 음악을 넣기 위해 탱고를 향해 몰려들고 있다.

 

1998년 ‘탱고’라는 영화를 연출하여 탱고가 단순한 음악과 춤이 아닌, 그 자체로서 문화임을 일깨웠던 영화감독 카를로스 사우라는 “탱고의 영혼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전까지 나의 작업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라고 탱고의 의미를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생선비린내 가득한 선창과 홍등가의 흐린 불빛 아래에서 태어난 탱고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에 스며 있는 애환과 영욕, 기쁨과 눈물, 집착과 한이 어우러진 고단한 삶의 기록이며, 그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이며, 처절한 몸부림이다.


탱고의 종류


탱고의 종류를 살펴보면, 탱고는 현재 서로 다른 몇 가지 스타일로 나뉘어져 있다.

댄스스포츠에 포함되어 널리 알려져 있는 유럽스타일의 콘티넨탈 탱고(Continental Tango), 미국에서 자국내의 국민들을 상대로 널리 보급되어 추어지는 아메리칸 탱고(American Tango) 탱고가 탄생한 곳인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 자리잡고 현재도 전 세계에 그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가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


아르헨티나탱고의 탄생과 그 과정 그리고 기본이 되는 몇 가지 동작들을 분석하여보면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가 모든 형태의 탱고의 기원임을 알 수있다.

 

탱고라는 용어의 어원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설은 아프리카의 오래된 언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장소를 뜻하는 말이 그 기원이라는 것인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칸돔베(Candombe)를 추는 장소를 지칭하는데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탱고'란 용어는 19C 중반에 지금과 같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탱고의 기원은 많은 논란이 있지만 18세기 초에 쿠바의 하이티에 노예로 이송되어온 아프리카 흑인들에 의해 전해진 아프리카의 춤인 탱가노(Tangano)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뭏튼 열대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농민)들의 음악에서 유래되어 유럽으로 건너가서 발전된 춤이라 할 수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빈민지역에 성행한 밀롱가(Milonga)와 19C 후반에 쿠바의 선원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하바네라', 칸돔베(Candombe)와 결합하면서, 하바네라의 우아함과 칸돔베의 강한 리듬과 빠른 템포의 형태를 지닌 밀롱가로 재 탄생된 것이다.

 

하층민의 문화를 멸시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한때는 탱고를 금기시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탱고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이때 마루에서 춤을 추는 살롱탱고가 발전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아르헨티나 탱고로 발전되었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동작적 특성

Embrace


아르헨티나 탱고에는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탱고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

둘째, 음악에 맞춰 걸을 수 있는 능력으로, 아르헨티나 탱고는 정확한 박자가 없다. 기본 스텝만 해도 8박자로 되어있지만 5박자에서 12박자까지 사용된다.

셋째로, 음악에 맞춰 멈춰서 있는 멈춤이다.

특히 이 멈춤에 있어 단순히 서로 안고있는 동작이 멋진 춤이 되기 위해 Embrace가 매우 중요하다.

 

이 Embrace 때문에 아르헨티나 탱고가 다른 춤보다 더 로맨틱하고 관능적이라는 평을 받게 되기도 한다. 보통 남자의 오른쪽 가슴과 여자의 왼쪽 어깨, 그리고 두 사람의 광대뼈와 이마 사이의 부분을 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서로 얼굴을 떨어뜨리고 늑골 아랫 부분부터 밀착시키는 콘티넨탈 탱고와 가장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특성이다.

 

이 자세는 보통 남자의 오른쪽이 여자의 왼쪽과 밀착되고 남자의 왼쪽과 여자의 오른쪽은 살짝 열리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체중의 대부분을 자신의 다리에 싣고 약간만 서로의 앞쪽으로 체중을 보낸다. 그러면 여자가 남자에게 완전히 안기는 듯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는 많은 종류의 스텝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Giro(돌기), Gancho, Sacada 등의 스텝을 할 때는 남자가 여자를 자신에게서 살짝 떨어뜨리고 왼팔을 낮춘다. 이때, 여자는 자신의 다리로 다른 종류의 동작을 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남녀 모두 이 멈춤을 음악적으로 잘 이용하는 요령이다.

 

Ocho, Gancho

 

탱고의 독특한 특징중의 하나가 남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점이다. 탱고만이 갖는 대표적인 동작으로 오쵸, 간쵸와 볼레오 등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급된 춤은 인터내셔날 스타일의 탱고인 콘티넨탈 탱고이다. 탱고를 이해하려면 우선 탱고의 원태생인 아르헨티나 탱고와 인터내셔날 탱고의 특성과 그 상이점을 알아야 한다.

 

오초는 8 이라는 뜻인데, 말그대로 크로스와 피봇을 통해 8자 모양을 그리는 스텝을 말하며, 보통 앞으로 하는것을 오초 아델렌떼(Adelante: Forward), 뒤로 하는 것을 오초 아뜨라스(Atras: Backward) 라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간초는 "고리’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다리를 본인의 허벅지와 종아리로 재빠르게 걸었다가 놓는 장식 동작이며, 볼레오는 "던지다"라는 뜻의 한쪽 다리로 반대 다리를 감는듯한 장식 동작으로 무릎은 붙이고 한쪽 다리를 회전 시켰다 제자리로 가져오는 동작이다. 또한 히로, 사까다 등의 동작들이 탱고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모던탱고(콘티넨탈탱고)


1930년대에 들어서서 탱고에는 주목할 만한 전환의 시기가 도래했다.

연주 밴드들은 좀 더 많은 스타카토의 효과를 얻어내기까지 강력한 비트(beat)를 요구하는 압력을 받았으며, 탱고 무용수들은 탱고 본래의 몽환적이고 느긋하며 자유로운 방식으로 탱고를 추는 대신에, 특히 경쟁적으로 손과 발, 몸통의 스타카토 움직임으로 춤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한 과장된 고개 짓이나 어깨의 움직임, 규격화된 리듬으로 완전하게 전환된 춤을 새로이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이 새로 탄생된 모던탱고(Modern Tango)는 분당 33소절의 템포로 춤추는 스타카토 댄스(Stacato Dance)이다.

 

이 춤은 1920년대의 영국 무용교사협의회에 의해 정형화되어진 것으로, 19세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금지된 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 모던 탱고가 발전하여, 오늘날 아르헨티나 탱고보다 세계적으로 더 널리 보급된 유럽 스타일의 콘티넨탈 탱고가 되었다.

 

이 춤은 영국에서 경기용 무도로 틀이 잡혀갔고, 현재 댄스 스포츠(Dance Sport)의 한 종목으로 각광 받고 있다.

 



 

milonga triste



Verano Porteno - A Piazzeolla and D Vare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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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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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희|작성시간11.08.13 흠...댓글난에는 음악 파일이 안 오라가는구나..
  •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2.02.05 [이미지 86x64 & 대문140자]

    1부 탱고◇
    탱고의 어원은 ‘만지다’는 뜻의 라틴어 ‘탄게레’(Tangere)에서 비롯되었다
    탱고는 19세기 유럽의 댄스와 댄스 음악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리듬이 혼용된 복합적인 음악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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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2.02.05 [월드뮤직 icon 86x64 & 대문140자]

    월드뮤직의 진정한 가치는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는 ‘창’이라고 생각한다
    월드뮤직은 클래식, 재즈, 록, 블루스와 같은 장르는 아니다. 뉴에이지(new age)음악이 장르가 아닌 것처럼, 월드뮤직 역시 장르를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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