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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부) 인상주의에서 입체파로

작성자아프로만|작성시간11.10.20|조회수388 목록 댓글 0

문화평론 - 류가미 의 문예기행

[원시에서 모던아트까지]



(34부) 인상주의에서 입체파로  /  2007-08-14

 

 모더니즘의 탄생재현의 위기와 새로운 미학의 도전 -

 

 

안녕하세요류가미입니다오늘부터 몇 주 동안 모더니즘이라는 문예사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모더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모더니즘이 일어나기 전에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놀라운 변혁기였습니다사상적으로는 기존의 사유의 전통을 뒤집어 놓은 니체마르크스프로이트와 같은 사람들이 나왔습니다또한 정치적으로 세계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변혁이 일어난 것은 사상과 정치뿐만이 아니었습니다과학 부분의 변화도 놀라왔는데 퀴리 부부는 방사능을 발견했고 러더퍼드는 새로운 원자 모델을 내놓았습니다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을 열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기술 혁신으로 생활면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내연기관 디젤 엔진이 발명되었으며 동력 자원이 석탄에서 새로운 전기와 석유로 대치됩니다또한 자동차버스 ,트랙터와 비행기 현대식 사무실과 전화 타자기와 녹음기 인공 섬유와 플라스틱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이 등장했습니다신문이 대대적으로 확산되면서 광고라는 것이 등장했고 측음기영화촬영기영사기극장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생활양식은 바로 20세기 초반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러나 발달한 현대 기계문명은 인간의 창조성을 위협했습니다사실 현대 기계 문명은 예술은 실재를 재현(모방)한다는 기존의 예술관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재현 능력으로 따지자면인간보다 기계 쪽이 월등하기 때문입니다.특히 이 재현의 위기가 강력하게 대두된 곳은 회화 쪽이었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되자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화가들이었습니다사진기가 현실을 재현하는 능력은 화가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능력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정밀하게 그렸다고 해도 초상화 보다는 사진 쪽이 훨씬 모델과 비슷합니다더군다나 사진은 회회와 달리얼마든지 현상이 가능합니다결국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사진이 수공예적인 회화를 대체해 버리는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일은 이제 인간의 작업이 아니라 기계의 작업이 되고 맙니다재현의 위기는 곧 인간의 창조성의 위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이제 화가들은 사진기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재현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첫 번째 시도는 19세기 말 인상주의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인상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시절(1867~86)이 사진기가 보급된 시절과 일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유행이던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조명)이 통제된 아틀리에가 아닌야외에서 태양의 직사광선 아래 진동하는 자연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습니다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해는 사물에 색채에 주목합니다그들은 그 당시 흑백 사진기로써는 좀처럼 포착할 수 없는 태양빛과 만드는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고 합니다.

 

[그림1]은 최초의 인상주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마네의 ‘풀밭 위에서 식사(1863)’입니다이 작품은 최초의 인상주의 작품이라 인상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아닙니다그러나 인상주의가 기존의 회화와 달리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것인가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그림 1] 풀 밭 위의 식사 마네 作

http://www.colby.edu/personal/a/ampaliye/FR252/manet20.jpg

 

 ‘풀밭 위의 식사’는 강렬한 태양 아래 있는 남녀의 모습이 보입니다강렬한 태양빛 아래서는 원근법이 사라집니다왜냐하면 사물에 입체감을 더해주는 그늘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그림 속의 인물들을 배경으로부터 두드러지게 하는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이 그림은 대단히 평면적입니다이 그림에서 강조된 것은 원근법이 아니라바로 흰 나체의 여인과 검은 옷은 두 남자가 드러내는 색체의 대비입니다.

 

이 작품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인상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원근법이라는 공간감이 아니라 빛이 만들어내는 색의 조화입니다.

 

마네의 친구였던 모네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이 열심히 야외를 돌아다니면서태양빛이 만드는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객관적으로 포착하려고 했습니다그는 1890년과 1891년 사이 시골에 머물면서 건초 더미를 그렸습니다그림 2가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입니다.

 

자 이제 [그림 2]를 보죠왼쪽의 건초 더미는 황혼 무렵에 그린 것이고 오른쪽의 건초더미는 저녁에 그린 것이다그는 같은 건초더미를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매번 달라졌습니다어느 시간에 그렸느냐에 따라 혹은 그가 어느 위치에서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 속의 건초더미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림 2]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빛과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건초더미의 모습은 실로 다양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건초더미가 가진 다양한 측면들을 전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그가 그릴 수 있는 것은 건초더미의 한 측면이지 모든 측면이 아닙니다.

 

모네가 그림을 그리면서 발견했던 이러한 깨달음을 이론화했던 사람이 바로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입니다그는 아직 사실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세잔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관찰 대상이 달라진다고 봅니다다시말해 관찰 대상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왜곡되어 인식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자 이제 모네의 경우를 들어세잔의 주장을 설명해봅시다모네가 오렌지 색으로 물든 건초더미를 그렸다고 합시다건초더미가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모네가 황혼녁에 건초더미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림 속의 건초더미(관찰대상)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건초더미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관찰하던 모네(관찰자)였던 것입니다다시 말해 모네가 그린 것은 건초더미라는 실체(관찰대상)가 아니라 모네(관찰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한 건초더미였을 뿐입니다.

 

원래 인상주의는 빛이 만드는 대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고 했습니다그런데 이제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때문에 인상주의는 결정론적인 시각을 포기하고 사물을 접근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둡니다인상주의는 인식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객관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에서 주관주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으로 변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18세기 칸트는인식의 한계를 인정합니다칸트는 실재는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칸트가 인간의 가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자그 후 철학자들은 실재가 아니라 인식에 관심을 둡니다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틀을 찾으려고 합니다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인식의 틀을 언어에서 찾았고 융은 이러한 인식의 틀을 무의식적인 원형에서 찾았습니다.

 

세잔은 칸트 이후 철학이 밟아왔던 길을 고스란히 밟습니다그는 인식의 한계를 인정한 후사물이 아니라 인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그는 ‘인간은 어떻게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그리고 스스로 이 질문에 해답을 내놓았지요.

 

세잔은 사람들이 원통원뿔이라는 기하학적 틀을 통해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한다고 보았습니다따라서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원통원뿔의 모습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잔의 이러한 생각을 더 발전시킨 것이 바로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였습니다세잔이 마지막 인상주의 화가였다면 피카소와 브라크는 최초의 모더니즘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체파는 세잔의 이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논리를 발전시켰습니다그들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하나의 화폭에 중첩시켰습니다동시에 대상의 형태는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환원시켜버렸습니다자 이제 입체파 그림 하나를 감상해보죠. [그림 3] 1909년에 피카소가 그린 ‘다리가 있는 풍경’입니다.


  ▲ [그림 3] 피카소 다리가 있는 풍경 1909

  http://www.artchive.com/artchive/p/picasso/prague.jpg


자 이 그림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시다이 그림의 광원은 어디에 있을까요그림 속에 풍경을 비추는 태양은 어디에 있을까요다리와 산의 그림자를 보면 빛은 오른쪽에서 비추고 있습니다반면 집에 생긴 그림자를 보면 빛은 왼쪽에서 비추고 있습니다다시 말해 이 그림의 광원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다리와 산은 빛이 오른쪽에 있을 때의 풍경이고 집은 빛이 왼쪽에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태양이 오른쪽에서 떠서 왼쪽으로 진다면 다리와 산은 화가가 아침에 본 풍경이고 집은 화가가 저녁에 본 모습입니다이 그림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화가가 본 풍경을 하나의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다시 말해 풍경이 가지는 다양한 모습을 하나의 화폭에 중첩시킨 것입니다.

 

또한 이 그림의 다리와 산과 집들은 꼭 원통원뿔의 형태는 아니지만기하학적 형태로 환원되어 있습니다이 정도면 입체파가 얼마만큼 세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입체파의 그림은 낭만주의처럼 인간에 감성에 호소하거나 사실주의처럼 감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입체파는 철저히 화가의 논리에 따라 창작되어진 그림입니다한 마디로 개념 예술이라는 것이지요.

 

입체파 운동은 미래주의 운동보다 몇 년 뒤지지만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운동이었습니다입체파가 가지는 이러한 특징들은 앞으로 모더니즘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를 알려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기말 주의가 19세기 일어났던 수많은 예술 운동을 지칭하는 말이듯모더니즘은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수많은 예술 운동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예술운동은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 운동이라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후기 모더니즘)이라고 불립니다.

 

모더니즘은 입체파야수파청기사파추상주의다다이즘 등등의 수많은 예술 운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예술운동은 추구하는 점은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모더니즘의 첫 번째 특징은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재현을 포기한다는 점입니다.

 

20세기 예술가들은 우리의 인식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우리는 실재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관점에 의해서 왜곡된 실재의 이미지일 뿐입니다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우리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접근한 사물의 일면만을 알 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모방(재현)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모방(재현)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더 이상 실재를 재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예술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20세기 현대 예술가들은 인간이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실재를 재현하는 것을 포기합니다그리고 그 대신 자신이 실재 앞에서 느끼는 인상과 느낌을 표하려고 합니다.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우리는 실재를 인식할 수 없지만그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는 실재 앞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정을 숭고(Sublime)라고 했습니다.

 

재현을 포기한 현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실재 앞에서 느끼는 이 숭고함(Sublime)을 표현하려고 합니다그것이 모더니즘의 또 다른 공통점입니다모더니즘의 두 번째 특징은 숭고를 표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모더니즘은 재현예술이 아니라 표현예술입니다.

 

상상할 수는 있으나 재현될 수 없는 실재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대상을 추상화하는 것이었습니다사물에게서 받은 인상들 중에서 특정한 성질이나 공통된 형태를 골라내는 것을 추상(abstract)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추상주의 화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죠. [그림 4]가 몬드리안이 그린 나무 연작들 중 세 개를 추린 것입니다그림 4에 제일 위에 있는 것이 가장 초기 작품이고 제일 밑에 있는 것이 가장 후기 작품입니다.나무 연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가 나무에서 특정 형태를 골라내 그것을 자기 식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 4] 몬드리안의 나무 연작

 

이 연작을 통해몬드리안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를 점차로 추상화 해냅니다추상은 모더니즘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모더니즘의 세 번째 특징은 대상을 추상화해 그것을 자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입니다.

 

서양 철학에서 궁극의 실재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인 로고스로 여겨졌고 기독교에서 실재는 진선미(眞善美)의 화현(化現)인 신으로 여겨졌습니다때문에 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 진선미(眞善美)를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문학과 예술에 국한해서 보자면실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매우 주관적인 예술입니다대상을 어떤 식으로 추상화하느냐는 보편적인 미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예술가의 마음입니다또 그렇게 추상화해낸 대상의 형태를 어떻게 화폭 안에 재구성하느냐도 순전히 예술가의 마음입니다.

 

보편적인 미학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모더니즘 예술가는 남들이 전에 시도해보지 않은 자신만이 독특한 미의 기준을 찾아 나섭니다실재에 대한 인식의 한계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움은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 없는 모더니즘의 유일한 미적 기준이 됩니다모더니즘의 네 번째 특징은 끊임없이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은 인식에 한계에 따른 재현의 위기에서 태어났습니다모더니즘은 인식할 수 없는 저 실재를 재현하는 대신 실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해내려고 했습니다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표현주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모더니즘은 사물을 추상화 해내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실재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그런 면에서 모더니즘은 추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또한 기존의 양식을 파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미학을 찾는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은 전위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모더니즘은 실재를 재현할 수는 없어도 실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그러나 세계 1차 대전으로 이후에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이 소박한 믿음마저 사라집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나타났던 다다이즘은 우리가 실재 앞에서 느끼는 숭고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더불어 예술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미 속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다음 시간에는 다다이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이제 길고 길었던 우리의 여행도 끝나가는군요그럼 모두들 다음 이 시간까지 모두들 평안하시길…….

 

 

 

류가미 ⓒ   연재 시리즈 -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미지 복원노하우업 (Knowho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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